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모두가 농정 적폐"

국민의 먹거리 농업, 농촌 적폐 청산과 대개혁을 염원하는 시민농성단이 청와대 앞에서 열흘째 무기한 단식농성을 하고 있다.

“농업, 농촌, 먹거리 위기는 천길 낭떠러지 앞”
안전한 먹거리와 농업, 농촌 문제 해결은 한반도 평화만큼 중요한 국정 과제

9월 10일 단식농성을 시작한 이들은 “적폐 농정 중단과 구태의연한 농업 관료 쇄신, 식량 문제를 대통령이 직접 챙기고 공약을 이행할 것, 즉각 농정 개혁 착수, 민간주도 농특위 즉각 설치, 공약 불이행에 대한 대국민 사과와 농업 진영과의 면담 이행” 등을 요구하고 있다.

‘시민 농성단’에는 농민과 농업 및 먹거리 관련 단체, 농업 전문가와 학자, 종교계와 일반 시민 등 50여 명이 참여했으며, 김영규 GMO반대 전국행동 조직위원장, 유영훈 우리밀살리기운동본부 이사장, 진헌극 친환경무상급식 풀뿌리국민연대 공동대표, 채성석 농민이 단식농성을 하고 있다.

이들은 현재 국민의 먹거리 농업, 농촌의 위기는 천길 낭떠러지 앞에 있으며, 경쟁력 지상주의와 생산주의 정책, 수입개방 농정을 이어온 결과 농업은 파탄에 이르렀고, 그 폐해는 국민 전체의 문제가 되었다고 지적했다.

또 이들은 개발독재 전부터 농업과 농촌은 수탈의 대상이었고, 이명박과 박근혜의 농정 또한 ‘무관심, 무책임, 무대책의 3무 농정’이었으며, 지금까지 그 어디에서도 농정 적폐의 청산과 개혁의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이들은 “농업은 회생이 불가능할 정도로 무너져 내렸고, 농촌은 거대한 무덤으로 변하고 있음에도 경쟁력 적폐 청산을 사명으로 탄생한 문재인 정부에서 농업 적폐는 이어질 뿐 아니라 더 커지고 있다”고 했다.

이들은 문재인 정부에서도 농식품부 장관 보은 인사 문제를 비롯해 5개월간 유례 없는 농정 공백을 만들고, 대통령 취임 두 달 만에 농업 공약이 폐기되는 구태를 반복하고 있다며 지적하고, “농업을 직접 챙기겠다던 대통령의 공약을 믿고 인내를 갖고 기다려 왔지만 문재인 정부는 농민과 농업을 살릴 골든타임을 허비하며 농정대개혁에 대한 의지를 보이지 않고 있다”는 입장이다.

이들이 단식농성을 시작한 다음 날인 11일, 여의도에는 전국에서 5000여 명의 농민들이 모여, 문재인 정부의 농정을 규탄했다.

이들이 외친 구호는 “밥 한 공기 300원 보장”, “쌀 1킬로그램당 3000원 보장”, “농업예산 삭감 철회”였다. 농민들은 앞으로 5년 동안의 농민값인 쌀값 결정 이전에 문재인 정부에 근본적 농업정책 변화를 촉구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대선 후보 당시 “대통령이 농업을 직접 챙기고, 쌀값과 쌀농업을 지키며, 농가 소득 보장과 여성 농업인 권리 복지 증진, 농산물 유통체계 개선, 농어민의 농정참여 실현, 농어업 특별기구 설치, 소득보전 직불제의 확대 개편, 농산물 제값받기 프로젝트 시행” 등을 약속한 바 있다.

청와대 앞 단식장. 이들은 농업에 대한 인식을 근본부터 개혁해야 한다고 호소하고 있다. ⓒ정현진 기자

농업에 대한 철학의 빈곤
"농업 적폐에서 자유로운 이는 누구도 없다"

농민들은 이같은 공약 이행 이전에 농업을 단순히 산업 논리와 생산주의로만 보는 근본적 철학 부재가 문제라고 지적한다.

“정부에서 나름대로 애를 쓸 것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농민, 농업계가 공통으로 느끼는 위기감에는 미치지 못하는 것 같다. 근본적 패러다임 전환 없이 농업은 지속가능하지 않다.”

