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데타 모의자들을 이병 전역 처벌하라

“세상이 국방색으로 변했다”

1961년 5월 16일 이후 한국은 칠레 영화 ‘칠레의 모든 기록’의 한 대사처럼 “세상이 국방색으로 변했다.” 기나긴 정치군인의 시절이 시작된다. 지금 50대 중반쯤에서 60대 초반까지는 청소년기, 청년기까지 대통령 하면 박정희였으며, 박정희가 계속 통치할 것으로 생각했을 수 있다. 그것이 심리적으로 끼치는 영향은 만만치 않았을 것이다. 박정희 독재에 맞서 싸웠던 지인 한 분은 그가 세상에서 사라진 뒤 무언가 허전했다고 한다.

박정희의 18년 독재 통치 기간에 비약적 경제성장을 하여 그것이 박정희 신화의 근거가 되었지만, 한국사회에는 군사문화가 만연하고 자유와 민주는 이전보다 훨씬 후퇴했다. 이 시기를 둘러싼 복잡하고 다양한 이야기가 있는데, 긴 역사의 흐름에서 보았을 때는 반동의 시기임에 틀림없다. 10․26으로 박정희가 죽음으로써 한국사회에 봄이 찾아오리라는 기대를 잠시 할 수 있었다.

하지만 군인이 정치에서 물러나기 바랐던 희망은 정말 한여름 밤의 꿈이었다. 박정희 밑에서 정치질을 배웠던 전두환은 힘의 공백을 재빠르게 파고들었다. 어느 날 갑자기 전두환이 텔레비전에 얼굴을 내밀 때, 어른들은 말했다. “저 사람이 다음 대통령이다.” 작은 박정희들이 일으킨 12․12쿠데타는 매우 정교하고 치밀했는데, 누군가는 심지어 예술적(?)이라고까지 했다. 아마 세계 쿠데타 역사 중에서 손꼽힐 만한 기술적 쿠데타로 평가받을 것이다. 톰 크루즈가 주연한 영화 ‘발키리’를 보면 히틀러 암살 시도 뒤에 진행되는 상황이 아주 정교하게 나오는데, 비록 히틀러 암살이라는 의거였으나 12․12를 연상하는 느낌이 강하다.

육군 소장 박정희(오른쪽)는 1961년 5.16쿠데타를 주동하면서 육군참모총장 장도영 중장(왼쪽)을 내세웠으나 한 달만에 곧 그를 끌어내리고 자신이 전면에 나선다. (이미지 출처 = 위키백과)

작은 박정희들은 역사의 무대에서 퇴장하고

이른바 신군부라 불리는 작은 박정희들에 의해 국방색 세상은 연장된다. 사실 우리 또래는 박정희보다 전두환이 더 기억에 생생하다. 5공화국 초기 당시 오전 방송 없이 오후 6시쯤에나 텔레비전이 나왔던 시절, 미니 드라마를 통해 새로운 공화국은 복지사회를 지향한다는 선전을 했다. 독일 바덴바덴에서 ‘세울 코레아’ 외치며 올림픽도 유치하고, ‘국풍 81’도 하고 프로야구도 시작되고 확실히 세상은 컬러풀해졌다. 결정적으로 통행금지도 해제된다. 작은 박정희들은 자신의 정신적 아버지 박정희와 차별성을 두려고 참 애를 많이 썼다. 하여간 내가 좀 의식을 깨친 이후에도 계속 군인이 통치할 것 같았다. 농반진반으로 이 나라에서 대통령을 하려면, 육사에 가야 한다고 했다.

신군부는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총칼로 진압한 뒤에도 계속해서 군을 통해 민중을 위협했다. 1987년 6월 민주화 정국에서도 그랬고, 그해 말 대선이 치러질 무렵에도 야당이 집권하면 쿠데타 가능성 이야기가 슬슬 나왔다. 이런 군 개입설은 노태우 시절에도 있었다. 1991년 5월 강경대 죽음 이후 벌어진 투쟁 정국에서 군의 개입설이 살짝 흘렀다.

