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자가 바라본 세상과 교회]

“우리에게 한 아기가 태어났고 우리에게 한 아들이 주어졌습니다.”(이사야 9,5a)

수녀원의 성탄 대축일 밤미사에는 외부에서 손님들이 오십니다. 저희 가족들도 오랜만에 수녀원 미사에 참례하러 오겠다 했습니다. 특히 올해 태어나 6개월 된 막내 조카에게는 첫 수녀원 나들이었습니다. 미사 반주를 하느라 성당 2층에 있는데 미사 중간 작은 여자아이의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아, 우리 큰 조카가 왔구나. 신부님이 강론을 시작하시자 아기의 힘찬 목소리가 추임새처럼 중간중간 들렸습니다. 아, 작은 조카가 왔구나. 미사를 마치고 내려가자 큰 조카는 늦은 밤 긴 전례의 중간에 잠이 들었고 작은 조카는 이미 수녀님들에 둘러싸여 있었습니다. 저도 잘 못 본 사이 많이 커 있었고 깎은 능금 같은 얼굴로 연신 눈을 빤히 보다 웃고 하는 것이 이미 동네 귀염을 다 받는 주인공이 되었습니다. “아이고, 아기 예수님이 오신 것 같애!” 누군가 이야기했습니다. 아기 조카는 성탄 대축일 밤의 살아 있는 선물처럼 모두의 품에 옮겨 가며 안겨 다녔습니다.

가족들을 보내고 공동체에 돌아와 수녀님들과 이야기를 나누는데 한 수녀님이 말씀하셨습니다. “구유 경배 예절 할 때도 사실 예수님 탄생은 상징으로만 다가왔거든요. 근데 영성체 행렬 마지막에 수녀님 아기 조카가 아빠 품에 안겨 나와서 축복을 받고 들어가는데 그 아기를 보고 나도 모르게 손을 흔드는 거예요. 그제서야 깨닫게 되더라구요. 아, 예수님이 정말 한 아기로 태어나신 거구나, 살아 있는 아기로 우리에게 오셨구나.”

‘새로 태어난 아기’, 조르주 드 라투르. (1640) (이미지 출처 = 프랑스 렌 미술관 홈페이지)

라투르의 그림을 다시 찾아보게 되었습니다. 이 작가가 빛을 사용하는 방식과 의미에 대해서는 올 초 연재를 시작하면서 소개한 적이 있습니다. 어둠 속의 유일한 빛, 촛불 하나. 이 빛이 비추는 포대기에 싸인 한 아기. 아, 이 작은 아기가 구세주이심을 알아보는 것 자체가 하느님의 은총이구나! “어둠 속을 걷던 백성이 큰 빛을 봅니다. 암흑의 땅에 사는 이들에게 빛이 비칩니다. 당신께서는 즐거움을 많게 하시고 기쁨을 크게 하십니다. 수확할 때 기뻐하듯 전리품을 나눌 때 즐거워하듯.”(이사야 9,1-2) 지금껏 이 그림을 보면 아기를 안고 사랑에 가득 찬 성모님의 얼굴을 주로 바라보며 묵상하게 되었는데 이번에는 곁의 여인의 얼굴에, 특히 그 눈길에 새로 주목하게 되었습니다. 

초를 들고 손을 모아 빛이 예수님을 향하도록 하고 있는 여인의 눈동자에 촛불이 비추어 빛납니다. 아기를 바라보며 깊은 관상에 잠겨 있는 얼굴과 몸짓에서 구세주를 본 기쁨을 느낄 수 있습니다. 한 치 앞이 보이지 않는 어둠 속을 걷던 백성이 큰 빛을 만나듯, 암흑의 땅에서 눈물로 씨 뿌리고 밭을 매던 이들이 수확을 하듯, 전쟁과 폭력에 시달리던 이들이 마침내 평화를 얻듯 진정한 기쁨과 즐거움을 크게 하시는 주님. 암흑 속 이 작은 아기가 그 빛임을 알아보고 기뻐하도록 해 주시는 은총 그 자체가 하느님의 위대하신 사랑임을 깨닫습니다.

대축일 미사의 본기도는 이렇습니다. “하느님, 참된 빛이신 그리스도의 탄생으로 이 거룩한 밤을 밝혀 주셨으니, 저희가 세상에서 이 빛의 신비를 깨닫고 천국에서 그 빛의 기쁨을 누리게 하소서.” 그리스도인은 영원한 생명을 바라보며 사는 이들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지금 살고 있는 세상에서 이 빛의 신비를 깨달아야 한답니다. 1년 12개월의 날수를 세게 해 주시고 그 중 꼭 한 번씩 예수님의 탄생을 기념하도록 해 주신 데에는 하느님의 그런 배려가 있나 봅니다. 살다 보면 돌처럼 굳어지는 우리의 마음을 살로 된 마음으로 살려 주시려 예수님은 이렇게 갓난 아기로 매해 새로 태어나 오시는가, 기도하게 됩니다. 예수님이 살아서 오심을 이 암흑 속에서 점점 더 생생히 깨닫게 하시고, 그러다가 영원한 생명에 들어 예수님을 있는 그대로 뵙고 함께 기쁨을 누릴 수 있는 날까지 우리 서로 돌보며 하느님 은총 안에 머물 수 있길 청합니다.

하영유(소화데레사)
성심수녀회 수녀
가톨릭대학교 출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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