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비평 - 박병상]

1960년대 겨울방학을 맞은 인천의 초등학생은 강화의 친척을 찾았다. 시외버스는 김포의 항구에서 연락선에 올라탔고, 우리는 낡은 연락선이 염하수로에 떠내려가는 얼음덩어리들을 가로지르며 강화로 천천히 다가가는 모습을 기억에 남겨 놓았다. 강화와 김포 사이의 염하수로의 물살은 여전히 빠른데, 얼음덩어리는 요즘 없다. 연락선도 자취를 감췄다. 대신 두 개의 왕복 4차선 다리가 강화를 육지와 빠르게 잇는데, 하나 더 요구하는 사람이 늘어난다.

농사짓던 친척이 모두 떠난 요즘, 주말에 강화를 다녀오려면 아무래도 새벽에 출발하는 게 낫다. 바닷가의 경관을 독점하는 펜션들은 이른 시간부터 승용차를 끌어들인다. 지체하면 도로에서 시간을 허비해야 하는데, 그건 왕복 2차선 교량 하나로 이어진 영흥도도 마찬가지다. 다리 개설 초기 인천시청에서 한 시간이면 충분했지만 요즘은 여객선 시절보다 느려졌다. 주말이면 3시간도 모자라니 교량 폭을 넓히거나 더 놓아야 할지 모른다. 늘어나는 펜션의 방이 절반 가까이 비어도 도로가 꽉 막히지 않던가. 민원이 들끓겠지.

제주도는 제2공항 건설 문제로 논란이 거세다. 장소가 확정되기 전부터 투기꾼이 몰리면서 예정지의 땅값이 뛴다는데, 추가 건설을 반대하는 주민은 도청 앞에서 단식을 불사한다. 제2공항을 기정사실로 단정한 도지사는 승객으로 미어터지는 공항 로비, 연착과 연발이 일상인 활주로의 한계를 어떻게든 해결하고 싶을 것이다. 승객을 분산해야 현 공항의 아비규환을 해소할 수 있다고 믿겠지만, 그게 최선일까? 승객의 대부분은 관광이 목적인데, 관광객의 수를 조절할 생각은 왜 하지 못하는 걸까? 안 하는 건가?

조기 퇴직한 친구가 목 좋은 골목에 조촐하게 식당을 차렸다. 한 10년 전 일이다. 입소문을 타고 손님이 늘어나면서 친구는 퇴직 후의 안정을 확신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문을 닫고 말았다. 기다리다 발길 돌려야 했던 손님들을 모두 받아들이려 감당하기 어려운 은행융자를 부담하고 확장한 게 탈이었다. 무턱 대고 확장하지 않았다면 입소문은 이어졌겠지. 준비된 식재료가 소진되기 전에 줄을 서는 식도락가의 모습에 입소문과 호기심은 증폭되었겠지. 유명세는 전설로 등극했을지 모르는데, 욕심이 화근이었다. 그런 현상은 식당에서 그치지 않는다. 도심 상가의 여기저기에 같은 간판을 내거는 편의점과 가격 인하 경쟁에 내몰리는 커피전문점도 사정이 비슷하다.

제주 제2공항 예정부지인 성산읍 온평리 일대 전경. (사진 출처 = 제주의 소리)

강화와 영흥도는 시방, 예전의 경관을 거의 잃었다. 고즈넉함을 기억하는 이는 외면할 텐데, 홍도를 비롯한 다도해해상국립공원에 교통이 편리해지면 경관이 보전될까? 찾는 관광객을 잘 관리한다면 가능할 것이다. 국립공원은 어떨까? 등 떠밀리는 이용객으로 몸살 앓는 북한산과 설악산의 사정이 비슷한데, 패이며 확장되는 등산로 주변의 식물상이 줄어들고 동물은 사라지며 경관은 무너지는 중이다. 기존 등산로 폐쇄 없이 케이블카를 추가한다면? 생각하기조차 끔찍해지겠지. 더 멋들어질 제2공항마저 관광객을 토해 낼 이후의 제주도는 어떤 모습이 될까? 곶자왈의 독특함과 오름의 수려함은 보전될까?

필리핀의 보라카이 해안은 몰려드는 관광 인파의 부작용을 감당하지 못하자 6개월 정도 강제 폐쇄해야 했다. 대대적 청소와 시설 개선 이후 필리핀은 체계적 수요관리에 나섰다는데, 천혜의 경관과 동식물상을 보유하는 제주도는 휴양지로 개발된 보라카이와 다르다. 세계의 건강한 젊은이가 모여들어 명성을 높인 보라카이와 달리 한라산을 정점으로 완만하게 펼쳐지는 제주도의 아스피테 지형은 중산간의 넓은 들판과 곶자왈의 다채로운 생태계를 연출한다. 가슴 설레게 만드는 369개의 기생화산은 아름답기 그지없지만 상처받기 쉽다. 이미 많은 지역은 돌이키기 어렵게 파괴되었는데, 관광객 모두 수용하려고 제2공항을 반드시 지어야 하는 걸까? 그러면 제주도는 큰돈을 벌고, 발전하나? 제주도의 주민이?

친구를 모처럼 만나 경관을 만끽하고 싶어도 엄두 내기 어려운 제주도는 지금도 지나치게 붐빈다. 아직은 찾아갈 기회를 기다리는데, 기다릴수록 제주도는 신비롭다. 한데 신비로움은 보전되지 못할 때 사라진다. 제주도나 국립공원이나 마찬가지다. 사람들로 북적일수록 신비로움은 희석되고 결국 무시된다. 조상이 물려준 제주도의 경관과 생태계를 최상으로 보전하면서 수요를 충족할 관광객의 수는 어느 정도여야 할까? 제2공항 건설을 고집하는 특별자치단체 당국은 제주도의 지속가능성을 지킬 수준의 관광객의 관리 방안을 제시하지 못한다.

제주도에 제2공항을 서둘러야 할 이유는 충분하지 않다. 지금은 성실한 사전 연구를 바탕으로 관광객을 예약 관리할 수 있어야 한다. 제주도의 명성은 개발 자본의 돈벌이 크기에 좌우되지 않는다. 경관과 생태계가 보전될 때 주민의 소득과 자부심도 지속가능할 수 있다.

 
 

박병상 

인천 도시생태, 환경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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