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상식 속풀이 - 박종인]

임사 상태에 있는 이에게 세례를 줄 수도 있고 그것이 의미 있다는 사실을 배제할 수 없다. (이미지 출처 = commons.wikimedia.org)

임종한 이에게 세례를 달라니 무슨 뚱딴지 같은 소리냐고 하실 분이 계실 겁니다. 그런데 가족들의 청이 있다면 저는 칼로 무우 썰듯 그건 불가능하다는 말씀은 못 드릴 것 같습니다. 

임종한 당사자가 평소에 가톨릭 신자가 되는 것에 관심이 없었다고 해도 그의 가족이 원하고 있다면, 죽은 이가 아니라 최소한 산 이들을 위해서라도 비상세례를 줄 이유가 있다고 조심스레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남겨진 가족들이 실제적으로 하느님의 사랑을 체험할 수도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의견을 제시할 수 있는 데에는 임사 체험에 관한 다양한 자료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임사 체험"(near death experience)이란 죽음에 거의 다다랐다가 삶으로 돌아온 체험을 가리킵니다. (거의) 죽었다가 살아난 셈입니다. 놀랍게도 선조들도 이런 현상에 대해 알고 계셨던 모양입니다. 초상이 났을 때 입관 예절이 보통, 고인의 운명 후 하루가 지난 시점에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소위 죽었다 돌아오는 이들이 전무했다면, 사망이 인정되는 순간 바로 시신을 관에 넣어 못박아도 그만이었을 겁니다. 

사망 선고 뒤 하루가 지난 시점에 이루어지는 입관예식은 곧, 예전부터 임사체험자들이 있어 왔음을 의미합니다. 누군가가 ‘죽었다'고 선고 받았다고 진짜 죽었다고는 아직 말할 수 없다는 걸 알아야 합니다. 제 조부께서도 죽었다 살아난 이에 대해 들려 주신 적이 있고, 제 부친도 위 수술 후에 의식이 돌아오지 않는 동안 비슷한 체험을 하셨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당신이 이해하실 때는, 그때가 죽음으로 넘어가는 순간이었던 것입니다.

임사체험 경험자들의 증언에 기초한 여러 자료에 따르면, 그들의 영혼이 자신의 육체를 떠났던 시간은 몇십 분 혹은 몇 시간까지 다양할 수 있습니다. 사실상 뇌사를 인정받고 호흡기를 떼지 않은 이들까지 죽음을 경험한 것으로 치면 며칠까지도 가능합니다.(무의식으로 연명하다가 의식을 되찾은 경우도 있다고 합니다) 

이 시간은, 임사 상태에 있는 이가 우리 눈에는 죽은 이라고 해도 그 영혼은 자신의 육체 주변과 여러 다양한 공간에 있었던 체험을 담고 있습니다. 그 시간 동안, 그 영혼은 살아 있는 이들의 표정을 보기도 하고 그들이 하는 말을 듣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비록 누워 있는 이가 아무 말 없다고 해도 우리는 그에게 세례를 줄 수도 있으며 그것이 유의미하다는 사실을 배제할 수 없습니다. 

고인의 시신을 이미 장례 치른 뒤에 무덤에 대고 세례를 달라는 것은 분명 넌센스이겠지만, 죽은 지 아직 얼마 지나지 않은 상황이라면, 살아 있는 이들을 위해서라도 “사목적 배려”를 고려해 볼 필요는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대세 혹은 비상세례를 주는 방법에 대해서도 다시 읽어 보시면, 누군가의 가족들이 긴급히 요청할 때 누구든지 세례를 베풀 수 있겠습니다.(“대세를 주는 방법” 참조)

박종인 신부(요한)
서강대 인성교육센터 운영실무.
서강대 "성찰과 성장" 과목 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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