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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크 로스코의 성금요일

기사승인 2019.03.27  11:2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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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도자가 바라본 세상과 교회]

움직이는 그림이 있습니다. 어떤 구체적인 형상이 있는 것도 아닌 색 면들이 가득 찬 그림이 바라보고 있는 동안 공기층처럼 일어나 나를 감싸기도 하고 퍼지기도 합니다. 나도 모르게 그림 가까이 다가가고 있나 흠칫 놀라 고개를 돌려 봐도 내 발은 그 자리에, 그림은 벽에 그대로 있습니다. 다시 그림을 바라보고 있으니 얼마 지나지 않아 색을 머금은 공기가 다시 일어납니다. 그리고 심지어, 음악이 들리기 시작합니다.

마크 로스코(Mark Rothko, 1903-70)의 그림 앞에 서 본 날, “회화란 경험에 관한 것이 아니라 경험 그 자체”라고 그가 말한 의미를 알 것 같았습니다.(그림 1, 2) 어두운 조명 속 거대하게 서 있는 색 면들은 마치 녹슨 철판과 같았고 내가 미처 경험해 보지 못한 거대한 비극의 잔혹함이 다가오는 듯하더니 동시에 그 비극을 감싸 안는 따뜻한 연민이 느껴졌습니다. 이 모순된 경험 속에서 그 녹슨 철의 느낌은 어느새 물속에서 울리는 첼로 소리처럼, 음악으로 들리기 시작했습니다.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습니다.

(그림 1) ‘밤색 바탕 위에 붉은 색’, 마크 로스코. (1959) (이미지 출처 = 런던 테이트 현대미술관 홈페이지)
(그림 2) ‘밤색 바탕 위에 검은 색’, 마크 로스코. (1959) (이미지 출처 = 런던 테이트 현대미술관 홈페이지)

“그림은 사람과 교감함으로써 존재한다”고 믿은 로스코는 당시 그의 작품들을 두고 미술사적 계보를 따지며 이해하려 하는 이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추상주의자가 아닙니다.... 나는 색과 형태의 관계 따위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비극, 황홀경, 운명같이 근본적인 인간의 감정을 표현하는 데 관심이 있을 뿐입니다. 많은 이들이 나의 그림을 보고 울며 주저앉는 것은 내가 이러한 근본적인 인간적 감정들을 전달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 내 그림 앞에서 눈물 흘리는 사람들은 내가 그리면서 겪었던 종교적 체험을 똑같이 경험하고 있는 것입니다. 만일 당신이 작품의 색채들 간의 관계만을 가지고 감동을 받았다고 한다면 제대로 작품을 감상했다 할 수 없습니다.”("마크 로스코", 제이콥 발테슈바, 운채영 옮김, 마로니에 북스, 2006)

유대인 학살이 일어나던 러시아에서 어린 시절 종교 교육을 철저히 받았던 로스코는 가족과 함께 미국에 건너가 쉽지 않은 이민자 생활을 했습니다. 인문학을 전공한 대학에서는 권위적 교육 방식에 대한 비판 없는 맹신을 지적하는 글을 쓰고 유대인 차별을 경험하다 장학금을 박탈당해 중퇴하고, 이후 노동자들의 권익을 위한 조직에 가담하기도 했습니다. 정규 미술교육을 거치지 않았으나 뛰어난 작가로 성장하며 평생 미술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쳤고 뚜렷한 교육론과 미술론을 펼쳤으며 생전 미술계에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그의 생애 동안 두 번의 세계 대전이 일어났습니다. 사랑하는 부인과 자녀들이 있었고 또 이별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사순시기에 그의 그림이 다시 떠오른 이유는 그의 치열한 활동기가 아닌 죽음과 죽음 직전에 그린 그림에 대한 기억 때문이었습니다. 로스코는 “비극적 경험이 예술의 유일한 원천”이라 했습니다. 저에게도 그의 작품 자체가 그토록 살아 있는 경험이 되었던 것은 세상에 가득하고도 이해할 수 없던 고통들이 그의 작품과 하나가 되어 승화된다고 느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의 여정이 그렇게 끝나버렸던 것이 내내 안타까움과 의문이었던가 봅니다. 그리고 어쩌면 제게도 그 막다름의 위태로움이 남아 있었기 때문인지 모릅니다. 하느님이 희미한 세상에서 고통의 승화란 어디를 향하는 것일까요.

