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 주원준]

들어가며

평신도 희년을 맞아 우리 교회를 사랑하시는 모든 분들과, 특히 우리 평신도 선후배들에게 이런 생각을 나눌 수 있어 기쁘다. 2년 전 즈음에 필자는 전혀 새로운 평신도 전문가 양성 방식을 실행할 기회를 얻게 되었고, 지금까지 30대 평신도 후배들과 성공적으로 진행하고 있다. 그 경과와 비전을 밝힐 기회를 얻게 되어 감사하다.

노화된 교회

우리는 심각한 현실을 알고 있다. 한국 교회는 이미 노화되었다. 이런 질문을 해 보자. 거리 미사에 참석하는 신자들의 평균연령은 얼마나 될까? 광화문 미사 등에서 사람들을 일일이 붙잡고 나이를 물어볼 수는 없지만, 그런 미사에 비교적 자주 보이는 사제와 평신도의 평균 연령을 짐작해 보면 40대 중반을 넘어선 것 같다. 하필 거리 미사의 예를 드는 이유는, 이른바 ‘사회참여적 신앙’이 ‘젊은이의 것’이라는 통념이 사실과 맞지 않기 때문이다. 거리 미사의 주축을 20대나 30대들이 차지했던 때는 이미 수십 년 전이다.

교회에서나 사회에서나 진보는 이미 전통의 일부가 되었으며 기성의 한 축을 담당한다. 어느새 진보적인 사람들 내에서도 신선한 시도, 과감한 도전, 날선 비판 등을 찾아보기 어렵다. 그보다는 과거에 쌓은 경력, 지식, 성실함, 일관성 등이 중요시된다. 이런 가치들이 중요해지는 현상을 어떻게 부를 수 있을까? 어쩌면 ‘보수화’ 또는 ‘기득권화’라는 단어가 잘 맞지 않을까? 이 사회의 진보는 보수화되었다. 거리 미사도, 대부분 집회의 언어와 음악 등 ‘양식’을 보라. 자유롭고 발랄하지 않고, 상당히 고정된 양식을 수십 년째 고수한다. 거리미사는 특정한 체험과 오래된 염원을 공유하는 40대와 50대의 문화처럼 비친다.

한두 해 전에 일본에서 수정헌법 9조의 반대를 외치는 집회가 있었다. 필자는 ‘일본’에 문외한이지만, 인상적이었던 사진 하나가 기억에 남는다. 70대 노인들이 확성기와 깃발을 들고 외롭게 서 있고, 도쿄의 대다수 젊은 인파는 그 깃발을 무심한 듯 스쳐 가고 있었다. 정말로 ‘깃발만 나부끼는’ 상황 같았다. 그때 필자의 머릿속에는, 일본에서 ‘어떤 진보적인 이슈’는 이미 ‘노인의 것’이 되었구나 하는 생각이 스쳤다. 한국 진보의 가까운 미래가 저렇겠구나 하는 확신 반 걱정 반의 느낌도 들었다.

그때부터 필자는 마치 미래에서 온 시간여행자처럼 광화문 미사나 각종 집회 등에 참석하는 사람들의 평균연령을 속으로 헤아리고 있다. 미래적 시점에서 말하자면, 현재 거리미사 참석자의 상당수는 건강문제나 노화 등의 이유로 10년이나 20년 후에 그 자리에 서 있지 못할 것이다. 젊은 인구가 대량으로 유입되지 않으니 평균 연령은 지속적으로 치솟는다. 젊은층의 참가는 간헐적이고 단기적이고, 이슈나 의미 등이 충분히 공유되지 않고 있다. 이런 추세는 가속화되고 있다. 얼마 되지도 않는 사회참여적 신학의 필자들의 무리는 십수 년간 정체되어 있다. 이렇게 관찰하는 가운데, 젊은이가 신학책을 읽지 않는 현상은 미래를 보는 젊은 글이 없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뜬금없이 들었다.

