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장애인사목협의회, 발달장애인 탈시설 논의

12일 서울 정동 프란치스코회관에서 '발달장애인 정책의 현실과 미래, 탈시설을 둘러싼 이슈 논쟁' 세미나가 열렸다. ⓒ김수나 기자

장애인 거주시설 소규모화 정책으로 지역 사회 안에 30인 미만 시설이 늘고 있는 가운데, 장애인 자신들의 자기결정권이 중요하다는 지적이 나왔다.

12일 주교회의 사회복지위원회와 가톨릭장애인사목협의회 주최로 가톨릭장애인사목연구회가 준비한 세미나에는 교회 장애인 사목단체와 관련 학자, 시민단체, 시설 관계자와 부모 등이 모여 발달장애인의 탈시설 문제에 대해 논의했다.

먼저 나사렛대학 재활복지대학원장 김종인 교수는 발달장애인이 스스로 권리를 표현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이들을 시설 수용의 대상자로만 보는 인식부터 바뀌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장애가 있더라도 누구나 나름의 고유한 강점이 있다는 시각을 갖고, 그 강점을 개발해 직업을 가진 시민으로 살 수 있도록 “평생복지시스템”을 만들어야 탈시설도 가능하다고 봤다.

그는 대안으로 발달장애인의 강점을 살린 직업 개발, 사회복지사나 특수교사 등 자격을 갖춘 이의 집에서 위탁 양육하는 포스터홈 제도, 중증 발달장애인을 위한 의료와 일시 돌봄을 위한 센터, 개별지원 모델 개발 등을 제안했다.

이에 대해 전국장애인 차별철폐연대 박경석 공동대표는 “김 교수가 말한 ‘장애인의 강점 개발’은 장애인이 무능하지 않고 일도 할 수 있다는 인식인데, 그보다는 일을 못하더라도 살아갈 수 있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면서 “장애 그 자체로도 존중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대규모 장애인시설이 장애인 복지에 기여한 것이 큼에도 많은 장애인이 시설을 감옥으로 경험했다면서 “국가에게는 장애인을 시설에 모아 놓는 것이 경제적으로 이익이지만 장애인에게는 인권침해”라고 말했다.

박 대표는 “기본적으로 장애인을 가치 없는 불쌍한 이들로 보고 시혜와 동정의 이름으로 대형시설에 가둬 둔 것”이라 비판하고 “장애인이 시설에서 나와 지역사회에서 통합하고 창조하며 살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국장애인 차별철폐연대 박경석 상임공동대표. ⓒ김수나 기자

이어 가톨릭장애인사목연구회 정중규 연구위원은 “예수의 장애인 치유 과정은 장애인이 스스로 인간존엄성을 되찾아 일어서도록 하며 장애인을 사회 구성원으로 통합시키는 과정이었다”고 강조했다.

그는 “꽃동네 같은 대규모 집단 시설이 주도하는 한국 가톨릭교회 장애인사업의 현주소는 장애인을 사회 공동체 구성원으로 통합하려 했던 예수의 정신에 배치된다”고 지적하고, “교회가 발달장애인의 사회통합에 나서고, 이들이 교회의 전례에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앞서 나온 포스터홈과 같은 공간을 본당에 두는 방안도 제안했다.

전국장애인부모연대 민용순 수석부회장은 발달장애 아이를 키우면서 발달장애 국가책임제 실현을 위해 15년 동안 운동했지만 변화는 미미하다고 호소했다.

그는 발달장애인의 약 70퍼센트를 부모가 돌보는 현실에서 생애 전반에 걸쳐 개별적 지원이 꼭 필요한 발달장애의 특성상 이러한 현실은 부모와 가족들의 부담만 키웠다고 지적했다.

그는 발달장애인에게 공공임대주택 등을 우선 지원하고, 독립적 주거 생활에 필요한 서비스와 지원 시설을 확충해 발달장애인이 자기 결정권을 갖고 거주지를 선택해 지역사회에서 생활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가톨릭장애인부모회 한순희 씨. ⓒ김수나 기자

이에 반해 시설 밖 독립적 생활이 어려운 중증 발달장애인을 위한 소규모 시설의 필요성에 대한 지적도 이어졌다.

한국가톨릭장애인부모회 한순희 씨는 “장애인 활동을 하는 부모들은 아이들 상태가 그나마 나은 편이라 생각한다”면서 “우리 아이처럼 최중증 발달장애인은 일이 있을 때 폐쇄병동에 맡기지 않으면 부모들이 아무 일도 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가정집과 같은 분위기의 30명 이하 소규모 시설이 많이 부족한 만큼 신변 자립이 어려운 중증 발달장애인을 위한 소규모 시설이 늘어나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시설이냐 아니냐라는 거주 형태의 문제를 넘어 장애 당사자의 삶의 주도성과 선택권이 중요하다는 논의도 이어졌다.

장애인복지시설협회 황소진 정책분과위원장은 “탈시설은 시설에서 지역사회로 거주 장소가 바뀌는 것만을 뜻하지 않는다”면서 “장애인이 한 시민으로서 지역사회에서 정상적 삶을 살도록 지원한다는 인식으로 정책과 제도, 시스템 등 변화의 전 과정을 의미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탈시설 논의에서 규모만 보는 것은 단순한 물리적 관점”이라 지적하고 “시설, 지역사회, 가정 그 어디에서 살든 중요한 것은 삶의 주도성을 누가 가졌는가의 문제”라고 말했다.

주교회의 사회복지위원회 가톨릭장애인사목협의회 현동준 부회장. ⓒ김수나 기자

가톨릭장애인사목협의회 현동준 부회장도 “시설을 무조건 나쁘다고 할 게 아니라 그곳에서도 장애인이 선택권과 행복권을 누리며 살 수 있는지가 더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민용순 씨는 시설에서는 발달장애인들이 의사소통을 못한다고 생각하고 의사를 묻지도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며, 시설에 들어가더라도 “폭력 등의 인권침해가 우려되고 공동생활로 인해 개인의 선택권, 참여권, 생존권 등을 보장받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그는 “당장 시설을 없애자는 것이 아니라 일대일 돌봄과 활동 보조 등 지역사회가 평생복지시스템을 만들고 준비하는 과정에 정책 지원이 필요하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박경석 씨는 장애인거주시설폐쇄법이 제정돼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또한 그는 서울시의 탈시설 모델 중 하나인 “공동생활가정”과 “거주시설 체험홈”의 경우, “장애인 당사자의 삶의 주도성과 서비스 이용 기관에 대한 선택권과 통제권이 결여돼 있다”고 비판했다.

특히 그룹홈에 대해 “방 하나에 두 명 이상이 살도록 하는데 우리는 한 명씩 살도록 하고 개인계약을 통해 개인이 선택할 수 있도록 요구한다”고 밝혔다.

한편, 보건복지부 통계에 따르면 2018년 현재 발달장애인 수는 22만여 명으로 전체 장애인의 약 8퍼센트이며 매년 약 4퍼센트씩 늘고 있다.

발달장애는 성인이 돼서도 특별한 사회적 돌봄이 필요한데, 보건복지부 2017년 장애인 실태조사에 따르면 발달장애인의 80퍼센트가 타인의 도움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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