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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의 대 중국 관여정책의 딜레마

기사승인 2018.02.01  16:0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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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북 관여정책과 비슷

지난 50여 년간 바티칸은 종교 자유를 확대하기 위해 억압적 체제들과 협상하려 애쓰는 가운데, 또한 그런 체제 아래에서 수난당하고 죽은 이들을 존중하려 노력하고 있지만 여기에는 비판과 실제적 고통이 따라왔다.

예를 들어, 냉전시기 교황청의 외교적 노력이 철의 장막 뒤(공산권)에 있는 가톨릭교회의 남은 이들의 안전을 도왔는지 아니면 결과적으로 악과 타협한 것이었는지는 지금도 학문적 논쟁의 주제다.

하지만, 불행히도, 이 주제는 단순히 역사의 문제가 아니다.

비슷한 긴장이 지금 중국에서 펼쳐지고 있는데, 교황청은 중국 공산정부와 대화하고 있는 중이다. 모든 가톨릭 주교들이 로마(교황)와 온전한 일치를 이루고 모든 신자가 서로를 같은 교회의 구성원으로 인정하는 날이 오도록 비록 느리지만 움직이게 하려는 시도다.

하지만 일부는 교황에게 충실하게 남을 자신들의 자유를 포기했고(공식교회), 또 (교황에게 충성을 유지하다가) 결국 수난받았던 일부(지하교회)는 교황청이 중국 정부와 대화하는 것은 배신이라고 본다.

바티칸이 현재 중국 정부와 협상하고 있는 것을 가장 소리 높여 비판하는 이들 가운데 하나가 홍콩의 은퇴대주교인 젠제키운 추기경이다.

그는 1월 29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수십 년간 벌어져 있던 교황청과 중국 사이를 이어줄 공동의 기초를 찾으려 하는 것은 좋지 않은가?”하고 에둘러 물었다. 그리고는 이렇게 자답했다. “하지만 전체주의 체제와 (가톨릭교회가 공유할 수 있는) ‘공동의’ 것이라는 게 있을 수 있기는 한가? 항복하든지 박해를 받아들이든지, 어쨌거나 자신에게 충실해야 한다.”

젠 추기경은 중국 정부가 승인한 중국천주교애국회에 협력한 일부 신자들은 “자신의 자유의지에 의해서가 아니라, 큰 압력을 받아서” 그랬다고 인정하면서도, 또한 “자발적인 배교자들”도 있으며 이들은 사실상 이교(가톨릭에서 떨어져 나간) 상태라고 했다.

(위) 지난 1월 10일 프란치스코 교황은 젠제키운 추기경을 만났다. (아래) 아침 미사를 드리고 기도하고 있는 중국교회 신자들. (사진 출처 = catholicnews.com)

지난 수십 년간 공산 정부는 중국의 주교는 (자기네가) 임명해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가톨릭교회 입장에서는, 그것은 교황의 권한이다. 교황과의 일치가 교회와의 일치를 보증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편집자 주- 중국정부가 승인한 공식교회에서는 각 교구의 주교를 사제, 수도자, 평신도 대표가 모여 선출하지만, 내용상으로는 정부가 좌우하는 것으로들 본다. 중국은 교황이 중국 주교를 임명하는 것은 교황이 바티칸시국이라는 국가의 수반이기 때문에 “내정 간섭”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교황청의 현재 방침은 중국 정부와 대화를 하면서 주교 임명에 관한 합의점을 찾을 뿐 아니라, 종교 자유를 확대할 여지가 조금이라도 있으면 그렇게 하려는 것이다. 또한 갈라진 중국 신자들 서로의 관계를 치유하는 데에도 초점이 있다.

중국 신자들을 일치시키는 것이 중요한 이유는 전임교황 베네딕토 16세가 2007년에 중국의 신자들에게 보낸 편지에 설명돼 있다.

