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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회의 파라과이 공동체주의 실험: 비자본주의적 ‘다른’ 근대성의 추구

기사승인 2019.02.15  16:1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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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특별기고 - 안태환] '미션'의 심층 이해

예수회는 16세기 중반에 이냐시오 로욜라 성인이 세웠다. 앞서 언급한 대로 라틴아메리카를 이해하는 데 16세기가 중요하다. 왜냐하면 16세기에 근대성, 자본주의가 시작되었고 그 기초를 닦는 희생과 고통을 라틴아메리카가 짊어졌기 때문이다. 그런데 동시대에 예수회가 시작되었다는 것은 매우 흥미롭다. 예수회는 16세기 초반의 루터의 종교개혁에 대응하여 성직자 사회와 일반사회의 도덕 개혁에 힘쓰며 로마 교황을 보위하는, 가톨릭의 개혁과 영성훈련을 중시하는 수도회로 출발했다. 전교를 종교개혁 세력에 대한 전쟁의 연속으로 여기는 전위대였다. 이를 위해 해외 각 지역의 다양한 사회문화를 받아들이는 포용력과 유연성을 길렀다.

예수회가 파라과이에서 한 공동체주의 실험은 예전의 영화 '미션'(1986)에서 잘 그려졌다. 가브리엘이 오보에로 연주하는 주제가도 아주 유명하다.(긴장되고 적대적인 상황의 원주민과의 만남의 순간에 나온 연주는 아름다웠다.) 파라과이는 매우 특별한 나라다. 브라질, 아르헨티나와 같은 남미의 강대국은 아니지만 매우 자주적인 나라였다. ‘자주적’이라는 의미는 19세기의 세계제국인 영국이 주도하는 세계 자본주의 체제에의 편입을 거부했다는 맥락에서 온 것이다. 이로 인해 19세기 중반에 브라질, 아르헨티나, 우루과이에게 침략을 당해 나라가 지금처럼 작게 쪼그라들었다. 이 전쟁을 '삼국동맹 전쟁'이라고 한다. 이 전쟁에 지기 전에는 파라과이가 자주적이면서 아주 강한 나라였다. 예를 들어, 라틴아메리카에서 최초로 철도를 놓은 나라도 파라과이였다. 그 유명한 이과수 폭포도 원래 파라과이 영토였는데 브라질이 빼앗았다. 그리고 이 전쟁으로 인해 파라과이 남자의 90퍼센트가 희생되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파라과이는 원주민 과라니 족이 많이 살았고 현재도 스페인어와 과라니어가 이중 공용어다. 과라니 족이 많이 살던 지역은 파라과이의 남부지역(중심도시는 Encarnacion(예수님의 '육화'라는 뜻))과 아르헨티나 북부지역(이곳도 위의 전쟁으로 아르헨티나에게 뺏긴 곳)으로 거기에 과거 예수회의 전교 공동체인 미션들이 있었다.

'미션', 롤랑 조페, 1986. (포스터 제공 = (주)피터팬픽쳐스)

예수회는 ‘가톨릭’과 연결된 새로운 ‘근대사상’을 전파하려고 했다. 이것이 매우 중요하다. 우리가 상식적으로 아는 흐름과 다르기 때문이다. 자본주의 역사에서 헤게모니를 가진 주류적 흐름은 18세기 계몽주의, 산업혁명을 기점으로 개신교와 자본주의적 근대성이 결합하기 때문이다. 이를 설득력 있게 분석한 학자가 유명한 막스 베버이고 그의 대표적 저서는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이다. 막스 베버는 자본주의가 아닌 근대성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다. 전자는 스페인, 포르투갈 등 포도주와 올리브로 상징되는 지중해 유럽이 주인공이고 후자는 영국, 네덜란드 등 상공업으로 상징되는 서북 유럽이 주인공이다. 같은 유럽이라도 서로 문화가 다르다. 한마디로 표현하면 전자는 “비순수”하고 후자는 “순수”하다. ‘순수’한 것이 좋은 의미만은 아니다. 그만큼 광신적, 극우적이 될 수 있다. 순수한 자기네들과 ‘다른’ 사람들(타자)을 혐오하고 차별하기 쉽다. 오늘날 서북 유럽과 함께 세계 체제의 패권국가인 미국도 ‘순수’(?)하다. 우리가 잘 알듯이 극우 개신교가 강하다. 전자인 지중해 문명에는 페르시아 문명, 이슬람 문명 등 이교도(우상 숭배적)문화가 혼재해 있던 것에 비해 서북 유럽은 ‘야만적 게르만’으로 상징되듯이 다른 문화(?)가 거의 없었다. 마찬가지로 미국도 청교도들이 도착한 그곳에 아주 야만(?)적인 원주민밖에 없었다. 그런데 라틴아메리카는, 16세기와 18세기 사이의 17세기는 메스티소(백인과 원주민 사이의 혼혈인)가 많아지면서 라틴아메리카의 사회와 문화의 정체성이 구성되던 중요한 시기였다. 마치 우리에게 조선 왕조 시기처럼.(그런 의미에서 ‘헬조선’이란 용어는 매우 날카롭다고 할 수 있다.)

