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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는 구체적 삶, 추상적 평화는 반평화"

기사승인 2019.02.08  15:3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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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여기 연중 기획 1] 평화 : 이대훈 성공회대 평화학 연구교수

<가톨릭뉴스 지금여기>는 신년 기획으로 2019년, 한국사회가 직면한 주요 이슈를 어떻게 읽고 대응하고, 살아갈 것인가를 살펴보기로 했다. “노동, 평화, 인권, 농업” 등 네 가지 주제에 대한 교회 안팎의 전문가 또는 당사자로부터 그동안 우리가 각 이슈에서 놓친 것은 무엇이며, 새롭게 인식할 것들은 무엇인지 인터뷰를 통해 들었다.

기사 순서

1. 노동 : 김선기 서울일반노조 교육선전국장 / 부산교구 노동사목위원회 이영훈 신부

2. 평화 : 이대훈 성공회대 교수 / 의정부교구 민족화해위원장 강주석 신부

3. 인권 : 이성훈 한국 인권재단 이사 / 서울대교구 빈민사목위원장 나승구 신부

4. 농업 : 가톨릭농민회 정한길 회장 / 서울대교구 우리농촌살리기운동본부 백광진 신부 
        / 한국농어촌사회연구소 이재욱 소장

 

“전 세계적 군비 경쟁, 특히 한국의 군비 증강이 위험한 속도로 가고 있습니다. 평화협상과 별개로 군비증강은 계속되고, 성공적으로 평화협상을 하더라도 남한은 상당기간 높은 수준의 군비증강을 할 것입니다. 이는 중국과 일본, 러시아도 가세한 심각한 문제이며, 한반도 평화구축을 위해 검토해야 할 중요한 장애물입니다.”

지난해 말, 미국 주교회의 국제정의평화위원장 티머시 브롤리오 대주교가 방한했을 때, 주교회의가 주관한 간담회에 참석한 이대훈 교수(프란치스코)의 말이다.

군축, ‘군비축소’의 사전적 의미는 “평화 유지와 인류 공영을 위해, 전쟁을 수행하기 위해 갖춘 군사 시설이나 장비의 규모를 줄이는 일”이다.

평화를 구축하기 위해서는, 먼저 평화를 위한 행동을 구상하고 실천하는 것과 함께 핵무기 개발과 확산, 세계 곳곳의 (전쟁)기지화, 무기 개발과 수출입 등 전쟁을 전제하거나 전쟁을 기회 삼아 이윤을 얻기 위한 행위를 서로 내려놓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미국을 필두로 세계 주요 국가의 군비 경쟁은 날로 치열해지고 있다. 한국과 인접국인 중국, 일본 등도 예외는 아니다.

한국의 국방비는 매년 1-2조가 늘고 있다. 2009-13년 5년간 쓴 국방비는 156.7조 원이었지만, 2014-18년까지 5년간은 195.5조 원으로 39조 원 늘어났다. 또 2019년부터 5년간 예상 국방비는 270조 원으로, 이전 이명박, 박근혜 정부 시절보다 연간 국방비 증가율이 크게 높아진다. 이에 더해 현재 한국의 국방비는 세계 10위, 무기 수출은 12위, 세계 100대 무기생산업체 가운데 한국 업체는 7개로, 100개 무기생산업체 전체 판매의 약 2퍼센트를 차지한다.

남북 화해 분위기가 급물살을 타고, 이 변화가 가까이는 동북아로부터 전 세계에 영향을 미치는 가운데, 한반도의 실질적인 평화 구축을 위해서 한국사회가 풀어야 할 화두는 무엇이며, 놓치지 않고 준비해야 할 것은 무엇일까. 다시, 우리가 추구해야 할 평화는 무엇이며, 무엇을 놓치고 있는가.

성공회대 NGO대학원 평화학 연구교수, 미스모모 평화교육연구소장으로 평화교육에 힘쓰고 있는 이대훈 교수를 만나 이야기를 들었다.

다음은 인터뷰 전문이다.

이대훈 성공회대 NGO대학원 평화학 연구교수. ⓒ정현진 기자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 한반도의 ‘평화’ 분위기가 고조되고 있다. 그러나 그 어떤 가치보다 한국 사회에서 ‘평화’라는 말은 여전히 공허하고 추상적이거나, ‘남북관계’에 치우친 경향이 있다. 평화라는 가치가 구체성을 잃은 원인은 무엇인가?

<이대훈> : 가장 중요하게 기억해야 할 것은 한국전쟁 뒤의 역사적, 정치적 배경이다.

