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 안태환]

우리 사회는 아주 많은 문제가 있다. 그런데 그 문제들이 유럽 등의 소위 잘 나가는 선진국이 아니라 평범한 다른 나라에 비해도 심각한 수준이다.(예를 들어 최근 어느 군의원의 어이없는 폭력 등은 소위 ‘후진국’에도 없다. 또한 최근 아기 아빠의 육아휴직 문제가 이슈가 되고 있지만 가까운 타이완만 하더라도 훨씬 오래전부터 이 문제가 우리보다 나은 방식으로 해결되고 있다) 그러다가 문제의 부작용이 아주 커지면 미디어 등에서 “이번에는 반드시 근본적(?) 해결을 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다가 시간이 지나며 대중의 관심에서 멀어지면 그냥 유야무야된다. 그리고 다른 문제가 생기면 똑같은 방식의 처방이 주어진다. 이렇게 흘러가는 데는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세계체제’에 대한 무관심 때문인 것 같다. 

우리나라가 수출지상주의의 무역 대국인데도 이러하다는 것은 매우 큰 아이러니다. 수출을 효율적으로 잘하기 위한 ‘국제 감각’만 발달한 것 같다. 예를 들어, 신자유주의(자본주의)가 문제가 많은 것을 어느 정도는 알고 있다. 그러나 문제 해결을 위한 대안에 대한 생각은 그렇게 깊이 하지 않는다. 과거에는 세계체제가 어떻게 돌아가고(변화하고) 있는지에 대한 무관심이 아무 문제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세계체제의 서열구조 안에서 일부 ‘좌파’를 제외하고 아무 문제의식 없이 무조건 열심히 일해서 수출하면 급속도로 경제가 성장하던 시대를 경험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2009년 이후 세계는 급격하게 변하고 있다. 특히 자본주의적, 근대적, 가부장적 발전국가 모델에 대한 비판적, 대안적 모델의 연구와 실천이 활발하다. 이제 우리가 그동안 무관심하게 미루어 놓았던 많은 문제가 한꺼번에 닥치고 있다.(예를 들어, 성추행 등 여성 인권 문제와 다양한 종류의 위계 서열에 의한 폭력성의 문제 등) 어느 학자는 “역사는 미루어 놓은 숙제에 대해 ‘복수’한다”고 한다.

우리의 경우, 극우는 아예 자본주의가 하나도 문제가 없다고 생각한다. 자유주의 세력도 다양한 대안 모델에 대해 별 인식이 없는 것 같다. ‘지속가능한 성장’의 대안도 많은 경우 수사에 그치고 깊은 논의는 부족한 것 같다. 그 이유는 ‘근대성’에 대해 아주 좋게만 생각하기 때문인 것 같다. 왜냐하면 근대성이 내세우는 철학 또는 가치를 “이성, 진보, 정치적 민주주의, 과학, 상품 생산, 급속한 변화” 등으로만 인식하기 때문이다. ‘자본주의’와 ‘근대성’은 전 세계의 일부인 유럽에서 만들어 전 세계로 ‘보편화’시킨 것(즉, 세계체제가 이렇게 만들어졌다)이라는 인식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자본주의는 18세기, 근대성은 17세기에 시작한 것으로 학교나 미디어에서 가르치고 그렇게 ‘상식적’으로 인식한다.

그러나 라틴아메리카의 학자들은 자본주의와 근대성에 대해 우리와 다르게 생각한다. 이들은 자본주의와 근대성의 세계체제가 (유럽인들이 남미를 식민지로 만들던) 16세기에 시작했다고 한다.(전에 언급한 월터 미뇰로의 "라틴아메리카, 만들어진 대륙" 참고) 그리고 16세기에 시작된 자본주의가 계속 발전해서 절정의(혹은 위기의) 모델에 도달한 것이 현재의 신자유주의라고 주장한다. 이 말은 16세기가 과거 백년의 역사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현재의 21세기까지 지속되고 있다는 의미다. 그런 맥락에서 16세기를 ‘장기’ 16세기로 호명한다. 이 자본주의, 근대성, 세계체제의 감추어진 속성이 ‘위계 서열적, 인종주의적 폭력성’, 즉 ‘식민성’이라는 것이 이들의 핵심적 주장이다. 19세기에 마르크스에 의해 저술된 "자본"보다 그리고 영미권 학자들에 의한 20세기 후반의 포스트 식민주의 담론보다 자본주의와 근대성에 대한 비판의 깊이가 차원이 다르다.

