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 있는 노래랑 아이들이랑 - 11]

새봄이 되고 나서 다나와 내가 자주 나누는 대화.

"엄마, 나 많이 컸어?"

"응, 진짜 많이 컸지. 다나 이제 혼자서 쉬도 할 수 있잖아. 밭도 안 밟고, 복실이 물도 주고, 혼자 옷도 잘 입지?"

"맞아, 나 많이 컸어. 다랭이 오빠랑 다울이 오빠도 컸어?"

"그럼, 오빠들도 많이 컸지. 날마다 쑥쑥 키도 크고 으랏차차 힘도 세졌어."

"다나도 힘 세졌는데...."

그러고는 나를 들어 올리겠다고 끙끙 힘을 쓴다. 내가 애써서 들리는 시늉을 하면 다나는 좋아서 어쩔 줄을 모른다. 이러다가 언젠가는 나를 진짜로 번쩍 들어 올리는 날이 오겠지. 지금까지 자라난 속도를 보건대 아마도 그날이 멀지만은 않은 것 같다. 날마다 고만고만한 것 같아도 지나고 나면 눈 깜짝할 새가 되고 마는 지난날이여....

그러고 보면 나는 지난 십여 년 동안 다울이부터 시작해서 다랑이, 다나까지 꾸준히 아이들의 성장을 목격하고 있다. 누워서 발가락을 빨고 놀던 아이가 어느 날부터 뒤집기를 하고, 강아지처럼 기어 다니는가 싶더니 일어나 걸음마를 배우고, 입혀 줘야 옷을 입던 아이가 혼자 옷을 입고 신발을 신고, 그렇게 내 품에서 조금씩 조금씩 떠나가는 순간들을 마주하고 있다. 이제는 배고플 때나 싸움이 났을 때라야 엄마를 찾을까 저희들끼리 얼마나 잘도 노는지.... 아이들 노는 모습을 지켜보며 우리 집에 놀러온 앞집 할머니가 그러신다.

"다 키왔다. 언제 클까 심란하더만 폴싸 커블었네. 인자 집이도 애들 냅두고 꼬사리 끊으러 다녀."(할머니에게 자유부인의 표상은 여기저기 쏘다니며 고사리 끊는 낙을 누리는 것!)

"고사리는 애들이 더 잘 끊어요. 애들 데리고 다녀야 더 많이 끊는다니까요."(나한테 자유부인의 표상은 애들 부려 먹기?)

사인 공책의 한 장면. 잘 보면 '너의 이름을 불러 줄게'를 만든 '부순정' 님의 이름도 보인다. ⓒ정청라

그런데 말이다. 최근에 나는 아이만 자라는 게 아니라 노래도 자란다는 걸 알았다. 혹시 내가 지난 3월 초에 연재한 글(제주도 친구들을 위한 노래 선물 꾸러미를 준비하며)을 기억하시는지? 호원정대를 꾸려 제주도 천막촌 친구들을 응원하러 간다던 그 글 말이다. 사실 당시에 노래 선물 목록을 준비하면서도 내 성격에 이걸 제대로 전하고 올 수 있을지 자신이 없었다. 낯선 곳에 가서 노래 선물을 하다니, 기특하고 갸륵하지만 어떤 현실을 만날지 예측할 수 없는 노릇! 하지만 호랑이를 못 잡으면 고양이라도 잡겠지 하는 심정으로 큰 꿈을 품고 제주도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더랬다. 그래서 그 다음엔 어떤 일이? 모든 이야기를 다 할 수는 없을 것 같고, 두 번째로 도청 앞 천막촌을 방문한 날의 이야기를 더듬더듬 전해 볼까 한다.

그날 나와 아이들은 함께 간 일행과 따로 떨어져 (천막촌의 천막들 가운데) 식당 천막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밖이 하도 시끄러워서(도청 앞에 한국노총 사람들이 나와서 영리병원 문제로 집회와 기자회견 같은 걸 하고 있었음) 상대적으로 따듯하고 아늑한 곳에 피신해 있었던 것이다. 점심시간이 지나서인지 천막 안엔 아무도 없었고 나와 아이들뿐이었는데 조금 뒤에 밖에서 장작을 넣어 불을 지피고 계시던 아저씨 한 분이 들어와 "얘들아, 너희 한라봉 좋아하니?" 하시며 한라봉 한 봉지를 주고 가셨다. 다른 어떤 분은 식당에 있는 건 뭐든 먹어도 된다고 이것저것 찾아 먹으라고도 하셨다. 빵, 잼, 사과.... 배고프면 밥도 있고 반찬도 있고.... 그 말씀에 얼어 있던 몸과 마음이 조금씩 녹으며 천막촌이 편하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밖이 아무리 춥고 시끄러워도 천막 안은 따듯하고 배부르다! 노래라도 부르며 놀고 있자 싶어서 리코더를 꺼내 들고 불기 시작했다. 아이들은 먹고 마시고 까불며 놀았다.