무기한 단식농성을 하고 있는 유영훈 우리밀살리기운동본부 이사장이자 전 가톨릭농민회 부회장은 <가톨릭뉴스 지금여기>에 “농민 기본소득, 쌀값, 스마트팜 밸리 등 손에 꼽기도 어려운 많은 문제들이 있지만, 농업문제는 이제 각 이슈별로 해결할 수 있는 것이 아니”며, 그래서 “단식농성으로 농정의 기본 패러다임과 농업에 대한 근본 인식을 바꿔 달라고 호소한다”고 말했다.

유 이사장은 이번 봄과 여름, 가을까지 가뭄과 폭염, 태풍 등으로 농촌이 큰 어려움을 겪었는데도, 국정 책임자가 위로나 격려 한마디 없었으며, 올해 초 국정연설에서도 농업은 없었다며, “패러다임 전환에 대한 고민은커녕, 무책임, 무관심, 철저한 소외라는 기존 관행을 답습하는 것이 아닌가 큰 걱정”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미 농민이나 농업계는 현실적으로 너무 힘들고 개별적으로 버티던 기운도 잃고 있다며, 대통령의 적극적 의지와 결단이 없으면 안 되는 절박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또 그는 이번 단식은 각각의 이슈 해결 요청이나 문제제기, 어떤 성과를 위한 것이 아니라 ‘호소’라며, “정부의 결단이 필요하지만 사실 농업이 이 지경이 된 것에 대한 총체적 성찰 계기를 마련하는 것이다. 사실 농업 적폐는 정부만의 몫이 아니라, 소비자, 농업계 모두 나서야 한다. 농업 적폐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은 누구도 없다”고 말했다.

2013년 대비 2017년 농업 인구 약 284만 명에서 242만 명으로 42만 명 감소.
2017년 농업인구 연령대는 60대 이상 약 55퍼센트, 40대 이하 약 26퍼센트. 70대 30퍼센트.
2017년 식량자급률 48.9퍼센트. 50퍼센트 이상이 수입 농산물.
2007년부터 2017년까지 10년간 농지 약 16만 5000헥타르 감소.(경기도 전체 농지 규모)
2007년부터 2017년까지 곡물 생산량 약 63만 톤 감소.
2017년 농가 전체 소득 연간 3824만 원에서 순수 농업 소득은 1005만 원.
농가 1년 순수익 440만 원(논벼), 530만 원(과수), 350만 원(채소)
농가 평균 소득은 1994년 1000만 원대를 넘었으나, 2017년 약 1004만 원으로 23년째 1000만 원 대.

통계청과 농림축산식품부 통계로 본 농촌 현실이다. 그러나 일정 규모에도 미치지 못하는 소농과 개별 농민들의 삶은 통계에도 담기지 못한다.

지난 8월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여성농민대회. 얼마 전 어려운 농촌 현실을 견디던 한 여성 농민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비보가 전해졌다. ⓒ정현진 기자

“농업을 산업논리로만 생각하는 것이 지금까지 농정이었다. 생산력을 향상시켜서 생산량을 늘리고 경쟁력 있는 농가(기업농) 중심으로 키우는 것이다. 그 결과가 오늘의 현실이다. 친환경농사의 경우, 다른 가치와 시스템이 필요한데도, 무조건 생산량만 늘렸다. 그러나 소비 대책과 시스템이 없어 결국 농민은 소비자에 예속되고, 농가는 분열됐다.”

유영훈 이사장은 “전반적으로 농정을 새롭게 짜야 한다. 생산량 중심의 물신주의 기반에서는 어떤 정책도 제대로 작동하기 어렵고, 기존 관료들이 같은 일을 반복하면 농민은 계속 소외되고 농업은 망가진다”며, “농업관, 농업 철학을 이야기하면 추상적이라는 비판을 받는다. 하지만 농정은 기본 철학이 잘못됐기 때문에 어떤 정책과 지원도 효과가 없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오늘의 농업 현실에서 농업 적폐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이들은 아무도 없다. 농민 단체, 학자들도 결국 농업 위기 위에서 유지된다”며, “세상을 향해 온몸으로 소리치고 있는 것이다. 어디로 가야 할 것인지 농업계도 길을 잃었다. 그러나 우선 지금까지 총체적으로 농업을 망가뜨린 우리 모두가 원인 제공자라는 사실부터 시작하자는 것. 그래야 해결점을 찾을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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