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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복 신앙의 벌

기사승인 2019.02.12  16:1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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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원한 생명을 주는 진리의 길 - 김용대]

모세의 장인 이드로 시대에 살던 한 사람이 말했다.
“하느님께서는 내가 저지른 많은 잘못을 보아 오셨다.
그런데 내가 지은 수많은 죄와 잘못을 보시고도
당신의 자비로 나를 벌하지 않으신다.”
전능하신 하느님께서 이드로의 귀에 대고
다음과 같은 답이 나오도록 영혼의 소리로 말해 주라고 이르셨다.

“저가 그렇게 죄를 많이 지었는데
자비의 하느님께서 왜 저를 벌하지 않으셨습니까?
오, 바보 같은 이여!
그대는 사막에서 길을 잃고 헤매면서 진리에 어긋나는 말만 했느니라.
내가 그대를 그렇게 많이 혼내 주었는데도 그것을 알아차리지 못했느냐?
그대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나의 사슬로 묶여 있다.
오, 검은 주전자여!
녹이 더덕더덕 붙어 내면을 부식시키고 있구나!
녹이 겹겹이 붙어 그대 마음을 더럽게 만들어
영성을 모르는 검은 숯 덩어리처럼 되었구나!
그 검은 연기가 새 주전자를 덮으면 아무리 연기가 약해도 검게 된다.
흰 것이 있으므로 검은 것이 있는 것이다.
악이 먼저 생기고 난 뒤 선에 이름이 붙여졌다.
거죽은 진실을 숨기고 있다.
진실만 있어 거죽이 없는 것은 찾아보기 어렵다.

검은 얼룩이 흰 것을 검게 보이게 할 뿐이다.
주전자가 검게 되고 난 뒤에는
연기가 그렇게 만들었다는 것을 누가 알겠는가?
대장장이가 에티오피아 사람이면
그의 얼굴은 검은 연기 색깔과 같을 것이다.
만약 대장장이가 그리스인이면
그의 얼굴이 검은 연기로 까맣게 될 것이다.
그러면 그는 그의 죄를 재빨리 알아차리고
‘오, 주님!’하고 울부짖을 것이다.
그가 회개하지 않고 악행을 계속하는 것은
그의 안식(眼識)에 흙먼지를 던지고 있기 때문이다.
회개하지 않는 사람과 죄를 못 느끼고 있는 사람은
자신의 마음을 존중하여 믿음이 없는 사람이 되고
늙어서는 죄를 부끄러워하면서 이미 그를 떠나 버린 하느님을 찾는다.
그의 마음의 구리 거울에 녹이 다섯 겹으로 쌓이고
녹이 구리를 갉아먹기 시작하면 그의 보석은 점점 빛을 잃게 된다.
백지 위에 쓰여진 글은 금방 읽을 수 있지만
이미 글이 쓰여져 있는 종이 위에 글을 쓰면
제대로 보이지 않아 잘못 읽을 수 있다.
검은 글씨가 다른 검은 글씨 위에 쓰여지게 되면
두 글을 모두 읽을 수 없게 된다.
만약 그 위에 다시 글을 쓰면
더욱더 검어져서 신앙이 없는 사람의 영혼같이 되며
'치유자'(Remedier)의 도움을 받지 않으면 치유할 수 없게 된다.
절망은 구리를 녹이지만 구리 거울을 보면 모든 병이 낫게 된다.
하느님 앞에 그대의 모든 절망을 내려놓아라.
그러면 그대는 약을 먹지 않아도 고통에서 벗어나게 될 것이다.”

(*주: 모고해를 일삼고 있는 우리들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드로가 그에게 많은 금언을 말해 주자
그는 영혼의 장미의 숨을 쉬게 되면서
그의 마음이 활짝 열려 그의 영혼이 하늘의 계시를 들을 수 있게 되었다.
그가 말했다.
“그런데 하느님께서 나를 벌했다면 그 증거가 어디 있습니까?”
이드로가 대답했다.
“오, 주님! 아직도 그는 나의 말을 알아듣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는 그가 묶여 있는 사슬의 증거를 찾고 있습니다.”

그러자 하느님께서 말씀하셨다.
“나는 '죄의 장막'(The Veiler of Sins)이다.
나는 그에게 그의 죄를 밝히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몇 가지만 말하여 그가 다시 노력하는지 보겠다.
내가 그를 사슬로 묶어 놓고 있는 한 증거는
그가 계속하여 봉헌하고 금식하고 기도해 왔다는 것이다.

또 전례 기도를 드리고 자선을 베풀었지만
그가 회개했다는 기미를 조금도 보이지 않고
기쁨을 조금도 느끼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열심히 교회에 나가고 경건한 행동을 많이 했지만
아직도 신앙의 맛을 모르고 있다는 것이다.
그가 다른 사람보다도 많은 봉헌을 했지만 영성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그 안에는 많은 호두 열매가 있지만 알맹이는 없고 껍질뿐이다.
따라서 신앙의 맛을 알고 열심히 믿으면
반드시 열매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열매가 필요하다. 그래야 그 씨앗이 나무가 되지 않겠느냐?
알맹이 없는 씨앗은 절대로 싹트지 않는다.
영성이 없으면 헛것만 보게 될 것이다.” ("마스나비" 중에서)

 

교회 (이미지 출처 = Pexels)

