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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는 선을 넘은 베네딕토 16세 전임교황

기사승인 2019.04.22  18:3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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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가 스스로 했던 침묵서약 깬 것은 처음이 아니다

(로버트 미켄스, 로마)

지난 며칠간 바티칸에서는 몇 가지 중요한 일이 일어났다.

그중에는 프란치스코 교황이 9인 추기경위원회와 만나 교황청 개혁에 관한 초안을 전 세계의 주교와 신학자들에게 보내 검토와 추가 제안을 받기로 결정했다는 것이 있다.

또 인신매매에 관한 고위 모임도 있었는데, 프란치스코 교황은 인신매매라는 이 현대 형태의 노예제를 “인류에 대한 범죄”라고 불렀다.

그리고 프란치스코 교황은 바티칸에서 2일간 있었던 남수단 지도자들의 피정에서 연설을 한 뒤, 무릎을 꿇고 이들의 발에 입을 맞추며, 진심으로 평화를 위해 일해 달라고 청했다. 남수단은 최근 정부와 반군 사이에 평화협정을 준비하고 있는데, 인구 대다수가 그리스도인이고, 이번 피정에는 양측 지도자가 참여했다. 피정은 성공회 수장인 캔터베리 대주교가 추천했다.

그런데 이런 모든 일은 베네딕토 16세가 길고 문제 많은 한 편지를 공개한 데 비하면 작은 일이었다.

이 편지에서 베네딕토 16세 전임교황은 교회 안의 성학대 문제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밝혔는데, 1960년대에 있었던 성혁명, 그리고 제2차 바티칸공의회(1962-65) 뒤에 하느님(과 성체성사)에 대한 존경심과 윤리신학이 무너진 데 큰 원인이 있다고 하는 것이 큰 줄거리다. 그는 또한 공의회 뒤 몇년간에 여러 신학교에 동성애가 판치게 된 것도 비난했다.

이 편지는 원래는 (그의 고국인 독일) 바이에른의 한 작은 교회 매체에 4월 11일자로 실릴 원고였는데, 그에 몇 시간 앞서 4월 10일에 주의 깊게 번역된 영어본이 이미 여러 보수파 가톨릭 웹사이트에 실렸다. 이 사이트들은 프란치스코 교황을 매우 비판하던 곳들이다.

 

라칭거, 자신의 침묵 서약을 깨다

이 편지에 관한 한 기사는 “베네딕토 교황, 6년에 걸친 침묵 깨고 교회 성학대 추문 언급”이라고 제목을 잡았는데, 수많은 기사에서 흔히 보이는 제목잡기 모습이다.

하지만, 정확히 말하자면, 그가 2013년 2월에 교황직에서 사퇴한다고 발표한 직후 “세상으로부터 은둔”해 (세상일과 교회 일에) 입을 열지 않겠다고 스스로 서약한 것을 깬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실제로는 그는 교황직에서 사퇴하고 은둔한 지 겨우 6달 만에 다시 세상에 나왔다. 그리고 그 뒤로 여러 번 그래 왔다.

첫 번째는 2013년 9월이었다. 한 교회 밖 수학자가 라칭거가 1968년에 쓴 고전적 저작인 “그리스도교 입문”을 공격하는 책을 썼고, 그는 이 수학자에게 긴 반박문을 보냈다.

많은 사람이 진짜로 놀란 것은, 그가 그 수학교수에게 그 편지를 공개해도 좋다고 승낙해 줬다는 점이었다.

베네딕토 16세 전임교황. (사진 출처 = La Croix)

전통주의자 부추기고 후계 교황에게는 경고

이어 2014년 10월에 베네딕토 전임교황은 적어도 4번 넘게 (교회 일에) 간섭했다.

그는 (성공회의 요소들을 지닌 채 가톨릭으로 넘어온) 성공회 성직자치단에 속한 이들, 그리고 트리엔트식 미사를 제한 없이 하고자 하는 이들을 고무하는 글들을 써 보냈다. 둘 다 그가 교황 재임 시절에 주도한 것으로 여러 논란이 많았다.

그는 또한 자신의 신학적 저술을 널리 퍼뜨리기 위해 2010년에 자신의 허락을 받아 설립된 한 교황청 재단에도 펜을 들어 편지를 썼다.

같은 달에, 그는 우르바노 대학이 대강당의 이름을 자신의 이름을 따 바꾸는 기념식에 1800 단어에 이르는 강연 수준의 글을 써 보냈다. 당시 그의 개인비서인 게오르크 겐스바인 대주교가 그를 대신해 그 강연문을 낭독했다.

