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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토리와 색연필 그리고 인류의 평화

기사승인 2019.02.26  15:5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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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도자가 바라본 세상과 교회]

비틀즈의 노래 중 ‘All You Need Is Love'(당신에게 필요한 건 사랑뿐)는 영화의 삽입곡으로도 유명합니다. 1967년 영국 <BBC> 방송이 최초의 전 세계 위성 TV 프로그램인 ‘아워 월드’를 기획하면서 비틀즈에게 출연을 부탁하자 존 레논이 내놓은 곡이라고 합니다. 베트남전의 비극 이후 반전 운동이 한창이던 당시 모두에게 쉽고 분명하게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했던 이들은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사랑뿐’임을 선언하는 것이 가장 혁명적이라고 여긴 것 같습니다. 일부를 의역해 보았습니다.

 

만들어질 수 없는 건 만들 수 없고
(Nothing you can make that can't be made.)

구할 수 없는 이는 구할 수 없고
(No one you can save that can't be saved.)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 해도 곧 진정한 당신이 되는 것을 배우게 될 거예요.
(Nothing you can do but you can learn how to be you in time.) 

어렵지 않아요. 
(It's easy.)

알려지지 않은 걸 알 수 없고 
(There's nothing you can know that isn't known.)

보이지 않는 걸 볼 수 없고 
(Nothing you can see that isn't shown.)

있을 운명이 아닌 곳엔 있을 수가 없지요. 
(There's nowhere you can be that isn't where you're meant to be) 

쉬워요. 
(It's easy.)


당신에게 필요한 건 사랑, 사랑 
(All you need is love, love.)

사랑이 당신에게 필요한 전부에요. 
(Love is all you need.)

 

인간이 자행하고 멈추지도 못하는 거대하고 참담한 비극 앞에서 당시 많은 이들은 허무에 빠져 있었습니다. ‘나’와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이 있다며 전 세계에 내보낸 이 노래는 지금의 ‘나’와 ‘우리’에게 다시 이야기하는 것 같습니다. ‘그렇지, 내가 할 수 없는 것을 할 수는 없지. 그런데 내게 필요하다는 이 사랑은 뭐지? 어떻게 뭘 해야 한다는 거지?’ 자문하다가 두 노인이 떠올랐습니다.

(그림 1) ‘작업을 하고 있는 프레데릭 백’. (이미지 출처 = 프레데릭 백 공식 홈페이지)

어릴 적 식목일이면 어디선가 등장하던 ‘나무 심은 사람’ 이야기를 다시 보게 된 것은 이 셀 애니메이션을 직접 그린 작가를 알게 되면서였습니다. 자연의 생명력을 너무나 살아 있게 담은 청명한 색연필 드로잉들을 보고 그 작가를 찾다가 발견한 이가 알고 보니 ‘나무 심은 사람’을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어 세상에 알린 프레데릭 백(Frederic Back, 1928-2013)이었습니다.(그림 1) 평생 환경 보호와 평화를 위한 행동가로서 자신의 색연필을 썼던 그의 이야기를 찾아 읽다 보니 노년의 얼굴을 크게 덮고 있는 안대가 젊은 시절에는 없었음을 발견했습니다. 섬세한 드로잉 작업을 하는 작가에게 분명히 치명적일 한쪽 눈의 실명이 이 ‘나무를 심은 사람’을 5년 6개월간 거의 혼자 직접 그리며 겪게 된 것이란 사실은 충격적이었습니다. 셀 위에 유채 색연필로 한 장 한 장을 직접 그린 모든 장면은 그렇게 나무를 심은 노인 ‘엘제아르 부피에’를 살려 냈고 프레데릭 백 자신의 삶도 더욱 그를 닮아 갔습니다.

(그림 2) ‘나무를 심은 사람’의 한 장면, 프레데릭 백. (1987) (이미지 출처 = 프레데릭 백 공식 홈페이지)