3만 2000 이상의 절로 이루어진 교훈시 "마스나비"는 “나는 사랑 외의 어떤 종교도 갖고 있지 않습니다. 나의 마음은 사랑의 성전이기 때문입니다.” 하고 고백한 루미의 위대한 영적 사랑을 그리고 있습니다. 그의 교훈시는 그의 제자들에게 더 높은 정신철학을 소개하기 위해 쓰였습니다. 이 2600여 개의 교훈시는 이슬람 출현 이후 초기 6세기 동안에 이슬람 지역에서 전개되었던 신비적 사고의 모든 기준에 대해 언급하고 있으며 우화, 일화, 격언 그리고 신화로 된 불멸의 보배로 가장 높은 신비적 지혜를 묘사하고 있습니다. 세마(Sema)의식을 치르면서 부는 갈대 피리인 ‘네이젠'(neyzen)은 애달픈 음색이 향수와 그리움을 불러일으킵니다. 이 땅에 살고 있는 우리의 고향은 이 땅이 아닌 천상의 세계입니다. 루미는 갈대밭을 그리워하는 ‘네이젠’ 소리를 들으면서 우리의 영혼이 잊고 살아가던 이별의 찢어지는 상실감과 고향에 대한 향수가 되살아나는 것을 경험했기 때문에 "마스나비"를 '갈대 피리의 노래'로 시작하고 있습니다.

"마스나비"는 바리사이와 같은 성직자들과 믿음이 부족한 신자들을 고발하고 있습니다. 이슬람교에서는 ‘학자들에게 자랑하기 위해서나 어리석은 자와 논쟁하기 위해서 또는 다른 사람의 관심을 끌기 위하여 지식을 구하는 자는 하느님께서 그를 지옥 불에 보낸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러나 모든 종교는 교리로 시작하여 깨달음으로 인도하고 있으며 어떤 종교는 깨달음에 대하여 전혀 언급하지도 않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불행하게도 교리의 차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오늘의 종교의 현실입니다. 그리하여 성직자들이나 신자들은 ‘말씀’을 듣고 성령을 받고 깨달을 생각은 하지 않고 외면적인 기도나 금식과 같은 수행에 치중하며 내면 생활을 게을리하여 영성 생활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비판적 사고가 마비되면 종교적 신앙은 없는 편이 있는 편보다 낫습니다. 맹신과 광신은 신앙 없이 상식만으로 사는 것보다 더 훨씬 위험하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큰 세력을 과시하는 종교라도, 비록 한 사회의 이른바 ‘주류’를 점하는 종교라 해도 비판적 사고를 허용하지 않고 ‘묻지 마’ 신앙을 강요하고 주입한다면 존재 가치를 의심할 필요가 있습니다. 오늘날 그 어떤 종교도 계몽주의 이전으로 돌아가거나 머무를 수 없다는 사실을 종교들은 반드시 기억해야 합니다. 인간의 맹목적 욕망을 부추기고 이용하는 기복신앙과 기적신앙이 판치고 있는 우리나라 종교계가 정말 최근의 어처구니없는 상황과 무관하다고 자신 있게 주장할 수 있을지 회의가 듭니다. 하느님을 믿는다고 말은 하면서도, 행실은 믿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들은 실제로 무신론자입니다.

우리 시대의 위대한 영성 작가 중의 한 사람이며 베두인(Bedouin) 족의 수사인 카를로 카레토(Carlo Carretto)가 여러 해를 사하라 사막에서 지내고 이탈리아로 돌아온 뒤 영성적 고백서 "I Sought and I Found"(DLT, 1984)를 썼는데 그의 여행에 대하여 상세하게 기록하고 있으며 하느님과의 싸움도 기술하고 있습니다. 그는 교회에 보내는 연애편지로 책을 끝내고 있습니다. 오늘날 교회에 실망하여 교회를 떠나는 사람이 많은데, 신앙생활과 일상생활을 따로 하지 말고 교회를 변화시키려고 애써야만 하지만 평신도에게는 아무 힘이 없습니다.

서두는 다음과 같습니다.

“나는 당신, 나의 교회를 얼마나 비난해야 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내가 얼마나 당신을 사랑하는지 모릅니다.
당신은 나를 누구보다도 고통스럽게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나는 누구보다도 당신의 덕을 많이 보았습니다.
나는 당신이 파괴되는 것을 보고 싶습니다.
그러나 나에겐 당신의 존재가 필요합니다.
당신은 나에게 많은 비난거리를 제공했습니다.
그러나 당신만이 성스러움을 이해하게 해 주었습니다.
이 세상에서 여태까지 더 개화를 반대하고, 더 타협을 많이 하고,
더 엉터리인 것을 보지 못했지만,
더 순수하고, 더 관대하고, 더 아름다운 것도 보지 못했습니다.
당신의 면전에서 내 영혼의 문이
쾅 하고 닫히는 것 같은 느낌을 수없이 받았지만
매일 밤, 나는 당신 품 안에서 죽고 싶다고 기도하였습니다.
내가 완전히 당신은 아니지만
나는 당신과 함께 하나이므로 나는 당신으로부터 자유로울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또 내가 어디로 간다는 말입니까?
다른 교회를 지으려 한다고요?
그러나 같은 결점이 없다면 다른 교회를 지을 수 없습니다.
그 결점이 모두 나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내가 다시 다른 교회를 짓는다면
그것은 그리스도의 교회가 아니라 나의 교회일 것입니다.
아니, 나는 더 좋은 것을 알 만한 나이가 되었습니다.”

 

김용대(후고)
서울대 컴퓨터공학과 박사.
본명은 후고입니다만 호도 후고(後考)입니다. 항상 뒷북을 친다는 뜻입니다.
20년 동안 새벽에 일어나서 묵상을 하고 글을 써 왔습니다.
컴퓨터 전공 서적을 여러 권, 묵상집 "그대 음성에 내 마음 열리고", "징검다리"를 쓰고, 요한 타울러 신부의 강론집을 번역하여 "영원한 생명을 주는 진리의 길"이라는 제목으로 출판했습니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김용대 editor@catholic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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