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 안태환]

멕시코 88년 만의 좌파 대통령 안드레스 마누엘 로페스 오브라도르는 누구인가?

온건좌파 후보인 국가재건운동당 오브라도르가 1일 대통령선거에서 53퍼센트를 득표해 당선되었다. 그의 대통령 당선은 약 백 년에 걸친 멕시코 현대 역사상 아주 중요한 정권교체의 의미를 가진다. 당선 첫 소감으로 그는 멕시코의 ‘화해’를 강조했다. 그것은 역설적으로 새로운 변화를 상징한다. 왜냐하면 기득권 계급의 두려움(?)을 달래야 하기 때문이다. 

그의 승리는 여러 의미가 있다. 첫째 현대 멕시코의 정체성을 이해하는 데 핵심인 1910년의 멕시코 혁명의 혁명정신을 오늘의 국면에서 살리게 된 것으로 해석된다. 사실 모든 혁명이 그렇듯이 멕시코 혁명도 억눌린 노동자, 농민의 인간다운 삶을 위한 민주주의의 의미와 동시에 민족주의의 의미가 강했다. 하지만 약 10년간 혁명세력 내부의 내전을 거치면서 진정한 혁명 지도자들은 1919년부터 1928년까지 차례로 네 명이 암살되고 중도개혁의 실용(?)적인 ‘멕시코 제도혁명당’(PRI)이 1929년에 집권한다. 네 명의 암살된 지도자를 보면 1919년에 사파타, 1920년에 카란사, 1923년에 판초 비야 그리고 1928년에 오브레곤 등 급진 온건을 막론하고 진정성 있는 혁명지도자들은 전부 희생된다. 제도혁명당은 그때부터 아주 오래 장기 집권 즉 독재정치를 해 온 것이다. 

물론 겉으로는 그렇지 않았다. 그래서 어떤 이는 멕시코 정치를 완벽한(?) 독재로 부른다. 그 정당 안에서의 지도자 교체를 정권 교체로 인식되게 만든 것이다. 앞서 지적한 암살된 멕시코 혁명 지도자 중의 하나인 에밀리아노 사파타의 정신을 이어받은 세력이 바로 치아파스에 근거한 사파티스타 혁명군이다. 그러므로 멕시코 혁명은 절반의 승리도 못 채운 것으로 해석된다. 물론 2000년에 신자유주의 지향적인 국민행동당(PAN)으로 정권교체가 있었지만 이 두 정당은 서로 상통하고 협력(?)하여 기득권계급의 이익을 지켜온 것으로 평가된다. 전자는 민족주의 우파, 후자는 시장 우파로서 위계 서열적으로 소수 기득권층에 유리한 신자유주의를 위해 서로 협력할 현실적 바탕이 같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동안 멕시코 제도권 정치에서 외로운 투쟁을 해 온 오브라도르의 승리는 오랫동안 멕시코 정치의 헤게모니를 유지해 온 기득권계급이 패배한 것으로 이해된다. 제도혁명당은 그동안 민주주의는 레토릭으로 강조하고 민족주의를 정치적 간판으로 삼아 왔지만 엘리트 계급의 보수정치를 지속해 왔다. 민족주의의 정치적 자산마저도 1994년의 나프타 자유무역협정 이후 약화되어 왔다.

둘째, 오브라도르는 마르크스주의자는 아니고 사회민주주의자로 분류되는데 그동안 두 번에 걸친 대선에서 선거부정의 억울함(?)의 패배를 딛고 약 18년의 기다림 끝에 세 번의 도전으로 거둔 승리라는 점에서 인간승리로 말할 수 있다. 그의 정치 슬로건은 좌파 정치인답게 “모두를 위한 정치”다. 이에 비해 우파 후보의 슬로건은 “모두가 멕시코를 위해서”다. 모두라는 수사 안에는 당연히 가난한 농민, 노동자를 포용하겠다는 것이다. 

