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하는 시 - 박춘식]

손가락 누르면. (이미지 출처 = Pxhere)

반세기 후 주일미사는

- 닐숨 박춘식

 

2070년 6월 첫 수요일 아침

신앙심이 깊은 서울의 한 어머니가

고등학생 딸아이에게 일정을 묻습니다

 

- 친구랑 학교에서 수업 자료를 받고 바로

- 지리산 중턱 엠마오 집에 가서 주일미사 할 거야

- 그리고 대전 들러서 최근 아프리카에서 수입한

- 식용 곤충들을 골고루 맛보고 싶어요

 

? 미사를 왜 거기 가니

- 사제 강론이 쪼금 겸손할 것 같아요

? 듣지도 보지도 않고 그걸 어떻게 아니

- 손가락 살짝 누르면 자료가 쫑쫑 나타나니까요

 

어머니는 벽 십자가를 향하여 중얼거립니다

요즘 하느님도 만능 자료 저장소에 계시는구나

그래그래 잘 다녀오너라

 

<출처> 닐숨 박춘식 미발표 시(2018년 6월 18일 월요일)

 

날개를 펴면 비행체가 되고, 날개를 접으면 도로를 달리는 전기 자동차로 움직이는 세상에서는, 교회는 어떻게 변할까 곰곰 생각해 봅니다. 사회가 종교를 걱정하고 염려하는 이 시대의 끝에서, 이제는 사회가 교회를 가르치는 위치에 서게 되는 다급한 변화가 느껴지고 있습니다. 모든 자료가 수집 정리되면서, 종교의 교리 내용이나 신앙의 실천적 행동까지 상세하게 알 수 있는 시대가 오고 있습니다. 어느 날, 로마 교종이 전 세계 모든 신자들에게, 한 주간 어느 요일 어느 미사에든 미사를 참석하면 주일을 지키는 미사가 된다고 반포하거나, 아니면 주일 미사의무를 다른 기도문으로 대신할 수 있는 폭을 넓혀 주리라 예상됩니다. 인공지능 로봇보다 가장 무서운 미래 과학은, 모든 사람을 4등급 또는 9등급으로 나누는 초정밀 탐색 장치를 만들어, 등급 따라 직업이나 계급을 만들고, 범죄자나 무능력자들은 종교시설이나 특정 지역에서만 살도록 조치하는 등등 탐색기가 분류하는 대로 살아가야 하는 세상이 되리라는 예감이 듭니다. 50년 후 여러 나라에서 종교는 한낱 취미나 신심단련을 위한 방편으로 여겨진다면, 종교 본래의 사명을 수행하기 어려울지도 모른다는 걱정이 앞섭니다.

닐숨 박춘식
1938년 경북 칠곡 출생
시집 ‘어머니 하느님’ 상재로 2008년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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