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비평 - 박병상]

요즘 연일 미세먼지가 ‘나쁨’ 이하다. ‘매우나쁨’일 때도 잦다. 최근 강화한 우리 기준치가 그 정도지만 세계보건기구(WHO) 기준치로 ‘매우나쁨’이 대부분이다. 세계보건기구에 맞출 수 있는 국가는 호주나 뉴질랜드 이외에 드물다지만, 우리는 산업계의 눈치를 지나치게 살피는 게 아닌지, 솔직히 의심스럽다. 기상 캐스터는 마스크 착용을 강조하는데, 어떤 의사는 초미세먼지를 거르는 마스크의 오랜 착용을 걱정한다. 목이 칼칼하고 눈이 침침하다고 당장 건강에 무슨 문제가 생기는 게 아니라도 밖에 나가는 개인은 불안하다.

얼마 전인데, 전날 비가 충분히 내렸는지 하늘이 맑았고 약속 없는 오전 시간을 일부러 걸었다. 눈도 목도 상쾌했는데, 돌아오며 하늘을 보니 온통 뿌옇다. 오후 중국에서 미세먼지가 다가온다는 예보를 무시하고 오래 걸었던 건데, 괜스레 목이 칼칼해졌다. 심리적 현상이겠지만 마스크를 챙기지 않은 걸 후회해야 했다. 한 세대 전 우리 하늘의 무연탄 먼지는 건강에 치명적일 정도는 아니었다는데, 10년 전에 몰랐던 미세먼지와 초미세먼지는 위험하다고 한다. 하늘이 순식간에 변해도 숨 쉬기 어려운 건 아닌데, 몸에 얼마나 나쁜 걸까?

“가을 하늘 공활한데 높고 구름 없이” 애국가 3절 가사의 하늘은 한 세대 전에 있었지만 지금은 없다. 한 세대 더 지나면 나타날까? 1930년대 이전에 유럽의 대기를 더럽혔던 독일 공업단지 루르 지방의 하늘은 요즘 우리보다 공활하다. 대기오염물질 배출이 심한 공장을 해외로 보내고 오염물질을 정화하는 장치를 공장에 철저하게 부착해 가동한 효과만이 아니다. 공업단지의 절반 이상의 면적에 나무를 빼곡히 심고 곳곳에 습지를 마련한 뒤의 결과다. 30년 뒤 우리의 공기는 어떨까? 우리가 노력하면 중국도 꿈쩍할 텐데.

한 20여 년 전인가? 악취가 심했던 남공동단 유수지를 정화하려 부레옥잠을 띄운 적 있었다. 가을 접어들기 전에 모두 걷어내지 않으면 열대성 식물인 부레옥잠은 그 자체가 오염원이 되므로 서둘러야 했는데, 번번이 기회를 놓쳐 썩은 상태로 가라앉혀야 했다. 처음 몇 포기 띄워 놓았을 때 눈에 띄지 않던 부레옥잠이 어느덧 호수 대부분을 차지했고, 걷어 낼 시간이 모자랐던 거다. 느긋해 하다 남은 시간이 턱없이 부족했고 인천시는 남동공단 유수지를 정화할 기회를 번번이 놓쳤다.

부레옥잠 (사진 출처 = Pxhere)

하루에 두 배씩 늘어나 한 달이면 호수 전체를 덮는 식물을 저수지에 띄웠다고 하자. 여름철 저수지의 부레옥잠이나 논 웅덩이의 개구리밥을 상상해 보자. 한 달 되려면 열흘 남았을 때, 부레옥잠은 얼마나 덮었을까? 호수의 대략 1/1000이다. 5일 남았다면 1/30이고 하루 전이라면 절반이 남은 상태다. 호수의 고작 1/1000이 부레옥잠에 덮였으니 아무 문제없다는 느긋함은 1/30이 덮였을 때 바뀔까? 아직 90퍼센트가 넘는 호수에 부레옥잠이 없으니 걱정할 게 없을까? 남은 시간은 충분하지 않은데?

생태계가 정화하기 어려울 정도로 인류가 이산화탄소를 대기에 배출한 지 기껏 300년 되었다. 그 사이 지구가 더워지고 미세먼지와 초미세먼지가 늘었으며 바다는 미세플라스틱으로 오염되었다. 하지만 에너지와 자원을 낭비하는 우리의 삶은 여전하다. 얼마 전 인천 송도에서 개최한 기후변화에 관란 정부 간 협의체(IPCC)총회는 산업화 이전보다 평균 기온 상승을 섭씨 1.5도 이하로 낮춰야 한다는데 만장일치로 합의를 했다고 한다. 얼마나 절박하면 그런 결론을 내놔야 했을까?

30년 전 우리나라뿐 아니라 세계의 누구라도 알지 못했던 미세먼지와 초미세먼지는 시방 얼마나 위험한 걸까? 미세먼지처럼 모르던 미세플라스틱은 정자와 난자의 형성을 방해한다고 한다. 허파꽈리의 세포막을 통과한다는 초미세먼지가 ‘매우나쁜’ 날 마스크도 없이 걸어도 큰 문제를 느끼지 않았으므로 괜찮을까?

인류의 탄생을 멀리 잡으면 100만 년, 가깝게 잡아도 5만 년이라는데, 대부분의 세월 인류는 생태계에 부담을 주지 않고 잘 살았지만 지금은 온실가스 배출 없는 날을 생각할 수 없다. 평균 기온 상승을 1.5도에 맞추려면 2050년까지 내연기관을 가진 자동차와 발전소를 모두 없애야 한다는데, 우리는 아무 준비를 하지 않는다. 서서히 뜨거워지는 그릇에 담긴 개구리는 달아날 궁리를 하지 않는다는데, 우리에게 남은 시간은 충분한가?

2050년까지 고작 22년 남았다. 한 세대도 채 남지 않았다. 소아과 병동에 호흡기 질환자가 전에 없이 늘었다던데,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아이들의 내일은 그리 먼 내일이 아니다. 지나치게 느긋했다는 자식들의 비난을 피할 시간은 그리 충분하지 않다.

 
 

박병상 

인천 도시생태, 환경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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