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란치스코 교종 최신 강론말씀]

(편집 : 장기풍)

“단죄의 돌을 던지지 마십시오”

프란치스코 교종, 사순 제5주일 삼종기도 가르침

 

프란치스코 교종은 4월7일 성 베드로 광장에서 열린 사순 제5주일 삼종기도 가르침에서 간음한 여인에 관한 복음사화를 묵상하면서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의 태도와 하느님의 자비를 구체화시키며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 주신 예수님의 대조되는 두 가지 태도에 대해 설명했다. 가르침 내용.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안녕하세요! 이번 사순 제5주일 전례는 간음한 여인의 사화(요한 8,1-11)를 소개해줍니다. 이 사화에는 두 가지 태도가 대조됩니다.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의 태도와 다른 한편 예수님의 태도가 있습니다. 율법학자와 바리사이들은 여인을 단죄하고자 했습니다. 그들은 스스로를 율법의 보호자로 자처하며 엄격히 적용하길 원했기 때문입니다. 반면 예수님께서는 그녀를 구원하길 원하셨습니다. 죄를 용서하시며 구원하시고, 화해시키시며 새롭게 하시는 하느님의 자비를 구체화시키는 분이십니다. 사건을 살펴봅시다. 예수님께서 성전에서 가르치고 계실 때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은 간음하다 붙잡힌 여인을 데려왔습니다. 그들은 그녀를 가운데에 세워놓고 모세 율법에 규정된 대로 돌을 던져 죽여야 할지 묻습니다. 복음사가는 그들이 이런 질문을 한 이유는 “예수님을 시험하여 고소할 구실을 만들려고”(요한 8,6) 한 것이라고 명확히 밝힙니다. 얼마나 사악한지 보십시오. 돌을 던져 죽이는 것에 예수님께서 “아니오”라고 대답하면 율법에 불순종한다고 고발하기 위한 이유가 될 것입니다. 또 예수님께서 “네”라고 대답한다면 재판없이 대중에 의해 행해지는 즉결처형을 허용하지 않고 오직 자신들에게만 판결권을 유보했던 로마당국에 예수님을 고발하기 위한 이유가 될 터였습니다. 이에 예수님께서는 대답하셔야 했습니다. 예수님께 질문하던 이들은 율법주의의 덫에 갇혀있었고 자신들의 심판과 단죄라는 관점으로 하느님의 아드님을 가두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심판하고 단죄하기 위해 세상에 오신 게 아니라, 사람들에게 새로운 삶을 주고 구원하기 위해 오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어떻게 반응하셨습니까? 잠시 침묵하시다 몸을 굽히시어 손가락으로 땅에 무엇인가 쓰기 시작하셨습니다. 이는 돌판 위에 율법을 쓰셨던 하느님이야말로 유일한 법률제정자요 심판관이심을 기억하는 행위라 할 수 있습니다. 다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 가운데 죄 없는 자가 먼저 저 여자에게 돌을 던져라”(요한 8,7) 이런 식으로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의 양심을 일깨우셨습니다. 그들은 스스로를 ‘정의의 수호자’로 느꼈지만 예수님께서는 그들 역시 죄의 상태에 있는 사람들이라는 현실을 일깨워 주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도 감히 같은 처지의 이웃의 생명과 죽음에 대한 권리를 주장할 수 없다는 것이죠. 그러자 나이 많은 사람들, 다시 말해 자신의 수치스러움을 더 잘 알고 있던 사람들을 시작으로 하나둘씩 떠나갔고 그 여인에게 돌 던지기를 포기했습니다. 이 장면은 우리 각자가 죄인이라는 의식을 갖도록 초대합니다. 종종 타인을 반대하며 던지고 싶어하는 비방과 단죄, 험담의 돌을 우리 손에서 내려놓도록 말이죠. 우리가 다른 이들을 향해 험담을 던질 때 우리는 돌을 던지는 셈입니다.

