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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고 싶은 대로 믿었으니 그걸 알 리가 없다

기사승인 2019.04.09  14:0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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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원한 생명을 주는 진리의 길 - 김용대]

"영원한 생명을 주는 진리의 길", 요한 타울러, (김용대), 사회와연대, 2017, 262-265쪽.

“하느님에게서 난 이는 하느님의 말씀을 듣는다.”(요한 8,7)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여러분의 영혼의 현재 상태를 알게 해 주고 여러분이 무엇을 추구해야 하는가를 일깨워 주는, 나의 이 강론에 귀를 기울여 주십시오.

우리의 구세주께서 말씀하셨습니다. “하느님에게서 난 이는 하느님의 말씀을 듣는다. 그러므로 너희가 그 말씀을 듣지 않는 것은, 너희가 하느님에게서 나지 않았기 때문이다.”(요한 8,7) 그런 다음 이어서 말씀하셨습니다.

“내 말을 지키는 이는 영원히 죽음을 보지 않을 것이다.”(요한 8,51)

형제자매 여러분, 지금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거룩한 수난에 대하여 관상하는 시기입니다. 쉬지 말고 골고타에 관한 이 거룩한 책을 펴서 읽고 여기서 모든 위로와 진리와 지혜와 충고를 받도록 하십시오. 그리스도의 수난에 관한 귀중한 책을 깊이 이해하게 되면 어떤 책도 제대로 이해하게 된다는 것을 아십시오. 수난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게 되면 아무것도 알지 못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수행규칙과 수행방법을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당부하셨듯이 예수 그리스도의 삶과 죽음을 따르도록 하십시오. 이 때문에 바오로 성인은 오늘의 히브리서(9,11-12)를 통하여 우리에게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이미 이루어진 좋은 것들을 주관하시는 대사제로 오셨습니다. 그분께서는 사람 손으로 만들지 않은, 곧 이 피조물에 속하지 않는 더 훌륭하고 더 완전한 성막으로 들어가셨습니다. 염소와 송아지의 피가 아니라 당신의 피를 가지고 단 한 번 성소로 들어가시어 영원한 해방을 얻으셨습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여러분이 어제도 그랬듯이 우리의 이 대사제를 영원히 제대로 따르도록 합시다. 모든 일에서 진심으로 그리스도의 영광만 찾읍시다.

우리의 대사제이신 사랑하는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전능하심과 비천하심을 모두 보여 주셨습니다. 주님께서는 전능하신 아버지와 하나가 되시어 오늘도 모든 인간을 돌보시고 모든 인간의 말과 일과 생각을 관장하시고 계십니다.

주님께서는 아버지께서 만드신 한 사람에게서도 눈을 떼시지 않고 그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삶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지켜보셨고 지켜보실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내가 지금 여러분에게 말하려고 하는 ‘하느님의 말씀’을 분명히 들으셨습니다. 주님께서는 우리 모두의 다름을 아시고 우리 모두의 얼굴을 보시고 우리의 영혼의 가장 깊은 곳에 들어가시어 우리의 생각과 습관을 보시고 계십니다. 주님께서는 온 인류에 대해서도 이렇게 하시면서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도 빠뜨리시지 않고 아버지로부터 받으신 모든 것을 되돌려 드렸습니다. 왜냐하면 예외 없이 모든 일에서 아버지의 영광만 찾으셨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진정한 친구라면 주님께서 당신의 모든 것을 아버지께 돌려드린 것을 배워야 합니다. 주님의 진정한 친구라면 하나도 빠짐없이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도 하느님의 영광을 위하여 아무리 괴롭더라도 조금도 망설이지 말고 되돌려 드려야 합니다.

