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처럼 - 김유진] 드라마 'SKY 캐슬'

계속 시청률을 갱신하며 화제가 되고 있는 드라마 'SKY 캐슬'은 자녀가 최고 학벌을 획득해 부모가 누리고 있는 상류 계층의 기반을 세습하는 일에 올인하는 이야기다. 오직 이 목적에 부부와 가족의 삶이 존재하고, 이 목적을 위해 부모는 학대 수준의 훈육을 자행한다. 다양해진 대학입시 전형을 멘토링 하고, 고교 내신 관리를 담당하는 입시 전문가 그룹을 말 그대로 수십 억을 들여 고용한다. 자녀가 이에 부합하지 못하면 정서적, 심리적으로 학대하고 물리적 폭력까지 마다 않는다. 그러는 가운데 청소년들은 병을 앓고, 가족은 파괴된다.

학벌 사회나 교육 제도를 비판하고 풍자하는 드라마나 영화는 종종 있었지만 'SKY 캐슬'에서 구현하는, 비현실 같은 현실은 훨씬 적나라하고 충격적이다. 상류 계층에서 폐쇄적으로 이루어지는 일로 그려지고는 있지만 정도의 차이만 다를 뿐 우리 사회가 오랜 세월 깊게 병들어 있는 지점을 정확히 짚어 낸다. 사교육비가 수십 억인지 수천 혹은 수백 단위인지, 입시에 올인하는 기간이 어느 정도인지에 차이가 있겠지만 온 가족이 수험생의 입학 시험을 가장 중요한 과제로 삼고 그것에 가용한 모든 자원을 투자하며 가족 구성원의 행복을 유예하는 상황 앞에 자유로운 가족은 그리 흔치 않을 것이다.

드라마는 이러한 세태를 그리기 위해 수험생의 어머니, 즉 여성들을 전면에 내세운다. 의과대학과 로스쿨 교수인 아버지들은 가정과 직장에서 모두 희화화된 시선으로 묘사되는 데 반해 전업주부인 어머니들의 학벌 세습을 향한 욕망과 실천은 지극히 사실적으로 그려진다. 우리 사회에서는 자녀 양육과 교육이 전적으로 혹은 상당 부분 어머니의 일로 취급되고 실제 어머니들이 그 역할을 수행하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드라마가 그러한 현실을 있는 그대로, 자연스레 반영했을 뿐이라고 한다면 이 드라마에서 오락과 재미 이상의 ‘풍자’를 논할 수는 없을 것이다.

'SKY 캐슬' 포스터. (이미지 출처 = JTBC 홈페이지)

부모의 계급을 학벌이란 수단으로 세습시키려는 욕망은 단지 여성 개인의 욕망이 아니라 가부장제의 욕망이고 여성은 이를 자의적, 타의적으로 수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단지 엄마들의 ‘치맛바람’ 탓으로 돌리기에 우리 사회의 학벌 세습 욕망은 너무나 오래되고, 깊고, 광범위하다. 그러니 중심인물인 한서진을 비롯한 엄마들에게 책임이 전가되는 상황은 이제 그만 집중하고 가부장제와 학벌 세습의 작동 원리를 더 세밀하게 밝혀 보이길 바란다. 나아가 여성들이 가부장제의 유지, 존속에 복무하며 자신의 지위를 부여받는 데서 탈피해 가부장제의 근본을 회의하고 흔드는 장면까지 확인할 수 있길 기대한다.

학벌 세습이란 목표에 가장 적극적인 두 인물, 한서인과 차민혁의 행동 동기가 출신 계층으로 동일하게 풀이된 것 역시 아쉬운 지점이다. 말했듯 학벌 사회의 면모는 그러한 개인적, 심리적 원인으로 돌리기에는 너무나 뿌리 깊고 광범위한 사회적, 집단적 의식에서 비롯된 사회 현상이기 때문이다. 흙수저=열등감=자녀 학벌 집착(한서진의 경우 가부장제 안에서의 인정욕구까지)이라는 프레임 또한 결국 타파할 필요가 있다.

연장 방영이 결정되면서 초반의 긴장감과 신선함이 상쇄되었음에도 이 드라마를 끝까지 지켜보는 이유는 한서진의 행보가 궁금해서다. 결국 한서진이 학벌 세습에 얽힌 여성과 계층 문제를 단지 현실 반영이 아닌 현실 풍자로 돌파할 수 있는 열쇠를 지니고 있다. 작가의 페르소나는 한서진이 아닌 이수임이겠지만 작가로서 '스카이 캐슬'의 현실을 고발하겠다는 그의 캐릭터는 비상식적인 자기중심성과 비윤리성으로 이미 설득력을 잃고 무너져 버렸다.

풍자는 권력을 비판하고 공격하며, 현실을 개선하려는 의지를 분명히 지닌다. 이 드라마가 단지 우리 사회의 무의식 중 가장 부끄러운 부분을 자극해 시청률을 올리려는 목적에서 나아가 현실 풍자의 목적을 지니려면 현실을 반영하면서도 현실을 개선하려는 분명한 의지를 보여 주어야 할 것이다. 앞으로 남은 후반부에서는 보다 확실하게, 그러나 이수임 스타일의 프로파간다를 넘어서, 한서진의 용기와 변화에 기반한 설득력 있는 스토리로 확인할 수 있길 기대한다.

오늘로 김유진의 '어린이처럼' 연재를 마칩니다. 3년 동안 매달 어린이 문화를 소개, 비평해 주신 김유진 씨에게 감사드립니다. - 편집자

 

김유진(가타리나)
동시인. 아동문학평론가. 아동문학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고 대학에서 글쓰기를 강의한다. 동시집 “뽀뽀의 힘”을 냈다. 그전에는 <가톨릭신문> 기자였고 서강대 신학대학원을 졸업했다. 이곳에서 아동문학과 신앙의 두 여정이 잘 만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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