셋째, 최근 라틴아메리카의 정치 지형은 아르헨티나, 브라질을 비롯하여 우파 세력이 줄줄이 집권하고 있고 라틴아메리카 새로운 혁명의 아이콘인 베네수엘라도 심각한 경제, 정치적 위기로 힘들어 하고 볼리비아와 에콰도르 정도가 겨우 좌파의 명맥을 이어가고 있는 국면이다. 그런데 라틴아메리카 강국 중의 하나인 멕시코에서 아무리 온건하다고 해도 좌파가 집권하게 된 것은 라틴아메리카 정치에 끼치는 영향이 클 것이다. 

멕시코시티에 입성하는 판초 비야와 사파타의 연합군.(1914) (사진 출처 = Wikimedia Commons)

마지막으로 넷째의 의미는 어떤 면에서 가장 중요하다. 멕시코의 눈에 보이지 않는 그러나 멕시코인들의 집단 무의식 안에 깊이 숨어 있는, 근대성과는 다른 문화 즉, 강한 연대의 공동체주의의 영성적 에너지가 오랜 고독을 깨트리고 조금씩 그 힘을 발현할지도 모른다는 점이다. 구체적으로 언급한다면 2014년에 멕시코 게레로 주의 아요트시나파에서 지방 사범대생 43명이 자치경찰의 공격으로 강제 실종된 사건이 있었다. 이들 학생들은 오래전부터 사회정의를 위한 사회운동의 전통이 강했다. 이 사건은 시장 등 권력자들과 범죄단체의 연루 등 멕시코 정치의 어두운 면을 드러내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2014년 이후 이들 희생자들의 부모 등 가족들 외에 수많은 멕시코인이 지속적으로 시위 등을 통해 항의하고 연대하고 투쟁해 왔다는 사실이다. 

이런 인권에 대한 시민들의 연대적 투쟁은 근본적으로 근대성과 자본주의가 지니는 개인주의 문화와 다른 공동체주의의 원주민 문화가 멕시코와 라틴아메리카에 짙게 배어 있기 때문이다. 이런 문화는 달리 말하면 생명력 존중의 영성적 힘에서 오는 것이다. 멕시코에는 식민지 시대부터의 전통인 원주민의 토지 공동소유권(Ejido)제도가 아직도 살아 있다. 

오브라도르를 상당수 전문 학자들은 개방적이고 겸손하고 자신의 정치 철학(가난한 사람들도 존엄하게 살 권리가 있다는)에 변함없는 정치가로 인식한다. 오브라도르는 그동안 선거부정(?)에 대한 항의를 위해 수많은 지지 시민들과 함께 하는 시위(예를 들어, 멕시코시티 중심부 도로를 차단하고 몇 달에 걸친 장기 농성 투쟁)와 지방으로부터 멕시코시티까지의 장거리 도보 행진 등의 투쟁을 실천했다. 그럼에도 법적으로 패배하는 과정에서 더욱 겸손하게 자신의 정치적 신념에 대해 내면적으로 강하게 만들었다고 평가되고 있다. 왜냐하면 그는 자신이 오랫동안 지도자로 있던 온건 좌파 정당인 민주혁명당이 이중적으로 기득권 우파 정당과 야합하는 것을 거부하고 따로 독립하여 투쟁하는 길을 선택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가 현재 발언하고 있는 정치적 ‘화해’의 수사는 단지 정치적 유리함을 지켜내기 위한 전략의 하나로 해석되지 않는다. 특히 현재 멕시코의 마약단과 조직 범죄단체에 의한 암살, 납치 등의 사회적 폭력은 상상을 초월한다. 이런 집단악에 대항해 싸우기 위해서는 개인의 유능한 리더십이 아니라 멕시코 시민 전체의 오랜 고통스런 노력과 투쟁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정치적 성향이 다른 집단에 대해서도 개방적인 자세와 함께 오랜 멕시코 역사의 숙원인 진정한 해방을 위해 생명력이 있으면서도 유연하고 부드러운 리더십이 요구된다. 이런 상황에서 오브라도르 같이 오랜 정치 역정에서 변함없는 모습을 견지해 온 리더를 지도자로 선택한 멕시코인들의 현명함이 놀랍다.

안태환(도마)
한국외대, 대학원 스페인어과 
스페인 국립마드리드대 사회학과
콜롬비아 하베리아나대 중남미 문학박사 
부산외대 중남미지역원 HK교수
현재 한국외대 스페인어과에서 중남미의 역사와 정치, 사회에 대한 강의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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