우리의 대사제께서 우리에게 보여 주신 또 하나는 당신의 인간성입니다. 아버지의 영광만 찾으려고 하셨기 때문에 아무 죄도 없으시면서도 우리들의 죄 때문에 극심한 수난을 받으시는 등의 미덕을 보여 주셨습니다. 그리고 스스로 의롭다고 자처하던 바리사이들의 박해를 참고 견디셨습니다. 따라서 그리스도의 추종자라면 모두 어떤 고통도 달게 받아야 하며, 특히 그리스도를 찾고 섬기기로 맹세하고 서원한 사람들은 그리스도로부터 멀어진 사람들로부터 박해를 받고 고통을 받아야만 합니다. 그리스도의 추종자라면 아무것도 바라지 말고 하느님만 생각하고 행동해야 합니다. 자신이 좋아하는 일에서만 그리스도를 섬기지 말고 모든 일에서 주님께서 인도하시는 대로 따라야 합니다. 이 때문에 자기 이익만 찾는 사람들의 박해를 받아야 하지만 이들처럼 주님을 섬기려고 하지는 말아야 합니다. 이들은 어떤 일에서도 주님을 섬기려고 하는 사람들을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우리 주님께서 “하느님에게서 난 이는 하느님의 말씀을 듣는다.”고 하신 말씀의 뜻을 깊이 생각해 보기로 합니다. 그레고리오 성인은 아침 미사 강론에서 우리 모두 자신이 제자리에 서 있는지, 기복신앙을 믿고 있지는 않은지, 과연 마음을 통하여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있는지 하는 등의 성찰을 게을리하지 말아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하느님 아버지의 나라만 생각하고 욕정을 버리고 이 세상의 명예를 멀리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따라서 그레고리오 성인은 우리 모두 하느님의 말씀을 마음으로 들으면서 자신이 깨어 있는가를 성찰하라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하느님의 말씀을 내면적으로 이해하지 못하여 귀로는 듣지 못하고 사는 불행한 사람들이 많다고 말했기 때문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인간이 ‘말씀’을 잘 알아듣지 못하는 까닭을 설명하셨습니다.

하느님 아버지께서는 ‘당신의 영원한 말씀’과 성령님과만 대화하신다는 것을 모르기 때문이라고 하셨습니다. 인간은 성자와 성령님과는 대화할 수 있지만 하느님과는 직접 대화할 수 없으므로 성자와 성령님을 통하여 대화해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시공을 초월해 존재하는 인간의 영혼이 아무리 ‘말씀’을 비슷하게 알아듣더라도 제대로 알아들은 것은 아닙니다.

인간의 영혼은 영혼 깊은 곳에 숨어 계시는 하느님과 너무나 가까이 있을 뿐 아니라 하느님과 같이 만들어졌습니다.(역자 주: Capax Dei)

따라서 하느님 아버지께서 ‘당신의 말씀’에게 말씀하시면 백 배나 빠르게 전달됩니다. 따라서 영혼의 내면의 귀가 들으려고 귀를 기울일수록, 영혼이 ‘말씀’과 하나가 되어 조용히 있을수록 ‘말씀’을 더 빨리 이해할 수 있게 됩니다.

그러나 ‘말씀’이 영혼 안에 아무리 깊이 숨어 계시더라도
이심전심으로 영혼에게 전달하시어 이해할 수 있게 만드십니다.

하지만 우리는 ‘말씀’을 모시고 있지 않기 때문에
전능하신 주님께서는 “‘당신의 말씀’은 ‘아버지의 말씀’이지만
우리는 ‘당신의 말씀’처럼 듣는다.”
고 하셨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영혼 안에서 ‘말씀’을 들으려고 애쓰면
내면의 귀에 즉시 전달되기는 하지만 무슨 ‘말씀’을 하셨는지 몰라
“무엇을 해야 할지 가만히 있어야 할지 모르겠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알려고만 하면 알게 됩니다.
왜냐하면 ‘말씀’을 듣기는 했으므로 ‘의지’에게
“내가 그대를 가르쳐서 인도할 테니
정신 차리고 나를 따르라.” 하고 말씀하시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이해는 ‘의지’에게 무엇을 해야 하는지
하지 말아야 하는지를 가르쳐 줍니다.
그런 다음 ‘말씀’은 더 깊은 곳 즉 갈망으로 울려 퍼져
하느님의 역사(役事)를 방해하는 세상 것들을 멀리하고
풍족하게 가져 마음대로 펑펑 쓰려고 하지 말고
꼭 필요한 것만 가지라고 가르치십니다.

