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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과연 천국에 갈 수 있을까

기사승인 2018.11.13  13:4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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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원한 생명을 주는 진리의 길 - 김용대]

"영원한 생명을 주는 진리의 길", 요한 타울러, 사회와연대, 2017, 201-212쪽.

“주님, 저희를 당신께 되돌리소서, 저희가 돌아가오리다.
저희의 날들을 예전처럼 새롭게 하여 주소서.”
(애가 5,21)

하느님께서는 인간의 좋지 않은 본성을 측은하게 여기시며 항상 당신의 부르심을 받아들이기를 기대하시면서 우리를 회개시키시려고 끊임없이 노력하십니다. 하느님께서는 병이나 가난과 같은 불행을 통하여 부르시기도 하고, 가르치심이나 훌륭한 사람들의 본보기를 통하여 당신께로 이끄시기도 하고, 당신의 내적인 경고를 통하여 이끄시기도 하고, 바오로 성인에게 하신 것처럼 강제로 이끄시기도 합니다. 이와 같이 하느님께서 인간의 양심을 일깨우시는 방법은 가혹하기도 하고 지나치게 너그러우시기도 합니다.

우리는 하느님께로 돌아가지 못하게 하는 덧없는 것들을 좋아하고 물욕을 부리고 육욕에 집착하는 세 가지를 경계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이 세상의 명예에 집착하여 덧없는 부에 마음을 쓰며 육욕을 채우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한동안 이와 같은 부질없는 것들에 집착한 뒤에 마음이 완고해져서 은총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자신의 욕망을 만족시키기 위해 어떤 고통도 감수하려고 합니다. 그레고리오 성인은 우리에게 이스라엘 백성들의 예를 보라고 했습니다. 그들은 가장 고통스러운 노동을 한 후에야 즐기려고는 했지만 이집트의 환락가를 무척 좋아했습니다. 그들은 노예생활을 하면서도 광야에서 하느님께서 그들에게 주신 더할 수 없이 맛있는 천상 양식보다는 환락가를 더 좋아했습니다.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얼마나 슬픈 이야기입니까? 하느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을 사랑하시어 그들이 당신께 마음을 돌리고 당신의 계명을 지키도록 하시기 위하여 당신의 위대한 능력을 보여 주시고 무한한 사랑과 혼신의 힘을 다하여 수많은 기적을 일으키시면서 그들을 노예생활에서 해방시키셨습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그런데도 이들은 이 모든 것들을 무시하고 다시 옛날의 나쁜 짓들을 계속하고 죄 많은 쾌락을 즐겼습니다.

그들은 하느님의 친구이자 지도자였던 모세도 투덜거리면서 거부하고 이런저런 핑계를 대고 반항했습니다. 마침내 우리의 주님께서는 참지 못하시고 뱀과 불로 고통받게 하시고 그들을 원수의 뜻에 맡겨 버리셨습니다. 주님께서는 광야를 헤매던 사람들 중에서 단 두 사람만 약속하신 땅으로 들어가게 하셨습니다.

그런데 하느님께서 우리를 가르치시고 아드님을 본받게 하시어 거룩한 삶을 살도록 하시기 위해 전심전력을 다하시고 자비를 베푸시어 우리를 죄와 나쁜 버릇의 노예에서 해방시키시어 진정으로 회개하게 만드셨건만 우리 중에 몇 사람이 약속한 땅으로 들어갔습니까? 진정으로 나쁜 관행에서 벗어나 모든 것을 진리 안에서 생각하도록 하셨건만 우리는 겉으로만 회개한 척하고 있습니다.

