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 주원준] 국경 넘는 '고통받는 교회 돕기' 초대장

하느님은 경계를 넘어 미리 가서 기다리신다. 

국경을 넘다

경계를 넘어 변방을 체험해야 진실이 보인다. 국경을 넘으면 한국 가톨릭교회를 부럽게 바라보는 시선을 체험할 수 있다. 전교나 봉사활동을 제약 없이 할 수 있고, 그리스도인으로서 사회적 이슈에 거리낌 없이 의견을 드러낼 수 있는 나라는 그리 많지 않다. 게다가 한국은 퍽 부유하다. 전 세계 200여 개 나라 중에 10위권의 경제를 유지하고 있지 않은가. 그 정도면 1퍼센트에 드는 ‘초상위권 국가’인 셈이다. 

우리가 참 가난한 나라였을 때, 고 김수환 추기경님은 국경을 넘으셨다. 세계의 부유한 나라들을 돌며 기도와 도움을 요청하셨다. 유복하고 자유로운 교회의 신자들은 가난한 나라의 추기경님께 정성을 모아 주셨고, 그 돈으로 한국 가톨릭 교회는 신학교, 성당, 병원, 봉사시설 등을 지었다. 일부는 정의구현 활동에도 썼고, 가난하고 불우한 이웃을 돕는 데도 썼다. 

과거의 우리 추기경님처럼 현재도 이 나라 저 나라를 다니시는 가난한 주교님들이 많다. 세계인의 관심과 기도와 정성을 요구하는 그분들은 한국을 꼭 찾고 싶어 하신다. 한국은 부유한 교회이면서, 서유럽과 북미와는 다른 어떤 것도 있다고 생각하시는 것 같다. 한국 교회가 순교자의 후예임은 잘 알려져 있다. 

오늘날 박해받는 교회의 목자들

작년에 오신 세바스찬 쇼 대주교님은 파키스탄 교회의 지도자이시다. 이슬람 원리주의자들이 미사 시간에 맞춰 폭탄을 터뜨려 신자들이 많이 죽고 다쳤다. 일부 신자는 이슬람법에 따라 화형당하였다. 하지만 쇼 대주교님은 비폭력과 대화를 강조하시며 어떤 형태의 보복도 금지하였다. 박해받는 교회의 목자 쇼 대주교님을 보면 우리 순교시대의 교회 지도자들이 떠오른다. 이 자리에 다 밝히지 못하지만, 대주교님의 고충은 이루 다 말할 수가 없다. 

2017년 11월 명동성당에서 세바스찬 쇼 대주교가 강론하고 있다. (사진 출처 = ACN)

필자는 대주교님의 서울 일정 일부를 동반했다. 식사도 했고 안내도 했다. 쇼 대주교님은 서울의 성당과 교회와 절두산 성지 등을 보시며 ‘우리도 이렇게 되면 참 좋겠다’는 말씀을 여러 번 하셨다. 하지만 나는 좀 부끄러웠다. 한국 교회의 다수는 무관심했기 때문이다. 이런 분이 우리를 방문하신다는 사실도 잘 모르는 분들이 많았다. 우리는 우리만 보고 사는 교회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정성을 모아 주시는 소수의 손길은 그래서 참 고마웠다. 

2016년에는 이라크 칼데아 가톨릭의 바샤르 맛티 와르다 대주교님이 오셨다. 아직도 전쟁의 상처가 아물지 않은 곳에서 사목활동을 하시는 분이다. 그분의 얼굴과 말씀에서는 포연(砲煙)과 순교자의 냄새가 났다. 그 느낌이 지금도 생생하다. 대주교님은 살아있는 아람어 구사자이기도 하시다. 성서학자로서 필자는 이 주제에 대해서도 기쁘게 토론했는데, 대주교님의 막힘 없고 생생한 지식이 인상 깊었다. 

와르다 대주교님은 평화에 이르는 방법을 강조하셨다. 현재 이라크 가톨릭 교회는 수준높은 대학을 설립하였는데, 전체 교수의 절반 이상이 이슬람인이며, 여성에 대한 장벽도 없다고 역설하셨다. 이 밖에도 여학교 설립 등 여성 교육을 특히 강조하셨다. 대주교님은 이런 교육이야말로 이라크에 종교간 대화를 회복시킬 핵심적 방편이라고 믿고 계셨다. 그리고 그런 사업에 기도와 정성을 청하려고 한국을 방문하셨다. 

