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가톨릭대학교 신학연구소 학술발표회 2

광주가톨릭대학교 신학연구소와 광주인권평화재단이 마련한 학술발표회는 새로운 신앙적 도전에 직면한 교회, 특히 평신도가 나주 현상이나, 신천지 예수교 등의 오류를 지적하고 방어하는 것을 넘어 어떤 태도를 취할 것인지 묻고 답하는 자리로 마련됐다.

“새로운 신심 및 종교 현상을 통해 평신도가 바라보는 새로운 복음화”를 주제로 열린 학술발표회는 교의와 교리 차원의 비판이 아니라 이 새로운 현상에 대한 인간학, 심리학, 사회문화, 정치, 역사적 측면의 분석을 통해 ‘새로운 복음화’가 무엇인지, 평신도가 그 주체로 서기 위한 담론은 무엇인지 살폈다.

성염 전 주교황청 대사의 기조강연과 주원준 수석연구원(한님성서연구소)의 발제에 이어(참조 기사 “새로운 도전의 시대, 평신도가 보는 새로운 복음화는?”) 최현순 대우교수(서강대 신학대학원)가 “주교와 신자들의 특별한 협동”, 황경훈 소장(우리신학연구소)이 발표를 이어갔다.

“목자들은 그리스도께서 세상을 향한 교회의 구원 사명 전체를 자기들이 독점하도록 세우신 것이 아니며 오로지 모든 이가 고유의 방법으로 공동 활동에 한 마음으로 협력하도록 신자들을 사목하고 그들의 봉사 직무와 은사를 인정하는 것이 자신들의 빛나는 임무임을 안다.”(교회헌장 30항)

최현순 교수는 ‘교회헌장’에서 이르는 성품직무자와 평신도 간의 긴밀한 협력 관계는 평신도가 교회와 세상 안에서 그리스도 구원사업을 수행하는 능동적 주체라는 인식이 전제되어 있다며, ‘계시헌장’과 ‘교회헌장’에서 주체적 평신도의 사명, 특히 예언직 수행의 신학적 근거를 제시했다.

최 교수는 성품직무자와 평신도의 ‘공동 활동’, ‘협동’은 의회적 의결방식이나 민주주의적 방식이 아니며, 신적 설립이자 신적 권위와 권력을 부여한 교계제도 안에서 평신도 역시 “복음의 선포와 전달”이라는 사명을 주체적이고 능동적으로 할 권리와 의무가 있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근거의 핵심인 계시헌장 10항은 전체 교회와 교도권이 성전과 성서와 맺는 관계에 대해 선언한다며, “성전과 성서는 교도권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 백성 전체에게 맡겨져 있으며, 성경과 성전, 교도권이 상호 긴밀한 관계를 설명한다”고 말했다.

또 ‘교회헌장’은 제2차 바티칸공의회 이전의 ‘가르치는 교회’가 아니라 ‘하느님 백성으로서의 교회’를 말하면서, “많은 교부들은 교도권만이 아니라 신자들도 신앙유산의 수탁자이며, 이 유산이 교도권과 신자들 모두를 포함한 하느님 백성 전체에게 주어졌다고 말해야 한다고 주장했다”고 설명했다.

11월 8일 광주가톨릭대에서 열린 학술발표회에는 100여 명이 참석해 경청했다. ⓒ정현진 기자

주교와 신자들의 ‘특별한 협동’은 상명하달식 구조인가?

최현순 교수는 먼저 신앙을 간직하고 실천하며 고백하는 데에 주교와 신자들이 특별한 협동을 한다는 의미를 이해하려면, 계시 헌장이 하느님 백성 전체가 위탁받은 신앙의 유산을 어떻게 이해했는지 봐야 한다며, “계시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느님이 당신 자신을 내어준 것이라면, 그 방식은 말씀, 삶, 업적을 포괄하는 인격적 방식이었으며, 사도들이 받은 것 또한 ‘살아 있는’ 것이었다. 또 이 계시는 사도들의 후계자뿐 아니라 교회의 삶 자체를 통해 전달된다”고 설명했다.

따라서 신앙유산의 수탁자는 교도권만이 아니라 하느님 백성 전체이며, 이 유산의 전달 역시 교도권을 포함한 하느님 백성 전체에 의해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다.

“주님께서 거룩한 교역자들과 나머지 하느님 백성을 구별하셨지만 그 구별은 동시에 결합을 가져온다. 목자들과 다른 신자들이 공통의 필연 관계로 서로 묶여지기 때문이다.”(교회헌장 32항)

최 교수는 이 “공통의 필연 관계”에 대해, “그리스도 구원사명의 계속적 실현인 삼중직무에 참여하는 방식에서 나타나는데, 교회 헌장은 하느님 백성이 삼중 직무 각각을 분리시켜 수행하는 것이 아님을 인식한다”고 설명했다.

특히 제2차 바티칸공의회는 전체로서의 교회, 곧 하느님 백성을 교계제도보다 우선시하는 동시에 교계제도를 하느님 백성과의 관련성 안에서 이해한다고 설명하는 그는, ‘교회헌장’의 "보편 사제직"의 개념 또한 “세례받은 모든 신자들이 하는 모든 기도와 찬양, 증거, 희생은 모든 삶의 영역에서 수행되는 것으로, 보편 사제직이 수행될 수 없는 영역은 없다”고 말했다.