베네딕토 16세는, 애국회에 협력하거나, 협력을 거부함으로써 생긴 분열은 “교회 외부에 있는 요소들에 우선적으로 좌우된 상황이지만, 중국 교회의 진보를 심각히 조건 지었으며, 많은 의심과 상호 비난, 고발 등을 낳았고, 계속해서 교회 안의 약점으로 되고 있어서 걱정을 일으킨다.”

베네딕토 16세는 “교회가 ‘성사’로서 보이는 것, ‘하느님과의 친밀한 일치(unity), 인류의 일치를 보여 주는 징표이자 도구’로서 보이는 것은 사랑의 일치(communion)”를 이루는 것이라고 했다. 개인들, 특히 주교들이 자신들의 공동체의 선익을 위해 정부와 어디까지 협력할 수 있는지를 결정해야만 하는 상황에서, 일치를 촉진할 유일한 방법은 “판단과 상호 단죄를 피하는 것”이다.

냉전 시기에 교황청이 소련 블록(공산권) 국가들에 접근했던 것을 비판하는 것은, 이 일의 주된 설계자로 보였던 아고스티노 카사롤리 추기경에 집중됐다. 그는 수십 년간 교황청 외교관으로 일했으며, 1979-90년에는 교황청 국무원 총리를 맡았다.

이와 비슷하게, 현재의 국무원 총리인 피에트로 파롤린 추기경도 중국 정부와 대화를 하려는 현재의 시도를 둘러싼 토론의 중심에 있다.

젠 추기경은 1월 29일에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중국과 관련한) 파롤린 추기경의 움직임들과 접근법에 대해 교황이 충분히 보고받지 않았다는 뉘앙스를 풍겼다. 그러자 교황청 공보실은 재빨리 이를 부인하는 성명을 냈다.(편집자 주-“교황은 중국 문제에 관해 국무원과 일상적으로 접촉하고 있으며 특별한 관심을 갖고 중국과의 대화와 그 진전에 대한 충실하고 자세한 보고를 챙기고 있다. 따라서 교회 안의 사람이 혼란과 논란을 일으키며 이와 반대되는 주장을 하는 것은 놀랍고 유감스러운 일이다.”)

파롤린 추기경 자신도 1월 31일자 이탈리아 신문 <라스탐파>, 그리고 그 자매 웹사이트 <바티칸 인사이더>에 난 인터뷰를 통해 이에 대응했다.

“중국에서는, 아마 그 어디에서보다, 가톨릭 신자들은 많은 어려움과 고난에도 올바른 신앙의 유산을 보전할 수 있어 왔다. 주교들과 베드로의 후계자 사이의 교계제도적 일치의 유대를 신앙 그 자체의 가시적 보증으로서 굳게 지켰다.” “실상, 로마 주교와 가톨릭 주교들 간의 일치는 교회의 일치의 핵심에 닿는다. 즉 그것은 교황과 중국 주교들 사이, 또는 사도좌와 국가 당국 간의 사적 문제가 아니다.”

그는 하지만 중국에서는 교회의 일치는 또한 중국 가톨릭인들이 교회공동체의 생활 속에서 정부의 간여를 각자 어느 정도 받아들이느냐에 근거해 서로에 대해 내리는 판단들에 의해 위협받고 있다고 지적했다.

파롤린 추기경은 바티칸은 “가톨릭 신자들이 자신의 신앙을 살고, 특수한 중국적 상황 속에서 복음화 사업을 함께 계속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현실주의적 사목 해법들을 찾음”으로써 “반목하는 원칙들과 조직들 사이에 끊이지 않는 갈등”을 극복하기를 원한다고 했다.

“하느님이 뜻하시면, 우리는 굳이 중국의 교회 안에서 ‘합법’과 ‘비합법’ 주교, ‘비밀’과 ‘공식’ 주교라는 말들을 할 필요가 없게 되는 것이 우리의 희망”이지만, 초점은 모든 중국 가톨릭인들이 “협력과 일치의 언어를 다시금 배우는 데” 있다고 그는 말했다.

기사 원문: http://www.catholicnews.com/services/englishnews/2018/dialogue-dilemma-vaticans-china-overture-sparks-controversy.cfm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편집국 editor@catholic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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