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 인권침해 진상조사위 발표

경찰청 인권침해 사건 진상조사위원회(이하 진상조사위)가 ‘백남기 농민 사망 사건’은 경찰의 과잉 진압에 따른 결과이며, 백남기 농민 치료 과정에 청와대와 경찰이 개입했다고 밝혔다. 

21일 진상조사위는 백남기 농민 사건과 관련, “경찰의 집회시위 관리 방침, 경비계획, 집회금지통고, 경력동원 및 차벽설치, 살수행위와 피해자 부상 당시 상황, 병원 후송 뒤부터 사망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에서 경찰의 역할과 사후조치 적절성 등을 검토, 심사”했다고 설명했다. 

경찰력 과잉금지 원칙 위배, 헌법상 집회시위 자유 침해
‘숨구멍 차단’ 등 과잉 봉쇄 작전

조사 결과에서 진상조사위는 먼저 집회 이전 경찰 경비계획 및 실행에서 “경비 계획은 집회시위의 자유를 침해했으며, 경찰력 과잉금지 원칙을 위배했고, 집회신고에 대한 당일 금지통고는 경찰 재량에 따라 이뤄진 것으로 헌법상 보장된 집회시위의 자유와 일반적 행동자유권을 침해한 것”이라고 판단했다. 

조사위에 따르면 경찰은 사건 당일인 2015년 11월 14일 특정지역(청와대 경호구역) 진입 차단을 위해 3차에 걸친 차단선을 구축해 절대 방어할 것을 현장에 주문했으며, 이른바 “숨구멍 차단, 지하철 무정차, (광화문역) 솥뚜껑 작전” 등의 봉쇄 작전을 폈다. 

또 이날 집회에는 738대의 경찰버스와 차벽트럭 20대를 이용했으며, 267개 중대 약 2만 명의 경찰, 살수차 19대, 방송차와 조명차 등 13종 1278대, 채증 장비 102대 등을 동원했다. 

조사위는 살수차 사용과 관련, “살수 요원에 대한 훈련이 미비한 상황에서 살수행위를 했다”고 확인하고, “차벽트럭 방수포를 포함한 살수차 사용은 경찰청 내부 지침 외 법적 근거 없이 사용한 것으로 (최루액과 염료 혼합)살수는 위법하다”고 판단했다. 

이날 경찰은 당일 오후 4시 30분부터 6시간 40분간 202톤의 물을 사용했으며, 살수에 섞은 최루액은 440리터, 염료는 120리터다.   

특히 백남기 농민을 향해 직사 살수한 것에 대해서는 “당시 명백한 위험 상황이 아님에도 지속적으로 직사살수 한 것과 살수 행위를 제대로 보지 않고 지시한 행위가 피해자 신체의 자유를 침해했다”고 판단했다. 

2015년 11월 14일 서울에서 열린 민중총궐기 집회에 참여한 백남기 씨와 시민들이 물대포를 맞고 있다. (사진 제공 = <공무원U신문>)

경찰, 청와대 서울대병원 통해 정보 수집과 수술 지시

진상조사위는 사건 발생 뒤 경찰 조치에 대해서도 “백남기 농민이 서울대병원으로 후송된 뒤 경찰이 여러 경로로 서울대병원과 접촉해 피해자 치료 및 예후에 관한 정보를 수집했으며, 수술 과정에도 개입했다”고 확인했다. 

당시 병원과 접촉해 정보를 수집하고, 오병희 병원장에게 수술집도 요청을 한 것은 정용근 당시 혜화경찰서장이다. 또 당시 청와대도 노홍인 선임행정관을 통해 서울대병원에 상황을 물었다. 당시 회생이 불가하다는 진단에도 백선하 교수가 수술을 집도한 것은 병원장의 지시에 따른 것이며, 이는 백남기 씨 죽음에 따른 정치적 부담 때문인 것으로 드러났다. 

또 백남기 농민 장례 직전, 경찰이 부검영장을 신청한 것과 관련, 경찰은 당시 ‘빨간 우의’를 입은 남성이 백남기 농민을 때렸다는 의혹을 추가해 부검을 요구했으며, 유가족이 거부하자 부검을 집행하기 위해 59개 부대 5300여 명을 동원했다고 확인했다. 

그러나 ‘빨간 우의’에 대해서 경찰은 혐의점을 찾지 못해 집시법과 일반도로교통법 위반으로 검찰에 송치했다. 

또 진상조사위는 경찰은 당시 관련자에 대한 조사나 처벌을 2017년 10월 17일 검찰 수사결과 발표 이후에야 감찰조사를 시작했으며, 당시까지 관련자들에 대한 별다른 인사조치가 없었고 일부 관련자는 승진까지 했다고 지적했다.

지금까지 백남기 사건 관련 경찰 책임자에 대한 조치는 구은수 서울경찰청장 1심 무죄, 신윤균 서울4기동단장 대기발령, 당시 살수요원 2명의 직위해제 외에는 없다. 