겉으로만 회개한 척하고 있으니 얼마나 안타까운 일인가요? 우리는 여전히 육욕에 굴복하여 마음속으로 환락가를 꿈꾸고 있는데, 예전보다 쾌락을 멀리하려면 신앙인답지 않은 헛된 생각을 버리도록 해야 합니다. 더욱더 나쁜 것은 우리 처지에 맞는 재산에 만족하지 못하고 가난한 거지인 우리가 가져서는 안 되는 호화로운 것을 소유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아무것도 우리를 기쁘게 해 주지 못합니다. 하느님 아버지께서는 우리를 먹이시고 입히시고 보호해 주시며 우리의 영혼에게 영적 음식을 듬뿍 주시지만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하느님께서도 우리의 욕망을 꺾지 못하심으로써 우리는 진심으로 회개하지 못하여 모든 것을 하느님께 맡기지 못하고 있습니다. 반대로 우리는 비뚤어질 대로 비뚤어져 형제들에게 부끄러운 짓들만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하느님께서 백성들이 불만스럽게 생각하던 이스라엘 원로들을 몰아내신 것을 읽었듯이 하느님께서는 우리들에게도 그렇게 하실 때가 많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여러분이 이들의 뜻을 가로막으면 볼 수 있게 되지만 나쁘다고 알고 있는 사람들보다 더 나을 것이 전혀 없습니다. 이들은 마귀에게 홀려 마구 휘둘리며 나쁜 짓들을 하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이들은 자신들이 원하는 것을 모두 얻어야만 만족해 하는데 이는 구제불능의 증거입니다. 나쁜 사람에게는 약속의 땅으로 들어가라고 해도 마음이 완고해져 들어갈 생각을 하지 못합니다. 이들에겐 평화와 기쁨이 없는데 이들의 영혼이 죄로 병들었을 뿐만 아니라 마귀의 그물에서 벗어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이들은 무척 노력해야 합니다.

괴롭더라도 자신의 안으로 들어가 속된 것들을 모두 버리고 세상의 기쁨도 버려야 합니다. 그리고 상처를 준 모든 사람들에게 겸손하게 용서를 청해야 합니다. 마귀로부터 벗어나는 방법을 가르쳐 준 사람들에게 기도와 도움을 청해야 합니다. 이와 같이 뉘우치는 마음으로 다시 하느님을 모시도록 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마음이 무겁기만 합니다! 오늘날 진정으로 하느님께로 회심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우리 모두는 주님께서 저주하신 무화과 나무와 같습니다. 잎은 달려 있지만 열매를 맺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백 명 중에 한 사람도 진정으로 회개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기적이 되어 물질적인 편리함과 쾌락만 찾고 있고 우리가 속세에 살고 있을 때보다도 더 풍족하게 아무 걱정 없이 살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수도원 바깥에 살고 있는 사람은 호화로운 삶을 살고는 있지만 수많은 불안을 겪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정신적으로 너무나 쇠약해져서 어떤 고통도 겪지 않으려고 합니다. 우리는 새로운 위안을 생각하게 되면 곧바로 위안을 받아야만 합니다. 수도원의 장상들이 위로를 주지 않으면 바깥에 있는 친구들이나 친척들에게 갑니다. 안락한 삶을 살기 위하여 글이나 말로 끝없이 불만을 터뜨립니다. 너무나 슬픕니다! 우리는 왜 종교를 갖게 되었는가를 자문하지 않을까요? 우리는 철부지처럼 영원히 이렇게 제멋대로 살아야 할까요? 우리는 이제 더 이상 하루종일 슬퍼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

죄 때문에 몹시 괴로워하게 되는 것은 영원한 저주를 두려워하기 때문에, 또는 하늘나라의 행복을 그리워하기 시작하기 때문에, 또는 하느님께서 자신을 무한히 사랑하신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이 때문에 하느님께로 돌아가려고 하는 것입니다.

 

에우데르 카마라 대주교. (사진 출처 = commons.wikimedia.org)

오로지 성자만이 성자답게 살고 죽을 수 있습니다. 나머지 우리는 회개하면서 살고 죽어야 하며, 죄인으로서 하느님과 다른 사람들에게 우리의 부족함에 대한 용서를 구하면서 살다가 죽어야 합니다. 이렇게 정직하게 살아야 구속이 있게 됩니다. 조금이라도 정직하지 않으면 그 씨앗이 자라서 성령을 모독하게 만들기 시작합니다.