라틴아메리카의 아스테카 문명(위)과 잉카 문명. (이미지 출처 = Pixabay)

결국, 콜럼버스에 의한 라틴아메리카 ‘발견(?)’으로 인식되는 1492년이 아주 중요한 역사의 전환점이 된다. 라틴아메리카 이외에 중동, 아프리카, 동남아시아 등도 19세기에 식민지로 전락한다. 물론 라틴아메리카 사람들(원주민)은 유럽인들이 최초로 맞닥뜨린 비유럽인들은 아니다. 예를 들어 유럽인들은 이슬람 문화권인 중동 사람들을 훨씬 먼저 맞닥뜨렸다. 그러나 비유럽인들의 노동력을 집단적으로 강제로 착취하고 자원을 약탈하고 상품을 만들어(예를 들어, 금은 등) 국가가 나서서 무역으로 유럽에 가져오는 시스템(자본주의 체제)은 세계 역사상 최초로 라틴아메리카 원주민들에 적용되었다. 그러므로 라틴아메리카의 대중과 지식인들이 자본주의적 세계체제의 문제의식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을 이해할 수 있다. 특히 오늘날의 라틴아메리카 대중이 다양한 문화와 예술을 통해 과거 조상의 ‘집단적 고통에 대한 기억’을 간직하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이에 비해 20세기 초반에 일본인들에 의해 식민지로 전락한 우리들은 직접적으로 유럽인들에게 당한(?) 것이 아니라서 그런지 과거나 지금이나 유럽인들(미국 포함)은 주로 선망의 대상인 것 같다.

자본주의에 대해 라틴아메리카의 대중은 아주 독특하게 생각하고 실천한다. 우선 유럽과 라틴아메리카의 차이를 이해하기 위해 쉬운 비유를 들자면 라틴아메리카는 유럽과 ‘배 다른 형제’로 볼 수 있다. 아버지는 유럽인들로 같다. 그런데 서로 다른 어머니가 문명(문화)이 아주 다른 어머니다. 그래서 라틴아메리카의 ‘형제들’은 유럽과 매우 비슷하면서도(왜냐면 유럽문화가 헤게모니를 가졌으므로) ‘무엇인가 독특하게’ 다르다. 그 ‘다른’ 것이 바로 라틴아메리카 사람들의 집단적 기질, 성향인 ‘바로크 에토스’다. 이 글에서 언급하려는 주제다.

우선 우리가 알고 있는 ‘라틴아메리카’에 대해서 잘못된 인식이 많다. 1492년 콜럼버스가 라틴아메리카를 ‘발견’했다고 한다. 아니다. 지금의 남극 또는 북극처럼 아무도 없던 땅이 아니다. 이미 그 당시 멕시코에는 ‘아나우악’이라고 불리던 땅에 아스테카 문명의 사람들이 살고 있었고 지금의 페루에는 ‘타완틴수유’라고 불리던 땅에 잉카 문명의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 이 두 문명을 파괴하고 스페인은 식민지를 새롭게 만들었다. 즉, ‘발견’이 아니라 ‘발명’한 것이고 ‘구성’한 것이다. 이런 성격의 초보적 주장은 1950년대에 겨우 나왔다. 더 중요한 것은 유럽인들이 처음 라틴아메리카 원주민들을 마주 대하고 자신들이 “그리스도교를 가지고 있고 문명화된 유럽인들”이라는 자의식을 가지게 되었다는 점이다. 그리고 마르크스가 "자본"에서 지적하다시피 (남미의 자원을 약탈하여 초기 자본을 만든) ‘본원적 축적’을 통해 현재의 자본주의와 유럽을 만든 것이다. 알다시피 그 전에 유럽인들이 만났던 이슬람 문명은 자신들보다 훨씬 수준 높은 문명이었다. 즉, 라틴아메리카 때문에 ‘유럽’이 만들어진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처음부터 ‘라틴아메리카’라는 이름이 있었던 것도 아니다. 19세기 후반에 보수주의 세력에 대해 자유주의 세력이 정치투쟁에서 이기고 헤게모니를 얻고 난 뒤에 프랑스 혁명과 프랑스 문화를 근대성의 모델로 삼으면서 그리고 미국을 경계하고 의식하면서 그 이름이 출현한 것이다. 그런데 이 이름이 함축하는 맥락에 중요한 것이 있다. 19세기 후반에 정해진 자유주의적 근대 국가 모델에는 원주민과 아프리카계 주민들은 ‘배제’되고 투명한 존재 취급을 받는다. 그렇게 약 100년이 지난 뒤인 1990년대 초반에 라틴아메리카 학자들에 의해 ‘근대성/(탈)식민성 기획’이라는 담론이 출현한다. 1990년에는 에콰도르에서 정확하게 500년 동안 무시되고 차별받던 원주민들이 대규모 시위를 하고 자신들의 정치적, 경제적 권리 선언을 한다. 1990년대 이후 원주민들(아프리카계 후손들도 포함하여)이 새로운 집단적 주체로 출현한 것이다. 