마침내 예수님만 남으셨습니다. 여자는 가운데에 그대로 서 있었습니다. 아우구스티노 성인은 이를 ‘비참과 자비의 만남’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죄가 없으신 유일한 분으로 그녀에게 돌을 던질 수 있는 유일한 분이시지만 그렇게 하지 않으셨습니다. 왜냐하면 하느님께서는 “악인의 죽음을 기뻐하지 않는다. 오히려 악인이 자기 길을 버리고 돌아서서 사는 것을 기뻐”(에제 33,11)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다음과 같은 놀라운 말씀으로 여인을 떠나보내십니다. “가거라. 그리고 이제부터 다시는 죄짓지 마라”(요한 8,11) 이처럼 예수님께서는 그녀 앞에 자비로부터 창조된 새로운 길을 열어주십니다. 그 길은 더 이상 죄짓지 않겠다는 책임을 요구합니다. 이는 우리 각자에게도 해당되는 초대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용서하실 때 항상 우리에게 앞으로 나아가기 위한 새로운 길을 열어주시기 때문입니다. 사순시기에 우리는 스스로 죄인임을 깨닫고 하느님께 용서를 청하라는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이 용서란 우리가 우리와 화해하는 것이며, 우리에게 평화를 주며, 우리로 하여금 쇄신된 역사를 다시 시작하게 만듭니다. 모든 참된 회심은 새로운 미래, 새로운 삶, 아름다운 삶, 죄로부터 자유로운 삶, 너그러운 삶을 향해 나갑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새로운 삶으로 나가는 문을 우리에게 열어주셨습니다. 그러므로 그분께 용서 청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맙시다. 동정 마리아께서 예수님 안에 우리를 용서하시고 우리의 존재를 새롭게 해주시며, 항상 새로운 가능성을 제공해주시는 하느님의 자비 넘치는 사랑을 모든 이에게 증거하도록 우리를 도와주시기 바랍니다.

 

 

”용기를 갖고 주님께 기도하십시오”

교종, 4월4일 산타 마르타의 집 아침미사 강론

 

프란치스코 교종은 4월4일 산타 마르타의 집 아침미사 강론에서 기도할 때 주님께 매달리라고 권고했다. 이날 미사에는 세르지오 마타렐라 이탈리아 대통령이 개인적으로 참례했다고 바티칸 공보실 알렉산드로 지소티 임시대변인이 전했다. 강론 내용.

기도는 단식과 자선과 함께 사순시기를 보내는 세 가지 방법 가운데 하나입니다. 기도할 때는 주님과 얼굴을 맞대고 용기를 갖고 기도하십시오. 미온적인 방법이 아니라 모든 것을 쏟아 부으십시오. 오늘 제1독서는 모세가 백성을 위해 하느님께 바치는 전구기도를 소개합니다. 하느님께서는 황금 송아지 때문에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그들에게 내 진노를 터트려 그들을 삼켜 버리게 하겠다.”(탈출 32,10) 모세는 제자가 스승에게 말하는 것처럼 하느님께 진노하지 마시라고 애원합니다. 온유함과 굳건함으로 백성들을 벌하시겠다는 하느님을 설득하는 한편 하느님께서 아브라함과 이사악에 했던 약속을 기억하시라고 애원했습니다. 이는 마치 “하지만 주님, 당신께서 이 모든 것을 하셨으니 나쁜 인상을 남기지 마십시오”라고 말하는 것 같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모세에게 “너를 큰 민족으로 만들어 주겠다.”(탈출 32,10)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모세는 백성을 위해 전구하며 백성들과 함께할 수 없다면 아무것도 필요없다고 대답합니다. 사실 성경 안에는 많은 전구기도의 예를 볼 수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소돔을 파괴하길 원한다고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실 때입니다. 아브라함은 조카가 살고 있던 소돔을 구하기 위해 하느님께 청합니다. “의인 30명이 있다면, 20명이 있다면, 10명이 있다면” 주님께서는 의인이 그 정도만 있다면 소돔을 파괴하지 않겠다고 대답하셨습니다. 결국 아브라함 조카 가족만 의로운 사람들이었습니다. 여기서 아브라함은 여인이 시장에서 흥정하는 것처럼 하느님과 흥정했습니다. 사무엘 어머니 안나의 경우도 좋은 예입니다. 그녀는 침묵 중에 입술을 움직여 낮은 소리로 중얼거렸습니다. 그렇게 성전에서 주님 앞에서 중얼거리며 기도하고 또 기도했습니다. 그녀를 바라보던 사제는 그녀를 술 취한 사람으로 오해했습니다. 안나는 아이를 갖기 위해 기도했습니다. 하느님 앞에서 간구하는 여인의 고뇌입니다. 복음에는 용기 있는 또 다른 여인이 등장합니다. 그녀는 설득하지 않고 교섭하지 않으며, 침묵으로 주장하지 않습니다. 그녀는 악마로부터 괴롭힘 당하고 있는 딸의 치유를 청한 가나안 여인입니다. 처음에 예수님은 당신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위해 파견됐다며, 자녀들의 빵을 개들에게 던져주는 것은 옳지 않다고 대답하십니다. 그러나 그녀는 개들도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빵부스러기를 먹는다고 말하면서 간청합니다. 그녀는 두려워하지 않았고, 원하는 것을 얻었습니다. 이렇듯 성경에는 전구기도의 많은 사례가 있습니다.