아시아의 가난한 사람들에게 마더 데레사가 있었듯 남미의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카마라(Dom Helder Camara, 1909-99) 대주교가 있었습니다. 그는 브라질의 가난한 사람들뿐만 아니라 곤궁에 처한 사람들이 있는 곳이면 어디든 가서 분명한 목소리와 글로써 봉사했습니다. 그의 첫 저서는 성경의 주해서였습니다.

그 뒤에 "Through The Gospel With Dom Helder Camara"를 출판했는데 내용도 훌륭했지만 깊이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프랑스의 소설가 로제 부르종(Roger Bourgeon)이 기획한 프랑스 TV 방송에 카마라 대주교가 출연하여 이 책을 중심으로 강론하기도 했습니다. 이의 내용을 발췌 싣습니다.

“나는 때때로 가톨릭 신자만이 구원을 받게 된다는 어리석은 생각을 하는 신자들을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물론 하느님께서 가톨릭 신자나 개신교 신자들을 골라 뽑으셨기 때문에 성령이 그들에게 머물고 그들 안에서 숨쉬고 있을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가톨릭 신자만 구원을 받는 일은 있을 수 없습니다. 당치도 않습니다. 사랑과 도움에 굶주리고 목말라 하고, 에고에서 떠나 자기중심적 삶에서 떠나려고 애쓰고, 이웃을 돌보려 하고, 양심의 소리를 들으려 하고, 선한 일을 하려고 애쓰는, 세계 도처에 있는 이런 사람들에게는 종교와 관계없이 모두 하느님의 성령이 함께하고 계십니다. 나는 ‘많은 사람들이 동양에서 그리고 서양에서 올 것이다.’라는 주님의 말씀을 좋아합니다.

우리는 하느님 아버지의 집에서 몇몇 가톨릭 신자들과 불교의 일부 신자, 유대교의 일부 신자, 이슬람교의 소수의 신자, 개신교의 일부 신자들만을 만나게 될 것이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습니다.

“우리들은 자신만이 진리를 바로 알고 있다고 믿고 있는 수가 많습니다. 그러나 예를 들면 무신론자라도 예수님과 같은 삶, 부처님과 같은 삶을 사는 사람이면 누구나 진리를 다 알고 있습니다. 우리들은 하느님 안에서 살고 있고 우리 안에 하느님을 모시고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느님은 워낙 위대하셔서, 우리가 하느님의 뜻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 하느님의 그 넓은 가슴을 헤아리지 못하고 있지만, 사실 우리들은 하느님보다 훨씬 더 위대해져야 합니다.

나는 우리들이 볼 수 없었던 달의 뒷부분 사진이 처음으로 찍혔을 때 무척 흥분하였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들이 어느 날 하느님 아버지와 마주 앉게 되면 무척 놀라게 될 것입니다. 그때에야 비로소 우리들이 하느님을 얼마나 알지 못했던가를 실감하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진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들만 성령을 독차지하고 있지 않습니다. 따라서 우리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한 번도 들어 보지 않은 사람들에게도 겸손해야 합니다. 그들은 우리들보다 더 진실한 그리스도인인지도 모릅니다.” 

 

'나의 길'(My Way)

안나 아흐마토바(1889-1966)/ 후고(後考) 옮김

 

어떤 사람은 바른 길을 가고 있고

어떤 사람은 방황을 하면서,

지난 날의 연인을 무작정 기다리거나,

집으로 다시 돌아오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그러나 고집스럽게 한사코 가던 그 길을 따라가니

거기에는 슬픔만 있었다.

마치 탈선한 기차가 아무 데도 못 가듯이

어쩔 수 없이 오늘도 나는

결코 바르지도 않고 넓지도 않은 그 길을 가고 있다.
 

김용대(후고)
서울대 컴퓨터공학과 박사.
본명은 후고입니다만 호도 후고(後考)입니다. 항상 뒷북을 친다는 뜻입니다.
20년 동안 새벽에 일어나서 묵상을 하고 글을 써 왔습니다.
컴퓨터 전공 서적을 여러 권, 묵상집 "그대 음성에 내 마음 열리고", "징검다리"를 쓰고, 요한 타울러 신부의 강론집을 번역하여 "영원한 생명을 주는 진리의 길"이라는 제목으로 출판했습니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김용대 editor@catholic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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