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무부, 내전은 박해 사유로 안 봐

법무부가 제주에 머물고 있는 예멘 난민 458명 가운데 339명의 인도적 체류를 결정했다.

법무부 제주출입국외국인청은 10월 17일 예멘 난민에 대한 2차 심사 결과, “예멘 난민심사 대상자 458명 가운데 339명은 인도적 체류허가, 34명은 단순 불인정하고, 면접을 하지 못한 16명과 추가 조사가 필요한 69명 등 85명에 대해서는 심사 결정을 보류한다”고 밝혔다.

법무부는 지난 9월 14일, 전체 난민 심사 대상자 484명 가운데 23명에게는 우선 인도적 체류허가를 내 줬다.

이에 대해 ‘난민인권네트워크. 제주 난민 인권을 위한 범도민위원회’는 17일, 입장문을 내고, 법무부에 “단순불인정 결정을 철회하고 국제인권기준에 부합하는 심사를 실시하라”고 촉구했다.

이들은 “난민인정률 0퍼센트라는 결과에 심히 당혹스러우며, 예멘 상황은 통상적 국가와 비교해 매우 엄혹한 것을 고려하면, 이번 결과는 현행 난민 제도의 존재 이유를 되묻게 한다”며, “내전이나 강제징집 피신은 가장 전통적 난민보호 사유다. 난민들의 구체적이고 개별적 심사 결과가 아닌, 내전 중이라는 현지 사정을 고려한 천편일률적 결정”이라고 했다.

범도민 위원회 언론팀장 신강협 씨(요셉)는 18일 <가톨릭뉴스 지금여기>와 전화통화에서 “난민인정자가 한 명도 없다는 것은 정확한 심사 결과라기보다는 정무적 판단으로 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는 “예멘 난민심사 담당자 2명이 두 달간 약 480명을 심사했고, 물리적으로 2명이 하루도 쉬지 않고 3-4명씩 면담, 심사해야 한다는 결과”라며, “난민들의 개별적 상황과 그 상황이 박해 사유에 맞는지 보려면 심층인터뷰와 개별조사가 진행되어야 한다. 현실적으로 가능한가라고 합리적 의심을 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법무부는 난민 심사 과정에 대해 “전담 공무원의 심층 면접, 면접 내용에 대한 사실 검증, 국가 정황 조사, 신원 검증, 마약 등 범죄경력 조회, 각계 전문가 의견 수렴” 등을 진행했다며, “난민협약 및 난민법상 인정 요건에는 해당하지 않아 난민 불인정 결정을 했지만, 현재 예멘의 심각한 내전 상황, 경유국에서의 불안정한 체류와 체포, 구금 가능성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난민법 제2조 제3호에 따라 인도적 체류를 허가했다”고 밝혔다.

또 난민 불인정 34명에 대해서는 “예멘의 내전 상황에도 제3국에서 출생해 예멘에서 살았거나, 외국인 배우자가 있는 등 제3국에서 안정적으로 정착할 수 있지만 경제적 목적으로 난민 신청한 것으로 판단되거나 범죄 혐의 등으로 국내 체류가 부적절한 경우”라고 설명했다.

인도적 체류허가는 난민법상 난민 인정요건을 충족하지는 못하지만 강제추방할 경우 생명, 신체에 위협을 받을 위험이 있어 인도적 차원에서 임시로 체류를 허용하는 제도다. 결과적으로 난민 불인정이며, 임시 체류 기간은 1년이다. 또 인도적 체류기간에는 취업활동을 할 수 있지만 의료보험 등 4대보험 혜택, 교육권, 여행권 등 사회보장을 받을 수 없고 본국의 가족을 초청할 수 없다.

난민협약과 난민법상 난민으로 인정받기 위한 사유는 인종, 종교, 국적, 특정 사회집단 구성원, 정치적 견해 등 5가지다. 법무부는 예멘 난민들이 본국의 내전으로 목숨을 위협받는 위험에 처했지만 이는 난민 인정 이유가 되지 못한다고 판단한 것이다.

지난 17일 법무부가 제주에 머물고 있는 예멘 난민 458명 가운데 339명의 인도적 체류를 결정했다. (사진 출처 = SBS뉴스가 유튜브에 올린 동영상 갈무리)

범도민 위원회는 또 34명에 대한 단순불인정 결정은 이들을 잠정적 강제송환의 대상으로 만든 것이라며 심각히 우려하고, “예멘의 상황이 심각해지면서 미국 등 다른 국가들도 예멘 난민 보호를 강화하고 있는데도, 법무부가 34명을 송환의 대상으로 삼은 것이 어떤 법적 근거인지 명확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범도민 위원회는 예멘 난민에 대한 인도적 체류 결정은 ‘인도적’이라고 볼 수 없다며, “난민들이 사회구성원으로서 스스로 안전하게 정착할 것을 기대할 수 없으며, 근본적 해결을 위한 인도적 체류자의 처우에 관한 법적 개선 노력이 없다면 인도적 체류허가자가 겪는 문제는 해결될 수 없다”고 했다.

신강협 팀장은 예멘 난민들이 취업 현장에서 문제를 일으킨다거나 정부 지원금을 과도하게 쓰고 있다는 보도 등에 대해서도 짚었다.

그는 “예멘인들의 언어와 문화, 종교가 완전히 다르고 어떤 직업 훈련이나 교육도 받지 않은 상태에서 가장 노동강도가 센 어선원으로 견디지 못할 것이라는 것은 예견된 일이었다”며, “더구나 대부분 산악지역에서 살던 이들이기 때문에 배를 타 본 적도 없다. 고용허가로 들어온 이들도 이탈률이 상당히 높은 상황에서 예멘인들만의 문제라고 하기에는 억울한 면이 많다”고 설명했다.

그는 그동안 언어를 익히면서 적응을 하고 있으며 어느 정도 일과 생활에 적응한 이들은 다른 지역으로 가지 않고 제주에 남을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신 팀장은 이들이 타지역으로 모두 가더라도 약 400명이이며, 이미 타지역으로 간 이들의 문제도 없다며, “범죄에 연루되면 1년 뒤에는 불법체류자가 되는 상황에서 문제를 일으킬 가능성은 적다. 오히려 한국 사회의 혐오 시선이 문제다. 정부는 국민을 안심시킬 수 있는 공신력 있는 정보를 제공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시민단체와 정부의 지원이 과도하다는 여론에 대해서도, “일부 단체나 개인적 차원에서 그랬을 가능성은 있지만, 범도민 위원회를 비롯한 대부분은 난민들이 무조건 의존하지 않고 자립할 수 있는 차원으로 지원했다. 숙소도 무료제공이 아니었다. 또 정부 지원은 전국 약 1만 5000명 가운데 7퍼센트의 난민들에게만 적용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신 팀장은 범도민 위원회는 앞으로 난민들의 불안정한 체류 지위가 안정될 수 있도록 법적 지원을 하는 동시에, 제주에서 자립적으로 생활을 꾸릴 수 있도록 계속 지원하되, 생계비 등 직접 지원은 줄일 계획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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