“은퇴한 교황 베네딕토 16세는 다른 종교들과의 대화는 비그리스도교 문화권에 복음을 전파하는 것을 전혀 대신할 수 없다고 말하고 종교적 진리에 관한 상대주의적 사고는 ‘신앙에 치명적’이라고 경고했다”는 것이 당시 <CNS>가 그 내용을 요약한 바다.

별로 부드럽지 않은 이 경고는 당시 프란치스코 교황이 교황직무의 주요 초점 가운데 하나로서 다른 종교, 특히 이슬람인들과의 대화와 만남을 촉진하기 시작했던 것을 겨눈 것이었다. 하지만 이것이 개입에 해당됐을까?

 

주교시노드에 말참견하기

<아이리시 타임스>는 2014년 11월에 “베네딕토 교황이 지난해 깜짝 사퇴했을 때, 그는 후임 교황의 교회 일처리에 적극 역할을 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고 보도한 바 있다.

그리고 이 글은 “하지만 그는 (이번에) 자신이 1972년에 쓴 글을 고쳐 써서, 지금 다시 일고 있는바 재혼한 가톨릭 신자와 이혼자가 성체성사에서 배제되어야 하는가를 놓고 다시 일고 있는 논란에 손을 댐으로써 바로 그렇게 개입하고 있을 수도 있다”고 강조했다.

이 문제를 놓고 주교시노드는 2014년과 2015년 두 번 열렸는데, 베네딕토 교황이 그렇게 했던 것은 첫 번째 시노드가 막 끝났을 때였다.

1972년에 처음 썼던 논문에서, 요제프 라칭거(베네딕토 16세가 교황이 되기 전의 본래 이름)는 이혼 후 재혼한 이가 성체성사를 받도록 허용될 수도 있는 일부 상황을 검토하면서 그 신학적 이유들을 제시했었다. 하지만 2014년에 개정한 글에서 그는 그런 가능성을 일체 반대했다.

그리고 두 차례의 시노드가 끝난 뒤, 프란치스코 교황은 시노드 후속 교황권고인 ‘사랑의 기쁨’에서, 비록 명백히 인용하지는 않았지만, 여러 가지 점에서 라칭거의 원래 (1972년) 제안들을 채택했다.

 

의심하는 추기경들에게 지원

이는 항의들을 유발시켰고 추기경 4명이 프란치스코 교황에게 서한을 보내(고 공개해) ‘사랑의 기쁨’에 담긴 5가지 사항의 정통성에 관한 자신들의 질문서(dubia, 두비아)에 답할 것을 요구하기에 이르렀다.(편집자 주- 프란치스코 교황은 이런 보기 드문 행동에 답하지 않음으로써 응수했다.)

질문서 작성자 가운데 한 명으로 베네딕토 교황의 가까운 친구인 요아힘 마이스너 추기경(독일 쾰른 대교구)이 2017년 7월에 죽었을 때, 그는 다시금 침묵을 깨고 겐스바인 대주교를 장례식에 보내 조문 메시지를 대독하게 했다.

이 메시지에서, 그는 마이스너 추기경을 칭송한 뒤 이렇게 말했다. “그 무엇보다 내가 감동했던 것은, 그의 생애 이 마지막 시기에, 주님은 심지어 배가 물을 너무 많이 실어 뒤집힐 지경일 때도, 그분의 교회를 저버리지 않는다는 강한 확신을 갖고 편하게, 그대로 사는 법을 배웠다는 점이었다.” “(마이스너의) 저런 발언들 속에서 많은 이들이 교회가 현재 위태한 상태에 있다는 데 베네딕토가 동의하고 있음을 알아봤다.”

이런 발언은 이혼과 재혼을 비롯해 여러 문제에 관해 프란치스코 교황을 비판하는 가톨릭 신자들의 귀에는 흥겨운 음악이었다. 이들은 전임교황에 대한 충성을 강화하고 그를 이용하여, 때로는 그가 명시적으로 부추기지 않을 때에도, 현재의 교황을 반대하는 자신들의 입장을 합법화했다.

 

황당하고 개인적으로도 손해인 선언

하지만 라칭거가 이번에 교회 안의 성학대 문제에 관해 편지를 낸 것은 마이스너 추기경의 장례를 위해 이런 송덕문을 쓴 것과는 전혀 비교가 안 될 정도로 큰일로서, <NCR>의 마이클 숀 윈터스는 이 일이 아주 많이 잘못된 것으로 “황당”하다고 했는데, 맞는 말이다.

윈터스는 이 편지가 “베네딕토 전임교황의 명성에 해만 끼칠 뿐인 유감스런 문서”라고 했다.

“베네딕토 교황은 프란치스코 교황이 지난 2월에 소집한 성학대에 관한 (전 세계) 주교회의 의장단회의 참석자들과 자신의 생각을 나누고자 계획했던 것이 분명하다.”