한국 사회는 한국전쟁이라는 엄청난 폭력을 겪은 뒤, 자연스럽게 평화담론, 평화에 대한 갈구가 분출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이승만 정권부터 ‘평화통일’을 이야기하면 처벌될 정도로 평화에 대한 이야기는 금기가 됐다.

그 다음은 7.4남북공동성명(1972) 등으로 남북 간에 대화를 하면서 자연스럽게 평화적 남북관계를 말할 수밖에 없었는데, 이어진 독재정권 하에서도 남북 간 평화를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은 정부당국자 외에는 없었다. 시민들에게 주어진 평화란, ‘평화의 댐’과 같은 추상적이고 겉도는 개념이었다. 또 독재정권에서 남북관계를 정략적으로 이용했기 때문에 일반 시민들에게는 추상적이고 피상적인 평화만 자리 잡았다.

그런 역사적 배경으로 평화에 대해 성찰의 기회가 없었고, 그 결과 다른 많은 나라에서 하고 있는 평화교육조차 최근에서야 시작하는 단계다. 평화교육의 지체현상이다. 다른 나라에서는 대학에도 평화학 전문과정이 있지만 우리는 없다. 역사와 정치적 맥락, 교육 지체 현상 등이 우리가 평화에 대해 구체적이고 현실적으로 이야기하지 못하게 된 원인이었다.

현재 수준은 초보 단계지만 마침 좋은 시기가 왔다. 이미 평화 개념에 대한 많은 오해가 있어서 그 장벽을 뚫고 하나씩 유연하게 이야기해야 한다는 어려움이 있지만, 초기 관문은 열린, 좋은 기회다.

<지금여기> : 평화 개념에 대한 오해란 구체적으로 어떤 것을 말하는가?

<이대훈> : 실제 모든 인간의 삶에서 평화는 구체적일 수밖에 없다. 각자의 견해나 이해관계가 다르기 때문에 다툼과 갈등이 항상 있지만, 모든 갈등을 폭력적으로 해결하지는 않는다. 지혜를 동원해서 폭력이 발생하지 않도록 현실적이고 합리적으로 해결해 온 경험이 모든 사람의 삶 속에 있다. 그런데 그 경험이 평화를 구하는 기도문이나 책에 나오는 (거시적) 평화의 개념과 관련이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이 하나의 오해다.

인간의 삶 속에 항상 갈등이 있기 때문에 그것을 해결하는 ‘평화적 역량’을 삶의 기본 역량으로 취득하면서 살 수밖에 없다. 평화가 추상적이거나 피상적이라는 것은 만들어진 오해다. 결국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하고 금기에 갇혀 있었기 때문에 만들어진 오해다.

그런 오해를 걷어 내면, 지금 남북 관계의 변화를 보면서도, 현실적 평화가 가능하다는 생각으로 바뀔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좋은 시기에 있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문제는 이를 위해 평화 교육을 하거나 오해를 풀어 나가야 할 여론주도층이나 사회지도자들의 역량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지금여기> : 최근의 남북 간 화해무드에서 보듯, 정치권의 평화는 우아하게 펼쳐지고 이야기할 수 있다. 그러나 남과 북 시민들의 일상적 만남 사이에서도 유지될 것인가. 남과 북의 일상적 교류와 만남이 이뤄지는 때를 위해서 남한 사회가 준비해야 할 것은 무엇인가?

<이대훈> : 현대의 평화론에서는 평화의 정착, 평화의 완성이라는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그것을 가장 쉽게 말한 사람이 마하트마 간디인데, 그는 “평화는 목적지가 아니라 여정”이라고 했다. 그 과정 자체가 평화라는 것이다. 목적지로 어떤 멋진 상태가 있어서 그곳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추구하는 가치를 위해서 함께 길을 닦는 과정이다. 그런 면에서 본다면, 남북관계가 평화롭게 풀릴 수 있다는 생각, 굳이 폭력을 앞세울 필요가 없다는 생각 자체가 평화를 형성하는 상태다.

평화구축은 평화의 가능성에 대해 토론, 대화하고 지혜를 나누는 자체이고, 그런 면에서 남북은 평화의 상태로 들어섰다고 볼 수 있다. 군비경쟁이 평화에 장애가 된다는 심리적 성찰 자체가 평화다.

한국사회는 군비, 군대에 대한 신화가 상당히 강하다. 북한을 공격하는 것 외에 다른 길이 있다고 어느 정도 생각하면서도, 군사력을 동원하지 않고도 가능하다는 성찰은 아직 약하다.

