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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생 쇼크

기사승인 2019.04.22  16:0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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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욜라 즐거운 육아일기 - 94]

새벽 6시에 일어났는데도 어김없이 늦었다. 아이들을 학교에 내려 주고 가는 출근길. 오늘도 지각을 하느냐 마느냐다. 이렇게 된 거 연가를 내고 잠깐 놀러 가는 게 낫지 않을까, 갈등하면서도 열심히 달려왔더니, 어쨌거나 세이프. 아직은 9시 전이다. 다급히 컴퓨터를 켜고 숨을 고른 뒤, 아까부터 일했던 사람처럼 진지하게 앉아 있는데, 남편한테서 문자가 왔다. 집을 치우다가 메리의 일기장을 보았단다. 일기장을? 남편은 아이들의 현재 모습에 초점을 맞추는 스타일로 아이의 사생활에 대해선 그리 궁금해 하지도, 캐려 하지도 않는 인물이다. 늘 내가 흥분에 차 걱정을 늘어놓을 때도 먼 산 불구경하듯 평정심을 유지해 오던 그였다. 그러니 일기장을 일부러 들추어 볼 리는 없다. 오늘따라 집을 치우고 나가려고 작정한 남편의 눈 앞에 버젓이 펼쳐진 메리의 일기장이 보였단다. 무심코 덮기에는 공책 두 장에 걸쳐 빼곡하게 적혀 있는 메리의 필체와 필압에서 심상찮은 아우라를 느꼈고, 자신도 모르게 도입부를 읽었다는 것이다. 메리의 일기장은 이렇게 시작하고 있었다. “일기장아! 일기장아! 내 마음을 알아 줘!” 도대체 메리의 마음이 어떻기에?

나는 남편이 보내 준 메리 일기장 사진을 확대해 가며 읽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빼곡하게 두 페이지에 걸쳐 써 내려간 일기의 핵심 구절은 이랬다.

“오늘 효재네 집에 놀러갔는데 효재 동생이 달려와 내게 안겼다. 너무 사랑스러웠다. 효재 동생은 애교도 부리고 말도 잘 듣고, 무엇보다 ”효재 언니가 제일 좋아. 언니가 제일 잘해.“라고 말해 준다. 그런데 내 동생들은 그렇지 않다. 욜라와 로는 내 말을 전혀 안 듣는다. 특히 욜라는 나한테 ‘누나’라고 하지 않고 ‘야, 바보야.’ 하거나 ‘메리! 메리!’라고 이름을 부른다. 착한 동생을 둔 효재가 부럽다. 나는 속상한 마음을 다른 사람들에게 이야기하고 싶었다. 그래서 말했는데 엄마는 동생을 존중하라고만 하고, 선생님은 믿지 않는 눈치고, 친구들은 이해를 해 주기도 하고, 어떤 친구는 이해를 못한다. 효재는 나를 이해 못해 준다. 왜냐하면 효재는 착한 동생을 두었기 때문이다.”

며칠 전 메리가 효재네 집에 놀러 갔다 온 날이 떠올랐다. 힘든 환경 속에서도 꿈을 잃지 않고 살아가는 지구촌 친구 A군에게 영상으로 보내 줄 춤 연습을 한다고 했다. 친구 집에서 춤을 추고 왔노라던 바로 그날 저녁, 메리가 내게 말했었다. 아주 뜬금없이.

“엄마! 나 여동생 낳아 줘!”

잘못 들었겠지 하고 귀를 후비고 있는데 메리의 확실한 음성이 들렸다.

“엄마, 나도 착하고 내 말 잘 듣는 여동생 갖고 싶어. 응? 그러니 낳아 줘!”

나는 순간 잡고 있던 운전대를 놓칠 뻔했다.

메리는 정녕 진심인가. 메리야, 왜 그래?

메리는 효재 동생(여동생만 두 명)을 만나고 충격을 받았다고 했다. 이 세상에 그렇게 착하고 예쁜 동생들이 있는 줄 몰랐다고 했다. 자기 말을 잘 듣고, 자기 편이 되어 주는 동생이라니.... 너무 행복할 것 같아. 하면서 메리는 나를 졸랐다. 동생으로 인해 힘든 자신의 불행한 처지의 주된 이유가 동생 성별이 남자여서 그런 것 같으니, 나 보고 여자동생을 낳아 달라는 것이다. 메리 목소리는 좀 화가 나 있는 듯도 했고, 여차하면 울 것처럼 떨리고 있었다. 하지만 내 맘은 더 떨렸다.

“아니야. 메리야, 너도 알잖니? 어떻게 엄마가 동생을 또 낳아? 못 낳아. 안 돼. 엄마는....”

하며 말을 못 이었던 기억이 난다.

거품놀이 하는 메리. ⓒ김혜율

그러고도 메리는 한동안 바람직한 동생상을 떠올리며 자신의 신세를 한탄했다. 눈치없이 욜라, 로가 자신을 방해하거나, 자꾸 시비를 걸면, “엄마, 얘들 정말 왜 이래? 왜 이러는 거야?” 하고 나도 답을 잘 모르는 질문을 던지며 못 견뎌 했다. 동생쇼크를 받은 메리는 가시처럼 뾰족해졌다.

“엄마! 쟤 진짜 미친 것 같아.” 어느날 저녁 메리는 씩씩대며 나한테 달려왔다.

두서없이 날뛰고 낄낄대며 방정맞게 구는 욜라는 내가 봐도 그래 보이긴 했다. 하지만 순간 엄마마저 미쳤다고 하면 욜라가 받을 상처를 떠올리며 마음을 다잡아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욜라가 잘 클 수 있다면, 이 순간을 이겨 내면 되는 것이다.