베네딕토 교황은 그 편지에서 “그래서, 그 회의 소집이 발표된 뒤, 나는 몇 가지 메모를 정리해서 이 어려운 시기에 도울 수 있는 한두 마디를 기여할 수 있기를 바랐다”면서, 이게 “새 시작에 기여”할 자신의 방식이라고 했다.

이에 대해 윈터스는 “하지만 그 편지에는 새로운 것이 전혀 없다. 반대로, 베네딕토 전임교황은 교회 안의 성학대의 원인에 대한 ‘설명들’을 되풀이했을 뿐인데, 그것은 (교회 안) 소수만 알던 것이다가 이제는 이미 다 폭로된 것들이었다.”고 지적했다.

 

모든 책임 부인

게다가, 성직자 사이의 성학대 현상에 대한 요제프 라칭거, 곧 베네딕토 16세의 견해와 행동들은 잘 알려져 있는 상태다. 무엇보다도, 제2차 바티칸공의회 이후의 영역에서 교회의 가르침과 활동에 그보다 더 가까이서 직접 영향을 끼친 주교나 신학자는 아무도 없다.

그는 처음에는 1982년에 교황청 신앙교리성 장관으로 임명되면서, 이어서는 로마 주교, 즉 교황이 되면서(2005-13) 바티칸에서 죽 살고 있다.

성학대의 원인들과 잘못된 처리들에 대한 그의 생각을 알고 싶은 사람이 있으면 그가 2010년 3월에 (성직자에 의한 성학대 문제로 충격에 빠진) 아일랜드 신자들에게 보낸 사목교서를 읽어 보기만 하면 된다.

그 편지에서 그는 이번 새 편지에서처럼, 성학대 위기를 잘못 처리한 데 대해 아무런 직접 책임도 지지 않았다. 교황청에도 아무런 탓도 돌리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아일랜드 주교들의 어깨 위에 모든 책임을 얹었다.

하지만 라칭거는 실수들을 했다고 아주 드물게 인정한 적이 있다.

그 가운데 하나가 2009년에 전 세계 모든 주교들에게 쓴 편지에서, 교회로부터 떨어져 나간 상태이고 제2차 바티칸공의회에 반대하던 비오 10세회(SSPX)에 속한 주교 4명에 대한 자동파문의 처벌을 자기가 왜 풀어줬는지를 설명한 것이었다. (이 파문 철회 자체도 논란이었지만, 그 4명 가운데 1명이 나치에 의한 유대인 학살은 허구라고 부인하는 인물인 것이 드러났고, 교황청은 베네딕토 16세가 그들의 파문을 철회하고 다시 가톨릭교회로 받아들일 때는 미처 그 사실을 몰랐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그 실수를 인정하면서, 그는 또한 그 잘못으로 비롯된 “항의 사태”와 “슬픔”이 있었음도 인정했는데, 그보다는 그에 대해 불평하는 듯한 모습이 더 강했다. 그 편지는 크게 보아 자기 방어에 아주 치우친 것이었다.

 

프란치스코 교황에 대한 앞뒤 다른 칭송

이번에 성학대 문제에 관해 새로 나온 편지도 마찬가지다.

그는 1970-80년대에 신학생들이 자기 책을 읽지 못하도록 억압당했다고 불평했다. 그런데 그가 말한바 (당시 신학교에 널리 퍼졌다는) 그 동성애자 네트워크에 속하지 않았던 3-4명이 이런 사제 양성소들을 맡았던 것이 분명하다.

그리고 그는 요한 바오로 2세가 회칙 ‘진리의 광채’에서 보편적이고 불변하는 절대적 윤리가 있다고 한 생각에 비판적이던 한 독일인 윤리신학자를 공격했는데, 라칭거는 (신앙교리성 장관으로서) 이 회칙을 쓰는 데 많이 기여했었다.

베네딕토 16세는 그 신학자가 요한 바오로 교황의 그 회칙이 나오는 것을 볼 정도로 (오래) 살지 “못한 것은 하느님, 자비로우신 분 덕이었다”고 했는데, 이는 프란치스코 교황이 늘 자비를 강조하는 바를 명백히 모욕적으로 빗댄 것이었다.

하지만 그는 교황청 안에 오래 내려오는 전통적 방법을 써서 프란치스코 교황에게 흠뻑 찬사를 보내는데, 이는 결국은 오로지 프란치스코의 교황직에 은근히 비판의 창을 겨누고, 그의 권위를 슬쩍 손상시키며, 그가 교회를 이끄는 방향에 대해 의구심을 자아내기 위한 것이다.

