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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 영리화, 악마의 맷돌에 힘없는 이 갈려 죽는다

기사승인 2019.04.29  18:3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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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대교구 정평위, 가톨릭 ‘교회와 세상’ 강연회

의료 영리화를 비판하고 교회의 역할을 묻는 강연회가 열렸다.

천주교 서울대교구 정의평화위원회가 26일 ‘의료 민영화문제와 교회’를 주제로 마련한 강연회에는 사회교리학교 동문 신자와 정평위원, 각 위원회 사제 등 70여 명이 함께했다.

이날 강의는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사무처장 정형준 정형외과 전문의와 서울대교구 정의평화위원회 위원 박동호 신부(이문동 성당 주임)의 발표로 진행됐다. 

먼저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사무처장 정형준 정형외과 전문의가 ‘의료 민영화와 영리병원문제’를 주제로 강의했다.

영리병원은 영리법인이 운영하는 병원이다. 영리법인은 수익사업으로 이윤이 남으면 투자자나 주주에게 분배한다. 한국에서는 의료법상 영리법인은 의료사업을 할 수 없지만, 박근혜 정부가 병원은 비영리로 운영하되 자회사 등을 두고 투자자들이 개입할 수 있게 했다.

그러나 의료법상 의료법인은 병원의 수익을 병원에만 투자해야 하고, 투자자에게도 이윤을 배당할 수 없다. 의료업계가 투자를 해도 더 많은 이익을 가져갈 수 없기 때문에, 영리병원을 통해 이윤을 추구하려 한다는 것이다.

그는 “영리병원이 병원 산업화의 꽃”인 이유는 “영리병원을 통해 의료산업계가 이윤을 극대화하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2015년 12월 박근혜정부가 제주에 국내 첫 영리병원을 승인할 당시, 주요 언론과 전국경제인연합회 등이 영리병원을 허용하면 엄청난 수익이 난다는 여론몰이를 했다고 설명했다. 지난 2018년에도 한국경영자총협회는 영리병원을 허용하라고 정부에 적극 요구했다.

그에 따르면, 이들이 영리병원을 추진하려는 이유는 순이익률이 다른 산업에 비해 훨씬 높기 때문이다. 2006년 기준, 제조업과 서비스업의 이익률이 4-5퍼센트일 때, 2007년 주요 대학병원의 당기순이익률은 가장 높은 경우 25퍼센트(을지대병원)에 달했다.

또한 2008년 아산병원의 매출액은 1조 원을 넘었는데, 이는 한국 상위 기업 60-70위 안에 든다. 자동차, 조선, IT산업 등이 사양화되고, 고령화 시대가 다가오는 시점에서 재벌이 이익을 낼 수 있는 분야로 의료산업에 눈을 돌렸다는 설명이다.

'의료 민영화문제와 교회’를 주제로 26일 서울 명동 가톨릭회관에서 서울대교구 정의평화위원회가 강연회를 열었다. ⓒ김수나 기자

영리병원 도입되면 공공의료 설 자리 잃어

그는 국내 첫 승인된 영리병원(녹지병원)은 제주도민들의 반대로 일단 개원 허가가 취소됐지만, 앞으로 영리병원이 도입된다면 공공의료가 무너지고, 건강과 의료의 대부분이 상품으로 전락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1990년대부터 미국에 영리병원이 계속 늘면서, 정부가 운영하는 공공의료기관이 없어지는 문제가 생겼다”면서 이는 “영리병원이 진료비를 올리면 다른 병원도 함께 올려 공공병원은 수익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왜 그럴까? 환자들은 진료비가 더 싼 곳을 찾지 않을까? 그는 의사와 환자 사이에는 정보의 격차가 커서, 환자는 아무리 고가의 치료라 해도 의사가 권하면 상당 부분 하게 된다고 말했다.

그는 “고가의 로봇 수술이나 비급여 치료 등이 특별히 더 낫지 않은데도 의사가 권하면 좋아 보인다. 이는 다른 병원의 진료비에도 영향을 준다. 거기에 병원 시설을 최신으로 바꿔 다른 병원과 차별화하면, 그렇지 못한 병원에는 가고 싶지 않게 된다”고 말했다.

그는 실제 “한국에서도 공공병원을 대학병원에 위탁한 뒤로 의료비가 폭등했다. 영리병원은 고급 의료 인력을 데려와 높은 임금을 주는데 그에 따른 재원을 환자들이 낸 의료비로 마련하니 의료비가 올라갈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설명했다.

환자의 불안감과 두려움을 이용한 의료 상품화가 곳곳에

그는 영리병원만이 아니라 의료 상품화도 경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학병원 의사들이 매출에 따라 인센티브를 받는 것이 과잉진단과 과잉진료의 원인이 되고, 대형병원에서 건강식품, 기기 등을 파는 것은 건강에 대한 두려움을 상품화하고 의료를 돈벌이로 만든다는 지적이다.

그는 “의료는 불안감에 기생하는 것으로 의사가 권하면 환자는 불안하고 그것에 대한 확신과 정보가 없기 때문에 권하는 대로 하게 된다”면서 손목시계 심전도 측정, 침으로 하는 유전자 검사, 자연치유세포 측정 등을 슬쩍슬쩍 밀어 넣는 의료 상술이 너무 퍼져 있다고 말했다.

정의는 나 좋자고 남의 눈에 눈물 흘리게 하지 않는 것 

두 번째 강의에서는 서울대교구 정의평화위원회 위원 박동호 신부(이문동 성당 주임)가 ‘가톨릭 사회교리에서 바라본 의료 민영화’를 주제로 강의했다. 