기도하기 위해서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하느님과 얼굴을 맞대고 허심탄회하게 말할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종종 주님과 투쟁하는 사람들을 보면 무엇인가를 얻기 위해 하느님께 강경하게 요구하는 것을 봅니다. 그들이 그렇게 하는 이유는 주님께서 은총을 주실 수 있다는 믿음 때문입니다. 이처럼 기도하기 위해서는 많은 용기가 필요합니다. 우리는 자주 미지근합니다. 어떤 사람은 말합니다. “저는 이런저런 문제가 있기 때문에 기도합니다.” 그렇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기도 두 번, 성모송 두 번 바치고는 잊어버립니다. 안 됩니다. 앵무새처럼 반복하는 기도는 좋지 않습니다. 진정한 기도는 주님과 함께 하는 것입니다. 용감하게 해야 합니다. 사람들은 무엇인가 얻고 싶을 때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하겠습니다.” 이는 전구기도에도 해당됩니다.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하겠습니다.” 이것이 앞으로 나가는 용기입니다. 의심이 들 수도 있습니다. “이렇게 열심히 하는데 주님께서 들어주신다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 확신을 가져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위대한 전구자이십니다. 예수님께서 전구해주십니다. 하늘로 오르신 예수님께서 수난에 앞서 베드로에게 믿음을 강하게 해주겠다고 약속하신 것처럼 우리를 위해 하느님께 전구하고 계십니다. 예수님의 전구기도는 지금 이 순간 우리를 위해 하시는 것입니다. 나의 기도가 설득이 되었든 협상이 되었든, 중얼거림이 되었든, 입씨름이 되었든 예수님께서는 나의 기도를 들어올려 하느님 아버지께 드립니다. 예수님께서는 아버지 앞에서 말할 필요가 없으십니다. 당신의 상처만 보여주시면 됩니다. 아버지께서는 아들의 상처를 보시고 은총을 베푸십니다. 예수님과 함께 한다는 것을 생각합시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용기이시고, 확신이십니다. 이 순간 우리를 위해 전구해주십니다. 우리가 이 여정을 걸어가고 전구하는 것을 배울 수 있는 은총을 주님께서 주시길 바랍니다. 누군가 기도를 부탁하면 단순히 한두 개의 기도를 바치고 그치는 게 아니라, 아버지 앞에서 우리를 위해 전구하시는 예수님 앞에서, 예수님과 함께 진지하게 기도하십시오.

 

 

“하느님은 여러분을 사랑하고 교회는 여러분을 필요로 한다”

프란치스코 교종, 주교시노드 후속권고 ‘살아 계신 그리스도’ 발표

 

4월2일 발표된 프란치스코 교종의 주교 시노드 후속 권고 ‘살아 계신 그리스도’(Christus vivit)는 젊은이들과 모든 하느님 백성에 보낸 서한 형태로 9개장 299개 항으로 구성됐다. 젊은이들의 현실에 대한 분석에서 그리스도와의 우정을 통해 젊음을 충분히 살라는 초대다. ‘살아 계신 그리스도’ 9개 장 내용 해설.

프란치스코 교종은 이 문헌을 쓰면서 2018년10월 바티칸에서 개최된 젊은이들에 관한 세계주교대의원회의(주교 시노드) 대화와 숙고의 풍요로움으로부터 영감을 받도록 했다. 원문의 첫 문장에서 따온 “살아 계신 그리스도(Christus vivit)” 제목은 프란치스코 교종 권고가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의 요약이다. “그리스도께서는 살아 계십니다. 그분께서는 우리의 희망이시고 이 세상에 젊음을 가장 아름다운 방식으로 가져오십니다. 그러므로 제가 젊은 그리스도인들에게 말하고 싶은 첫 마디는 바로 이것입니다. 그분께서는 살아계시고 여러분이 살아 있기를 바라십니다!”