교황청에 대한 노련한 분석가인 마르코 폴리티는 이렇게 쓴 바 있다. “이 전임교황은 현임 (프란치스코) 교황이 (성학대) 문제를 처리하며 부딪히고 있는 큰 어려움들을 감안해서 침묵을 선택했어야 했다. (그런데 그렇게 하지 않았다.) 가장 힘든 순간에는 꼭대기에서는 오직 한 목소리만 나와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많은 혼란이 생긴다.”

 

베네딕토 교황이 편지를 낸 진짜 이유

실수하지 말라. 그가 이번에 새로 낸 편지의 목적은 교회 안의 성학대 문제를 다루는 데 새로운 안목을 제공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위에서 언급했듯, 그가 말한 것에는 새로운 내용은 전혀 없다.

누가 그로 하여금 이 6000 단어에 이르는 긴 글을 내게 만들었든지 간에, 아마 라칭거는 몰랐겠지만(그런데 그게 진짜로 가능한가?), 프란치스코 교황의 교황직 수행을 흔들려고 일하는 이들을 격려하려는 의도를 갖고 있음은 분명하다.

베네딕토 16세의 친구인 마르첼로 페라 전 이탈리아 상원의장은 <뉴욕타임스>에 이렇게 말했다. “나는 (이 편지를) 이렇게 이해한다. (프란치스코 교황하에서) 스스로 고아처럼 되었다고 느끼기 때문에 지난 수년 내내 그에게 편지를 보내 왔던 전 세계 각지의 평신도와 믿는 이들, 거대한 여론이 보내온 수많은 청에 베네딕토 전임교황이 마침내 응답했다고.”

페라는 “그는, 여러 해가 지난 뒤, 결국 응답했다. ‘나는 여기 있다’고.”라고 말했다. 

페라는 이른바 “독실한 무신론자”에 속하는 보수 정치인인데, 이들은 베네딕토 16세와 그의 교황직이 자신들이 추구하는 신자유주의적 목표를 위한 한 동맹세력이라고 보던 이들이다.

하지만 이 편지는 또한 요제프 라칭거가 자기가 평생 추구했던 논지를 계속해서 주의 깊게 관리하려는 시도이기도 하다.

그는 로마에서 지내는 내내 가끔 엄선된 매체와 거의 책 한 권 분량의 긴 인터뷰를 하는 방식으로 그렇게 해 왔다.

그리고 그런 일은 그가 스스로 침묵 서원을 하고 세상으로부터 은둔하겠다고 결정한 뒤로도 멈추지 않았다.

그는 2016년에 그런 책을 2권 내는 데 참여했다. 하나는 “하느님과 인류의 종”이라는 책으로 이탈리아 언론인 엘리오 게리에로가 쓴 것이고, 다른 하나는 “마지막 대화”로 독일인 페터 제발트가 쓴 것이다. “마지막 대화”는 라칭거가 제발트와 함께 준비한 네 번째 책이다.

하지만 프란치스코 교황은, 대단한 솜씨와 결의로, 교회를 아주 다른 방향으로 움직여 왔다. 그리고 이는 분명 그의 전임자가 남긴 유산에 위협이다.

아마도 요제프 라칭거를 불쌍히 여겨야 할 것이다. 그가 이룬 모든 일들이- 때로는 자신의 생각을 요한 바오로 2세의 생각에 맞추기 위해 신학적 엿가락을 구부려야 하기도 했는데- (이제는) 천천히 꼼꼼히 검증되고 재평가되고 있다.

가톨릭 신자들 가운데 한 작은 소수, 이들은 갈수록 하나의 (소수 신흥종교)처럼 되어 가고 있는데, 이들을 제외한 대중은 그가 역사를 읽어 낸 신학적 방식에 결함이 있음을 발견하기 시작하고 있다.

일부에서는 라칭거의 (신학적) 유산은 그가 언젠가 교회박사로 인정되는 가운데 (교회가 인정하는) 영원한 (진리로) 굳어질 것이라 생각했는데, 지금 보기에는 그저 하나의 각주에나 쓰일 정도로 평가가 떨어질 가능성이 더 크다.

그것은 빨간 벽돌 모양으로 해마다 나오는 교회 주소록인 교황청연감 안에 교황 목록에 *표시로 될 것이다.

이 표시는 그의 교황직 가운데 가장 기억될 모습이 무엇인지 알려줄 것이다. 700여년 만에 처음으로 자발적으로 사퇴한 로마 주교.

그리고 이는 또한 자신이 교황으로 선출된 날 저녁 자신을 “주님의 포도밭을 지키는 겸손한 종”이라고 묘사한 한 남자(베네딕토 16세)가 교회의 새 출발에 진정으로 기여한 점으로 평가될 것이다.

기사 원문: https://international.la-croix.com/news/this-time-benedict-xvi-oversteps-the-line/98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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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 editor@catholic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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