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상식 속풀이 - 박종인]

노동조합(이후 노조)이 없이 기업을 운영한다는 방침을 고수하고자 했던 유명 재벌기업이 노조를 만들려는 운동을 조직적으로 탄압해 왔다는 사실이 최근 문서를 통해 확인되었습니다.

이런 시사적 정보 때문인지 교회에서 운영하는 기관에도 노조가 있는지를 묻는 질문을 받았습니다.

이런 질문을 받으니 질문을 좀 더 정교하게 만들 수도 있겠습니다. “기업이나 단체에 꼭 노조가 있으란 법 있나. 없이도 운영할 수 있다면 그럴 수 있는 거 아닌가?”

질문에 답한다면, 노조는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습니다. 그 기준이 특별하게 있다고 할 수는 없겠습니다. 노조가 필요하다면, 있는 것이고, 특별히 필요를 못 느낀다면 없을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교회(보통 각 교구)에 속한 단체나 기관에서 있어서도 노조가 필요하다면 있는 것이고 아니면 없는 것이 되겠습니다. 결국 중요한 것은 이런 직장에서 일 하시는 분들이 노조를 구성할 의사가 있는지 여부겠지요. 복음에서 말하듯, 둘이나 셋이 있으면 노조를 만들 수 있습니다.

2014년 5월에 개정되어 시행되고 있는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약칭, 노동조합법) 제5조에 따르면, "근로자는 자유로이 노동조합을 조직하거나 이에 가입할 수 있다. 다만, 공무원과 교원에 대하여는 따로 법률로 정한다”고 정해져 있습니다.

그러므로, 직업의 종류를 불문하고 임금, 급료 기타 이에 준하는 수입에 의하여 생활하는 노동자(노동조합법 제2조 1항, “근로자”에 관한 용어 정의 참조)들은 자유로이 노조를 구성할 의무까지는 아니더라도 권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노동조합이 미사 드리고 있는 모습. ⓒ지금여기 자료사진

사회교리와 관련된 회칙들에 기대어 보면, 가톨릭 교회는 노조에 대해 우호적인 입장을 취해 왔습니다. 사회교리의 시작을 알렸다고 할 수 있는 레오 13세 교황의 회칙 '새로운 사태'(Rerum Novarum, 1891)는 19세기 말 당시 노동자들의 현실에 관한 인식을 담고 있습니다.

이 회칙에는 노동자들의 비참함, 고용주들의 부도덕함, 이들 계층 사이의 갈등을 조장하는 요인들과 그 폭력성에 관한 현실인식과 우려 등이 담겨 있습니다. 특히 그때부터 지금까지 줄곧 경계하고 있는 것은 폭력적인 수단의 사용입니다. 

당시와 지금의 상황이 동일할 수는 없다지만 그렇다고 매우 다르다고는 말할 수 없을 듯합니다. 따라서 약자들이 힘을 모아 스스로의 권익을 보호받을 수 있도록 도모하는, 노동조합과 같은 조직의 필요성은 정당한 것임을 인정해 오고 있는 교회의 입장도 달라진 것은 없다고 하겠습니다.

그래서, 교회에 속한 기관이나 단체에서 그 필요에 따라 노조가 있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실제로 노조가 결성되어 있는 곳이 있습니다. 여기서 한층 더 나아가 교회가 노조를 권장하는 모습을 보여 주면 좋겠습니다.

폭력이 아니라 인내심 있는 대화가 유지된다면 교회가 건강을 잃지 않고 사회적 약자와 가난한 이들을 위해 더욱 신경을 쓸 수 있도록 이끌어 줄 것입니다. 

그럼에도, 이 사회에는 노동조합을 ‘골칫덩이’라고 보는 기본 인식이 깔려 있는 듯합니다. 회칙은 저렇게 말하고 있으나, 교회 내에서도 노조에 대해 곱지 않은 시선을 가진 이들이 적지 않음을 느낍니다.

교회가 우려하듯, 폭력과 그것을 조장하는 교활한 움직임은 분명 경고의 대상입니다. 하지만 외적 폭력만 폭력이 아닙니다. 윤리를 상실한 조직 운영도 폭력과 같습니다. 교회가 가야 할 길은 따로 있습니다. 가시적 폭력만 비판하며 성찰 없이 지내다 보면, 재벌과 다를 바 없어질지도 모릅니다.

박종인 신부(요한)
서강대 인성교육센터 운영실무.
서강대 "성찰과 성장" 과목 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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