“백남기 가족에 사과와 집회 주최자 및 참가자에 대한 손배청구 취하 권고”

진상조사위는 이에 대해 “경찰이 집회참가자에 대해서는 철저한 진압과 수사를 진행하면서 경찰 스스로의 책임에는 별다른 조치가 없었다”며, “향후 이같은 인권침해 사건이 발생할 경우에는 제대로 진상을 조사하고 그에 따른 후속조치를 할 수 있도록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고 평가했다. 

진상조사위는 이같은 조사결과와 함께 해당 사건에 대해서는 “경찰의 공식적 의견 발표와 피해자 가족에 대한 사과, 집회 주최자 및 참여자에 제기한 손배청구 소송 취하” 등을 권고했다. 

또 집회 및 시위 현장 경찰 업무와 관련해서는 “집회시위 보장을 위한 업무지침 수립과 교육 및 공개, 집회 및 시위 현장의 살수차 등 사용 금지와 사용 기준에 관한 법령상 근거규정 명확화, 경찰 지휘관들의 업무지침 마련” 등을 권고했다. 

특히 집회, 시위 관련 경찰의 물리력 사용으로 국민의 생명과 신체에 심각한 피해가 초래됐을 때에는 민형사상 재판과 관계없이 독립적 진상조사를 할 것과 피해자와 그 가족에 대한 보호 및 지원, 진상조사 과정에서 관련 경찰관의 업무 배제와 조사 협조, 위법사항이 밝혀질 경우 책임자 및 관련자에 대한 즉각적 제재조치, 집회시위 현장 대응의 책무성 보장을 위한 현장 지위 내용과 대응에 대한 판단 근거, 장비 사용에 관한 사항 등을 일정기간 보관 등도 권고했다.  

백남기 씨는 2015년 11월 14일 서울에서 열린 민중총궐기대회 중 경찰이 쏜 물대포를 맞고 쓰러져 서울대병원 중환자실에 있다 2016년 9월 25일 숨졌다. ⓒ정현진 기자

한편 백남기 대책위는 진상조사위 결과 발표에 대해 “그동안 밝혀진 사실과 함께 이번 조사결과로 경찰 내부자료와 증언을 바탕으로 한 경찰의 인권침해와 공권력 과잉행사의 구체적인 사실이 추가로 밝혀진 것은 긍정적으로 평가한다”고 입장을 밝혔다.  

그러나 대책위는 “민중총궐기대회 진압과정과 서울대병원의 치료개입, 부검정국 등에서의 경찰의 과잉대응과 책임자를 밝혀냈음에도 이들에 대한 징계, 법적조치 등의 권고가 빠진 것”은 매우 큰 유감이라고 했다. 

또 경찰에 “진상조사위의 모든 조사내용을 인정하고 조사위의 권고사항을 즉각 이행하기 위한 조치를 취할 것”과 “다시는 위법하고 과잉된 공권력행사에 의한 희생이 발생하지 않도록 법적 제도적인 보완뿐만 아니라 정권의 입맛에 따라 휘둘리지 않는 조직으로 다시 태어나라”고 촉구했다.

백남기 대책위 최석환 사무국장은 <가톨릭뉴스 지금여기>에 “조사위가 경찰청 내부에 설치된 거라 경찰의 책임 부분이 제대로 실릴까 걱정했는데 일단 조사 내용과 결과는 긍정적으로 본다”며 “다만, 밝혀진 사실에 대한 추가 관련자의 징계, 처벌에 대한 권고는 빠져 있어 아쉽다. 조사위가 징계나 처벌을 위한 기관이 아니며 권고 내용은 향후 대책이므로, 아쉽지만 조사위의 결과를 존중한다”고 말했다. 

한편, 이번 조사결과에 대해 우리농촌살리기운동 전국본부장 김인한 신부는 “국가폭력 가해자에 대한 조사가 아니라 단순한 인권 침해 조사”라며, “책임자와 가해자, 최고 책임자는 누구인가”라고 물었다.

또 조사 결과는 2015년 11월 14일 집회 당시의 사건에만 집중되어 있다며, “백남기 사건은 직사 살수뿐 아니라 수많은 국가 기관들, 심지어 경찰들의 집요한 가해 행위의 반복에서 이뤄진 사건인데 이것이 빠져있다”고 말했다.

김 신부는 “조사위 스스로 한계를 그어 놓고 조사한 느낌”이라며, “백남기 농민과 가족, 그리고 연대한 모든 이들에게 가한 폭력에 대해서도 생각해 봐야 한다”고 말했다.

경찰청 인권침해 사건 진상조사위원회는 지난해 8월 출범했으며, 우선 조사 대상으로 백남기 농민 사건을 비롯해 용산참사, 쌍용차 파업 농성 진압, 밀양 송전탑 농성, 제주 강정마을 해군기지 반대 농성 등을 정했다. KBS 정연주 사장 해임 반대 시위, 삼성전자 서비스 염호석 노조원 시신 탈취 사건도 조사 중이다. 

진상조사위는 계속 사건별 조사 결과를 발표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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