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젠 추기경은 틀렸다

기사승인 2018.02.21  14:1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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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회의 주교 임명에 관한 그의 오해

(마이클 켈리)

젠제키운 추기경(홍콩대교구 은퇴대주교)은 가톨릭 역사를 단기 강좌로 배우면 좋을 것이다. 그는 교황청이 중국의 주교 임명을 놓고 중국 정부와 (협상하고 있는) 관계에서 하는 근래의 움직임이 “전례 없다”고 반복해서 주장하고 있는데, 이는 거짓이고 또한 오도하는 것이다.

사실은 그렇지 않으며, 그것이 사실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가톨릭 역사를 대충 친숙한 정도로만 알아도 잘못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사실, 교회 역사의 90퍼센트에 해당하는 기간에, 주교의 선택과 임명 절차는 지금 중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것과 똑같거나 아주 비슷한 것이 지배적인 모습이었다.

현재, 그리고 최근 200년의 대부분 기간 동안, 주교 임명은 지역교회가 후보 세 명의 명단을 로마, 즉 교황청의 주교성이나 인류복음화성에 보내는 절차로 진행된다.(편집자 주- 한국 교회는 교계제도가 설정돼 있지만 선교지 교회로서 인류복음화성 관할이다.)

주교성이나 인류복음화성에서는 이 후보들을 평가하고, 이 가운데 가장 좋은 후보가 교황에게 제출되고 승인을 받는다. 대부분의 경우, 가장 좋은 후보(preferred)로 교황에게 제출되어 승인 받고 임명되는 이는 지역교회 차원에서 세 후보 명단을 보낼 때 이미 첫 순위에 있던 이다.

하지만 이것은- 가톨릭적 표현으로는- 근래의 변화다. 겨우 200년밖에 안 됐다! 19세기가 시작될 때만 해도 전 세계 주교 가운데 교황이 로마에서 직접 임명하는 이는 2-5퍼센트를 넘지 않았다. 19세기가 시작되면서 현재처럼 전 세계의 모든 주교가 교황에 의해 임명되는 절차가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이런 변화는 교황 비오 7세가 1804년에 나폴레옹에게 파리의 노트르담 대성당으로 불려가 그가 황제로 대관식을 하는 장면을 증인으로 지켜보게 한 굴욕을 겪은 뒤로 시작됐다. 나폴레옹은 (원래 비오 7세 교황에게 황제 대관식을 해 달라고 했으나) 막상 대관식을 할 때 교황을 제쳐 놓고 자기가 직접 황제관을 들어 자기 머리에 씌웠다.

이는 앞서 교황청이 프랑스의 주교로 제안한 후보 40여 명을 나폴레옹이 고압적인 자세로 거부해 버린 뒤에 일어난 일이었다. 1789년에 일어난 프랑스 대혁명과 로베스피에르가 주도한 공포 정치 뒤로, 수만 명의 프랑스인 성직자가 다른 나라로 달아났는데, 주교들도 엄청 많아서 주교 자리가 빈 곳이 많았다.

그러자 교회 당국은 교황청의 승인을 받아 빈자리를 메울 주교 후보자들을 제출했다. 나폴레옹은 이들 가운데 40명을 거부했고 대신 임명할 이들을 제안했다.

이 경험으로 인해 교황은 주교 임명에서 교황의 권위를 회복하기 위한 운동을 시작한다. 이는 19세기 내내 이어지는데, 유럽의 모든 왕국과 제국이 타도되거나 제1차 대전 뒤에 일어난 것처럼 유명무실해짐에 따라 완수된다.

하지만 이 시점까지도, 주교들의 임명은 여러 제국의 손에 있었고, 교황은 여러 귀족 가문들이 만든 칸에 그저 (승인) 표시만 하고 있었다.

이는 크고 지속적인 영향을 끼쳤는데, 특히 남미, 아프리카, 그리고 아시아에서 그랬다. 젠 추기경 자신의 임명부터가 이 시기에 그 기원을 두고 있다.