제1장 하느님의 말씀은 젊은이들에 대해 무엇을 말하는가?

제1장은 하느님이 젊은이들에게 무엇을 말씀하시는지, 그들을 어떻게 인도하시는지에 대한 독서에서 시작된다. 젊은이들이 별 볼일 없이 여겨지던 그 시대 젊은이들의 가치를 입증하기 위해 구약과 신약의 사례가 등장한다. 어른들이 젊은이들을 경멸의 눈초리로 바라보거나 강압적 방식으로 그들의 봉사를 받았던 사실을 예수님께서 좋아하지 않으셨음에 주목했다. 예수님께서는 “너희 가운데에서 가장 높은 사람은 가장 어린 사람처럼 되어야 한다.”(루카 22,26)고 말씀하셨다. 또한 성경은 노인들에 대한 존경을 권고했다. 젊은이가 되는 것은 나이의 문제가 아니다. 예수님께서는 부자 청년을 만나셨지만 이미 재산과 안락함에 사로잡혔기 때문에 그의 정신은 그다지 젊지 않았다. 더 나아가 복음에는 다른 이들이 산만하고 잠이 들어있을 때 준비를 갖추고 있는 주의 깊은 젊은이들이 나온다. 생명력을 잃어버린 젊은이들에게 주님께서는 “젊은이야, 내가 너에게 말한다. 일어나라”(루카 7,14)고 초대하신다.

제2장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언제나 젊으십니다

주교 시노드는 청년기를 예수님께서 몸소 사셨던 삶의 자극적인 시기라고 정의했다. 복음은 예수님께서 고독한 청년기를 보내셨다고 생각하지 않도록 기록되었다. 그분께서 사람들과 맺은 관계는 마을 안에서 잘 지내던 한 가정의 모든 삶을 나누었던 젊은이의 관계였다. 아무도 그분을 이상한 청년이나 소외된 젊은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청년사목은 젊은이들을 가족과 세상에서 고립시키거나 그들을 선택된 소수로 변화시키는 프로젝트로 만들지 않기 위해 이러한 예수님의 청년기 측면을 염두에 둬야 할 것이다. 청년사목은 젊은이들을 굳건하게 하고 젊은이들을 동반하며, 타인과의 만남을 향해 투영되는 프로젝트, 너그러운 봉사와 선교사명을 활용해야 한다.

교종은 교회의 젊음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교회를 노화시키고, 과거에 묶어두며, 억누르고, 움직이지 못하게 만들려는 사람들로부터 해방시킬 수 있도록 주님께 청합시다.” “젊은이들이 다른 유혹에서 자유로울 수 있도록 청합시다. 세상이 그들에게 제공하는 모든 것에 쉽게 마음을 여는 게 젊은이가 되는 것이라고 믿는 유혹 말입니다.” “교회는 있는 그대로일 때 젊은 것입니다.” “젊은이들은 예수님이 매혹적인 방식으로 소개될 때 예수님 모습에 민감하게 됩니다.” 이를 위해 교회는 몇 가지 사항을 구체적으로 변화시키는 노력을 할 필요가 있다. 교종은 교회가 자신들을 성가시고 귀찮게 만든다고 생각하는 젊은이들이 있음을 인정한다. 또한 성추문, 경제문제, 성직자의 준비결여, 교회공동체 내에서 젊은이들에게 맡겨진 수동적 역할, 사회에서 윤리적이고 교리적인 입장을 내세우는 교회의 노고처럼 그럴만한 이유로 그런 감정이 야기된다고 말했다. 젊은이들은 더 많이 경청하는 교회, 세상을 계속해서 단죄하지 않는 교회를 바란다. 그들은 침묵을 지키는 소심한 교회도, 항상 전쟁을 치르는 교회도 싫어한다. 너무 소심한 교회는 주교 시노드에서 다뤘던 주제인 ‘여성의 권리보호에 관한 모든 논쟁에 대해’ 비록 일부 여성주의 단체가 제안하는 것에는 완전히 동의하지 않더라도 살아있는 교회는 합법적 권리회복에 주의를 기울이며 반응할 수 있다. 교종은 나자렛 소녀 마리아를 소개했다. 마리아의 ‘네’라는 응답은 약속을 받았다고 느끼는 응답, 그 약속에 동참하며 위험을 무릅쓰기를 원하는 사람의 응답이다. 또한 교종은 교회 안에는 그리스도를 위해 목숨을 바친 용감한 젊은 성인들이 많음을 강조했다.