 

말씀. (이미지 출처 = Max Pixel)

하느님의 뜻을 제대로 전하지 못하는 모든 이론과 독서는 아무 쓸모가 없기 때문에 생명을 주시는 하느님의 힘을 얻지 못하게 하고 정신만 혼란스럽게 만들고 공허한 마음만 안겨 줍니다. 우리 영혼의 빈 공간을 성령으로 채우지 않으면 세상 어떤 것도 영혼의 갈증을 해갈시켜 주지 못하여 존재적 외로움을 채워 줄 수는 없습니다. 오직 성령으로 채우지 않는 이상 그런 공허감은 계속 느낄 수밖에 없습니다. 성령을 받지 못하여 하느님으로부터 성령의 첫 번째 열매인 ‘사랑’을 받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혼자이지 않은 사람이 없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그리스도교의 깨달음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는 진리 안에서 살게 된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동방정교의 소프로니우스 사하로프(Elder Sophronius Sakharov, 1896-1993) 원로는 정곡을 찔러 말했습니다. “성령을 받지 못하여 깨달음을 얻지 못하면 기복신앙을 믿게 되므로 기도 중에도 사탄에게 휘둘리게 됩니다. 기도 중에 일어나는 모든 현상을 의식하지 마십시오. 왜냐하면 사탄의 짓일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정신은 완전히 자유로운 상태에 놓여 있어야 합니다.” ‘정신이 자유로운 상태에 있어야 한다는 것’은 ‘자신의 것은 죄밖에 없다고 생각하고, 자신이 아무것도 아는 것이 없다고 생각하고, 아무것도 가지지 않은 가난함 속에 있어야 함’을 뜻합니다. 하느님을 믿는다고 말하면서도 ‘말씀’을 실천하지 않고 하느님께서 계시지 않는 기복신앙을 믿고 있는 우리들을 두고 말한 것입니다.

아빌라의 데레사에게 멋진 일화가 있습니다.

강을 건너다가 하마터면 빠져 죽을 뻔한 사고가 생겼습니다.

그녀가 그 일을 두고 주님께 역정을 내자 주님 말씀이 천연덕스러웠습니다. “데레사, 그게 내가 내 친구를 대하는 버릇임을 모르는가?”

그러자 데레사가 재치 있게 받아 넘겼습니다.

“압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그처럼 친구분이 적으시답니다.”

주님께서 친구분이 적으신 것은 다음 네 가지를 모두 충족시켜 성령을 받은 사람이 드물기 때문입니다.

• 서로에게 없어서는 안 될 존재가 되어야 합니다

있어도 되고 없어도 되는 그런 존재가 아니라 친구가 없으면 나는 존재할 수 없는 관계입니다. 예를 들면 부부는 어느 한쪽이 있어도 되고 없어도 되는 관계가 아닙니다. 어느 한쪽이 반드시 있어야 한 몸을 이루게 됩니다.

• 대화가 통해야 합니다

부부 사이에 대화가 없는 것은 생각할 수도 없습니다. 가끔 대화를 한다면 부부관계는 원만하게 지속되지 않게 됩니다. 대화를 하더라도 대화가 통하지 않으면 대화가 이루어지지 않게 됩니다.

• 관계가 오래 지속되어야 합니다

5분간만 친구 관계를 맺을 수는 없습니다. 친구 관계는 오랜 세월을 통하여 이루어지며 때로는 영원히 이루어지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비록 관계가 악화될 때에도 버리지 않고 계속 관계를 유지해야 합니다. 친구로부터는 도망칠 수도 없고 친구를 버릴 수도 없습니다.

• 친구를 위하여 자신이 바뀌어야 합니다

친하지 않으면 어느 한쪽의 바람에 따라 자신의 언행을 바꿀 수가 없게 됩니다. 바뀌지 않으면 대화가 이루어지지 않게 됩니다. 추구하는 것이 달라도 친구가 되지 않습니다.

김용대(후고)
서울대 컴퓨터공학과 박사.
본명은 후고입니다만 호도 후고(後考)입니다. 항상 뒷북을 친다는 뜻입니다.
20년 동안 새벽에 일어나서 묵상을 하고 글을 써 왔습니다.
컴퓨터 전공 서적을 여러 권, 묵상집 "그대 음성에 내 마음 열리고", "징검다리"를 쓰고, 요한 타울러 신부의 강론집을 번역하여 "영원한 생명을 주는 진리의 길"이라는 제목으로 출판했습니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김용대 editor@catholic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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