이 일은 1493년에 스페인 보르히아 가문 출신의 개탄스런 교황인 알렉산데르 6세가 놀려 “신세계”를 반씩 죽 그어 나눠 스페인과 포르투갈에게 준 데서 비롯한다.

이 판결로 포르투갈은 대서양 가운데를 가른 선의 동쪽에 있는 땅에 대한 접근권과 통제권을 갖게 됐는데, 필리핀을 제외한 아시아 전체와 아프리카였다. 스페인은 브라질을 제외한 남미 전체와 필리핀을 갖게 됐다. (편집자 주- 영화 ‘미션’은 이때의 분할을 배경으로 한다.)

부패한 알렉산데르 6세가 윤허한 이러한 식민지 “소유”에는 또한 (이 두 나라가 이미 각자의 모국에서 갖고 있던) 새 식민지에서의 주교를 임명할 권리도 따랐다.

식민주의가 시작됐고, 그와 함께 로마 가톨릭의 선교적 팽창도 시작됐지만, 이는 스페인과 포르투갈의 왕들이 누가 주교가 될지를 결정하는 것과 함께였다. 이러한 관행은 20세기 중반까지, 그러니까 영국 식민지인 인도가 1947년에 독립하기 전까지 성공회 국가인 영국이 인도에서 누렸던 권리로 이어졌다.

관행적으로, 봄베이 대교구와 고아 대교구는 각기 식민당국인 영국과 포르투갈이 지명하고 승인한 뒤에야 교황의 승인 차례로 넘겨졌다. 봄베이의 마지막 영국인 대주교인 톰 로버츠는 리버풀에서 예수회가 맡고 있는 큰 본당인 성 프란치스코 하비에르 본당에서 본당사제로 있던 중에 붙잡혀 왔었다. 인도가 독립하자 그는 사임했다. 교황청은 그의 사임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러자 그는 그냥 대주교 자리를 비워 두고 고향으로 돌아가서 여생을 자신의 영국인 예수회원들과 함께 지냈다.

중국(빨간색)과 타이완(파란색) 지도. (이미지 출처 = commons.wikimedia.org)

이제 중국으로 돌아와 현재 닥친 문제들의 역사를 살펴보자.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313년에 그리스도교를 로마 제국의 국교로 삼은 뒤로, 교황들은 늘 여러 왕국, 제국들과의 정치를 해야 했다. 교황들은 교회의 이익을 위해 싸웠다. 왕과 군주들은 또한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싸웠다. 양측은 서로 양보하고, 교회의 통치에 긴요한 측면들에 대한 통제권을 공유했다.

중국의 정부를 다루는 문제는 아주 다르다. 현대 가톨릭교회는 교황과 가톨릭 군주국들이 이룬 협상과 합의들을 경험했던 과거 가톨릭 세계의 일부가 아니기 때문이다. 중국의 정치적, 역사적 과거 존재는 중국 제국이었고, 이 제국은 중세적인 자신 밖의 세상을, 그리고 (자신과 다른 세상의) 차이를 늘상 제대로 다루기 힘들어 했던 제국이었다. 불가능한 것은 아니었을지라도 말이다. 현대의 (중국) 공산주의자들도 (이 점에서는) 아무런 차이가 없다.

그런데 왜 교황청은 그렇게 하려고 하는가? 한 가지 간단한 이유가 있다. (중국에서) 교회의 제도적 생존을 위해 교황청이 할 수 있는 아주 작은 공간과 공식적 장치를 보전하려 하는 것이고, 이것이 결국은 교황청의 일이다. 젠 추기경은 (중국과의 협상을 주도하는) 교황청 국무원 총리 파롤린 추기경과 국무원이 겁쟁이이고 배반자라고 우리가 믿게 하려고 하지만 그와는 거리가 멀다.