제3장 여러분은 하느님의 ‘지금’입니다

교종은 젊은이들은 세상의 미래이자 현재라고 말했다. 따라서 젊은이들 말에 귀를 기울여야 하고 미리 만들어진 답변과 즉각적인 처방전을 제시하려는 유혹을 참으며, 그들 안에 있는 긍정적 요소를 바라보고 앞으로 나아가야 할 길을 식별하는 역량을 갖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고려해야 할 젊은이들의 현실은 다양하다. 전쟁터에서 사는 젊은이, 인신매매, 노예생활과 성적착취 등 범죄행위로 악용되는 젊은이들을 떠올렸다. 이들은 관념화되고 도구화되며 도살장의 고기처럼 사용되고 있다. 또한 종교적, 인종적, 경제적 이유로 소외된 젊은이들도 많다. 소녀 미혼모들, 낙태의 상처, HIV(후천성 면역 결핍증)의 확산과 여러 형태의 중독, 길거리로 내몰린 어린이들의 상황을 언급했다. “우리는 이러한 극적인 우리 젊은 자녀들의 상황 앞에서 울지 않는 교회가 될 수 없습니다.” 교종은 특히 많은 가난한 나라들에서 경제 원조를 미끼로 젊은이들에게 해를 끼치는 서구적 삶의 제안들을 강요하는 이념적 식민지화 현상을 언급했다. 또한 성을 배타적으로 강조하는 세상에서 자신의 몸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정서적 관계를 살아가는 것이 어렵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성윤리는 종종 심판과 단죄의 공간으로 인식되어 교회로부터 멀어지고 오해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교종의 권고는 젊은이들에게 도달하기 위해 간과할 수 없는 디지털 환경에 대한 언급도 빼놓지 않았다. 디지털 세계는 사이버 왕따, 포르노그래피의 확산, 성적 목적이나 도박에 의한 착취, 혐오감 조장하는 가짜뉴스의 유통 등이 자리하는 고독, 조작, 착취와 폭력의 영역이며, 교회와 사목자에게 영향을 미치는 현상이다. 교종은 수많은 젊은이들이 이주문제에 직접적으로 연루되어 있는 것도 기억하면서 말했다. “일부 국가에서 이주현상은 정치적 목적으로 이용되며, 두려움을 조장하고 불안을 일으킵니다. 외국인 혐오가 확산되고 있습니다.” 교종은 젊은이들이 다른 젊은이들과 대립이나 반목하도록 조장하는 사람들을 따르지 말라고 요청했다. 또한 미성년자 성학대에 대한 주제도 다뤘다. 교종은 자신들이 겪었던 악을 고발하는 용기를 가진 사람들에게 감사하면서 엄중한 예방대책을 채택하기 위한 주교 시노드 책임을 강조했다. “젊은이들의 도움을 통해 이 어두운 시간은 교회를 위해 정말 시대적으로 중요한 개혁을 위한 기회이자 새로운 성령강림에 자신을 열기 위한 기회일 수 있습니다.” 교종은 젊은이들에게 모든 고통스러운 상황에서도 탈출구가 존재한다고 말했다. 특히 공동체 내부에서 진정한 봉헌과 관대한 내어줌의 시간으로 자신의 젊음을 살아가며 자유로움을 유지하고 함정에 빠지지 않으려 노력하는 수많은 젊은이들이 있다는 점도 상기시켰다.

