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환의 세상잡설]

많은 이의 염원이었던 전직 대통령의 구속

3월 22일 집으로 가는 버스에서 페이스북을 들여다보니 많은 사람이 기뻐한다. 이명박 전 대통령에게 구속 영장이 발부된 것이다. 지금 이 순간 동부구치소에 수감되었고, 머그샷을 찍었다는 뉴스가 떠오른다. 정치 보복에 익숙한 이들은 이를 정치 보복이라 하겠으나, 많은 이에게는 염원이었다. 이미 확인된 뇌물의 액수도 엄청난데, 검찰은 이명박이 다스에서 12년간 340억 원가량의 비자금 조성도 주도했다고 적시했으며, 이 같은 사실이 17대 대선을 앞둔 2007년 검찰 수사나 2008년 BBK 특검에서 드러났다면 대통령 당선이 무효가 되었을 것이라고 밝혔다. 게다가 배우자 김윤옥, 아들 이시형, 첫째 형 이상은, 둘째 형 이상득, 사위 이상주 등 가족 여럿이 사법처리될 전망이다. 그런데 항간에서는 지금까지 밝혀진 부패의 액수는 용돈 수준이라는 이야기가 심심찮게 나돈다. 아직 4대강, 자원 비리, 방산 비리 등 더 밝혀져야 할 사안이 헤아릴 수 없다. 죄로 따지자면 이제 그는 세상 구경을 할 도리가 없다. 이런 어처구니없는 날강도 같은 자를 ‘우리’가 대통령이라고 뽑았다.

이명박이라는 이름을 처음 알게 된 것은 한창 인기가 있던 '야망의 세월'이라는 드라마를 통해서다. 좀 오래된 어윈 쇼 원작의 미국 드라마 '야망의 세월'과 같은 이름의 이 드라마 속 주인공이 이명박이라고 한다. 군에 있을 때는 이명박의 자서전 "신화는 없다"를 읽었다. 워낙 책이 없어 닥치는 대로 잡고 읽던 때다. 모든 자서전이 그렇지야 않겠지만, 자서전은 한 인물을 분칠해 주고, 사실을 왜곡하기에 매우 유용한 수단임은 틀림없다. 언젠가 이명박과 관련된 인물의 자서전을 작업하면서 특히 절감했던 사실이다. 하여튼 "신화는 없다"를 읽었을 때, 훗날 그가 나라를 이렇게까지 말아먹을 줄 알았겠는가?

2007년 그해 겨울에는 희망이 보이지 않았다. 다음 카페에서 처음 시작한 <가톨릭뉴스 지금여기>에 그때 우울한 상황을 적은 어쭙잖은 글을 기고했다. ‘우울과 절망과 좌절의 삼중주’라 했던가. BBK의 진실이 밝혀지길 바라던 실낱 같은 희망은 도저히 엄청난 대세를 뚫고 지나갈 수 없었다. 사람들이 그것을 정말로 몰랐을까? 이명박이 당선되는 것은 밤이 지나면 해가 뜨는 것처럼 뻔했다. 그냥 체념하면서 일부는 그래도 박근혜보다는 낫지 않느냐고 하기도 했는데, 이후 펼쳐질 부패와 반동적 상황은 아무도 예상치 못했다.

3월 22일 구속된 이명박 전 대통령이 자택에서 나와 서울동부구치소로 이동하고 있다. (사진 출처 = JTBC가 유튜브에 올린 동영상 갈무리)

이명박의 가장 큰 죄악은?

2008년 광우병 촛불이 격렬하게 타오르면서 이명박의 실정을 제어하려 했으나, ‘아침이슬’ 운운하며 기만적 태도로 위기를 모면하더니 더욱 사악해졌다. 정말로 그 사악함은 시민의 기운을 앗아가고, 아주 어이없게 만들어 버리고 정말로 맥을 못 추게 했다. 언젠가 그것은 괘씸하고 지저분한 흑마술 같다고 생각했다. 이제야 그 흑마술의 실체가 수면 위로 한창 떠 오르고 있다.

