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녀들은 밥을 가져 왔다

3일 오후, 파인텍 노조 홍기탁, 박준호 씨가 굴뚝 농성 중인 서울 목동의 서울에너지공사 정문 전광판에 나타난 기온은 38.6도. 폭염이 이어진 이날 성가소비녀회 수녀들과 봉사자들은 파인텍 농성을 지원하기 위해 밥을 가져 왔다.

밥 나눔은 올해 초부터 여러 수도회가 중심이 되어 준비했고, 이번 8월에는 매주 금요일마다 성가소비녀회, 샬트르 성바오로수녀회 서울관구, 한국순교복자수녀회, 올리베따노 성베네딕도수녀회가 돌아가며 파인텍 농성자를 위해 밥을 준비한다.

5시 무렵 성가소비녀회에서 준비해 온 밥을 전 금속노조 파인텍지회장인 차광호 씨가 가방에 차곡차곡 담아 굴뚝 위에서 내려온 밧줄에 단단히 묶었다. 밥이 든 가방이 밧줄에 매달려 75미터 굴뚝 위로 천천히 올라갔다.

밥 가방이 무사히 굴뚝에 도착하고 난 다음 사람들은 굴뚝 아래 농성장 천막 안에 모여 상을 차렸다. 수녀, 봉사자, 파인텍 노조원, 연대자 등 13명이 밥상에 둘러앉아 함께 식사했다. 굴뚝 위와 땅에서 같은 시간 함께 먹는 밥이다.

이날 밥 나눔 자리를 준비한 조진선 수녀(성가소비녀회)는 “밥 자체에 의미가 있다기보다, 수녀들이 이곳을 자주 찾아야 사람들이 관심을 가질 것”이라고 <가톨릭뉴스 지금여기>에 말했다. 특히 이날은 홍기탁 씨 부인이 찾아왔다. 조 수녀는 “부인을 보니까 더 마음이 아프다, 얼마나 속이 타겠는가”라며 안타까워했다.

목동에 있는 서울에너지공사 발전소 안 75미터 굴뚝 위에서 홍기탁, 박준호 씨가 268일째 농성 중이다. ⓒ김수나 기자

조 수녀는 “전 국민이 빨리 관심을 가져 주어야 끝난다. 추울 때 걱정하면서 여름이 오기 전에 해결되기를 바랐는데 교회도 세상도 너무 관심이 없다. 75미터 굴뚝은 50도가 넘는다는 얘기를 들었다”며 교회가 파인텍 문제 해결을 위해 더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밥 나눔을 함께한 김현수 씨(대학원생)는 “요새 날이 너무 뜨거워 올 때마다 걱정한다. 농성장 밑에서 활동하는 이들도 (굴뚝 위)를 뒷바라지하며 다른 활동도 해야 해서 많이 힘들어 한다.”며 “농성장에 방문해 자신이 할 수 있는 건 이들에게 함께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 주는 것”이라고 <가톨릭뉴스 지금여기>에 말했다. 김 씨는 지난 3월 파인텍 문제해결을 촉구하는 개신교 예배를 보러 왔다가 지금까지 농성장을 꾸준히 찾아왔다.

파인텍을 만든 회사는 스타플렉스(대표 김세권)다. 실내외 광고물과 광고재료 등을 만들어 파는 스타플렉스는 한국합섬을 인수해 스타케미칼로 사명을 바꿔 2011년 폴리에스테르 원사를 제조하는 공장을 가동했으나, 공장 가동 1년 8개월 만에 문을 닫아 버렸다. 이에 당시 해고자복직투쟁위 대표 차광호 씨는 공장 안 45미터 굴뚝에 올라가 ‘정리해고 반대’와 ‘공장 재가동’을 요구하며 408일 동안 농성을 벌였다.

회사는 노조에게 ‘고용’, ‘노동조합 및 단체협약’, ‘생계 및 생활’ 보장을 약속해 차광호 씨가 굴뚝 위 농성을 풀었다. 약속 이행을 위해 회사는 2016년 1월 새 법인 파인텍을 만들어 공장을 가동했다. 그러나 회사는 합의사항을 제대로 지키지 않았고 2016년 10월 노조는 파업에 들어갔다. 파업 상태에서 회사는 2017년 8월 공장 기계를 빼 버렸고 파인텍은 이름만 남은 회사가 됐다.

