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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청-중국 관계와 주권의 문제

기사승인 2018.02.27  11:3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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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덕성과 합법성의 구분 필요

(미셸 샹봉)

지난 몇 주간, 교황청과 중화인민공화국 사이에 합의가 이뤄질 것이라는 소문들이 퍼졌다. 이례적으로, 교황청은 중국 정부가 임명한 (같은 교구의) 공식교회 주교에게 양보하기 위해 “지하교회” 주교 2명에게 물러나기를 요구하기까지 했다.

많은 관측통들은 그런 움직임이 얼마나 문제가 있는가 우려를 제기했다. 중국은 종교 자유를 존중하지 않는다는 점을 강조한 이들도 있었고, 프란치스코 교황이 본의 아니게 중국교회 내 지하교회 측을 배반할 수도 있다고 걱정했다. 평소 자기주장을 강하게 펼쳐 온 홍콩의 젠제키운 추기경은 교황청 관리들이 얼마나, 자신과 달리, 중국 지도자들의 진정한 본성이 무엇인지 이해하지 못하고 있으며 이들이 (중국과 수교하려고) 서두르면 중국의 교회에 해를 끼칠 것이라고 비판하는 말과 노력에 아낌을 두지 않았다.

젠 추기경이 여러 차례 공격함에 따라, 어떤 합의든 현 중국 정부에게 위험스런 도덕적 지원이 될 수 있는 것은 안 된다고 교황청에 경고하는 여러 이야기가 나왔다. 아이러니하게, 이들 대부분은 개신교 또는 일반 언론인으로서 이들은 중국 가톨릭 신자들의 복지와 교황의 도덕적 지도력에 대해 경종을 울렸다.

하지만 더 깊숙한 대화를 위해, 우리는 도덕성(morality)과 합법성(legality)을 구분할 필요가 있다. 한 국가가 다른 국가를 승인한다는 것이 그 나라의 현 정부와 그 정책을 다 찬성한다는 뜻이 아니다. 프랑스는 미국과 외교관계를 맺고 있지만, 프랑스인들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하는 모든 정책을 반드시 지지해야만 하는 것이 아니다. 그럼에도 이들은 트럼프를 주권을 지닌 독립국가 미국의 합법 지도자로 인정하는 것이다. 합법성과 도덕성은 서로 겹치기도 하고 복잡한 관계에 있는 서로 다른 두 영역이다.

오늘날, 민족 자결(national self-determination)은 주권 국가(sovereign state)의 창설을 통해 인정된다. 이 국제적인 법적 범주는 자신의 운명을 결정하도록 허용된 실제적인 자치 단위들(국가들)을 만든다. 그럼에도, 한 국가의 주권은 다른 제약 여건들에 의해 끊임없이 도전을 받는다. 그 국가가 전략 자원을 갖고 있다든지, 자신의 사이버 공간을 장악하고 통제할 능력이 있다든지 하는 여건들 말이다. 주권은 자기가 원하는 대로 되는 것이 아니며 자연히 안정 상태인 것도 아니다. 오히려 끊임없이 권력 투쟁에 달려 있다. 21세기 초인 이 시점에서, 그중 가장 위험한 투쟁에는 미국 헤게모니에 도전하는 중국의 부상이 연관돼 있다는 것을 우리는 인식하고 있어야 한다. 이 경쟁에서, 교회는 (다른 국가의 권력투쟁에) 이용될 위험에 끊임없이 부닥친다.

12월 25일 바티칸에 있는 성 베드로 대성당 발코니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이 광장을 향해 손을 흔들고 있다. (사진 출처 - UCANEWS)

중국-교황청 대화의 주제로 다시 돌아와서, 언론인이나 활동가들이 이 만남을 도덕성만의 문제로 틀을 짜면 이는 이런 대화의 법적 측면을 진짜 축소하는 것이다. 얼마간 의식적이든, 이들은 교황청에게, 그러므로 교황 자신에게, 주권체로서 설 권리가 있음을 자기도 모르게 부인하고 있다. 이들이 보기에, 교황은 세상을 향해 “선한 것”이 무엇인지를 말하는 도덕적 지도자에 그쳐야 한다. 이런 접근법은 아주 문제가 많고, 가톨릭 신자인 이들은 이런 접근법이 맞는지 주의 깊게 살펴봐야 한다.

먼저, 교회의 사명은 복음을 선포하는 것이다. 즉, 그리스도가 실제로 오셨으며 그분의 나라가 모든 민족들 사이에 실제로 왔음을 선포하는 것이다. 이는 다른 이들이 “선”이나 심지어 “자유” 등으로 규정할 수 있는 것으로 축소될 수 없는 성질이다. 그리스도는 서구가, 그리고 현대가 종교 자유를 정의하는 것 그 이상이다.

둘째로, 우리가 중국-교황청 대화는 도덕 차원의 문제라고 강조하면 할수록 우리는 이 관계에 담긴 법적, 외교적 측면을 덜 바라보게 된다. 그럼으로써, 우리는 교황청이 하나의 주권체라는 사실을 지우게 된다. 교황청은 (바티칸시국이라는) 국제법으로 인정되고 보호받는 주권국가다.

이는 교황, 그러니까 교회가 독립 지위를 얻기 위해 펼쳐 온 수백 년에 걸친 노력과 희생의 결과로 얻어진 것이다. 교황청을 하나의 도덕적 권위로 축소시키는 것은 위험하다. 그것이야말로 교황과 그의 행동을 세속적 이해관계에 복속시키는 첫걸음이기 때문이다. 그런 관점은 교황에게 여러 국가 사이에서 한 독립 행위자로 설 권리가 있음을 부인한다. 교황이(교황청이) 다른 국가와 정치체제를 (외교적으로) 자유로이 인정할 자체 판단을 할 능력이 있음을 부인한다. 중화인민공화국은 수많은 국가가 인정한 주권체이며, 여기에는 그토록이나 중국을 악마화하려는 미국도 포함된다. 그런데 왜 교황은 중국을 (미국처럼) 그렇게 대하면 안 되는가? 그러므로, 교황청과 중국 간의 대화에 전제조건을 붙이거나 거기에 간섭할 권리는 그 어떤 다른 외세나 집단에게도 없다.

