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비평 - 박병상]

엄동설한에 딸기가 나왔다. 인파에 밟힌 눈이 얼어붙은 이면도로의 좌판을 발갛게 장식한 딸기들이 조심스레 걷는 시민의 눈을 자극하지만 값이 궁금하지 않았다. 살 생각이 없었다. 당도가 낮거나 가격이 높을 거로 짐작하기 때문이 아니었다. 꿀벌 활동 없는 계절에 재배해 수확하는 딸기는 과도한 에너지를 요구한다. 수경재배에 의존하므로 자연의 기운이 없다. 눈을 자극할 수 있지만 몸에 좋을 리 없을 테니, 외면했다.

지난 13일 함박눈이 쏟아지던 날 평택시 어느 공장지대의 한 식물공장에서 정부 고관대작과 언론사 기자들이 모였나 보다. 최첨단으로 지은 그 농장의 이름은 ‘미래원’이다. 파종에서 재배와 수확까지 로봇이 책임지는 ‘버티컬 팜'(vertical farm)이다. 형형색색 발광다이오드 조명으로 농사짓는 미래원은 20센티미터 높이로 10단 이상 차곡차곡 상추 종류와 각종 허브를 자동 생산한다고 관계자는 자랑하는데, 수경재배인 만큼 사람은 그저 영양분을 보충하거나 컴퓨터를 조정하는데 그친다고 기자는 놀라워했고 생산한 채소들을 샐러드로 가공해 파는 사실까지 덧붙였다.

담당하는 직원의 발언에 과장이 섞였다. 외부와 차단된 만큼 기후변화에 관계없이 4계절 안정적으로 생산할 뿐 아니라 농약이 필요 없으니 완벽한 무공해라고 주장한 것이다. 운영 2년 만에 손익분기점을 넘었다고 성과를 자랑한 부시장은 내년 내 규모를 배 이상 키울 예정이라는 포부를 정부 관료에게 밝혔나 보다. 생산 가공한 농작물과 식품을 우리나라의 주요 양판점과 식자재 대기업에 공급한다고 덧붙였던데, 그게 사실이면 우리는 이미 그 채소들을 먹었다는 건가? 대부분의 공신력 있는 상품은 출처가 분명해야 하는데, 그런 농작물에 ‘미래원’ 표시가 있을까? 있다면 이제라도 외면해야겠다.

식물공장 모습. (사진 출처 = 미래원 홈페이지)

미래원은 인공조명과 수경재배로 식물을 생산하는 공장이다. 내용 모르는 소비자들이 겉 보기 깨끗한 식품과 예쁜 개별포장에 반해 지갑을 흔쾌히 열었다면 모를까, 2년 만에 수익을 보았다는 주장을 납득하기 어렵다. 투자비까지 건졌다는 뜻은 물론 아니겠지. 전기와 난방에 적지 않은 에너지가 들어가는 식물공장은 일본과 미국에 더러 운영된다. 하지만 보조금 없이 수익을 기록한 예는 드물다. 연구자는 기후변화와 관계없다고 주장했지만 그런 방식의 농사는 오히려 기후변화의 원인을 제공한다. 농장의 건축과 유지에 들어가는 에너지뿐 아니라 농산물의 재배 과정에 들어가는 에너지가 과다한 만큼 지구온난화를 부추기지 않던가.

인큐베이터처럼 외부 환경에 관계없이 재배환경을 일정하게 통제하며 수확하는 농작물은 기후변화 시대에 결코 안정적일 수 없다. 극단적으로 통제되는 방식에 최적화된 농작물과 씨앗을 요구하는 만큼 농업의 다양성은 물론이고 종자의 유전다양성을 철저하게 배격한다. 관리운영이 철저하게 전문화되어 농민과 농촌마저 부정한다. 수경재배 용액을 관리하는 근무자는 물론이고 전 공정을 설계하는 연구자는 결코 농민이 아니다. 그들은 식물공장에 투자한 자본에 충성할 뿐이다. 투자자의 이익이 소비자의 건강보다 중요할 리 없는 공장은 투자환경의 변화에 예민하다. 석유 가격이 오르면 파산할 것이다.

정부의 한 관료가 “세계경제포럼(WEF)은 2015년 식물공장을 10대 도시 혁신기술로 선정했다”며“모든 산업이 지능화되고 패러다임이 급격히 변화함에 따라, 바이오와 정보통신기술(ICT)이 융합된 지능형 식물공장이 유망 신산업으로 주목받고 있다.”고 말했다고 언론은 전했는데, 중견을 자부하는 그 언론, 딱할 정도로 사고의 폭과 깊이가 천박하다. 석유는 2005년을 기점으로 소비가 생산을 앞선 것으로 전문가는 확신한다. 지구온난화가 일으키는 기후변화가 심화되는 요즘에 식물공장, 가당하기나 하다는 겐가?

“로봇농부의 식물공장”이라는 제목으로 찬양한 언론과 기사를 쓴 기자는 IPCC(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의 절박한 논의와 그 내용을 무시했거나 몰랐다. 산업화 이전보다 섭씨 1.0도 가까이 상승한 지구 평균 기온은 반드시 1.5도 이내 상승으로 낮춰야 인류의 생존이 가능하다고 지난 10월 IPCC 총회는 인천에서 절박한 결론을 내놓았다. 몰랐거나 관심이 없는가? 농민 없는 농장을 찬양한 정부와 언론은 신기루에 정신줄을 놓쳤다.

 
 

박병상 

인천 도시생태, 환경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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