제4장 모든 젊은이들을 위한 위대한 선포

네 번째 장에서 교종은 모든 상황을 넘어 세 가지 위대한 진리로 표명되는 가장 중요한 선포를 제시했다. 첫째, “하느님께서는 여러분을 사랑하십니다.” 둘째, “그리스도께서는 여러분을 구원하십니다.” 그분의 사랑은 우리의 온갖 모순과 모든 연약함보다 더 위대하기 때문이다. 셋째, “그분께서는 살아 계십니다!” “그분께서 살아 계시면 여러분 삶 안에 참으로 현존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매순간 빛으로 채워 주시기 위해 말입니다” 교종의 권고에서 다음 구절을 읽을 수 있다. “만일 이 선포의 아름다움을 온 마음으로 인정하고 주님을 만나기 위해 여러분을 내어 맡긴다면, 만일 그분께서 여러분을 사랑하시고 구원하시도록 여러분을 내어 맡긴다면, 만일 그분과 우정을 맺고 살아계시는 그리스도와 여러분 삶의 구체적인 문제에 관해 대화하기 시작한다면, 이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여러분의 삶을 지탱해줄 근본적 체험이 될 것입니다. 다른 젊은이들에게 전달할 수 있는 체험이기도 합니다.”

제5장 젊음의 길

제5장은 다음의 질문으로 시작된다. “우리가 위대한 복음선포로 변화되고 빛을 받도록 내어맡길 때 젊음을 어떻게 살아낼 수 있는가?” 이 질문은 중요하다. 젊은이로 존재하는 것은 우리가 감사하는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충만하게 살 수 있는 선물이기 때문이다. 젊음이란 지연된 시간으로 남아 있을 수 없다. 교종은 가장 아름다운 꿈은 서두르지 않고, 희망과 인내와 책임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것이므로 불안에 굴복하지 말라고 초대했다. 발코니에서 인생을 바라보는 것으로 그치지 말고, 스크린 앞에서 인생을 보내지 말라고 권고하며 말했다. “자기주장을 말하십시오! 여러분을 마비시키는 두려움을 쫓아내십시오. 살아 있으십시오! 엠마오의 제자들처럼 항상 동반하며 자기주장을 말하면서 여러분의 젊은이다움에 충만한 의미를 부여하시는 예수님과 맺은 우정을 박탈하지 마십시오.” 교종은 성장하기 위해 예수님과의 접속을 항상 유지하라고 권고하면서 신앙을 살기 위한 형제애의 길을 제안했다. 또한 교종은 젊은이들이 가난한 이들과 만나는 사회적 책임을 살아가는 한편 보다 의롭고 형제다운 문화를 향한 변화의 주역이 되라고 초대하면서 세태를 거슬러 어디서든 삶을 통해 복음을 증거하는 용감한 선교사들이 되라고 격려했다.

제6장 뿌리를 내린 젊은이들

“가끔 저는 항상 높은 곳을 겨냥하며 하늘을 향해 가지를 뻗어 올리는 아름답고 젊은 나무들을 봅니다. 그것은 희망의 노래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폭풍이 지난 후 저는 그 나무들이 생명 없이 쓰러져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뿌리가 조금밖에 남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교종은 뿌리 없이는 미래가 가능하지 않고 세대 간 단절이 세상에 결코 유익하지 않다는 신념을 이같이 밝혔다. 아울러 단순히 그들의 약속만 믿을 수 있도록 젊은이들이 뿌리내리지 못하게 하는 조종자들의 존재를 말했다. 교종은 노인들과의 관계가 근본적이지만 이것이 노인들이 말하는 모든 것에 동의하는 것은 아니라고 말했다. 그러나 젊은이들은 노인과 함께 걸어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제7장 젊은이 사목(청년사목)