라틴아메리카 타워. (이미지 출처 = Pixabay)

이런 맥락은 왜 라틴아메리카 대중과 지식인이 신자유주의를 비판하고 대안을 추구하는 데 열심인지 이해할 수 있다. 1990년대는 신자유주의에 대한 라틴아메리카 대중의 저항이 절정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이야기가 길어진 것 같다. 이제 라틴아메리카 대중이 자본주의에 대해 가지는 독특하고 다른 기질 또는 성향, ‘바로크 에토스’를 간략하게 살펴보자. 이것이 형성되기 시작한 것은 17세기다. 물론 17세기는 유럽에서 바로크주의 시대다. 그러나 바로크 에토스는 일반적으로 거론되는 문화와 예술사조로서의 문제의식과 직접 상관이 없다. 라틴아메리카 대중의 집단적 일상생활의 방식을 다루기 때문이다.

17세기에 스페인은 이미 쇠퇴한 국가였고 라틴아메리카에 이식된 유럽문명은 위기 상황에 처해 있었다. 그리고 원주민 문명(문화)도 대부분 파괴된 위기 상황이었다. 즉, 비전으로 삼을 롤 모델의 문화가 없었다. 그런데 17세기에 라틴아메리카 도시의 중심부를 제외한 주변부에는 권력에서 소외된 백인후손들과 원주민계, 아프리카계 혼혈주민들이 ‘함께’ 그리고 ‘친하게’ 공동으로 살았다. 즉, 같은 집단적 문화를 공유한 것이다. 그리하여 이들은 주류 문화인 유럽문화(자본주의)를 계승, 복원하려 했지만 원하건 원하지 않건 유럽과는 ‘다른’ 독특한 문화 즉 혼혈적 라틴아메리카적 유럽문화가 만들어졌다. 여기서 나오는 애매하게 뒤섞인 삶의 태도가 바로크 에토스다. 즉, 지배적이고 막강한 힘을 가진 자본주의에 대해 복종은 하지만 결코 ‘순응’하지 않게 된 것이다. 

이와 달리 우리의 경우는 매우 현실적 에토스를 가지게 된 것 같다. 즉, 자본주의적 근대성의 삶의 세계가 아무 모순이 없다고 생각하고 열심히 ‘순응’한다.(예를 들어, 열심히 돈을 모아 부동산 ‘투자’도 한다) 그리고 이 두 에토스를 제외하고 이상과 혁명을 추구하는 낭만적 에토스는 무조건 자본주의적 근대성을 거부하고 저항하고, 고전적 에토스는 여기에 저항할 수 없다고 포기하고 ‘비극성’으로 도피한다. 현대는 낭만적 에토스가 사라진 시대다. 그러나 바로크 에토스의 라틴아메리카 대중은 비관적이지 않고 낙관적이다. 왜냐하면 A급은 안 되더라도 B급, 또는 C급으로 ‘사용가치’를 추구하며 즐길 수 있는 여유가 있기 때문이다. 즉 돈이 없더라도 행복할 수 있는 방법을 알고 있고(개인적 힘이 아니라 공동체적 힘 덕분에) 가혹한 현실에 대해 무조건 ‘순응’하지 않기에 상처를 덜 받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바로크 에토스가 ‘지금 여기’에서 중요한 맥락은 현재의 자본주의가 출구 없는 ‘위기’ 상황을 보이기 때문이다.

안태환(토마스)
한국외대, 대학원 스페인어과 
스페인 국립마드리드대 사회학과
콜롬비아 하베리아나대 중남미 문학박사 
부산외대 중남미지역원 HK교수
현재 한국외대 스페인어과에서 중남미의 역사와 정치, 사회에 대한 강의를 하고 있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저작권자 ©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