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상식 속풀이 - 박종인]

저도 한번쯤 기르고 싶은 귀여운 강아지와 함께 사는 친구가 최근에 성지 순례를 다녀왔습니다. 그 친구는 여정 중에 성물판매점에 들러 집에서 기다리고 있을 강아지를 위해 십자가를 하나 구했습니다. 여기에 강아지 이름과 보호자인 자신의 전화번호를 새겨 애견에게 달아 줄 생각이었습니다. 그 계획을 실행에 옮기려는 순간, 생각해 보니 '이거 성물에 이래도 되나...?' 하는 의문이 생겼나 봅니다. 

여러분은 제 친구가 그렇게 하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이미 전에 다뤄 보았던 속풀이, “축성과 축복은 같은 말인가요?”를 참고해 보실 수 있을 겁니다. 그 기사를 보시지 않더라도 그럴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실 분이 많을 거라고 어림해 봅니다. 

그렇습니다. 사랑이 듬뿍 담긴 마음으로 십자가를 매달아 줄 수 있습니다. 생명을 가지고 있지 않은 사물도 축복을 하는데, 살아 있는 동물을 축복 못할 리 없습니다. 반려동물에 대한 관심이 엄청나게 늘어난 요즘의 분위기에서 정서적으로 더더욱 못할 이유가 없습니다. 그만큼 반려동물에게 십자가를 걸어 주는 것이 문제될 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그런데 의외로 동물을 키우는 분들은 이런게 주저스러운가 봅니다.

그럼에도 마음에 걸리신다면, 선물해 주고 싶은 십자가에 축복을 받을 필요는 없습니다. 그것을 우리 가족과 같이 사랑하는 동물에게 걸어 주며 마음으로 축복을 해 주는 것으로도 보기 좋습니다. 이렇게 생명을 아끼는 마음을 느낄 수 있다면 이미 내 강아지나 고양이도 그 마음을 충분히 느끼고 있을 것이 분명합니다.

사실 우리가 조금만 더 어림해 본다면, 나와 함께 지내는 반려동물이나 가축을 통해 우리를 가꾸고 양육하시는 하느님의 마음을 헤아리는 것이 그리 어렵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가 그들을 그렇게 축복하고 아끼는데, 사람을 대하시는 하느님의 마음은 오죽하겠습니까?

반려동물 (이미지 출처 = Pixabay)

우연히 선물받은 강아지를 한 마리 키우다가 길에서 눈이 마주친 강아지가 졸졸 뒤를 따라오는 것을 거부할 수 없어 집에 데려다 키우신 독거 노인의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그분은 자녀들이 다 자라 독립을 하게 되어 홀로 지내게 된 분이셨습니다. 처음에 강아지 한 마리를 키우시다 시작된 인연을 통해 유기견을 또 키우게 되셨고, 어느 날 길에서 만난 녀석이 눈에 밟혀 또 데려다 키우시고.... 하여 아홉 마리나 키우게 되셨다고 합니다. 

저는 그분이 생명을 지키고 가꾸려는 의지와 능력이 우리 모두에게 있다는 사실을 알려 주신 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연로하심에도 당신의 식솔을 책임지고 싶은 마음으로 인해 이 어르신은 쉽게 나이들 수 없습니다. 그 덕에 정서적으로나 육체적으로 건강을 유지하는 비법을 터득하신지도 모르겠습니다.

반려동물과 함께 사시는 분들은 이런 기회를 통해 더 많은 생명에 관심을 기울이시고, 우리를 양육하시는 하느님의 마음을 더 잘 알아듣는 능력을 키워 나갈 수 있겠습니다. 누군가를 나의 영역에 받아들인다는 것은 자비로움의 표시이고, 그것은 곧 우리가 하느님을 닮아 있다는 의미입니다. 행복해 하실 일입니다.

박종인 신부(요한)
서강대 인성교육센터 운영실무.
서강대 "성찰과 성장" 과목 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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