박 신부는 사목헌장 '기쁨과 희망'과 “간추린 사회교리”를 바탕으로 도를 넘은 기술주의와 인간중심주의, 개인주의와 실용주의로 너무 많은 생명이 고통받는다고 말했다. 

이런 상황에서 “교회, 성직자, 신앙인의 소임이 중요하다. 성당만 다닌다고 다 되는 것이 아니다. '기쁨과 희망'에서 말한 대로 다양한 제도와 전문분야에 정통하고 그 깊은 정신을 이해하는 사람들이 바로 여러분”이라며 “각자 자신의 영역에서 소임을 다하자”고 강조했다.

여기서 “깊은 정신은 인간의 존엄”이며, “정의의 기본은 나 좋자고 남의 눈에 눈물 흘리게 하지 말라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서울대교구 정의평화위원회 위원 박동호 신부(이문동 성당 주임)가 강의하고 있다. ⓒ김수나 기자

돈에 따라 치료 달리하는 것은 정의를 위협하는 것

그는 의료는 국민의 기본 생활이라 국민의 건강을 지키는 것이 국가의 의무지만, 의료가 영리화되면 국민의 건강이 상품으로 전락하고, 시장에서 의료서비스를 살 수 있는 사람과 살 수 없는 사람이 생겨난다고 지적했다.

이 때문에 “간추린 사회교리”에서도 인간의 존엄성, 재화의 보편적 목적과 가난한 이들을 위한 우선적 선택, 참여와 책임이란 원리에 따라, 인간이라면 누구에게나 필요한 재화를 공공재로 보고 시장에 내맡겨서는 안 된다고 강조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의료는 공공재인가 사유재인가? 이에 대해 그는 “의료서비스가 상품처럼 거래되면, 의료 정보를 잘 모르는 이들은 의사가 하라고 하면 할 수밖에 없다”며 “병원이 달라는 대로 치료비를 낼 수 있는 이는 괜찮지만 그렇지 못한 이는 어떻게 하나”라고 물었다.

그는 현재 국민건강보험 제도로 약값의 상한가가 제도적으로 정해져 있지만, 만약 이것이 사유재가 되면 약값이 아무리 올라도 국가가 개입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이는 사람의 존재를 효용성으로만 평가하는 것으로, 돈 있는 사람만 치료를 받는 상황까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이처럼 “인간의 존재 그 자체가 아닌 소유의 기준으로 모든 사물을 판단하면 정의가 위협받는다”고 말했다.

의료 영리화는 악마의 맷돌에 힘없고 약한 이들이 갈려 죽는 일

그는 현재 한국의 국민 기초생활 보장제도나 건강보험제도가 미흡한 점도 있지만, 적어도 사회적 중개를 통해 삶의 질을 보호하고, 최악으로 떨어지는 것을 막아 주는 장치이자 이웃 사랑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사회교리의 원리와 기본가치에서, 의료 영리화는 악마의 맷돌에 힘없고 약한 이들이 갈려 죽는 일”이라며 “우리 교회는 힘없고 약한 이들의 삶에 치명적 영향을 주는 의료 영리화에 경각심을 갖고 발 벗고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박 신부는 경제적 자유를 절대적인 것으로 보고, 경제는 윤리적 잣대로 평가하면 안 된다고 말하는 이들도 있지만, 경제적 자유는 인간 자유의 한 부분일 뿐이며, 사람과 관련된 모든 것은 선과 악, 윤리적 평가에서 제외될 수 없다고 말했다.

가톨릭계 병원, 경쟁에서 이겨야 한다는 생각부터 깨야 

이어진 질의응답에서는 의료 공공화를 위한 대안과 가톨릭교회의 역할을 이야기했다.

정형준 씨는 한 학기 등록금이 천만 원대에 이르러, 의대생들은 의사가 되면 돈을 벌겠다는 생각만 가득한 상황에서 의료를 공공성으로 인식하는 의사가 양성되기 어렵다고 봤다. 그는 유럽처럼 의사를 무상교육으로 양성해 공익적 기여를 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제안했다.

또한 그는 진정한 비영리병원이 되려면 민간병원들과 경쟁하지 않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현재 서울 성모병원이 민간병원처럼 병상경쟁을 하는 등 경쟁에서 이겨야 더 나은 서비스를 제공하고 우위에 설 수 있다는 인식을 가톨릭계 병원부터 깰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박 신부는 “사회구조의 큰 물결이 의료 산업화로 가는 동안 집요하게 이뤄진 것으로 가톨릭계 병원들도 예외가 아니었다”면서 “교회가 사회적 중재자로서 그 역할을 실행할 수 있도록 뜻을 모으자”고 말했다.

그는 “가톨릭중앙의료원(CMC)에 소속된 병원들이 번 돈으로 무료 자선병원을 운영하자고 교우들이 천만인 서명운동을 한다든지, 구체적 제안과 활동이 필요하겠다"며 "가톨릭계 병원들이 양심을 지키고 성장할 수 있도록 많이 응원해 달라”고 요청했다.

그는 이어 “교회 안의 전례성사, 기도만 신앙이 아니라, 세계 현실 안에서 벌어지는 일도 하느님의 계획을 드러내는 일”이라며 “그 계획에 능동적으로 참여하라는 부름을 받았기 때문에, 사회활동에 참여하는 등 아낌없이 헌신하라 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날 강의는 정평위가 그동안 1달에 1번이나 분기별로 열어 온 ‘가톨릭 교회와 세상 강연’의 하나로, 올해 들어서는 첫 강연이다. 정평위는 올 하반기에 이슈가 될 사회현안에 대해 한 번 더 강연을 계획하고 있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김수나 기자 ssuk316@catholic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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