이라크 성 마리아학교 앞에 서 있는 와르다 대주교. (사진 출처 = ACN)

필자는 높은 인격과 지성을 갖추신 와르다 대주교님과 그 교회를 하느님께서 강복하시길 진심으로 기원한다. 하지만 사실 한국 가톨릭 교회의 다수는 와르다 대주교님에 대해서도 충분한 관심을 보여 주지 못했다. 홍보도 부족했지만, 아마도 우리가 다른 교회를 돕는다는 사실 자체가 낯설었기 때문일 것이다. 이 밖에도 그동안 레바논의 레이몬드 아브도 신부님(맨발의 가르멜회 관구장)과 우간다의 앤 크리스틴 키자 수녀님(티 없으신 속죄의 마리아 성심 수녀회 총원장) 등을 우리나라에 모셨다. 

‘고통받는 교회 돕기’(ACN)

이렇게 고통받는 교회를 돕는 일을 하는 단체는 ‘고통받는 교회 돕기’라는 곳이다. 이름 그대로 ‘고통받는 교회’(church in need)를 ‘돕는다’(aid)는 곳이다. 2차 대전 직후 베렌프리트 판 슈트라텐(Werenfried van Straaten) 신부님이 설립하셨고, 현재 공식 교황청 산하 재단이다. 이 단체는 매년 전 세계 140여 개국에서 성전 건립, 성직자 양성 및 생계지원 등과 같은 다양한 가톨릭 사목원조 프로젝트를 6,000개 이상 진행하고 있다. 자세한 것은 아래 공식 홈페이지를 보시면 된다.

http://www.churchinneed.or.kr/

필자는 한국 ACN의 창립부터 이사를 맡고 있다. 시작은 참 우연하고 단촐했다. 2013년 교황청과 독일 본부를 거쳐 평신도 한 명이 한국으로 파견되었고, 그분은 필자를 찾아왔다. 개인적으로 오랜 대화와 성찰 끝에 함께하기로 결심했다. 하지만 처음에는 시행착오의 연속이었다. 두 명의 평신도가 머리를 맞대고 이리저리 궁리도 하고 여기저기 물어도 보았다. 그동안 겪은 수많은 일화들이 차차 거름이 되는 동안, 요한네스 클라우자 지부장의 한국어 실력은 많이 늘었고, 필자도 경계를 넘는 감사한 체험을 많이 했다. 신학자로서 이런 체험은 축복이었다. 

서울대교구 성내동 성당에서 성체 분배하는 와르다 대주교. ACN은 더 많은 성당에 찾아가서 국경을 넘는 체험을 나누길 희망하고 있다. (사진 출처 = ACN)

다행히 한국의 주교님들은 큰 관심과 격려를 보내 주셨고, 특히 기꺼이 한국 이사장을 맡아 주신 염수정 추기경님께 이 자리를 빌어 깊이 감사드리고 싶다. 이제는 ‘초창기’를 조금 벗어나 본격적 활동을 시작하는 단계라고 할 수 있다. 이렇게 홍보 기회를 주신 <가톨릭뉴스 지금여기>에도 감사드린다. 

우리를 찾는 ‘오늘의 김수환 추기경님들’

올해는 아프리카와 아시아에서 주교님이 한 분씩 방문하신다. 말라위 좀바 교구장 조지 데스몬드 탐발라 주교님과 미얀마 주교회의 의장 펠릭스 리안 켄 탕 주교님이다. 가난하고 탄압받는 교회의 주교님 두 분에 올해는 우리 신자들이 조금 더 귀 기울였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 본다.

2018년 ACN 심포지엄과 미사 '믿는 모든 이를 향한 하느님의 사랑' 포스터. (포스터 출처 = ACN KOREA)

두 주교님은 부유하고 자유로운 한국 가톨릭 신자들을 위해 30분 분량의 프레젠테이션을 정성껏 준비해 오셨다. 이런 말씀을 직접 들을 기회는 흔치 않다. 직접 질문하거나 함께 미사를 드릴 기회도 준비되어 있다. 특히 올해는 ACN에서 30년 이상 일하신 평신도 레히베르거 형제가 방한해서 다른 나라를 돕는 일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나눌 것이다. 10월 19일 금요일 오후 명동성당에서 이분들을 직접 만난다. 

수십 년 전 가난하고 작은 나라의 추기경님에게 작은 정성을 모아 주셨던 신자들을 떠올려 본다. 순교자의 후예인 한국 가톨릭 신자들은 지금 어디에 있을까. 국경을 넘는 초대장이 발송되었다. 

주원준

평신도 신학자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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