파인텍 노조 홍기탁, 박준호 씨는 ‘고용승계’, ‘노조활동 보장’, ‘단체협약 체결’ 약속을 지킬 것과 ‘노동악법 철폐’ 등을 요구하며 2017년 11월 12일 서울에너지공사 발전소 굴뚝 위로 올라가 농성을 시작했다. 이곳은 스타플렉스 서울사무실에서 약 2킬로미터 떨어져 있다. 농성은 8월 6일자로 268일째다.

고용노동부 관계자는 “노사 양쪽을 여러 차례 만나 대화를 제안했으나 아직까지 노사 간 만남이 이루어지지 못했다.”고 <가톨릭뉴스 지금여기>에 말했다.

그는 스타플렉스가 파인텍 노조를 자사와의 노사관계로 보지 않아 노동관계법상 교섭 당사자로 인정하지 않는 반면, 파인텍 노조는 파인텍의 모기업인 스타플렉스 대표가 협상의 자리에 나와 약속을 지켜야 한다고 주장해 양쪽의 만남이 어렵다고 밝혔다.

그렇지만 “고용부는 이 문제를 대화로 풀기 위해 사측에 법적 당사자 여부를 가리기보다는 일단 만나 보라고 의사를 계속 묻고 있다”며, “무엇보다 대화의 자리가 마련되어야 하나씩 문제를 풀어갈 수 있으니 계속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차광호 씨와 홍기탁 씨의 부인이 밥이 든 가방을 굴뚝 위로 올리기 위해 밧줄로 묶고 있다. ⓒ김수나 기자

파인텍 굴뚝 농성, 사회구조를 바꾸기 위한 싸움

최근 폭염에 굴뚝 위에서 농성하는 홍기탁 씨는 <가톨릭뉴스 지금여기>와 전화 인터뷰에서 “더위가 가장 힘들다”고 했다.

홍기탁 씨는 “우리가 이 더위나 추위를 견딜 수 있는 건 노사 간 합의를 이행하라는 요구도 있지만 이렇게 될 수밖에 없는 우리 사회의 구조 때문”이라고 농성의 의미를 밝혔다.

그는 “현장에서는 노동3권이 전혀 보장되질 않으며, 법에 따라 노조를 만들 수 있지만 현 노동법의 한계로 노조 활동이 탄압받는다”고 지적한다. 노동3권은 헌법이 보장하는 단결권, 단체교섭권, 단체행동권이다.

이어서 홍 씨는 “노조 활동을 가로막기 위해 사측은 노조에 업무 방해, 손해배상 가압류 가처분, 폐업, 해고를 강행한다.”면서 노동자들이 그런 것을 “감당하기 쉽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파인텍) 노사 관계가 풀려 현장에 다시 돌아간다 한들 이 사회가 변함없다면 다시금 우리는 싸울 수밖에 없다.”며 “노동자들이 좀 더 변화된 세상에서 살아가려면 법과 제도를 노동을 존중하는 쪽으로 전면 바꿔야 한다.”고 강조했다.

홍 씨는 현재 노동법에 따르면 회사와 노조에 대한 처벌의 형평성이 없다는 점, 노조활동을 방해하기 위해 회사의 폐업 강행을 제약할 수 있는 장치가 없고, 비정규직은 협상 대상에서 제외된다는 점, 교섭창구 단일화로 소수 노조는 교섭의 대상이 될 수 없다는 점 등을 노동법의 문제점으로 지적했다.

그가 파인텍 노사 관계 문제를 넘어 생각이 사회의 근본 구조 문제까지 닿게 된 것은 “경험으로 몸소 느낀 것”이다. 세 차례(한국합섬, 스타케미칼, 파인텍)의 공장 폐업과 회사 청산으로 인한 정리해고 문제, 노조활동을 탄압받은 경험으로 “노동의 문제가 사회적 문제임을 깨달았다”고 한다.

홍 씨는 “(스타플렉스) 김세권 대표가 (협상에) 안 나오는 것은 현재 우리나라의 현실을 보여 주는 것이고, 현실이 바뀌는 것밖에는 해결방법이 없다.”며, “사회가 바뀌어야 노동자가 요구하고 싸울 수 있는 공간이 넓어지고 국민의 삶도 더 나아질 수 있다”고 말했다.

밥 가방을 무사히 굴뚝 위로 올린 뒤 수녀회 및 봉사자들이 홍기탁 씨의 부인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김수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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