“메리야. 욜라가 저래 보여도.... 미친 건 아니란다.”

메리는 말이 없다. 할 말이 딱히 있지는 않을 것이다. 제 동생이 미치지 않았다는 건 누나로서도 다행스러운 일일 테니까.

“욜라가 저러는 이유가 있어. 미친 건 아니고....”

다음 말을 기다리는 메리에게 나는 차분하게 말했다.

“유전이야.”
“유전?”
“응. 저기 아빠를 보렴.”

노트북에 코를 박고 작업을 하던 남편이 잠깐 우리를 쳐다본다. 어깨를 으쓱하며 미소를 날려 주었다.

“메리야, 아빠도 어릴 때 욜라랑 똑같았대. 아빠가 엄마한테 그랬어. 어릴 때 저랬다고. 그런데 아빠 지금은 안 그러시잖니. 멀쩡하게 잘 살아가고 계시지?”
“으응....”

“그래~! 아빠처럼 욜라도 멋진 어른이 될 거야. 지금은 자기도 모르게 유! 전! 때문에 그런 행동이 나오는 거거든. 엄마가 욜라한테 물어봤거든? 왜 그러냐고. 그랬더니 자기도 모르겠다고 하더라고. 바로 유! 전! 때문인거지. 그러니 메리 너도 그러려니 해 줘라. 나중엔 안 그런다니까....”

독거미놀이 하는 욜라와 로. ⓒ김혜율

그렇게 메리를 이해시켰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던 거다. 메리는 분명 일기에 이렇게 적어 놓았다. “엄마는 동생을 존중하라고만 하고.... (중략) 나는 그럴 수가 없다.” 메리가 유전의 신비를 언제쯤 알게 될는지 모르겠지만, 지금은 욜라보다 메리를 이해해 주는 게 우선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남편도 바로 그런 생각을 했기 때문에 내게 메리의 일기장을 보내 주었을 것이다. 안쓰러운 메리.... 여동생을 둔 친구들과 비교하면 유년시절 복지?에서 차이가 많이 나는 건 분명하다. 나만 해도 어릴 때 한 살 차이 여동생하고 같이 놀았던 즐거운 추억이 가득하다. 미술학원놀이, 큰엄마와 작은엄마 놀이, 황금다방 놀이, 사람의 일생 놀이, 과자가게 놀이 등등.... 우리가 함께 했던 놀이들은 정말 최고였다. 성격은 달라도 성별이 같았기에 공통된 놀이 취향을 가졌고, 때문에 재미를 더 섬세하고 넓게 확장시켜 나갈 수 있었다. 

그런데 우리 메리는 어떤가. 욜라랑 로가 둘이 치고 박고 싸움놀이 하는 데 끼일 생각이 1도 없어 차라리 책을 읽는다고 했다. 팽이놀이도 몇 번 해 봤지만 언제나 싸움으로 귀결되는 놀이에 염증을 느낀 지 오래라고 했다. 메리의 일기를 읽은 그날 저녁, 집으로 오는 차 안에서 욜라와 로가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똥노래, 오줌노래를 부르는 속에서도 메리는 조용했다. 누가 더 더럽고 웃긴 노래를 부르는지 내기를 하는 난장판 속에서 메리만은 고결해 보였다. 얼굴을 찡그리지도 않고, 동생들을 비난하지도 않는 메리의 내공에 놀랐고, 한편으로는 메리의 쓸쓸한 심정이 느껴져 가슴이 찡해졌다. 나는 가만히 마음으로 메리를 응원해 주었다.

‘메리야, 하지만 엄마는 여동생은 무리야. 암 무리고 말고. 지금 현재 외로운 건 너의 숙명인 것 같다. 세상일이 그런 것 아니겠니. 모든 걸 다 가질 수는 없어. 또 어떤 일이라도 무조건 좋지도, 또 나쁘기만 한 것도 아니니까. 비록 지금은 속상하기만 해도 남동생들이라서 좋은 점도 분명 있을 거야.’

자, 그래 놓고 나도 돌아서서 잊어버렸다. 완전히 잊고서 한탄하고 걱정한다.

‘쟤는 왜 저럴까? 대체 왜 자꾸 이럴까? 왜 내 말을 안 듣는 것일까?’라고 화를 내다가.

‘왜 미운 짓만 골라 할까? 남들한테 미움받으면 어쩌려고. 자신마저 미워하면 어쩌려고.’라며 걱정을 하는 것이다.

로의 유치원 상담부터, 욜라와 메리 학교 학부모상담을 앞두고서도, 그래서 자신이 없었다. 선생님과 무슨 말을 나눠야 할까. 과연 메리와 욜라와 로는 유치원과 학교에서 잘 지내고 있을까? 누구보다 우리 아이들의 부족함을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나는 상담 일이 마냥 기다려지지만은 않았다. 과연 세 아이들의 상담 때는 어떤 일이 일어났을까? 선생님은 어떤 놀랄 만한 이야기를 들려주었을까?

바로 다음, 메리의 동생쇼크에 맞먹는 엄마인 나의 ‘자녀쇼크’ 이야기가 이어질 예정입니다.

 
 

김혜율(아녜스)
(학교에서건 어디에서건) 애 키우는 거 제대로 배운 바 없이 얼떨결에 메리, 욜라, 로 세 아이를 낳고 제 요량껏 키우며 나날이 감동, 좌절, 희망, 이성 잃음, 도 닦음을 무한반복 중인 엄마. 워킹맘이다. 다행히 본인과 여러 모로 비슷한 남편하고 죽이 맞아 대체로 즉흥적이고 걱정 없이 살고 있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김혜율 editor@catholic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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