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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길에서 만난 이들 가슴으로 품으려 ‘노동사목’에서 ‘인성센터’로

기사승인 2008.11.20  10:4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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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평노동사목 '새날의 집', 그 사람들

   
 

인천 부평구 천주교 산곡동성당 뒤편, 차도 들어올 수 없는 좁은 골목길을 따라가다 보면 ‘새날의 집’이 있다. 이름과 달리 칠도 온전치 않는 낡은 160여㎡ 1층 양옥집이어서 그 간판이 없다면 대수롭지 않을 뿐이다. 이 건물이 4월부터 헐리고 11월 말경 말쑥하게 바뀐다. 3층 건물에 교육실, 상담실, 사무공간 등이 자리잡을 예정이다. 건물 그 자체가 새날을 맞이할 참이다.

1970년대에는 치열한 노동자들의 삶이 있었다. 일할 권리, 인간답게 살 권리를 외치며 자본과 국가권력에 맞서야 했던 시절, 교회의 가난하고 무력한 이들에 대한 시선을 상징하는 부평노동사목(천주교 인천교구 노동사목 전담 김일회 신부)이 있었다. 1977년 노동자들에 의해, 노동자들 위한, 노동자들의 공간으로 출발했다.

부평공단과 대우자동차 등에서 일하는 노동자들과 성직자, 수도자, 그리고 이들과 의기투합한 현장 활동가들이 이곳에 모여 노동자들의 쉼터 겸 사랑방으로, 매몰된 그들의 자아를 발견해 나가는 교육공간으로 유지했다. 전셋집을 전전하던 형편에서 1988년에는 해외원조와 교구보조, 전세금을 탈탈 털어 4천500만원에 지금의 ‘새날의 집’을 마련했다.

이후 세월의 흐름을 따라 사람도 변하고 노동현장의 상황도 더불어 달라졌다. 부평노동사목은 1990년대 중반부터 새로운 변화에 대한 모색과 노동사목 활동의 정체성에 대한 반성에 직면했다. 열악했던 상황을 딛고 노동현장 안팎에서의 노동자조직이 강화됐다. 반면 노동자들의 삶의 질을 향상시킬 전문화된 인성교육과 상담에 대한 필요성이 높아졌다. 이제까지와는 다른 변신, 맞춤서비스를 요구받은 것이다.

실무자들은 이를 절감했다. 30년이란 시간은 부평노동사목의 변신을 조심스럽게 허용했다. 그 사이 부천과 주안에 아우 격인 노동사목 사무실이 더 생겼다. 이제 얼마 있지 않아 부평노동사목은 천주교의 특정 활동을 의미하는 ‘노동사목’이란 간판대신 노동자인성센터로 거듭날 것이다.

천주교 인천교구가 건물 신축비 2억원을 지원하고 운영비도 상당부분 책임지는 구조다. 실무자들의 고민과 선택을 전폭 수용했다. 교구도 예전 투쟁적인 노동사목 형태보다 전문적인 사회복지 서비스 일환이 될 지향에 공감하고 있다. 현재 이러한 지지를 통해 새로운 좌표설정이 수월하게 진행되고 있다.

   
실무자인 김은숙 국장(앞)과 이로사 간사(뒤)

부평노동사목 김은숙 사무국장은 “노동자 조직화와 권력과의 투쟁 등 노동자 권익찾기 운동의 활동공간이던 부평노동사목이 이제는 자본주의와 무한 경쟁이라는 시류에 희생된 개인과 가족을 보살피는 영적 공간으로 거듭나야 할 때”라며 “지난해 말 설립 30주년을 맞아 지금까지와는 다르지만 같은 길을 가려는 의지를 다졌다.”고 밝혔다.

김 국장은 이어 “이러한 방향전환은 노동자들이 처한 현실이 이전과 많이 달라졌고 기존 활동 내용이나 서비스는 다른 곳에서도 가능하기 때문에 검토된 것”이라며 “이에 따라 인성센터에서는 의식각성-인성교육 프로그램을 바탕으로 노동자들의 척박한 삶을 돌볼 각종 지원책을 준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노동자인성센터는 ‘함께 잘 살아야 한다. 나와 가족이 가장 중요한 단위다.’라는 가치를 기준으로 돈으로 상징되는 경제력이 아닌 정신, 심성으로 대표되는 삶의 질을 이야기하려고 한다. 마음이 아픈 이들이 전문가나 치료기관을 찾으려면 높은 비용부터 따져야할 것이 여럿이다. 가난하고 건강하게 노동하는 사람들의 지원기관으로서 노동자인성센터는 우선 그 벽부터 없앨 계획이다.

노동자 개인과 그 가족의 자아성장, 화합을 목표로 상담과 심리검사 및 진단, 성격유형검사(에니어그램, MBTI 등), 파트너십교육, 아동과 부부프로그램, 청소년노동인권교육 등을 차림표로 짜고 있다. 실무자들은 인성교육을 담당할 만큼 실력을 키우기 위해 그간 공부를 하고 자격증을 준비해왔다. 전문적인 부분은 따로 자원봉사자의 도움을 받고 주변 자원을 최대한 활용할 계획이다.

한때 이곳의 실무책임자로 일했던 한상욱 씨는 “부평노동사목의 존재는 상징적으로나 실질적으로 많은 의미를 내포하며 힘들고 고통 받던 이들과 함께 했다.”며 “앞으로의 변화는 또 다른 의미에서의 발전이자 존재 이유가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김일회 신부는 “77년 당시 부평노동사목은 외국인 신부님과 수녀님 그리고 평신도가 함께 노동자들에게 기쁨과 희망을 주기 위한 다양한 교육프로그램을 통해 노동자들의 벗이 되는 계기였다.”며 “노동자들이 모일 수 있는 공간이나 교육 장소가 아쉬울 때 산곡동에 마련된 ‘새날의 집’이라고 이름붙은 부평노동사목은 그들에게 희망의 문턱이기도 했다.”고 회상했다.

김 신부는 또 “교회와 노동자들의 벗인 부평노동사목은 30년이라는 시간 속에서 많은 사람들이 사랑하는 공동체가 됐다.”면서 “앞으로 새로운 다짐으로 소외되고 가난한 노동자들과 그 가족의 벗인 희망의 놀이터로서 노동사목 50년을 준비하고자 한다.”고 각오를 밝혔다.

한편 노동사목 20주년 기념사업으로 10여년 동안 노동자 자녀에게 장학금을 지원하던 ‘세실리아 장학회’ 사업도 달라진다. 이제부터는 노동자 자녀들의 건강한 정서발달을 위한 특별프로그램이나 치료프로그램에 치중하게 된다. 세실리아 장학회는 노동사목의 실무자로 활동 중 위암을 얻어 1979년 6월 세상을 떠난 이경심(세실리아)을 기리기 위해 시작됐다.
 

/지영일 2008.03.05

지영일 기자 openme@par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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