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fault_top_notch
default_news_top
default_setNet1_2
default_news_ad1
default_nd_ad1

이주사목과 노동사목 분리될 수 있나?

기사승인 2019.01.31  17:11:20

공유

- [지금여기 연중 기획 1] 노동 : 부산교구 노동사목 이영훈 신부(2)

<가톨릭뉴스 지금여기>는 신년 기획으로 2019년, 한국사회가 직면한 주요 이슈를 어떻게 읽고 대응하고, 살아갈 것인가를 살펴보기로 했다. “노동, 평화, 인권, 농업” 등 네 가지 주제에 대한 교회 안팎의 전문가 또는 당사자로부터 그동안 우리가 각 이슈에서 놓친 것은 무엇이며, 새롭게 인식할 것들은 무엇인지 인터뷰를 통해 들었다.

기사 순서

1. 노동 : 김선기 서울일반노조 교육선전국장 / 부산교구 노동사목위원회 이영훈 신부

2. 평화 : 이대훈 성공회대 교수 / 의정부교구 민족화해위원장 강주석 신부

3. 인권 : 이성훈 한국 인권재단 이사 / 서울대교구 빈민사목위원장 나승구 신부

4. 농업 : 가톨릭농민회 정한길 회장 / 서울대교구 우리농촌살리기운동본부 백광진 신부 
        / 한국농어촌사회연구소 이재욱 소장


2019년 우리가 좀 더 관심을 가져야 할 노동문제는 무엇일까?

-‘청소년 노동자’를 위한 교회의 관심이 더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잘 알고 있듯 2년 전 제주도 특성화고 현장실습생이 산재로 죽었다. 언론을 통해 알려진 것처럼 청소년이 현장실습생으로 일하다가 산재뿐 아니라, 자살한 사례도 많았다. 산업체와 학교의 성과주의에 희생된 아이들이다. 또 최근 대형 유통업체들이 근로기준법을 어기면서까지 청소년 노동자들을 불법 고용한 적이 있다. 물론 이러한 상황에서도 청소년 개인이 자신의 꿈과 생존을 위해 일하는 것을 뭐라 말할 수 있겠냐마는, 그렇다면 청소년들의 미래와 그들이 안전하게 일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우리 사회가 무엇을 했는가라는 반성은 왜 없는 것일까?

청소년을 이윤창출을 위한 소비재로 인식하는 우리 산업구조를 볼 때, 18-19세기 산업화시대 서양의 청소년, 20세기 중반 산업화시대 우리나라의 청소년과 1990년대 산업연수생으로 온 이주노동자의 모습이 연상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많은 진전이 있었지만, 아직 우리 사회가 가야 할 길이 너무 멀다. 이윤창출, ‘돈’ 앞에서는 나이와 성별, 국적을 불문하고 ‘인간’으로 대하기보다는 ‘소비재’로 여기는 문화가 우리 사회에 있다. 그렇다고 비관적으로만 보는 것은 아니다. 점진적으로 개선되는 부분도 있고, 노력하면 더 빠르게 변화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완성’은 우리가 아니라, 하느님께서 하시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왜곡된 ‘노동의 의미와 가치’, ‘노동자로서의 권리와 연대’ 그리고 우리 모두가 ‘노동자’라는 인식을 일깨우는 교육이 필요하다. ‘너 공부 안 하면 저 청소부처럼 돼’라는 노동자 비하 혹은 계급적 시각이 바뀌도록 해야 한다. 물론 이것은 교육만으로는 힘들다. 노동자로 살더라도 충분히 여유롭게 살 수 있도록 사회 변화가 함께 필요하다. 결국 공정한 임금체계와 근로조건이 필수다. 먹고 살기 힘든 노동자를 누가 하고 싶고, 자부심을 가지겠는가? 노동자를 존중한다고 해도, 어쩌면 그것은 동정일 수도 있으니 말이다.

둘째, 청소년 노동 환경은 대부분 단기 계약직(알바)이다. 최근 논란이 됐던 주휴수당을 받지 못하고, 받아야 하는지도 모른 채 일하고 있는 청소년 노동자가 많다. 근로시간이 제대로 안 지켜지는 경우도 있다. 몇 년 전 한 청소년 노동자는 자신이 성추행을 당한 적이 있다고 저에게 말했다. 이처럼 ‘현장실습생’과 제가 다 알지 못하는 많은 곳에서 일하고 있는 청소년 노동자의 문제를 찾아보고, 고민하고, 연구하며, 실천해 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교회 내 주일학교와 청년회 등에서 노동과 관련된 교회 가르침과, 노동법을 가르칠 필요가 있다. 현재 예비신자 교리서에도 부족하나마 사회교리가 포함된 것처럼 주일학교나 청년회 등의 교육에 노동교육을 필수 영역으로 넣으면 좋겠다.