그러다가 늦은 점심을 먹으러, 또는 차를 마시거나 간식을 먹으러 들어오는 천막촌 사람들을 하나둘 마주치게 되었다. 어떤 분일까, 이곳에서 어떤 활동을 하고 계실까 궁금했지만 초면에 질문을 퍼부을 수도 없는 노릇이고 가만히 눈인사만 나누었는데, 문득 다울이의 사인 공책이 떠올랐다.(다울이는 주위 사람들의 사인을 모으는 취미를 갖고 있음.)

"다울아, 여기서 만나는 분들한테 사인을 받자. 한 분 한 분이 다 훌륭한 분이니까. 그리고 사인을 해 주시면 그 보답으로 우린 노래 선물을 드리는 거야."

"좋아!"

지난 3월 28일 제주 도청 앞 천막촌에서 열린 '공항 말고 합창' 행사에서 많은 이가 모여 이 노래를 불렀다고 한다. ⓒ정청라

그렇게 해서 사인&노래 대작전이 펼쳐졌다. 갑자기 사인을 해 달라니 황당하셨을 텐데 아이들의 부탁에 흔쾌히 사인을 해 주시고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말문이 열리며 몇 마디씩 이야기를 주고받을 수 있었다. (물론 사람에 따라 "사인을 받는다고? 나한테?" 하며 깜짝 놀라 달아나는 분도 계셨지만....) 또 답례로 노래를 불러 드렸을 땐 다들 기뻐해 주셨다. (이때 노래는 우리가 준비해 간 노래 선물 꾸러미에서 무작위 선별, '조아해'라는 이름의 앳된 아가씨를 만나 아해 씨를 위한 노래라며 '좋아해' 노래를 불러 주기도 했다.) 얼마나 반응이 좋았는지 '노래를 듣고 싶으면 식당 천막에 가서 사인을 해 주라'는 소문을 듣고 일부러 다른 천막에 있다가 식당으로 찾아오는 분까지 생길 정도! 그뿐인가. 그걸 계기로 우리 노래가 알려져 다음 날 집회 현장에서 방송국 카메라를 앞에 두고 작은 공연을 하기도 했다.

더 놀라운 일은 우리가 집에 돌아오고 얼마 뒤, 제주에서 새로운 노래가 하나 배달되었다는 사실이다. 좀더 정확히 말하면 우리가 선물로 들고 갔던 노래가 새로운 날개옷을 입고 훨씬 뜻깊은 곡이 되어 다시 흘러온 것이다. 곡명은 '너의 이름을 불러 줄게'!

노랫말을 받자마자 덧붙여진 2, 3, 4절을 불러 보았는데 목구멍이 뜨거워지는 느낌이 들어서 몇 번이나 침을 삼켰다. 제주도 천막촌 여행에서 내가 느낀 가슴 절절함이 다시금 피어오르며 조금씩 잊히고 있던 그 마음들을 되새기게 되기도 했다. 내가 도저히 따라갈 수 없는 세상까지도 노래는 흘러가는구나, 흘러가서 자라나고 그래서 다시 흘러오는구나.

참 신기하다. 자식 키우는 거랑 노래 키우는 게 어쩜 이렇게 똑같은지 모르겠다.

 

정청라

인생의 쓴맛 단맛 모르던 20대에 누가 꿈이 뭐냐고 물으면 '좋은 엄마가 되고 싶다'고 대답했다. 하지만 막상 엄마가 되고 1년도 채 안 되어 좋은 엄마는커녕 그냥 엄마 되기도 몹시 어렵다는 사실을 깨닫고 '좋은 엄마'라는 허상을 내려놓았다. 그 뒤로 쭈욱 내려놓고, 내려놓고, 내려놓기의 연속.... 이제는 살아 있는 노래랑 아이들이랑 살아 있음을 만끽하며 아무런 꿈도 없이 그냥 산다. 아이를 기른다는 것은 '스스로 길이 된다는 것'임을 떠올리며 노래로 길을 내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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