군대는 한국사회의 폭력성을 드러낸다. 군비경쟁을 비판하는 의견에 대해서 공격하는 이들이 많다. 이런 군사주의 신화 때문에 현재 군비 경쟁에 문제가 있는지 점검하는 것조차 못하고 있다.

<지금여기> : 최근 대체복무제와 관련한 논란이 있었다. 군복무, 군대 문제는 반평화를 전제로 하는 것이기도 하고, 또 평화와 뗄 수 없는 인권의 문제이기도 하다. 이 논쟁과 대체복무제 결과에 대해 평가를 하자면?

<이대훈> : 1998년에 양심적 병역거부의 권리와 운동의 필요성에 대해 첫 토론회를 조직했다. 논의를 통해서 양심적 병역거부는 일부 종교만의 문제가 아니라 확산될 필요가 있다는 논의를 시작했다. 지난해 대체복무제 도입은 그런 논의가 시작된 지 20년 만이다. 사회운동 20년 만에, 특히 분단국에서 양심적 병역거부제가 도입된 것은 상당히 빠르다. 그런 면에서 관련 단체나 협력한 전문가들에게 박수를 쳐 줘야 한다.

여전히 군부나 군복무를 마친 이들이 저항하고 있지만 그것은 일시적이다. 보통 토론의 수준이 낮아질 때는, 논점이 이해관계와 얽혔을 때다. 하지만 대체복무제 토론 수준은 이해관계와 상관이 없고, 완전히 이념적 문제다. 군사주의적 편향이 얼마나 심한지 드러내는 것이다. 그동안 군사주의가 우리의 일상 삶에 얼마나 영향을 미치는지 심각하게 생각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대체복무 논쟁은 아주 초보적인 수준이고, 앞으로도 상당한 기간 지속될 테지만, 앞으로 나아질 것으로 본다. 남북관계가 전면적으로 변하지 않아도 어느 궤도에 오른 이상, 평화적 담론이 지속되고, 군사주의와 군비경쟁과 관련한 성찰이 충분히 진행되면, 싸우는 것보다는 악수하며 사는 것이 더 이롭다는 자각이 높아질 수밖에 없고, 한국은 다른 나라에 비해 상대적으로 그럴 수 있는 가능성이 높다.

<지금여기> : 시민사회 진영조차도 ‘평화’라는 이슈에 대해서는 구체적이고 직접적인 논의나 실천을 하는 곳이 거의 없는 것 같다. 지난해 9월 조성만 열사 30주기 심포지엄에서 요한 갈퉁의 ‘평화 세우기’를 말씀하셨는데, “일상적으로 갈등과 폭력을 예방, 중단시키고, 재발을 불가능하게 하는 사회 시스템 설계”를 위해서 우리가 가장 먼저 들여다보고 구상해야 할 것은 무엇인가?

<이대훈> : 우선 시민사회 차원에서는 평화구축을 중심으로 하는 평화운동, 실천을 더 확산시켜야 한다. 그것이 첫 번째다. 문화예술을 포함한 다양한 측면에서 시민들이 각자 평화를 구축할 수 있다는 인식 확산이 우선인데, 지금은 너무 제한적이다.

두 번째, 정부에 평화부가 만들어지고, 남북관계 시스템을 정책적으로 바꿀 수 있도록 평화정책이 수립되어야 한다. 이 두 가지를 연결시키는 것이 평화권리다. 헌법에는 “평화롭게 생존할 권리”라고 표현됐지만 구체적 조항이 없다. 평화 권리란 “폭력적 방법에 의존하지 않을 권리, 전쟁에 참여하지 않을 권리, 군비경쟁에 참여하지 않고 비판할 권리, 지자체가 군비경쟁과 전쟁촉발 시설을 두지 않을 권리”등을 보장하는 것이다. 시민들의 평화권리를 법적으로 보장하는 것이 평화구축에서 중요하다.

국제적 평화권리의 두 번째 조항은 “모든 사람은 평화에 관한 교육을 받을 권리가 있다”는 것이고, 유엔 평화권도 각 나라 정부가 평화권 수립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조항이 있다. 한국정부도 입법 노력을 해야 한다. 그리고 그 핵심 조항은 ‘평화 교육권’이다.

<지금여기> : “평화지향적 언론”이라는 것이 있다. 무엇보다 여론을 이끌고 화두를 던지고, 평화의 구체적 실제를 볼 수 있도록 하는 데 언론의 역할 또한 클 것이다. 평화지향적 보도가 어떤 것인지 설명한다면?

<이대훈> : 평화언론학이라는 영역이 있다. 전쟁을 보도할 때, 사실 중심으로 보도한다고 하면서, 전쟁의 피해 양상과 폭력 양상을 중심으로 보도한다. 사망, 파괴, 무기 현황 등.

