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 가장 연대적인 사람 - 맹주형]

귀농학교인 천주교 농부학교 일을 한 적이 있다. 처음 천주교에서 시작하는 귀농학교를 준비하며 그 이름을 고민했었다. 천주교 농민학교, 천주교 귀농학교 등등 고민하다가 떠오른 단어가 ‘농부’였다. “나는 참 포도나무요 나의 아버지는 농부이시다.”(요한 15,1)에 나오는 그 농부였고, 결국 귀농학교의 이름은 ‘천주교 농부학교’가 되었다. 

농민이 없는 서울교구에서 농촌 교구 가톨릭농민회와 함께 10년 넘게 귀농을 꿈꾸는 도시민들을 모아 많은 것을 농민들께 배웠다. 교육 과정 가운데 농촌 현장 실습이 있다. 실습 가운데 제일 기억에 남는 일은 농사일이 바빠 농민들이 내버려 둔 밭을 함께 정리하고 밭을 만드는 일이었다. 학생들은 밭을 정리하고 만들며 농사일을 배웠고, 일손과 밭이 필요했던 농민에게도 고마운 일이었다. 일을 마치고 학생들은 큰소리로 “밥이 하늘입니다. 하늘을 혼자 가질 수 없듯이 밥은 나누어 먹어야 합니다. 밥이 하늘입니다. 아멘!”하고 기도했다. 농민들과 밥과 막걸리를 나눠 먹었다. 그렇게 실습을 마치고 집으로 가려는 학생들은 오랜만에 친정집에 와 떠나기 싫어하는 시집간 딸들 같았다. 땀과 밥으로 서로의 신뢰는 깊었고 고마움은 컸다.

얼마 전 연휴에 TV에서 ‘비열한 거리’라는 영화를 보았다. 영화 가운데 3류 조폭조직의 2인자인 병두(조인성)가 조직 동생들과 밥을 먹으며 묻는다. 너희들은 왜 식구라고 하는지 아냐고. 그리고는 식구는 밥을 같이 먹는 사람들이고, 입은 각자 하나씩이지만 모두 한 입이라고 그것이 식구라고 말한다. 함께 먹는 일이 건달에게도 중요한 일이요, 그 의리의 기본은 식구였다.

청와대 앞에 ‘국민의 먹거리 위기, 농업적폐청산 농정 대개혁 촉구 국민농성단’이 꾸려졌다. ⓒ맹주형

청와대 앞에 ‘국민의 먹거리 위기, 농업적폐청산 농정 대개혁 촉구 국민농성단’이 꾸려졌다. 농성장에서 만난 김영규 위원장은 “우리가 농민들을 위해 이렇게 단식하는 것이 청와대와 대통령에게는 손에 박힌 가시 같은 존재”일 거라고 말한다. 밥을 만들어 식구를 먹여 살리는 농민들을 위해 밥을 굶고 있다. 지난 이명박근혜 정권 이후 농업, 농촌, 농민 현실은 더욱 열악해졌다. 밥을 만드는 터전인 농경지는 지난 50년 동안 1/3이 사라졌다.(1966년 225만 6000헥타르→2016년 167만 9000헥타르) 국민 1인당 경지면적은 239평에서 100평으로 반 토막 났다. 밥을 만드는 농민들의 수는 2010년 306만 명에서 2011년 296만 명으로 300만 농민시대는 이미 끝났다.(2015년 256만 명, 농촌경제원 농림어업총조사). 

농민 수도 줄었지만 농민 나이는 이미 초고령화 시대다. 65살 농가인구 비율이 2016년 40.3퍼센트로 최초로 40퍼센트대에 진입하였다. (농민 가운데 65살 이상이 가장 많다) 그 가운데 식량 수입은 폭증하였고, 미국과 유럽연합 등 거대 경제권을 포함한 총 54개국과 자유무역협정을 체결하였다.(2017년 기준) 특히 박근혜 정부는 호주, 뉴질랜드, 캐나다, 중국, 베트남 등 거대 시장과 연달아 FTA를 추진하며 엉터리 피해분석과 대책으로 국내농산물 가격은 폭락의 연속이었다. 농민들도 그랬다. 그래서 문재인 대통령은 대통령 후보시절 “농업을 직접 챙기겠다.”고 공약했다.

서양의 유토피아, 이상향은 원래 한 천막 안에서 밥을 나누어 먹는 모습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함께 밥을 나눠 먹는 세상이 유토피아 세상이요, 이상향이다. 그래서 밥이 하늘이고, 서로가 하늘이 된다. 그런데 하늘은커녕 청와대 앞에서 밥을 만드는 농민들을 위해 24일째 굶고 있는 이들이 있다. 이들을 떠올리며 어이없게도 영화 ‘비열한 거리’에서 식구를 강조했던 병두가 생각났다. 영화의 끝부분, 식구였던 동생들에게 칼에 찔려 죽어 가는 병두의 모습이 떠올랐다. 내가 그 동생은 아닌지. 우리가 농업, 농촌을 외면하고 있는 사이 밥과 농민과 식구를 죽이고 있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비열한 거리다. 

청와대 앞 '국민의 먹거리 위기, 농업적폐청산 농정 대개혁 촉구 국민농성단’ 농성장에서 만난 (왼쪽) 김영규 위원장. ⓒ맹주형

맹주형(아우구스티노)

서울대교구 사회사목국 정의 평화 창조질서보전(JPIC) 연대 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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