(그림 3) ‘무제 - 회색 바탕 위에 검정’, 마크 로스코. (1969-70) (이미지 출처 = 뉴욕 구겐하임 미술관 홈페이지)

이 그림을 미술관에서 보았을 때, 그가 죽음 안으로 먹혀 들어갔겠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습니다. 사망 전 마지막 시리즈 중 하나인 이 회색과 검은 색의 평면은 더 이상 살아 숨쉬지 않고 막혀 버린 세계로 다가옵니다. 그가 만성 질병으로 고통과 심한 우울증의 상태에서 스스로 선택해 버린 비극적 죽음은 작품 활동을 통해 더 이상의 생명력을 창출할 수도 나눌 수도 없다고 여긴 상태에서 예견된 것이었다 합니다. 그래도 가시지 않는 안타까움과 의문의 작은 실마리를 그의 또 다른 시리즈에서 찾을 수 있었습니다.

(그림 4) ‘하버드 벽화 시리즈’, 마크 로스코. (1962) (이미지 출처 = 하버드 미술관 홈페이지)

생전에 자신의 작품에 대한 설명을 꺼려 했던 로스코가 그리스도의 수난과 부활을 표현했다고 스스로 언급한 벽화 연작이 있습니다. 총 다섯 점 중 가운데 세 점이 성금요일을 표현한 삼면화이고 양편의 좀 더 밝은 색은 부활을 의미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제가 이 그림을 다시 보면서 이해한 것은 오히려 그의 삶의 끝 격렬하던 고통이었습니다. 그는 결국 부활을 바라보면서도 바라지 못하는 고통의 자리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이 아닌가, 예술의 숭고함을 통해 들어 올리고자 했던 인간의 비극은 그리스도의 부활과 만나지 못하고 성금요일의 무덤 속에서 끝난 것이 아닌가 질문하게 되었습니다. 하느님의 구원에 닿지 못하는 영원의 추구는 얼마나 큰 고통이며 비극인지, 그의 마지막 그림부터 이 벽화 시리즈까지 그리고 그의 작품 초기까지 되짚어 보았습니다.  

최근 읽던 책의 서문이 떠올랐습니다. “하느님의 부재만큼 하느님을 바라보게 하고 하느님을 절실히 요구하게 하는 것도 없다. (중략) ‘하느님 없는 세상’을 뼈저리게 체험하지 않고는 종교적 추구의 의미, ‘하느님을 참고 기다리는 일’과 그 세 얼굴인 믿음, 희망, 사랑에 관해 말하고자 하는 모든 것의 의미를 깨닫기 어렵다.”("하느님을 기다리는 시간", 토마시 할리크, 최문희 옮김, 분도출판사, 2016) 로스코가 겪은 것은 분명 하느님이 없는 세상이었습니다. 그래서 영적인 세계를 추구했고 자신의 예술이 종교적 행위가 되기를 바랐습니다. 그러나 하느님 없는 세상의 뼈아픔이 하느님을 찾고 기다리게 하는 것은 또 다른 문제인 것 같습니다.

예술을 통한 숭고함의 추구가 우리를 구원으로 이끌 수 있을까요. 누군가의 말처럼, ‘아름다움이 우리를 구원할까’요. 다시 질문해 봅니다.... 아니요, 아닙니다. 역부족입니다. 분명 도움을 줍니다. 그러나 그것으로는 이 생의 고통과 비극을 극복할 수는 없습니다. 그 의미를 찾아낼 수 없습니다. 살아낼 수 없습니다. 그 추구가 하느님께 닿으려 할 때에 우리는 이 모든 것을 살아낼 수 있고, 의미를 발견해 갈 수 있습니다. 이 사순시기가 그때입니다. 전례력이 돌아오면 맞는 절기가 아니라, 다시 한번 머리를 돌려 하느님을 향하는 회개, 회두(回頭)의 때입니다. ‘하느님 부재’의 세상에서 ‘보이지 않는’ 세 얼굴인 ‘믿음, 희망, 사랑’을 찾기 위해 건너가는 파스카의 때입니다. “사실 우리는 희망으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보이는 것을 희망하는 것은 희망이 아닙니다. 보이는 것을 누가 희망합니까?”(로마 8,24) 로스코의 성금요일이 예수님과 부활에 이르기를, 그의 영혼이 하느님나라에 들기를, 그 생을 통해 나누어 준 예술에 대한 고마움과 함께 바라 봅니다. 그리고 살아 있는 우리야말로 진정한 희망을 살기를 기도합니다.  

하영유(소화데레사)
성심수녀회 수녀
가톨릭대학교 출강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하영유 editor@catholic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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