젠 추기경이 하듯, 자신의 존엄을 내세우고 오직 요구만 할 뿐 아무런 양보가 없다면, 그것은 전망이 어두운 전략에 그치지 않는다. 그것은 또한 교회가 역사 내내 현대 또는 과거의 중국에 비해 아주 덜 힘든 상황들 속에서 어떤 일을 했는지에 대해 완전 무지한 접근법이기도 하다. 20세기 전반기 독일의 나치 시대나 이탈리아 파시스트 정권 하에서, 또는 1950-60년대 동구 공산권에서 교회가 어떻게 했는지 보라.

게다가, 역사를 보면, 약 46년 전, 냉전이 절정에 이르던 시기에 도저히 생각할 수 없었던 일을 미국의 닉슨 대통령과 키신저 국무장관이 했을 때 어떤 일이 있었던가.(편집자 주- 닉슨 대통령은 1972년에 그때까지 적대국이던 공산 중국을 방문하고 1979년에 국교를 수립한다.) 그들은 중국 공산당이 중국의 사실상 정부이며, 좋든 싫든 간에, 중국의 정부로 대접받아야 한다고 받아들였다.

오늘날 교회 안에는 젠 추기경을 포함해 많은 이들이 당시의 미중 수교로 누가 중국을 지배하는지 최종 결론이 안 났던 것처럼 행동하고 있다. 나는 평생 동안 성직자와 선교사들 사이에서 “옛날 중국 일꾼들”이라고 불리는 이들에 대해 알고 지내 왔다. 이들은 예수회 안에도 있고 다른 데도 있다. 나는 지금 방콕에 있는 예수회 사제관에서 살고 있는데, 이 건물은 중국에서 추방된 한 무리의 예수회원들을 수용하기 위해 1950년대 중반에 지어졌다.

이들은 역사에서 일어났던 일(1949년에 공산당이 중국을 실질적으로 통치하는 정부가 된 일)을 받아들일 수 없었고, 그냥 공산당이 언젠가 무너지기를 기다리면 중국에 돌아가 외국인 선교사로서 하던 일을 다시 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들 “옛날 중국 일꾼들”은 (대륙을 통치하다 공산당에 밀려나 1949년에 타이완으로 간 국민당 정권, 즉 “중화민국”의 총통인) 장제스가 본토를 언젠가 수복하고 선교사들이 복귀하게 허용할 것이라고 기대했다.

젠 추기경은 역사를 좀 읽어 볼 필요만 있는 것이 아니다. 그는 감정의 진폭을 다스려야 한다. 그는 자신에게 동의하지 않는 사람 누구에게나 자기식의 “경찰과 범죄자” 구조 이야기를 적용하고 있다. 이 필자 또한 포함된다. 하지만 그런 식의 논리는 듣는 이들로 하여금 그에게서 더 멀어지게 할 뿐이다.

그는 자기가 하고 있는 일들은 자신이 지지하는 이들을 위한 것이라고 생각하겠지만, 그의 그러한 접근법으로는 그들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가 악이라고 규정하고 비난하는 이들에게 퍼붓는 신경질적 고함에는 그가 기여할 수 있을지 모를 어떤 가치가 사라져 있다.

그는 지난 20년 넘게 본토를 방문한 적이 없다. 그런 그가 중국에 사는 사람들에 관해 하는 주장을 뒷받침할 실제 증거를 전혀 갖고 있지 않은 상태에서 자신은 지금 중국의 가톨릭 신자 가운데 절반(편집자 주- 지하교회)을 위해 말하고 있음을 주장할 자격은 얼마간 있다.(편집자 주- 젠 추기경은 본토 태생으로, 홍콩에서 사제가 된 뒤, 홍콩 교구 주교가 되기 전에는 본토의 공식교회 신학교 등에 초청돼 강의를 자주 하여 본토 교회 사정에 밝았다.) 젠 추기경은 자기가 좋아하는 이들 모두를 다 떨쳐 일어나게 하시라. 하지만 그는 앞으로 나아갈 길은 전혀 제시하지 않는다.

(마이클 켈리 신부는 예수회 소속으로, <아시아가톨릭뉴스> 대표이사이며 타이에 상주하고 있다.)

기사 원문: https://www.ucanews.com/news/cardinal-zen-is-just-wrong/81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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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 editor@catholic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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