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제철 비정규직 사망, “위험의 외주화 끝내자” 요구

천주교 등 3개 종단이 6일 현대제철 본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산재 사망을 막기 위한 기업살인처벌법 제정 등을 호소했다.

지난 2월 20일 현대제철 당진공장에서 외주업체 소속 노동자 이재복 씨가 컨베이어벨트의 부품을 바꾸던 중 기계에 끼어 숨졌다. 이는 지난해 12월 11일 태안화력발전소에서 김용균 씨가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숨진 지 두 달 만이다.

기자회견에서 조계종 사회노동위원회 부위원장 지몽 스님은 “사망 사고가 일어나면 재발 방지를 해야 하는데, 지금까지 어떤 대책을 세웠는지 (현대제철에) 묻고 싶다”면서 “계획된 깊은 고민이나 대책도 없이 비정규직 노동자의 죽음은 산재처리만 해 주면 된다고 생각했다면 당신들은 사람의 자격이 없다”고 했다.

그는 죽음에 대한 근본적 대책, 이윤보다 생명을 우선하는 결단, 죽음의 외주화를 멈추라고 현대제철에 촉구했다.

천주교 서울대교구 노동사목위원장 이주형 신부는 한국의 한 해 산재 사망자 수가 1900명이며, 한국이 OECD 산재 사망률 1위이고 2017년 노동계가 선정한 최악의 살인기업으로 현대제철이 뽑혔다고 말했다.

그는 “사람이 실수해서 다치고 죽는 것이 아니라 누구든 다치고 죽는 환경”에서 “우리 사회의 취약계층, 이른바 비정규직, 하청노동자, 고용이 보장되지 않는 가장 약한 분들이 매년 반복해서 정부와 기업의 무관심 속에 죽고 있다”고 했다.

그는 이어 “이런 사회를 아이들과 후손들에게 물려줄 수 있는가”라고 묻고 정부와 경영계에 “적어도 사고의 재발과 죽음만은 막아 달라”고 촉구했다.

기독교교회협의회 정의평화위원장 최형묵 목사는 10만 명당 산재 사망자 수가 가장 적은 나라는 영국으로 (이는) 저절로 된 것이 아니라 “‘기업과실치사 및 기업살인법’을 제정”했기 때문이라며 “기업의 부주의로 노동자가 숨지면 기업을 처벌하는 법을 만들어 산업재해로 인한 죽음을 막을 수 있었다”고 했다.

영국은 지난 2007년 기업과실치사 및 기업살인법을 제정했다. 기업이 업무와 관련된 안전조치를 하지 않아 노동자가 죽으면 최대 상한선이 없는 벌금을 물리거나 유죄가 확정된 사업주의 이름과 기업의 범죄 사실을 언론에 드러내야 하는 제도다.

최 목사는 “위험의 외주화가 가능한 것은 비정규직을 용인하는 제도와 관행 때문이며, 상시적으로 필요한 자리는 정규직이 마땅하다”면서 “편법으로 (정규직을) 비정규직으로 대체하는 것은 엄격히 금지돼야 하고,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차별 요건이 돼서는 안 된다”고 했다.

6일 양재동 현대제철 본사 앞에서 고 이재복 씨의 죽음에 대한 3대 종교 기자회견이 열렸다. 참가자들이 정몽구 회장, 정의선 부회장의 책임을 촉구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신재용 기자

고 김용균 씨의 어머니 김미숙 씨도 이날 기자회견에 함께했다.

그는 “안전교육을 제대로 했는지, 사고가 생기면 사고 원인을 따져 정확히 짚고 예방조치를 해서 어떤 이유로든 인명사고가 날 수 없게끔 해야 한다”고 했다.

그는 “정부와 노동청이 관리감독을 제대로 하고, 현장에서 사고가 생기면 빠르게 대처해야 하며 ‘살인기업처벌법’을 만들어 더 이상 억울한 죽음이 이어지지 않아야 한다”고 호소했다.

현대제철 비정규직지회 박광원 노동안전부장은 “이번 사고는 예견된 사고”였다며 “2010년, 2016년 같은 현장에서 사망사고가 발생했는데도 후속처리가 이뤄지지 않아 또 한 분의 노동자가 돌아가시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비정규직은 안전에서도 차별받는다면서 “안전문제마저 차별받는다면 우리 보고 죽으라는 말과 똑같다고 말하고 싶다. 우리는 현장에서 사용하다 버려지는 소모품이 아니다. 우리도 말할 수 있고, 요구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현대제철이 앞에서는 안전조치를 하는 척하지만 뒤로는 사건을 무마시키려고 한다며 현대제철에 “노동자의 생명을 담보로 이윤을 창출하기보다는 노동자들의 생명을 먼저 생각하고 고려해야 할 것”이라고 했다.

참가자들은 또한 정부와 국회에 진상조사와 책임자 처벌, 안전대책 마련, 원청의 책임성 강화 등 구체적 대책을 마련해 “다시는 대한민국 내 어떠한 기업도 노동자의 안전을 뒤로한 채 생산 활동에 나설 수 없도록 강력한 조치를 취하라”고 요구했다.

이번 사건을 두고 금속노조는 “비상제동장치인 풀코드스위치가 느슨하게 방치”돼 있었고, 먼지와 소음 속에서 제대로 일하기 힘들었으며 안전조치가 이뤄지지 않아 노동자들이 개선을 요구했으나 “회사가 작업등 하나 바꾸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더불어민주당 이용득 의원실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현대제철은 2014년부터 2018년까지 약 105억 원의 산재보험료를 감면받았다. 이 기간 동안 현대제철 당진공장에서는 6명이 산재사고로 죽었는데, 이들 가운데 4명은 하청업체 소속이었기에 본사인 현대제철 자체의 산재율은 수치만으로는 오히려 줄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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