부산교구 노동사목위원회 이영훈 신부. (사진 출처 = 이영훈 신부 페이스북)

주교회의 정평위 노동사목소위원회의 현재 활동과 비전은?

-현재 노동소위에는 부산, 서울, 인천교구가 참여하고 있다. 현재 3개 교구만 노동사목이 있다. 참고로 전체 교구 중 유일하게 부산교구만, 노동사목이 이주노동사목을 함께하고 있다. 다른 교구는 이주만 있거나, 이주와 분리돼 있다. 작년에는 의정부와 수원교구 대표 신부들과 일반 위원들이 함께 참여했다.

수년 전에 ‘노동소모임’으로 시작한 노동소위는 작년부터 시작됐다. 시작 단계라 아직 이렇다 저렇다 말하기에는 이르다고 생각한다. 다만 ‘노동소모임’ 단계에서도, ‘노동관심 신학생 연수’를 계속해 왔고, 재작년부터 준비했던 ‘농어촌 이주노동자를 위한 사목적 배려’ 지침을 작년에 이주사목위원회와 함께 만들어 주교회의 명의로 배포했다.

요한 바오로 2세가 ‘노동문제는 모든 사회문제의 핵심’이라고 한 것처럼 노동문제는 끝이 있을 수 없다. 특히 사회 불평등의 핵심 원인은 노동문제에서 나오고 있는데, 노동자의 권리에 무관심하다면 교회가 불평등을 용인하는 것은 아닌가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더 많은 교구에 노동사목이 생기길 기대한다.

조금 민감할 수도 있는데, 현재 노동과 노동자 관련해 정평위의 노동소위와 이주사목위원회가 이를 담당하고 있다. 노동소위가 정주(한국인)노동자를 맡고 있다면, 이주사목위원회는 이주노동자들을 담당한다. 그런데 사업장에는 한국인과 외국인이 함께 일하고 있어 노동문제에서 한국인과 외국인을 분리할 수 없다. 난민 문제에서도 보았듯, 이주노동자들이 이미 우리 사회 산업구조에서 없어서는 안 될 존재가 되었음에도 이들이 우리 일자리를 빼앗는다는 말이 나왔다. 이주노동자라 해서 노동소위가 무관심할 수 있을까? 이주노동자문제는 이주사목위원회 영역이니 노동소위는 책임이 없는 것일까? 노동과 노동자에 관한 문제에서, 노동소위와 이주사목위원회 간 많은 협조가 필요하다고 본다. 

둘째, 현재 남북 화해 분위기를 볼 때, 한정적이긴 하겠지만, 언젠가는 자유왕래가 가능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 북한 노동자들이 새로운 이주노동자가 될 수 있는데, 동일한 언어와 숙련도 등을 볼 때 이들이 외국인 노동자의 영역에 들어오게 된다면, 새로운 형태의 노동문제가 일어날 수 있어 이에 대한 준비도 필요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주교회의 노동소위의 역할에 ‘노동과 경제’에 관한 한국 현실에 맞는 ‘이론적 기준’을 마련하는 것도 포함된다고 본다. 한국 현실에 맞는 ‘노동과 경제에 관한 가르침’을 만드는 것이다. 1980년대 미국 가톨릭교회는 당시 미국 현실에서의 노동과 경제 등에 관한 가르침 "모든 이를 위한 경제정의"을 낸 적이 있었다. 미국교회는 이 책에서 당시 미국 경제와 사회 상황 분석과 함께 분석에 따른 미국 교회의 가르침과 방향을 제시했다. 프란치스코 교황도 '복음의 기쁨'에서 언급했듯, 사실 사회교리를 지역 교회의 현실에 맞춰 재해석해야 하는데 아직 우리는 그러한 작업이 안 됐다. 물론 현재로서는 거의 불가능한 일이지만, 언젠가는 한국교회가 해야 할 작업이라 생각한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김수나 기자 ssuk316@catholicnews.co.kr

<가톨릭뉴스 지금여기>의 기사는 영리 목적이 아니라면 누구나 출처를 밝히고 무료로 가져다 쓸 수 있습니다.
default_news_ad5
default_side_ad1
default_nd_ad2

만평·포토에세이

1 2 3
set_P1
default_side_ad2

인기기사

default_side_ad3

섹션별 인기기사 및 최근기사

default_setNet2
default_news_bottom
default_nd_ad4
default_bottom
#top
default_bottom_notc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