바로크 시기인 17세기에 라틴아메리카에서는 반 종교개혁적, 가톨릭적 ‘다른’ 근대성을 추구하는 예수회의 영향력이 매우 컸다. 즉, 17세기 라틴아메리카의 역사와 예수회의 역사는 상호 영향이 매우 컸다. 다시 말해 이 시기 라틴아메리카에서는 근대성과 바로크가 동시에 진행되었다. 혼종성, 애매성을 특징으로 하는 바로크 에토스에 기초한 ‘공동체적 축제’를 통해 일과 여가 사이의 애매한 병행이 가능했다. 지금도 그렇다. 예를 들어, 라틴아메리카 노동자들은 시간외 노동(?)을 매우 싫어한다. 무조건 ‘일’을 열심히 하는 우리와 달라 남미 현지에 진출한 우리 기업의 경영층이 적응하기에 어려워하기도 한다.

일상생활에서 일과 여가를 분리하여 전자는 생산적, 후자는 비생산적으로 간주하는 것이 근대 문명의 원칙 중의 하나다.(우리 사회는 이런 맥락에서 세계에서 제일인 것 같다. 이런 시각에서 보면 라틴아메리카는 마냥 야만적(?)인 지역으로 인식된다. 실제로 근대성과 자유주의적 시각에 젖은 우리나라의 상당수 엘리트 지식인들이 라틴아메리카는 근대화와 민주주의에 실패했고 앞으로도 실패할 것이라는 편견이 강하다.) 이에 비해 중세 시대에 ‘여가’는 종교(교회)에 의해 의례화된 삶에 해당했다. 즉, 교회와 연관된 공동체적 축제가 강했다. 원래 교회(ecclesia, 스페인어로는 이글레시아)는 공동체를 의미했다. 

라틴아메리카 원주민의 공동체주의 문화는 그 뿌리가 깊다. 식민시대에도, 우리를 지배했던 일제와 달리 스페인은 라틴아메리카에 대해 ‘두 개의 공화국’ 정책을 썼다. 즉, 원주민들이 자신들 고유의 공동체주의 문화(혈연공동체인 Ayllu제도로 오늘날의 페루 등 안데스 지역에 광범했고 지금도 볼리비아 등에서 생명력 강하다)를 유지하도록 했다. 그러나 유럽에서는 17세기에 교회의 비중에 비해 경제 논리가 강화되면서 축제가 약화되었다. 하지만 라틴아메리카의 17세기는 유럽의 17세기와 달랐다. 우선 스페인 제국주의의 힘은 짧았다. 1588년 무적함대의 패배로 스페인이 위축되면서 17세기에 들어와 라틴아메리카는 보다 ‘자주적’(?)으로 나아가게 되었다.

다시 말해 유럽에서는 마르크스가 비판한 대로 삶의 행복을 가리키는 사용가치에 비해 시장에서의 교환가치가 우세해지며 서로 충돌하게 되었다. 사용가치는 여가와, 교환가치는 생산과정(일)과 연계된다. 즉 돈벌이를 의미한다. 그러나 라틴아메리카에서는 양자가 병행할 수 있었다. 즉, 유럽과는 ‘다른’ 사회가 구성된 것이다. 현재 우리는 자본주의적 근대성만 세계적으로 보편성을 가진 것으로 이해한다. 그러나 자본주의적 근대성은 서북 유럽이 주도한 ‘특별한’ (여러 근대성 중 하나인) 기획임을 인식해야 한다.

