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 가장 연대적인 사람 - 맹주형]

영화 ‘그린 북'(Green Book)을 보았다. 천부적인 흑인 클래식 음악가 돈 셜리와 이탈리아계 백인 운전사 토니 발레롱가의 음악 투어 로드 무비다. 때는 1962년 미국, ‘짐크로 법’이 만연했던 차별의 시절이다. 짐크로 법은 1876년부터 1965년까지 시행되었던 미국 남부의 주법으로 흑인을 겨냥한 인종분리 정책이었다. 이 법으로 공립학교, 공공장소, 대중교통, 군대에서 흑인은 분리되었고 화장실, 식당, 식수대도 따로 써야 했다. 특히 흑인 노동력에 의지한 농업이 경제의 기초였던 미국 남부지역에서는 이 법으로 극심한 인종차별이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남부지역으로 연주 여행을 떠나는 두 주인공. 돈 셜리가 떠나기 전 운전사 토니 발레롱가에게 ‘그린 북’을 건네준다. 

그린 북은 ‘검둥이를 위한 여행안내서’(The Negro Motorist Green Book)의 줄임말이다. 이 책은 뉴욕 할렘의 한 우체국 직원이 쓴 여행안내 책자인데, 흑인들이 여행 중에 위험에 처하지 않기 위해 흑인이 이용 가능한 식당과 숙소를 정리했다. 당시 금지 시설에 들어온 흑인은 영화에도 나오듯 죽을 만큼 맞았고, 구금당했다. 1964년 7월 2일, 미국에서 시민권법이 제정되었고 1965년에는 투표권법이 만들어지면서 남부 각 주의 짐크로 법은 즉시 폐지되었다. 차별에 맞서 수많은 흑인들이 저항한 결과였다.

버스터미널에서 "유색인종용" 물통에서 물을 마시는 한 흑인. (이미지 출처 = Wikipedia Commons)

영화는 해피엔딩이다. 세계 인권 선언 제1조의 내용처럼 우리 모두는 형제자매이기에 태어날 때부터 자유롭고, 존엄성과 권리에 있어 평등하며 피부색, 성별, 종교, 국적, 의견, 신념이 다를지라도 모두가 평등하다. 스포일러 걱정 없는 영화의 내용이자 결말이다. 2019년 4월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 성폭력, 뇌물 사건. PD수첩에 보도된 코리아나호텔 방용훈 부인 이미란 씨 죽음. 장자연 죽음에 대한 윤지오 씨의 증언 등 십수년 넘게 감추어진 소위 권력의 치부들이 조금씩 드러나고 있다. 이 사건들의 공통점은 ‘다른’ 인간들의 이야기다. 같은 존엄성과 권리를 가진 인간에 대한 ‘다른’ 태도를 가진 이들의 거짓과 폭주와 은폐가 드러나고 있다.

4월은 어찌 보면 인권을 생각하는 달이다. 세월호 참사는 인권 부재에서 비롯됐다. 생명을 가질 권리를 잃었고, 자기 몸의 안전을 지킬 권리를 잃은 인권 부재 참사 세월호. 제주 4.3 역시 같은 민족을, 같은 동네 사람을 사상으로 단죄하고, 멋대로 잡아들여 가두고, 죄인으로 만들어 죽인 인권 부재의 상황이었다. 그래서 4월은 인권의 달이다. 같은 사람을 같이 보지 않는 차별과, 자식 잃은 부모의 마음조차 헤아리지 않는 돌같이 굳은 마음들이 모여 얼마나 큰 불행을 가져왔는지를 배우는 달이다.

예수는 달랐다. 아프고 냄새나고 슬퍼하는 사람들을 바닥에서 만나 같이 울고 웃어 준 사람. 측은지심의 감수성을 가진 사람. 하여 “여기 있는 형제 중에 가장 보잘것없는 사람 하나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준 것”(마태 25,40)이라 선언한 참사람이었다.

내가 존엄하듯 너도 존엄하기에, 그래서 서로 존엄하다고 느낄 때 연대가 시작된다. 세월호 희생자 가족들, 끝장투쟁 중인 콜트, 콜텍 노동자들, 제주 4.3의 아픔을 간직한 할머니, 할아버지들, 잘라지고 있는 제주 비자나무들과 우리 모두가 존엄하기에 연대한다. 그간 ‘나는 너희들과 다르다’고 생각한 이들로 인해 존엄성을 잃어버렸던 시대는 역사가 그래 왔듯 바뀔 것이다. 그래서 공감과 연대는 중요하고, 인권은 다시 세상을 바꾸는 힘이 된다.

맹주형(아우구스티노)

서울대교구 사회사목국 정의 평화 창조질서보전(JPIC) 연대 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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