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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 친구들을 위한 노래 선물 꾸러미를 준비하며

기사승인 2019.03.04  17:3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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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살아 있는 노래랑 아이들이랑 - 9]

처음 귀농하던 해(당시 스물아홉) 여름에 친구들과 제주 순례를 했다. 해군 기지가 들어선다 어쩐다 시끄럽던 시기에 제주가 생명평화의 땅으로 지켜지기를 바라는 간절한 염원을 가지고 떠난 길이었다. 십년도 훌쩍 지난 일이라 어느덧 꿈에서나 겪은 일처럼 아득하지만 아직도 어슴푸레 기억나는 장면이 몇 가지 있다. 마법의 세계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듯했던 어느 곶자왈 풍경, 비 오는 날 학교 운동장에서 축구하던 아이들, 한국 전쟁과 4.3의 슬픔을 간직하고 있는 동굴을 랜턴에 의지하여 비틀거리며 걷던 기억.... 그때 나는 아름다운 것이 얼마나 안타까운가를 어렴풋이 느꼈다. 아름다워서 수없이 짓밟히고 수탈을 당해야 했던 슬픔의 땅 제주... 당시 함께 걸었던 친구 가운데 한 명은 결국 제주도로 이주하여 살고 있다. 일주일간의 순례 여행이 그 친구에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한 셈이다.

장흥 어떤 장터에 붙은 호 원정대 모집 광고. ⓒ정청라

그나저나 갑자기 웬 제주? 내가 제주에 대한 케케묵은 기억까지 끄집어내게 된 데는 까닭이 있다. 제2공항 건설에 반대하는 천막촌 사람들을 지지하고 응원하기 위해 제주도에 가기로 했기 때문이다. 어지간해서는 집을 떠나려고 하지 않는 내 성향상 이건 아주 특별한 사건이다. 아이들은 제주도 가는 거 꿈 아니냐며 출발 하루 전인 오늘까지도 몇 번을 묻고 또 묻고 한다. (정말이지 귀에 딱지가 소똥 만큼은 앉은 것 같다.) 그뿐인가. 온 마을을 누비고 다니며 마을 할머니들한테 "저희 공항 반대하러 제주도 가요!"라고 크게 자랑질을 하고 있다. 여행의 고단함을 떠올리며 이부터 악무는 나와 달리 아이들은 마냥 좋은가 보다.

앞서 말했지만 '집이 최고다'는 생각이 철썩 달라붙어 있는 나로서는 갈까 말까 망설이던 순간이 아주 길었다. 그러다가 제주도 의회에서 제2공항 건설을 다시 생각해 보기로 결정한 그 순간까지 단식을 했던 사람들(특히 엄문희 씨) 이야기를 가까이 접하고 찾아 읽으면서 마음을 단단히 먹었다. 가야만 하겠다고.... 그 사람들을 꼭 만나 봐야겠다고.... 왜냐하면 너무나 궁금하기 때문이다. 내 목숨, 내 집, 내 가족의 안락과 안전을 뒤로하고 전체로서의 자신, 온전한 생명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거는 그들의 용기와 지혜는 대체 어디서 나오는지.... 그들의 거대한 영혼은 대체 어디에 뿌리를 박고 있는 건지가 말이다.

호 원정대원 한 분이 여행 배낭에 달고 가려 만든 작은 플래카드. (이미지 제공 = 정청라)

그들을 떠올리면 참 고맙고, 어떤 식으로든 내 마음을 전하며 손을 잡아 주고 싶었다. 그리하여 전남 녹색당 안에서 '호 원정대'(공사 괴물의 횡포에 시달려 아파하는 제주도를 '호~' 해 주러 간다고 붙인 이름)를 꾸려서 함께 떠나게 되었는데,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역시 노래였다. 노래 선물 꾸러미를 준비해서 그들에게 들려주고 함께 노래를 부를 수 있다면! 노래가 우리의 아픔을 어루만져 주고 어려운 상황을 뚫고 지나가는 힘을 주지 않을까?!

여기까지 생각하고 있을 때(그러면서 내가 가진 노래 보따리를 뒤지고 있던 참에) 아는 선생님이 우연히 나바호 족의 노랫말 하나를 소개해 주셨다.

 

나는 땅끝까지 가 보았네

물이 있는 곳 끝까지도 가 보았네

나는 하늘 끝까지 가 보았네

산 끝까지도 가 보았네

나와 연결되지 않은 것은

하나도 발견할 수 없었네

 

이 노랫말을 보는 순간, 눈앞이 먹먹해지면서 찌리리릿 느낌이 왔다. 하늘에서 이번 여행의 주제가라고 할 만한 노래 하나를 뚝 떨어뜨려 주신 느낌이랄까? 그러니 곡조를 붙이는 데 30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 내가 곡조를 붙였다기보다 있던 곡조가 나를 통해 감옥에서 풀려 나온 것 같았다. 이 세상에 이미 있던 노래니까 그 노래를 부르고 싶다는 열망만 품으면 금세 다시 노래가 살아 나오는 건지도!

아무튼 이 노래를 흥얼거리며 나는 내일 제주도로 간다. 있는 그대로의 아름다움을 가만 두지 못하는 공사 괴물, 꼼짝 마라! 노래라는 강력한 무기를 들고, 호 원정대가 나가신다~~~!

 

 

덤, 이 원고가 게재되는 시점이 경칩 무렵이네요. 그래서 원고 내용과는 상관없지만 봄 마중 노래(따끈따끈한 최신곡)도 하나 소개합니다. 개구리야 반가워!

 

개구리야 반가워

씩씩한 울음소리 듣기 좋구나

겨울은 잘 보냈니

이제 정말 봄인가 봐

꺄아 꺄아~~~

 

정청라

인생의 쓴맛 단맛 모르던 20대에 누가 꿈이 뭐냐고 물으면 '좋은 엄마가 되고 싶다'고 대답했다. 하지만 막상 엄마가 되고 1년도 채 안 되어 좋은 엄마는커녕 그냥 엄마 되기도 몹시 어렵다는 사실을 깨닫고 '좋은 엄마'라는 허상을 내려놓았다. 그 뒤로 쭈욱 내려놓고, 내려놓고, 내려놓기의 연속.... 이제는 살아 있는 노래랑 아이들이랑 살아 있음을 만끽하며 아무런 꿈도 없이 그냥 산다. 아이를 기른다는 것은 '스스로 길이 된다는 것'임을 떠올리며 노래로 길을 내면서 말이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정청라 editor@catholic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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