영화 '미션'(1986) 중 한 장면. (이미지 제공 = (주)피터팬픽쳐스)

예수회는 브라질에서 1553년에 원주민 선교를 위해 “원주민 보호구역”(Reducciones)을 만들었다. 원주민 마을 속으로 들어가서 원주민들의 기존의 믿음체계, 예배 의식 등을 포용하는 방법이었고 원주민들의 경제활동의 기본적 틀인 공동소유, 공동생산 방식을 받아들여 독립적, 자치적 사회를 만들어 수확량의 대부분을 마을을 위해 쓰고, 마을 내 병자, 고아, 노인들을 원조함은 물론 빈곤한 이웃의 보호구역에도 도움을 주는 자발적 정치구조의 공동체를 만들었다. 이 당시 예수회 관구장은 원주민들을 위해 음악을 만들고 원주민들의 사회문화를 기록하였으며 노예제도를 부정하고 원주민들의 권리를 보호하는 데 앞장선다. 모두 다 영화 '미션'에 나오는 모습이다. 

1609년에 파라과이에서 과라니 족 원주민 보호구역을 만든다. 각 2000명에서 3000명으로 이루어진 14개의 원주민 보호구역이었다. 예수회의 원주민 보호구역의 안정과 성공은 스페인 왕실과 정부의 지원 덕분이었다. 이렇게 지원했던 이유는 스페인 출신 정복자들(Encomenderos)을 견제하고 통제하기 위해서였다. 이 글에서 길게 쓸 수는 없지만 라틴아메리카에 나간 정복자들과 스페인 왕실의 이익은 항상 동일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예수회의 공동체주의 실험은 브라질에서 활동하던 포르투갈 노예상인들의 이익과 정면으로 충돌했다. 그리하여 1767년 예수회는 파라과이 지방에서 추방된다. 약 150년간의 실험이 실패한 것이다. 예수회는 스페인 왕실과 현지 정복자들 사이의 권력관계의 틈을 이용하여 원주민들과 함께 하는 독립적인 공간을 가졌지만 포르투갈 노예상인들의 힘을 이길 수 없었던 것이다. 

17세기 바로크 시기의 예수회가 가톨릭을 앞세워 추진한 라틴아메리카의 ‘다른’ 근대화가 ‘다르다’는 것은 주류적 계몽주의 근대성이 개인 주체를 중심으로 하는 데 비해 가톨릭과 원주민 문화가 ‘공동체’를 중심으로 했기 때문이다. 즉 공동체적 축제적 근대성이다. 중요한 것은 이런 예수회의 역사는 가톨릭과 유럽문명을 현대의 모습과는 다른 방식으로 재구성, 재창조하려 했다는 점이다. 따라서 스페인의 라틴아메리카에 대한 기획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것처럼 거기에 스페인을 지속, 확장시키려 했던 것이 아니라 가톨릭의 르네상스적 유토피아를 그리면서 유럽과 라틴아메리카 원주민 문명의 평화로운 만남을 꿈꾸었을 수 있다는 것이 현대 라틴아메리카 철학자들의 해석이다. 다시 말해 17세기 스페인 가톨릭교회의 전통 고수는 단지 수구가 아니라 예수회의 신학(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지상의 삶을 중시하는)을 고려한다면 지금과는 ‘다른’ 근대성의 긍정적 꿈일 수도 있다는 해석이다. 

그러므로 스페인의 반종교개혁이 종교개혁에 대한 단순한 반대가 아니라 종교개혁의 진보성의 문제의식을 더욱 뛰어넘는 것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프랑스는 계몽, 진보이고 스페인은 보수반동, 전근대라는 생각도 18세기 이후 본격화된 주류적 자본주의 근대성이 만들어낸 선입견일 수 있는 것이다. 이런 성찰적 숙고가 지금 중요한 이유는 2000년대 후반 이후 심각해지고 있는 유럽과 미국이 선도하는 신자유주의적 근대성이 위기를 맞고 있기 때문이다. 정말로 대안에 대한 ‘대안적’ 사고가 절실해지는 우리(지구)의 삶이다. 달리 말하면, 타자(보편적인 것으로 착각(?)하는 유럽 문화와 달리 비자본주의적 삶의 방식에 대해 창의성을 가지고 있는 여러 비유럽 문화)를 배제하는 근대성을 버리고 타자를 포용하는 ‘다른’ 근대성이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그 대안들 중에 ‘라틴아메리카’가 있다는 자부심이기도 하다.

안태환(토마스)
한국외대, 대학원 스페인어과 
스페인 국립마드리드대 사회학과
콜롬비아 하베리아나대 중남미 문학박사 
부산외대 중남미지역원 HK교수
현재 한국외대 스페인어과에서 중남미의 역사와 정치, 사회에 대한 강의를 하고 있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안태환 editor@catholic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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