이야기 초반에 주인공이 목격한 마을은 지금 우리의 이곳을 바로 떠올리게 했습니다. (그림2) “그곳엔 숯을 만드는 나무꾼들이 살고 있었다. 사람들이 힘들게 살아가는 곳이었다. 여름에도 겨울만큼이나 날씨가 혹독한 곳에 촘촘하게 모여 살면서 모든 가정들은 닫힌 세계 속에서의 이기심만을 키워 가고 있었다. 분별 없는 야심은 이곳을 벗어나려는 끊임없는 욕망 속에서 정상을 벗어난 행동으로 나타나고 있었다. 남자들은 트럭으로 시내에 숯을 운반하러 갔다가 돌아오곤 했다. 아무리 굳센 품성을 지닌 사람일지라도 끊임없이 반복되는 실망을 견디지 못하고 무너져 버리곤 했다. 여인들은 또한 가지가지 원한을 마음에 품고 있었다. 사람들은 모든 것을 놓고 경쟁했다. 숯을 파는 것을 놓고, 교회의 자리를 놓고 경쟁했다. 미덕들을 놓고, 악덕들을 놓고, 그리고 선과 악이 뒤엉클어진 것들을 놓고 끊임없이 경쟁했다. 게다가 바람 또한 쉬지 않고 신경을 자극했다. 그래서 자살이, 그리고 거의 언제나 죽음으로 몰고 가는 정신병들이 전염병처럼 번졌다.”(장 지오노, 김경온 옮김, 두레, 2018.)

슬프게도 전혀 낯설지 않은 이 마을의 묘사. 노인은 자기 땅도 아닌 광활한 이 광야에 매일 세심하게 고른 도토리를 정성껏 심습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심은 십만 그루 중 살아남을 1만 그루의 성장을 보게 되면 얼마나 만족스럽겠나’ 하는 주인공에게, ‘만일 삼십 년 뒤에도 하느님이 생명을 주신다면 그동안에도 나무를 아주 많이 심을 것이기 때문에 이 1만 그루는 바닷속의 물방울 같을 것’이라고 대꾸합니다. 그가 심는 나무는 그 결과가 그에게 돌아오지 않는, 그가 모르는 사람들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림 3) ‘나무를 심은 사람’의 한 장면, 프레데릭 백. (1987) (이미지 출처 = 프레데릭 백 공식 홈페이지)

1차 세계대전과 2차 대전이 지나고 사람들이 죽음의 전쟁에서 돌아와 새 삶을 시작하게 될 무렵, 말라 붙어 있던 시내에는 물이 흐르고 바람에 날아온 각종 씨앗들이 물가에서 자라나기 시작했습니다. 바람마저 건조하고 난폭했던 그 옛날을 상상할 수 없는 미풍과 물 흐르는 소리, 그리고 마을 사람들의 공동작업으로 보수되고 새로 지어지는 집들에서 볼 수 있는 ‘돌아온 희망’을 주인공은 발견합니다. 오랜 세월 한 사람이 침묵 속에 매일 심은 도토리를 알지 못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변화를 숲의 자연적 변화로 보며 신기해 합니다. 아무도 그 노인의 수십 년의 시간을, 그가 나무를 심으며 맞이한 도전과 싸워야 했던 절망을 알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고독과 침묵 속에서 하느님이 허락하시는 삶의 시간 동안 매일 자신의 일을 한 그의 숲 너머에는 새 생명이 태어나고 이제는 마을 사람들 스스로가 심은 보리수 나무가 무성하게 자라고 있었습니다. 작가 장 지오노는 이를 ‘여지없는 부활의 상징’으로 봅니다.

비틀즈가 옳게 이야기했습니다. 나무를 심던 엘제아르 부피에는 세계 대전을 멈출 수 없었고 황폐한 마을 사람들을 직접 먹일 수도, 계도할 수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매일 도토리를 심었고 새 인류가 시작되는 터전을 만들었습니다. 프레데릭 벡은 북극곰을 위해 녹는 빙하를 다시 얼게 할 수 없었습니다. 지구 온난화를 가속화하는 화력발전소를 멈출 수도 없었습니다. 이라크 침공을 막을 수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한쪽 눈이 멀도록 매일 자신의 색연필을 한 자루씩 잡고 다양한 생명의 깊은 이야기를 전하고, 서로를 살리기 위한 구체적 행동과 제도 개혁을 위해 움직이도록, 평화를 위해 일어나도록 했습니다.

종전과 통일을 염원하며, 이 와중에 더해 가는 진영 간 이익을 위한 폄훼와 진실의 은폐를 목격하며, 여전히 멈추지 않는 컨베이어 벨트를 보며, 분노와 죄스러움에도 진정한 해방을 꿈꾸며, 나의 도토리, 나의 색연필이 무엇일까 생각합니다. ‘오직 필요한 한 가지, 사랑’. 사실 그 본질인 하느님 안에 머무릅니다. 눈 감아 버리기와 비겁한 둔탁함이 아닌 색연필, 서로 할퀴는 절망과 무기력한 포기가 아닌 도토리, 두 노인의 ‘사랑’을 보며 저의 오늘에 묻습니다. 하느님께 자비와 은총을 청합니다.

하영유(소화데레사)
성심수녀회 수녀
가톨릭대학교 출강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하영유 editor@catholic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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