2017년 4월, 서울대교구 노동사목위, 빈민사목위 공동으로 광화문광장에서 봉헌한 예수 부활 대축일 미사에 신자 600여 명이 모였다. ⓒ강한 기자

다음 세대의 평신도 전문가

많은 말을 하고 싶지만, 이 글에서 필자는 하나만 짚으려 한다. 바로 다음 세대의 평신도 전문가라는 주제다. 가톨릭 신자로서 미래의 전문가를 준비하는 20대와 30대 젊은이들은 상당히 많다. 전국의 대학원생 가운데 상당수가 여기 해당할 것이다. 이들 중 일부는 경제적으로 상당히 힘들다. 이들은 마음속으로 신앙을 키우며 묵묵히 공부하는 미래의 일꾼들이다. 이들 가운데 일부는 자신의 전문 지식이 교회를 위해서도 사용되었으면 하는 아름다운 꿈을 품고 있다. 더욱 전문화된 사회가 다가오고 있지 않은가. 한국의 주류 종교로서 복음적 책임을 완수하기 위해서 미래의 가톨릭 교회는 이들의 지식과 성의를 반드시 필요로 한다.

이들 가운데 일부는 자신의 전문성을 살릴 수 있는 교회와 어떤 ‘전문적 연결고리’를 원한다. 하지만 이들은 현재 인생의 가장 중요한 시기를 그저 홀로 교회 밖에서 상당히 개인적으로 보내고 있다. 필자가  안타까웠던 점은, 세상일에는 전문가이지만 교회적으로는 주일학교 수준의 인재가 대량으로 준비되고 있지 않은가 하는 점이다. 그런 인물들을 우리는 숱하게 체험하지 않았는가.

예를 들어 보자. 국제관계나 남북문제를 공부하는 학생들은 가톨릭 사회교리를 치열하게 연구해 놓는 것이 좋을 것이다. 통역이나 번역가를 준비한다면 교회 용어의 참된 의미와 적절한 번역어를 깊이 익히는 것이 좋을 것이다. 중세나 근대 한국사를 공부하는 학생이라면 순교자 현양 사업의 다양한 고민 등을 체험해 보는 것이 좋을 것이다. 평신도 신학자나 각종 교회 일꾼을 목표로 한다면 현재의 평신도 신학자나 사제들과 친분을 쌓고 고민을 나누는 것도 좋을 것이다. 그러나 교회는 이런 일에 충분하게 노력을 기울이지 않고 있다. 늙은 교회는 젊은이들을 품지 못하고, 다음 세대는 교회 밖에서 미래를 준비하는 형국이다.

가톨릭 동북아 평화 연구소의 샬롬회

이런 생각으로 괴로워하던 필자는 2016년에 ‘가톨릭 동북아 평화 연구소’(이하 ‘가동평연’)에 우연히 다음과 같은 아이디어를 제시할 기회를 얻었다. 그리고 연구소 측은 감사하게도 필자의 생각을 받아 주셔서 젊은 평신도 연구자들의 모임인 ‘샬롬회’를 만들었다. 샬롬회는 벌써 1년이 넘게 조용히 성공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그리고 이제 ‘샬롬회 2기’를 모집하려고 한다.

새로운 방식

샬롬회의 새로운 방식을 요약하면 이렇다. 미래를 준비하는 젊은이들인 샬롬회 회원은 매월 10만 원씩 지급받는다. 그 돈으로 매월 시중의 단행본 한 권을 사서 읽고 자유로운 형식의 서평을 제출한다. 우리는 한 달에 한 번 모여 서평을 나눈다. 그리고 1년에 한 번 서평회에서 제기된 신선한 아이디어나 개념을 가동평연의 심포지엄에서 발표한다. 어떤 아이디어는 더욱 발전시켜 논문이나 단행본으로 낼 것이다.