비록 3당 야합으로 집권했지만, 김영삼의 하나회 숙청은 문민정부라는 이름에도 걸맞게 정치군인의 싹을 뽑아내는 쾌거였다. 당시 청와대는 철저한 보안 속에서 쿠데타의 위험성을 감내하며 숙청을 진행했다. 이로써 정치군인은 역사의 무대에서 완전 퇴장했다고 생각했다.

발상만으로도 용서할 수 없는 반란 모의

그런데 이번 기무사 쿠데타 모의 문건 파동은 우리를 경악하게 했다. 사실 이번 쿠데타 모의는 그다지 참신하지 않다. 1979년 전두환이 주도한 12․12쿠데타의 완전한 복사판이기 때문이다. 통신을 방해한다는 정도가 그나마 새로 추가된 내용일까.

계엄을 빙자한 쿠데타 모의 문건을 보면서, 생각이 참 복잡해졌다. 장군의 딸이 대통령이 되니 한참 잠잠했던 정치군인의 고약한 습성이 스물스물 기어올라 왔던가? 아니면 수준 안 되는 대통령을 보면서 정치권력을 우습게 보고, 기회를 엿봐 선배들을 본받아 또다시 정치질을 하려 했던가?

이번 모의 문건에서 눈에 띄는 대목은 쿠데타를 전개하는 주력 부대가 기계화보병사단이라는 점이다. 기계화보병사단은 전차, 자주포, 장갑수송차 등으로 무장해 막강한 화력과 기동력을 발휘하는 육군의 핵심 전력이다. 국방을 지키는 데 주력해야 하는 기계화보병사단이 광화문, 청와대, 국회 등으로 이동한다는 시나리오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나는 사실 이번 모의 문건에서 광화문을 점령하는 부대에서 자주포병으로 근무했다. 그 부대는 민과 군이 하나되었다는 행주대첩을 부대의 역사적 전통으로 삼았다. 그런 부대가 쿠데타에 핵심적 역할을 하는 것으로 거론되었다는 것만 해도 엄청 수치스럽고 쪽팔린 일이다.

인류 보편사에서도 쿠데타는 엄중 처벌하지만, 이번 사건은 쿠데타에 신음한 한국사의 특수성을 고려했을 때 훨씬 엄중한 처벌로 대응해야 한다.

먼저, 쿠데타를 직접 모의한 군인은 장군이든 장교든 이병으로 강등해 전역시키고 종신형에 처해야 한다. 아울러 쿠데타 모의 소식을 접한 모든 군인도 철저히 조사해 사안에 따라 처벌 대상에 포함해야 한다. 더는 정치군인의 분탕질이 이 나라에서 허용된다는 생각을 손톱만큼도 하지 못할 정도로 뼛속 깊이 새겨야 한다. 쿠데타의 ‘쿠’ 자만 꺼내도 경기를 일으키게 해야 한다.

어떻게 생각하면 군을 개혁할 절호의 기회다. 비대한 조직에 특권을 남용하는 기무사를 철폐하고, 무능하면서 전투력에 하등 도움 안 되는 장성들 수를 대거 줄이는 등 싹 물갈이를 해야 한다. 아울러 군에 대한 민의 통제를 더욱 확고히 하며, 한국군을 명실상부한 국민의 군대로 탈바꿈해야 한다. 이것이야말로 쿠데타라는 쓰라린 추억에 상처 입은 우리 역사를 치유하는 길이다.

김지환(파블로)
마포에서 나서 한강과 와우산 자락의 기운을 받으며 살아왔다. 역사를 공부했고 그중에서도 라틴 아메리카 역사를 한참 재미있게 공부했던 시절이 있었다. 지금도 이 지역 이야기는 가슴을 뜨겁게 한다. 여전히, 좋은 책이 세상을 바꾼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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