나는 아직도 잊지 못한다. 이명박의 방송 장악과 관련해 정연주 사장을 쫓아내는 행태를 두둔했던 어느 대의제주의자의 말을. 공영방송은 점령당하고, 이후 수많은 사람의 눈과 정신을 혼탁하게 하는 종편을 만들지 않았던가. 언론 탄압, 민간인 사찰, 4대강, 자원 비리, 방산 비리 등 이명박의 죄악은 이루 말할 수 없이 많으며, 그로 인해 민생은 도탄에 빠졌다. 그리고 화기애애했던 남북관계는 얼마나 냉랭해졌는가. 그 죄악상은 너무도 많아 어디서부터 열거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할 정도다.

이명박 집권 후반기에 접어들 때, 건축가 이일훈 선생의 강연을 들은 적이 있다. 이일훈 선생은 강연 서두에서 화교학교 운동회의 풍경을 이야기한다. 그곳에 쓰인 ‘예의 염치’라는 글을 보고, 인간이 살아가면서 참으로 기본적 덕목임을 강조한다. 예전 같으면 어르신들이나 하는 좀 고루하다 싶은 단어였겠으나, 그때는 뼈저리게 다가왔다. 이명박 집권하면서 사람들이 본격적으로 예의, 염치를 내팽개치기 시작했다고 본다. 그 무렵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돈만 벌 수 있다면, 감옥에 들어가도 상관없다는 내용이 압도적이었다는 사실은 충격이었다. 우리의 정신이 그만큼 타락해 갔다. 이것이야말로 이명박의 큰 죄악이다.

하지만 문학평론가인 한국어문학부 정선태 교수가 팟캐스트에서 한 이야기처럼 역으로도 바라볼 수 있겠다. “MB라는 사람은 압축고도 성장하에서 윤리감각을 상실해 버린 우리 대한민국 국민들의 욕망의 상징입니다. 대통령이 하나의 표상이라면 우리 국민의 각자 욕망을 끌어모은 상징체로서 이명박을 이야기할 수 있겠습니다. MB를 비난하기는 쉽겠지만, 혹시 내 안에 MB적인 욕망이 똬리를 틀고 있지 않은지 성찰해야 MB에 대한 비판에 설득력이 있겠습니다.”

3월 22일 이명박 전 대통령이 구속되어 서울동부구치소로 들어가고 있다. (사진 출처 = JTBC가 유튜브에 올린 동영상 갈무리)

정신줄 놓으면 반동은 언제라도 온다

귄터 그라스의 "양철북"에서 주인공 오스카는 성장하지 못한다. 오스카는 나치 집권기 성장을 멈춘 독일을 상징한다. 나치가 몰락한 뒤 오스카는 다시 자라기 시작한다. 독일인이 나치 시기를 기억하고 또 기억하고, 멈추지 않고 단죄하는 것은 정신줄 놓으면 언제라도 그런 암흑기가 도래한다는 점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이명박에서 시작한 ‘이명박근혜 9년’은 훗날 역사에서 한국사의 극악한 반동기로 재조명될 것이다. 다시는 후퇴하지 않으리라는 방심이 엄청난 비극의 반동기를 초래했다는 사실을 절감하게 하는 역사적 시기로 기억되어야 한다. 다행히 오스카처럼 성장이 멈추고 심지어 퇴보했던 한국사회는 촛불을 통해 구원되었고 다시 온전해지기 시작했다.

이 밤 소셜미디어를 비롯해 많은 사람이 기뻐하며 자축하고 있다. ‘설마 가능하겠어’ 하던 이명박에 대한 단죄가 시작되었다. 이는 한 부패한 탐욕의 정치인을 단죄하는 것 이상이다. 부패에 대한 청산이며, 도도한 역사적 흐름을 꺾은 반동에 대한 단죄인 것이다. 이 단죄는 철저해야 하며, 우리는 ‘이명박근혜 9년’을 뼛속 깊이 기억해야 한다. 망각은 언제라도 반동을 부르기 때문이다.

김지환(파블로)
마포에서 나서 한강과 와우산 자락의 기운을 받으며 살아왔다. 역사를 공부했고 그중에서도 라틴 아메리카 역사를 한참 재미있게 공부했던 시절이 있었다. 지금도 이 지역 이야기는 가슴을 뜨겁게 한다. 여전히, 좋은 책이 세상을 바꾼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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