책은 자유롭게 골라 읽는다. 선정 기준은 ‘가톨릭 동북아 평화 연구소’의 취지에 크게 벗어나지 않으면 된다. ‘가톨릭적’이거나(신학, 교회사 등등), ‘동북아적’이거나(국제관계, 탈북자, 남북문제 등등), ‘평화적’(평화학, 화해, 문학 등등) 주제에 합당하면 된다. 가동평연은 이 책을 사서 서평과 함께 보관한다. 이미 100권 이상의 책과 서평이 쌓였다. 가톨릭 신자가 아니더라도 샬롬회 회원이 될 수 있다. 대학원에 진학하지 않았더라도 생업에 종사하면서 책 읽기와 쓰기를 좋아하는 젊은 평신도들도 환영이다. 샬롬회 회원의 자격은 만 40살까지다.

새로운 방식의 효과

샬롬회로 말미암아 의정부교구 가동평연은 유익한 점을 많이 얻는다. 무엇보다 교회가 계속해서 젊음을 유지할 수 있다. 생각해 보라. 젊은 연구자가 현재 서점에서 팔리는 단행본을 읽고 그 현재적 감성과 비평을 담은 서평이 작년에만 100권 넘게 연구소에 쌓였다. 이런 일은 그 자체로 근사한 일이다. 적은 비용으로 교회의 보화를 축적한다고도 할 수 있다. 가톨릭 동북아 평화 연구소의 모든 연구원들은 이 서평에 접근할 수 있고, 젊은 신앙인의 생생한 활력을 확보한다.(서평은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면 연구소 외부에는 공개되지 않는다) 가동평연의 생각과 느낌은 늘 젊을 것이다.

가동평연은 실제 인격적으로도 젊은이들의 연구소를 유지한다. 가동평연의 그동안 국제 심포지엄 등 각종 행사 등에 샬롬회 회원들이 통역과 안내와 번역 등을 도와주며 협업하였다. 이들의 역할은 실제로 상당하였고 때로 결정적이었다. 이는 샬롬회원들 개인적 차원에서도 유익할 것이다. 이들은 의정부교구 사제나 수도자와 인격적으로 교류한다. 그 과정에서 자신의 미래와 교회에서 가능한 역할을 고민하고 나눌 기회를 충분히 가질 수 있다. 미래 교회의 필자들, 미래의 다양한 평신도 일꾼은 이렇게 현장에서 자라게 된다.

2017년 12월에 열린 가동평연의 국제 심포지엄 등에 이미 샬롬회 회원들이 통역과 안내와 번역 등을 도와주며 협업하였다. ⓒ강한 기자

특별한 감사

필자는 이 기회를 빌어 의정부교구 이기헌 주교님과 가동평원 원장인 강주석 신부님께 큰 감사를 드리고 싶다. 강 신부님은 필자와 함께 매달 서평회를 이끄시기도 한다. 물론 의정부교구 신부님들과 가동평연의 다른 관계자 여러분께도 감사하는 마음이 크다. 미래세대의 평신도 전문가를 키워 내는 일은 사실 본당 차원에서는 힘든 일이다. 많은 분의 이해와 도움이 있기에, 현실적이고 사목적 여건이 마련되었고, 작은 평신도 신학자의 아이디어가 실행될 수 있었다. 그리고 이 샬롬회 모델이 우리 교회의 다른 지체들에게도 참조사항이 된다면 기쁠 것이다.

심포지엄과 2기 모집

끝으로 2가지 공지를 하며 글을 마치겠다. 첫째, 가동평연의 샬롬회는 오는 7월 4일 오후에 제1회 심포지엄을 준비하고 있다. 50대나 60대의 최고 전문가 수준에는 미치지 못하겠지만, 풋풋하고 신선한 시각의 발표를 두 개 준비하고 있다. 공개 심포지엄이다. 오셔서 미래 교회의 ‘젊은 피’(!)들을 격려해 주시면 어떨까 청하고 싶다.

둘째, 샬롬회 2기를 3-4명 정도 모집한다. 미래의 가톨릭 교회와 ‘전문적 연결고리’를 원하는 젊은이라면 누구나 가동평연으로 문을 기쁘게 두드리시기 바란다.

1기 샬롬회에 참여한 청년들. (사진 제공 = 주원준)

주원준

평신도 신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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