셋째로, 주권의 문제는 그리스도교 메시지의 핵심에 닿아 있다. 그리스도에게 기대는 이들은 그를 자신의 주님이라고 받아들이고 그의 왕국이 오도록 일한다. 이들은 중심도 없고 주인도 없는 절대 평등의 세상, ‘지상 천국’을 건설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이들은 그리스도의 왕국이 오도록 협력하고 있다. 그래서 교황의 주권은 자신과 교회를 세속 권력으로부터 보호하려는 세속적 전략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또한 그리스도의 주인됨(lordship)이 실재함으로 보여 주는 신학적 범주이기도 하다. 즉, 이 그리스도의 주권(주인됨)은 이 세상 안에 이미 와 있지만 아직 온전히 드러나지는 않은 상태다.

가톨릭은 전통적으로 개신교와 달리, 그리스도의 주인됨이 개인적, 도덕적 충성의 문제에 그치지 않고 사회-정치적 질서에 관해 발언한다. 이것은 교황의 주권을 통하여, 개인들과 그 개인들이 이루는 특정한 국민국가의 차원을 넘은 한 법적 구조의 모습으로 객관화되고 외형적으로 드러난다. 어떠한 정치 질서도, 심지어 현대적이고 합리적인 정치질서도, 이 그리스도의 왕국의 현존을 온전히 드러낼 수 없다. 교황의 독립은 이미 와 있지만 아직 성취되지 않은 그리스도의 주권의 현존을 되새겨 주는 작용을 한다. 교황의 독립은 두 세계, 즉 종교적 세계와 세속적 세계의 분리가 아니다. 오늘날 우리의 유일한 세상 안에서 주님이 실제 현존하심을 가리키는 가톨릭적 방식이다.

중국에 관해, 그리고 중국-교황청 관계에 관해 말하자면, 우리는 로마와 베이징 간의 이 대화가 언제나 복잡했음을 기억해야만 한다. 청나라 왕조는 공산당도 아니었고 무신론자도 아니었다. 그런데도 중국의례 논쟁은 깊은 상처를 남긴 경험이다.(편집자 주- 중국에서의 유교식 제사를 우상숭배로 보고 금지하느냐 아니면 시민 의례로 보고 포용하느냐는 놓고 벌어진 교회 내 논쟁. 금지로 결론이 나면서 중국, 조선, 베트남 등의 가톨릭 신자들은 조상 제사를 거부했고 이에 유교 정부들은 가톨릭을 사교로 보고 탄압하기 시작했다. 가톨릭교회는 1930년대에야 이 정책을 바꿔 유교식 제사를- 일본에서의 신사참배와 함께- 종교행위가 아닌 시민 의례라고 인정했다.) 현 교황과 중국 정부는 중국과 교회의 만남이 얼마나 깊고 때로는 고통스러우며 힘든 과정인지를 경험하는 첫 번째 교황이나 중국 정부가 아니다. 각자 오래고 기운찬 전통이 있는 (교회와 중국 측의) 두 세계관은 상호 인정과 존중을 향하는 각자의 길에 서 있다.

바티칸의 구애에 대한 중국의 조심스런 태도는 교황청이 그리스도교적 주권이란 어떤 것인지를, 덜 서구적이고 덜 국민-국가적인 틀 속에서, 재배치하고 옮겨 표현할 좋은 기회일 수 있다. 주권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보편적이고 확립된 정의가 전혀 없지만, 그리스도의 주인됨은 그리스도교적 비전에 핵심이므로, 교회는 교황의 주권이 가톨릭인들에게 왜 그리고 어떻게 중요한지, 그리고 중국 국민(nation)에게 교황의 주권이 왜 위협이 아닌지 끈기 있게 설명할 필요가 있다. (편집자 주- 19세기부터 서구 열강의 침략으로 반식민지 상태에 놓였던 중국은 외세의 간섭에 극도로 예민하며, 교황청이 하나의 국가이기에 교황의 주교 임명도 엄연히 “외국”이 국내 문제에 간섭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끝으로, 중국-교황청 관계에 관한 토론은 홍콩과 관여된 이들과 (교황청이) 구분됨으로써 큰 이익이 있을 것이다. 홍콩 사람들의 시민권과 주권이 약해짐에 직면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지난 20년간 홍콩인들은 자신들에게 홍콩 사회의 바람직한 사회 비전을 만들 능력이 점차 없어지고 있음을 알게 돼 왔다. 본토의 중국 정부에 왜 자신들이 분개하는지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면, 자신들의 침략적인 지배자, 즉 중국공산당을 비판하는 무대로 중국-교황청 관계를 이용하는 것은 불공정하다. 이 두 문제는 각자의 틀 안에서 인식되어야만 하고, 중국-교황청 대화는 홍콩인들에 의해 자신들의 필요에 봉사하는 데 (도구로) 쓰여서는 안 된다.

(미셸 샹봉은 프랑스 신학자로서 미국에서 박사과정을 밟고 있다. 중국의 종교에 관한 논문을 쓰기 위해 중국에서 2년을 지내며 연구했다.)

기사 원문: https://www.ucanews.com/news/the-holy-see-china-and-the-question-of-sovereignty/815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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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 editor@catholic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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