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영화 - 정민아]

“저에게는 올해로 서른이 되는 동생이 하나 있습니다. 동생은 장애인 시설에 오랫동안 살아온 발달장애인입니다. 우리 사회는 발달장애인에 대한 적극적이고 적절한 돌봄을 제공하지 않습니다. 그렇기에 돌봄의 부담은 개인과 가정에 고스란히 돌아갑니다. 이런 상황에서 많은 가정은 결국 눈물을 머금고 장애인을 ‘시설’로 보냅니다. ‘보호’라는 이유, 그리고 ‘다른 가족이라도 살아야 한다’는 이유로 장애인을 사회와 격리해 버리는 것입니다.”

서른 살 된 발달장애인 동생과 함께 살기로 결심한 장혜영 감독은 유튜브 채널에 동생의 일상을 꾸준히 올리다가 기록 영상을 편집하여 한 편의 다큐멘터리를 완성했다. 동생 혜정은 중증발달장애가 있다는 이유로 13살이 되었을 때 장애인수용시설로 보내져 30살이 되도록 그곳에 살아야 했다. 언니 혜영은 오랜 시간이 흐르고 나서야 그런 동생의 삶을 동생 스스로 선택한 적이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고, 동생을 다시 사회로 데리고 나와 둘이 함께 살아가기로 마음먹었다. 이 영화는 다시 함께 살기 시작한 두 자매의 서울에서의 6개월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장혜영 감독과 동생 장혜정 씨의 어린 시절 모습. (이미지 출처 = 유튜브에 공개한 다큐멘터리 '어른이 되면' 갈무리)

다큐멘터리 '어른이 되면'은 이달 초에 폐막한 서울국제여성영화제 한국경쟁부문에 올라 상영되었다. 텀블벅을 통한 크라우드 펀딩으로 장혜영은 5000만 원이 넘는 제작비를 모았고, 몇 차례의 공동체 상영과 영화제 상영을 끝낸 후, 유튜브에 무료로 영화 전체를 공개했다.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영화를 보여 줌으로써, 돌봄노동에 대한 문제, 발달장애인이 사회에서 자립하며 살아가는 문제,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어울리며 살아가는 사회, 장애인 스스로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며 살아갈 수 있는 편견 없는 사회 등 많은 이슈들이 담론화되기를 기대하였다.

이 다큐는 지금껏 우리 사회가 장애인, 그중에서도 특히 발달장애인에 대한 이야기를 담은 영화가 너무도 적었다는 점에서 가치를 지닌다. 우리 주위에 있지만 잘 보이지 않는 존재인 장애인 앞에서 아직 겪지 않은 우리 ‘미(未) 장애인’에게도 곧 닥칠 문제라는 생각은 애써 잊고 있는 현실이다.

그간 영화에서는 인종이나 성소수자, 하층민 등의 소수자 이슈에 비해, 장애인 묘사는 다양하지도 않거니와 예리하게 그려지지 않았던 듯하다. 가장 흔히 보던 장애인 캐릭터는 주인공의 삶의 고난을 부각시키거나 사회 모순을 드러내는 장치로 기계적으로 그려졌다. 장애인 주인공의 경우, 헬렌 켈러처럼 장애를 극복한 위인전 이야기이거나 불행한 장애인들을 그리는 슬픈 이야기가 주류를 이룬다.

언니와 함께 살게 된 장혜정 씨. (이미지 출처 = 유튜브에 공개한 다큐멘터리 '어른이 되면' 갈무리)

영화나 드라마 속 장애인은 우리와 다른 세상에 사는 ‘특별한’ 사람처럼 그려져, 우리는 슬픔을 준비하고 영화를 대하고 만다. 장애인 때문에 고통당하는 비장애인의 슬픔을 묘사하거나, 장애인을 착취하는 비정한 세상을 그리거나, 장애인들끼리 힘겹게 살아가는 등 고정관념은 끝도 없다.

위대한 존재도, 불쌍한 존재도 아닌 장애인은 살아가는 데 다소 불편할 뿐이고, 때론 그것이 하나의 개성이 될 수도 있다.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의 휠체어 소녀 조제처럼, '쓰리 빌보드'의 왜소증 남자 제임스처럼, '제7요일'의 다운증후군 친구 해리처럼.

감독은 “내게 지금 장애인 친구가 없다면, 그것은 사회가, 그리고 우리가 그들을 격리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장애는 나의 정체성이야!’라고 선언하고, 장애인이 갇힌 삶을 넘어 바깥세상으로 당당하게 나오도록 우리 사회 전체가 환경을 바꾸어 나가야 할 것이다. 시설에 의존하던 형태에서 인식의 선회와 제도의 구축이라는 선진국형 형태에 대한 고민이 이 다큐를 보면서 떠올랐다.

'어른이 되면'은 혜영이 혜정과 함께 살아가면서 겪는 각종 다양한 어려움과 행복한 순간들로 채워져 있다. 트로트와 춤을 좋아하는 혜영은 엉뚱하고 귀여워서 웃음짓게 만든다. 하지만 두 자매가 오래오래 함께 살아가는 데에 놓인 갖가지 장애물들 앞에서 앞으로 계속 희망을 가질 수 있을지 의문을 품게 한다. 누군가의 희생이 소진되면, 또 다시 시설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쳇바퀴 돌듯 도는 현실 앞에 영화는 사회가 조금 더 이 문제를 휴머니즘적 의제로 심각하게 받아들일 것을 고대한다.

'어른이 되면' 스틸이미지. (이미지 출처 = 다큐멘터리 '어른이 되면')

살 동안에는 충분히 인간적 권리를 누린다는 것, 예를 들어, 카페에 가고, 버스를 타고, 노래를 하고, 사진을 찍는 평범한 일을 장애인도 함께 누리도록 세상은 연대해야 한다. 장애인이 사회에 나와 비장애인과 어울리면서 자립하는 것은 혼자 모든 것을 척척 잘 해내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이웃과 친구들의 보살핌과 도움 속에서 그들의 개성을 발휘하며 모두가 누리는 평범한 일을 하면서 함께 어울리며 살아가는 것이 우리 모두가 꿈꾸는 세상일 것이다.

18년 만에 함께 살게 된 언니와 동생은 때론 서먹서먹하다. 언니는 동생을 위해 희생한다는 마음가짐이 아니라 함께 행복을 누리겠다는 결심으로 장기전으로 가기 위한 준비를 한다. 동생 혜정은 혜정답게 생활하고 있고, 혜영은 친구들의 손을 빌려 혜정을 돌보는 것을 꺼리지 않는다. 시상식에서 춤추고 노래하면 어때. 그게 나의 정체성인데.

“약자를 가두고 격리하는 사회에서 연약하게 태어나 언젠가 연약하게 죽어갈 모든 사람들이 인간답게 살아갈 수 있는 사회로 나아가기 위한 대화를 시작하는 하나의 소중한 실마리입니다. 저는 이 영화가 오직 능력으로 사람을 줄 세우고 평가하며 차별 대우하는 세상에 이의를 제기하고 어떻게 하면 모두가 함께 인간다운 삶을 누릴 수 있을지를 고민하는 대화의 씨앗이 되기를 희망합니다.”라는 장혜영 감독의 말은 큰 울림을 준다.

다큐멘터리 '어른이 되면' 보는 곳:
https://www.youtube.com/watch?v=g6c0iZMdBcI&t=2

 
 

정민아(영화평론가, 성결대 연극영화학부 교수)
영화를 통해 인간과 사회를 깊이 이해하며 
여러 지구인들과 소통하고 싶어하는 영화 애호가입니다. 
Peace be with You!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저작권자 ©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