제7장은 청년사목이 사회적이고 문화적인 변화의 여파로 관습적인 구조 안에서 젊은이들은 종종 그들의 불안에 대한 대답을 찾지 못한다는 사실에서 시작한다. 젊은이들이야말로 인도받고 동반되는 청년사목의 주인공이지만 창의성과 대담함을 통해 항상 새로운 길을 찾는 자유로운 존재들이어야 한다. 청년사목은 하느님과의 만남을 장려하기 위해 유연해야 한다. 이를 위해 두 가지 큰 행동지침을 따라야 한다. 먼저 주님에게 응답할 마음의 준비가 된 젊은이들을 찾아 모으고 성장시켜 나가는 것이다. 이에 대해 교종은 ‘마음을 건드리는 가까움의 언어, 공명정대한 사랑의 언어’를 우선시해야 하며 살아계신 예수 그리스도와 하느님 사랑에 대한 개인적 체험을 심화시키도록 도와주는 시간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한 젊은이들은 공동체를 이루어 타인에게 봉사하며, 가난한 이들 가까이에 머물도록 도움을 받아야 한다. 성장과 관련해서는 젊은이들에게 전달해야 할 교리내용의 분량을 초과하지 말고 그리스도인의 삶을 유지시키는 큰 체험들을 불러일으키고 뿌리내리도록 권고했다. 특히 교회 교육기관들은 적절하고 환대하는 환경이 마련돼야 하며, 외부의 오류로부터 방어하는 ‘벙커’로 변화된 학교를 경계했다. 교육의 목표는 무엇보다 굳건하고 통합적이며 내어줄 수 있는 사람을 양성하는 것이어야 한다. 교종은 사목적 발전분야 가운데 예술, 스포츠, 피조물 보호를 위한 책임을 강조했다. 과도한 규정과 틀이 없는 대중적인 청년사목이 필요하다. 세상과는 거리가 멀고 모든 더러움에서 보호되는 추상적 개념으로 특징을 이루고 순수하며 때 묻지 않은 젊은이 사목만을 지향한다면 복음을 젊은이 문화에서 분리시키고 떼어놓으며, 이해할 수 없는 무미건조한 제안으로 축소시키기 마련이다.

제8장 성소

주님께서는 각자를 위한 놀라운 계획을 갖고 계시며, 이를 실현하기 위해 있는 그대로 모든 것을 발전시킬 필요가 있다. 각 사람을 위한 두 가지 근본적인 환경은 ‘가족의 형성’과 ‘노동’이다. 교종은 젊은이들이 사랑으로 부르심 받았음을 강하게 느끼고 하나의 가족을 형성하는 올바른 사람을 만나기를 꿈꾼다고 했다. 성(性)은 선물로 자신을 사랑하고 생명을 낳는 두 가지 목표가 있다. 교종은 호소했다. “어려움이 많더라도 가족에게 순종할 필요가 있습니다. 저는 여러분을 신뢰합니다. 이 때문에 혼인생활을 선택하는 여러분을 격려합니다. 그러나 꿈을 포기하지 말고 하느님께 봉헌된 삶을 고려해 보십시오” 교종은 노동과 관련 젊은이들이 경험한 소외를 고발하고 청년실업을 극복하며 책임 있는 정책을 호소했다. “일 없이 살아갈 수는 없고, 때때로 찾게 되는 일자리를 받아들여야 하는 것도 사실이지만 결코 여러분의 꿈을 포기하지 말고, 성소를 결정적으로 묻어버리지 마십시오. 왜 사제와 수도자의 삶을 제외시킵니까? 확신을 가지십시오. 혹시라도 하느님의 부르심을 깨닫는다면 그 길을 따르십시오. 그 삶은 여러분 삶에 충만함을 부여하는 일이 될 것입니다.”

제9장 식별

교종은 성소를 발견하는 것은 고독과 침묵의 공간이 요구되는 과제이고, 개인적인 결단이라고 강조했다. 따라서 이성을 넘어 식별해야 한다. 교종은 이 여정에서 젊은이들을 도와주는 사람은 세 가지 민감성이 요구된다고 말했다. 그 사람에 대한 관심과 경청, 은총과 유혹을 구분하고 진리를 거짓으로부터 구별할 줄 아는 능력과 상대방이 정말 어떤 길을 가고 싶어 하는지에 대한 이해다. 교종은 가야 할 길을 강요하지 말고 성소에 대한 마음을 불러일으키며, 그 과정을 동반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교종의 권고는 자신의 염원을 담아 다음과 같이 마무리됐다. “사랑하는 젊은이 여러분, 느리게 걷고 소심한 사람보다 더 빨리 달리는 여러분을 보면 저는 행복할 것입니다. 교회는 여러분의 도전, 통찰과 신앙이 필요합니다. 우리가 아직 도달하지 못한 곳에 여러분이 이미 도착했을 때, 우리를 기다려 줄 인내심을 보여 주십시오.”

장기풍(스테파노)
전 <평화신문> 미주지사 주간
2006년 은퇴. 현재 뉴욕에 사는 재미동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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