또 보편 사제직 수행은 개인적 차원으로 환원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본질적으로 공동체적 특징이 있으며, “개인적 차원에서 수행하는 보편 사제직은 공동체적 사제직 수행을 위한 전제 조건, 즉 하느님께 자신을 바치는 개인의 능력은 전체 교회가 하느님께 자신을 바치는 것을 완성하기 위한 전제요, 조건”이라고 말했다.

최 교수는 교회헌장은 전례를 거행하는 직무사제의 고유 역할을 분명히 하지만, 직무사제의 봉헌 또한 신자들과 분리되어 일어나지 않으며, 이 봉헌에서 신자들의 역할 또한 지극히 능동적인 것으로 강조한다며, “목자와 백성의 협동이 가장 탁월하게 현현되는 장이 바로 ‘성체성사’”라고 말했다.

그는 “공의회 표현대로 보편 사제직과 직무 사제직은 서로를 ‘향해 있다’”며, “두 사제직은 자기 지시적 논리가 아니라 상호 지시적인 관계이며, 두 사제직이 상호 호혜적, 불가분의 관계라면, 어느 한쪽이 위대해지는 만큼 다른 한쪽도 위대해지고, 이런 관계가 약화될수록 둘 사이의 관계는 상하 관계로 떨어진다”고 설명했다.

그렇다면 주교와 평신도 각각의 역할은 무엇인가?

최 교수는 현대에 들어 "함께 간다"는 차원에서 교회를 이해하게 된 것은 제2차 바티칸공의회에서 취한 "주교단"이라는 개념이라고 설명했다. 교황이 주교단 안에 속해있다는 이 개념은 수위권 약화가 아니라 교황과 주교들의 유기적 관계라는 전망이며, 주교와 사제의 관계까지 확장된다고 말했다.

‘교회헌장’은 주교의 권한은 하느님 백성을 가르치고 거룩하게 하며, 통치하는 것으로, 지역 교회에서 그리스도의 대리자로서 신앙 선포자, 스승으로 하느님 백성에게 신앙을 선포하고 그들을 오류로부터 보호하는 것, 그리고 성찬례를 주례하며 교회가 끊임없이 천상 생명을 얻어 자라게 하는 것으로 규정한다.

최 교수는 그러나 이러한 주교의 역할을 신자들과의 관계를 고려하지 않고 이해한다면, 불가피하게 피라미드 형태의 교회가 되며, 하느님 백성은 수동적 종속 관계로 낙하한다며, “그러므로 주교 직무는 나머지 하느님 백성, 즉 평신도와의 관계 안에서 온전하게 이해될 수 있다”고 강조한다.

마지막으로 최 교수는 "목자와 평신도의 협동"에 대한 이같은 교회론적 이해를 통해 평신도의 과제가 무엇인지 제시했다.

그는 특히 평신도는 “삶의 증거와 교리적 직무”라는 예언직 수행에 참여한다며, “가정과 사회 안에서 복음을 선포하는 평신도의 예언적 직무는 신앙 감각과 말씀의 은총을 받아 수행하는 것이며, 이는 단순한 복음 선포만이 아니라 믿음, 희망, 사랑의 삶을 통한 증거로 수행된다”고 설명했다.

그는 또 평신도의 예언적 수행은 삶의 증거, 곧 행동으로써만 이뤄지는 것은 아니며, 자신이 품은 희망에 대해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며, “복음선포는 성직자들의 전유물이 아니며, 평신도의 선택사항이 아니라, 의무(교리적 직무)다. 누군가를 가르치는 것은 세례자 각각이 자신의 능력에 따라 받은 역할이며, 교회가 신앙을 지키고, 보호하고 실행하며, 고백하는 데 협동하는 일”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 교리적 직무를 위해 평신도들이 신학을 공부하고 연구하는 한편, "지식"이 아닌 지혜를 구해야 한다며, “진리를 분별하고 실천하며, 오류를 분별해 거부할 수 있게 해 주는 이른바 ‘신앙 감각’을 발달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 교회에 개혁이 필요하다고 본다면, 그 부족함의 모든 책임은 평신도나 목자 어느 한 편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라며, “모든 것이 목자의 탓이라면 그것은 역설적으로 목자에게 지나치게 의존하고 있다는 뜻이며, 평신도의 탓이라면 목자와 평신도 사이의 연관성을 간과한 것”이라고 말했다.

황경훈 우리신학연구소장은 새 복음화를 위한 평신도의 역할로, 평화를 위한 세계 시민으로서 책임과 행동을 제시했다. ⓒ정현진 기자

평화의 다른 이름, ‘통합적 인간발전’을 위해
'무관심의 세계화'에 대응하는 세계 시민으로서 평신도 양성

마지막으로 발제를 맡은 황경훈 소장(우리신학연구소)은 “통합적 인간발전으로서의 새 복음화”를 주제로 세계시민으로서 평신도 역할을 강조하면서, 새 복음화는 무엇이며, 새 복음화의 주체와 그 역할에 대해 살폈다.