하지만 엄밀히 말하면 100퍼센트 사실이라기보다는 사실에 가깝게 노력하려는 의지의 문제다. 해석의 영역이 없는 사실은 없다. 그런 면에서 전쟁의 장면보다는 평화를 추구하고 갈등을 낮추기 위해 이뤄진 사실관계는 무엇인지, 그것을 위해 노력한 사람은 누구였는지, 폭력이 어떻게 줄어들었고, 줄어들 수 있는지, 그런 과정에서 상호이해와 신뢰가 어떻게 구축됐는지, 이런 점들을 동시에 찾아서 보도하는 것이 필요하다.

평화언론은 사실관계의 균형을 회복하자는 것이다. 균형의 윤리가 없으면 자극적인 장면 외에는 남는 것이 없다. 전쟁을 둘러싼 모든 사실 가운데 균형을 찾는 것이 평화의 원리다. 모든 갈등의 이면에는 전쟁뿐 아니라 협력의 역사도 있다. 협력과 신뢰구축, 소통을 위해 노력한 평화 구축자들의 역할도 함께 보도하자는 것이다. 그러나 한국 언론은 그런 노력도, 관심도 없다.

<지금여기> : 모든 종교는 평화를 말한다. 그 가운데서도 특히 가톨릭교회는 평화의 교회이기도 하다. 지난 역사에서 가톨릭교회가 해 왔던 평화를 위한 노력과 실천을 어떻게 보고 있으며, 특히 현 정세에 맞춰, 무엇을 구체적으로 해야 한다고 보는가?

<이대훈> : 그리스도교 교회는 평화에 대해 가장 앞장서야 한다. 더 적극적이고 대중적으로 평화를 실천하고 평화의 가치를 전파해야 한다. 그리고 그 역할은 그리스도로부터 부여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런 면이 많이 소홀해졌다.

가난이라는 것은 경제적 가난뿐 아니라 폭력으로부터의 핍박도 포함된다. 사회적 약자들이 겪는 경제적 궁핍은 반드시 물리적, 정신적, 사회적 폭력과 병행된다. 하지만 폭력을 예방하고 중단한다는 관점에서 가난을 적극적으로 해석하는 것도 소홀했다. 가난한 사람들의 교회, 성찰하는 교회에서 너무 멀어졌다.

비폭력이야말로 가장 숭고한 반차별이다. 남성에 의한 여성 폭력, 성인에 의한 아동 폭력, 비장애인에 의한 장애인 폭력 등을 보면 폭력만큼 차별적인 것은 없다. 교회가 차별을 반대하지만, 비폭력과 반폭력, 전쟁과 무기, 군사주의, 무기 수출입에 대한 반대 등에 대해, 기존에 있는 평등 관점에서 왜 적극적으로 나서지 못했는지 반성이 필요하다.

평화나 정의를 위한 지혜가 기도로만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사회를 분석하고 다양한 층위와 입장의 사람들을 만나고, 다양한 형질을 연구해야 한다. 분석, 연구, 조사, 실천계획이 매우 중요하다.

평화를 너무 추상적 차원으로 축소하고 추상화하는 것이 반평화이고, 평화를 구체화시키는 것이 바로 평화다. 교회가 이러한 연구와 교육, 실천을 위한 구상, 조사, 분석, 출판에 더 많은 힘을 쓰기를 바란다.

2016년 4월, 교황청 정의평화평의회는 교회역사상 처음으로 ‘정당한 전쟁’ 교리를 폐기할 것을 권고하는 결의안을 채택했다. 그렇다면 가톨릭 신앙인들이 이 논의를 시작해야 하지 않을까. 하지만 아무 변화가 없다.

<지금여기> : 마지막으로 시민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이대훈> : 건강한 시민, 깨어있고 주권을 행하는 시민의 권리는 질문을 던지는 것이다. 군비, 군사주의에 대한 의문을 품었으면 좋겠다. 현재 군비경쟁, 정책이 과도하고 불필요한 것은 아닌지, 무기를 너무 많이 생산하는 것은 아닌지, 그 무기를 수출해서 다른 나라의 무력분쟁을 돕는 것은 아닌지, 남북한의 거대한 변화에서 군비나 군대 역할 변화를 예상하거나 준비하지 못한 것은 아닌지, 군대, 군비, 군복무, 군대문화, 군사주의 등 군대와 관련된 모든 것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자. 우리는 너무 질문을 하지 않고 있다. 지금까지 당연했던 것들을 뒤집어 보자.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정현진 기자 regina@catholic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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