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이 떠나고 있다

(윌리엄 그림)

8월 19일에, 내가 미사를 집전해 주는 본당의 사제들은 성직자들에 의한 성학대 이야기가 이번에도 폭로된 것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 자리에서 나는 다음과 같이 이야기했다:

“다음 주의 주일 복음에서는 예수가 자신의 살을 먹고 피를 마시는 일에 대해 말한 것에 사람들이 놀라 그를 떠난다. 지금 우리는 예수를 따르는 이들 가운데 일부의 행위에 놀란 많은 이들이 예수를 떠나고 있다는 사실, 적어도 그의 교회를 떠나고 있다는 사실을 직시해야만 한다.

지난주에 미국 (펜실베이니아 주의) 여러 교구에서 약 70년 동안 성직자들이 아동을 성학대한 뉴스가 나왔다. 약 300명의 사제가 1000건을 저질렀다. 호주와 아일랜드의 교회는 각자 교회 안에서의 성학대 사건과 은폐가 드러나면서 깊은 상처를 입었는데, 아마 거의 치명상이다.

다른 뉴스에서는 미국의 한 추기경(매캐릭)이 그 자신이 어린이와 청년들을 성학대했다는 보도들이 쏟아진 뒤 사임했다. 그의 사건에서 더 충격인 것은 로마 교황청에서조차 그의 행위는 상식이었다는 것이고, 그럼에도 성학대 보고들을 신뢰하기를 거부하기로 유명하게 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그를 추기경으로 서임했다는 것이다.

미국에서 보도된 성학대 사건 대부분이 제2차 바티칸공의회 전에 저질러졌거나 공의회 전에 신학교를 다닌 사제, 주교들이 저질렀다는 것은 그나마 자그만 위로가 된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 뒤에, 사제가 되려고 신학교에 입학하려는 지원자에게는 심리 검사와 심리적 훈련 과정이 도입되었고, 사제는 하느님백성의 종이라고 강조하는 쇄신된 신학이 교육되었으며, 사제 수가 줄어든 것 등이 모두 일정한 개선으로 이어졌다. 성학대를 완전히 막지는 못했어도 말이다.

하지만, 성학대 사건이 줄어들고 있음에도, 그런 일의 밑바닥에 흐르는 사고방식은 여전히 그대로다. 나는 일부 서품받은 남성들의 건강치 못함에 대해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6월 13일 (오른쪽)교황 특사로 칠레에 파견된 조사관 찰스 시클루나 대주교가 산티아고 가톨릭대학을 방문했다. 학생들은 칠레 가톨릭 교회의 성학대를 반대하는 손팻말을 들었다. (사진 출처 = UCANEWS)

사제들은 인간이다. 이 말을 반복하고 싶다. 여러분 일부에게는 이 말이 처음 듣는 말이라는 것을 내가 알기 때문이다. 사제들은 인간이다. 초인(superhuman)이 아니고, 하느님의 자녀인 여러분 누구나에 비해 조금도 덜 떨어지거나 더 특별하지 않다.

비록 내가 그 수를 세어 보지는 않았지만, 내가 사제품을 받은 뒤 지난 41년 동안, 나는 내가 내 또래의 다른 남자만큼이나 많은 화장지를 써 왔다고 자신한다. 사제라고 해서 사제가 아닌 이들을 괴롭히는 그 어떤 육체적, 심리적 질병에서 면제되지 않는다.

그런데 사제로부터 당하는 학대가 의미가 다른 것은, 우리 같은 사제들은 신뢰할 만한 사람들이라고 가정되고 있다는 사실을 제쳐 놓고라도, (교회 밖) 대부분의 가해자는 그들을 보호하고 심지어는 새로운 성학대의 기회까지 제공해 주는 어떤 제도의 일부가 아니기 때문이다.

문제는 원래 성직자를 비롯한 여러 교회 일꾼들에 의한 어린이와 유소년 성학대라는 점이 아니다. 성학대는 범인이 누구든지 간에 흉악한 짓이고, 사회에 의해 같은 일로 처리되어야만 한다.

그런데 교회 상황을 더 나쁘게 만들고 있는 것은, 가톨릭교회가 그런 불건강한 범인들은 물론 그들을 이곳에서 저곳으로 전근시킨 주교들이나 (수도회) 장상들에게 (그런 짓을 해도) 처벌받지 않는다는 생각을 키워 줬고, 문제에 대처하는 데 시민사회와 협력하기를 거부했으며, 나아가 피해자들을 믿기를 거부하거나 그런 피해자들은 돈을 뜯어내려는 교회의 적이라고 중상 비방함으로써 피해자들에게 2차 가해를 했다는 점이다.

그렇다. 이 모든 일에서 진짜 추문은 성직자주의라고 알려진 교회 안의 질병이다.

성직자주의는 사제들은 일반 규율에서 제외된 특별한 인종이라는 잘못된 믿음이다. 그런 일반 규율에는 때때로 식당에서 주문서를 집어드는 사회적 관례, 또는 여러 법적, 도덕적 규율이 있을 수 있고, 여기에는 어린이 (또는 여성에 대한) 성학대의 처리도 포함된다.

그런데 그런 것이 말이 안 된다고 믿는 평신도나 성직자들이 많다. 이 추문의 한 가지 좋은 결과는 교회에 있는 성직자주의의 성채를 깰 수도 있다는 점이다.