그는 먼저 ‘새 복음화’는 ‘통합적 인간 발전’이며, 역대 교회 문헌은 이 통합적 인간 발전을 “라자로가 부자와 함께 식탁에 앉는 것”(‘민족들의 발전’), “도덕적이고 영적 측면이 반영된 발전”(‘사회적 관심’), “세계화의 도전 속에서 생태계 전반, 전 우주의 문제”(‘진리 안의 사랑’) 등으로 규정해 왔다고 설명했다.

이러한 통합적 인간발전이라는 복음화는 프란치스코 교황에 이르러 계승, 종합되었는데, 프란치스코 교황은 '복음의 기쁨'에서 “복음과 개인적, 사회적 차원의 구체적인 인간 생활의 지속적 상호 작용을 고려하지 않는 복음화는 완전할 수 없으며, 이는 복음이 지닌 보편성의 원칙”(181항)이라고 이른다.

또 '찬미받으소서'는 “지구의 부르짖음과 가난한 이들의 부르짖음의 필연적 관계, 곧 참된 생태론적 접근은 언제나 사회적 접근이 된다”며, 생태계로 확장된 통합적 발전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황 소장은 이런 프란치스코 교황의 복음화 개념은 아시아주교회의연합(FABC)의 "삼중대화"와 비슷하다며, “지역교회와 아시아의 가난한 민중, 문화, 종교전통이 대화로서 만나고 서로 접근하는 선교의 패러다임은 일방적이 아니라 상호적이며, 역동적 상호 배움을 강조함으로써 그 과정에서 적극적 참여를 이끈다”고 설명했다.

그는 제2차 바티칸공의회로부터 시작된 평신도 신원과 그 역할에 대한 결정적 전망과 새로운 상상력은 평신도에 대한 새로운 이해와 역할에 대한 적극적 평가로 평신도의 지위를 한껏 높았지만, 이러한 전향적 태도에도 공의회는 교회 내 성직자와 평신도의 구분을 강화하는 결과를 낳기도 했다고 지적했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 전문가이자 신학자인 조셉 코몬착에 따르면, 공의회는 ‘하느님 백성’이라는 세상을 포함한 하나의 교회를 제시했지만, 그 안에서 가르쳐야 할 주체는 여전히 교회(성직자)이고, 세상(평신도)은 그 가르침을 받아야 할 대상으로 주체와 객체가 이원론적으로 남아 있다고 평가한다.

그는 이런 평가를 받아들이면서, 성과 속, 성직자와 평신도, 교회와 세상으로 이원화된 상황을 극복할 가능성으로 "평신도 신학운동의 해석학적 순환"을 제시했다.

그는 “공동합의성에 바탕한 교회가 듣는 교회이며.... 서로 듣는 과정에서 모든 이들이 배울 수 있다”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말을 들어, “‘듣는 교회’가 평신도적 전망인 것은 단체성과 공동합의성 같은 주요한 개념을 평신도 관점에서 재해석해 그 의미를 사목적, 신학적으로 확장하고 실천으로 이어지게 함으로써 평신도 신학운동의 해석학적 순환구조를 본격화할 궤도에 들어섰다고 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또 “평신도 신학운동의 해석학적 신학구조가 순환 구조여야 하는 이유는 이미와 아직 사이에 있는 하느님나라의 도래, 곧 종말론적 희망을 향해 가는 그리스도교 공동체는 현실과 끊임없이 만나면서 완성을 향해 가는 하느님의 백성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평신도 신학운동의 해석학은 여전히 성속이원론과 쌍생아로, 사회참여신학을 바탕으로 하는 교회의 사회적 가르침 또는 사회교리의 유효성과 한계를 분명히 해야 한다며, “그럴 때 비로소 연대의 지점과 내용을 분명하고 더 구체적으로 할 수 있고, 그것이 평신도 신학에 주어진 주요 과제 가운데 하나”라고 말했다.

이런 맥락에서 그는 ‘세계 시민’으로서 평신도와 새 복음화를 강조했다.

그는 프란치스코 교황이 끊임없이 세계 곳곳의 가난한 이들을 직접 찾으며, “무관심의 세계화”를 비판하고, "세계시민 의식"을 지닐 것을 행동으로 호소하고 있듯이, “세계 시민으로서 책임을 다하고, 이를 위한 세계시민 교육을 하는 것은 ‘무관심의 세계화’에 대한 하나의 적극적 대응이라는 측면에서 새 복음화를 실현하기 위한 평신도 교육과 연계할 수 있다”고 제안했다.

그는 “평화의 다른 이름으로서 통합적 인간발전이 새 복음화이며, 이의 실현을 위해 매일 실현되어야 할 인간발전으로서 평화에 평신도가 투신하는 것이 바로 복음화를 위한 구체적 실천”이라며, 이를 위해 각 본당, 교구에서 신자 재교육이나 교리교육 등의 교육에 ‘가톨릭 시민교육’을 보완하는 시도를 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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