성직자의 지위와 평판을 보호하기 위해서, 주교들은 자기 밑 사제들은 물론 자기 자신의 죄를 덮었다. 그리고 이 은폐는 아주 멀리 바티칸에까지 이어졌다. 교황청에는 성학대를 저지른 사제를 국가 당국에 알리는 주교는 파문될 것이라고 하는 법률이 아직도 있다.(편집자 주- 이 문장의 근거를 묻는 한 독자의 질문에 필자는 Kieran Tapsell이 쓴 책 “Potiphar's Wife: The Vatican's Secret and Child Sexual Abuse”를 권했다.)

Kieran Tapsell이 쓴 책 “보티파르의 아내: 바티칸의 비밀과 아동 성학대” 표지. (이미지 출처 = Amazon.com)

쉽게 말해, 우리의 지도자들은 하느님 백성을 돌보는 일보다는 자신의 지위, 평판, 안락 그리고 보호에 더 신경을 써 왔다.

미국과 여러 영어권 나라에서 처음으로 성직자에 의한 아동 성학대가 뉴스로 보도됐을 때, 당시 교황청에서 성직자 문제를 담당하던 성직자성 장관이던 콜롬비아의 카스트리욘 오요스 추기경은 그런 성학대 문제는 영어권 국가들에서만 일어난다고 주장했다.

확실한 것은, 추기경의 빨간 모자를 쓴다고 해서 그 모자 아래에 있는 머리와 가슴에 들어 있는 무지, 편견 그리고 (정확한 단어를 쓰자면) 어리석음이 극복되지는 않는다. 영어권에서 성학대 사건이 드러났던 것은 영어에서 아주 옛날에 (다른 여러 인도유럽어에서와 같은) 문법적 성구분이 없어졌기 때문이 아니었고, 영어권 사회들이 감시자 역할을 하는 언론들에 의해 보호받는 법과 개인 권리에 충실했던 결과로 마침내 그런 추문이 빛 아래 드러나게 됐던 것이다.

그러므로, 이제 카스트리욘 추기경이 속한 남미의 스페인어권 교회는 집중조명의 뜨거움을 느끼고 있고, 이 집중조명은 아시아에서도 이제 빛을 비추기 시작하고 있다.

아시아는 재난이 일어날 요소들을 잘 갖추고 있다. 성직주의 문화가 있는데, 원래부터 권위에 복종하는 문화 때문에 더 강화돼 있다. 또 너무나 많은 주교들이 진실 또는 정의에 관심을 기울이기보다는 교회(대개는 자기 자신을 교회라고 본다)의 “체면”을 더 걱정한다.

성직자와 평신도 사이에 성직주의 문화가 다 강한 아시아 교회들 –인도, 한국, 그리고 필리핀이 바로 떠오르네- 그리고 여성과 아동의 권리가 (범인이) 처벌받지 않는 채 침해되는 아시아 교회들은 아마도 곧 터질 추문들에 직면해 있다고 보인다. 이러한 추문들은 즉각적이고, 정직하며 효율적으로 대응함으로써만 피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우리가 그렇게 행동해야 할 이유는 추문을 피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우리가 그런 목적으로 그런다면 그것 자체가 추문이 될 것이다. 우리, 우리 모두는, 아주 간단한 이유 때문에 행동해야만 한다. 그것은 그렇게 하는 것이 옳고 정의롭기 때문이다.

그리고 당신도 이 일에서 해야 할 역할이 있다. 당신 자신, 그리고 당신의 여러 태도와 행동 가운데 얼마나 많은 부분이 성직자는 특권이 있고 특별하다는 생각을 강화하고 있는지 점검해 보라. 당신이 사제들을 떠받들어 모시는지, 그렇게 하는 것을 당신이 좋아하고 있는 것 아닌지 자문해 보라. 성직자주의의 죄에 당신은 어느 정도까지 책임이 있는가?

사제와 주교들에게서 눈을 떼지 말라. 우리가 하느님과 그리스도, 또는 교회에 대해 더 많이 이야기하고 있는가? 우리가 교회에 대해 이야기할 때, 우리는 순례하는 하느님백성인 우리 모두에 대해 이야기하는가 아니면 제도와 그 지도자에 대해 말하고 있는가? 우리가 말할 때, 우리는 종이라는 단어를 그저 입으로 발음하고 있을 뿐인가 아니면 실제로 봉사하는 우리를 보고 있는 것인가? 우리가 성사에 대해 이야기할 때, 우리는 사제로서의 하느님백성이 하느님 아버지에게 찬양을 드리는 성소, 그 일을 하도록 임명된 특정한 남성들 안에 구현된 우리의 성소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가 아니면 사제들이 얼마나 특별한 존재인지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가? 만약 우리가 제도에 대해 이야기한다면, 우리는 우리가 하느님께로 가는 길을 보조하는 조직에 대해 이야기하는가 아니면 권위, 권력, 그리고 지위에 대해 이야기하는가?

잘 들어보고, 당신이 더 들어야 할지 아니면 무시하거나 이견을 내거나 달아나거나(걸어서가 아니라) 어쩔지를 결정하라. 그리고 그렇게 달아나다 보면 당신이 교회로부터 멀어지게 된다면, 그리스도는 그럼에도 당신과 함께 계시고, 아마도 같이 뛰고 있을 것이라고 알아 둬라."

(윌리엄 그림 신부는 메리놀회 소속으로, <아시아가톨릭뉴스> 발행인이며, 도쿄를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다.)

기사 원문: https://www.ucanews.com/news/sexual-abuse-and-clericalism-a-sermon/83167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관련기사

저작권자 ©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