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복지단체들, "복지법인 책임만 강화"

모든 사회복지시설의 사업자등록증을 시설 명의가 아닌 법인 명의로 바꾸도록 하는 정부의 새 사회복지시설 관리정책이 사회복지법인들의 책임을 너무 강화한다는 비판이 나왔다. 

한국 사회복지시설단체협의회(한단협)와 한국 종교계사회복지협의회(한종사협)는 7일 정책토론회를 열고 지난 1월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2019 사회복지시설 관리안내(관리안내)가 현실성이 없다고 지적했다. 이 자리에는 300여 명이 참석했다. 

‘관리안내’는 보건복지부가 각 지자체 담당 공무원의 업무편의를 위해 매년 작성하며, 사회복지시설 신고, 설치, 운영 및 관리 등에 관한 기본 사항을 담은 매뉴얼이다.

이날 발제자인 보건복지부 사회서비스자원과 최호용 서기관은 이번 개정안의 핵심을 “시설 명의로 돼 있는 사업자등록을 모두 법인 명의로 바꿔 일치시켜, 시설 신고자인 법인이 시설 설치부터 운영까지 직접 책임지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유예기간은 1-2년이다. 

사회복지법인은 사회복지사업의 법적 주체이고, 사회복지시설은 법인의 목적을 이루기 위한 개별 사업장이다.

최 서기관은 “지난해부터 감사원이나 권익위가 시설신고자와 실제 사업장의 고용주가 왜 다르냐고 제기하는 등 문제가 있어 객관적이고 명확한 기준에 따라야 한다”고 밝혔다.

현재는 시설의 신고, 설치, 운영의 법적 주체가 법인인 경우, 대부분 시설이 사업자등록증을 법인명이 아닌 시설명으로 등록한다. 이때 사업자등록증 대표자는 시설장이다. 이는 하나의 법인이 다양한 종류의 시설을 여러 개 운영하면서 관리, 후원금, 각종 계약 등을 각 시설 상황에 맞게 처리하기 위해서다.

최 서기관은 지금처럼 시설장이 종사자를 직접 고용하고, 각종 금융거래도 하되, 다만 시설장 명의가 아닌 법인 명의로 하면 되는 것이라고 설명했지만, 이날 참가자들은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니라는 입장이다.

7일 서울 가톨릭회관에서 열린 정책토론회의 발제자와 토론자들이 참가자들의 의견을 듣고 있다. ⓒ김수나 기자

한국 장애인직업재활시설협회 신직수 사무국장은 민법, 상법 등 법률적 근거에 따라 “시설명을 사업자등록증에 표시하고 시설장을 대표자로 기재해 사용하는 것이 관계 법률과 세무관서의 실무를 벗어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그는 “현 세무관서는 법인명과 대표자명을 혼용해 사용할 수 있도록 한다. 이는 사회복지시설에 대한 예외적 사례나 특혜가 아닌 일반 기업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그럼에도 사업자등록증을 사회복지법인 명의로 제한하는 것은 시대에 역행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여러 사업을 하는 사회복지법인의 시설이 똑같은 상호를 쓰면, “이용자가 시설의 종류와 서비스 내용을 알기 어렵고, 산하 모든 시설이 동일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으로 착각하는 혼란이 온다”면서 “이름이란 영업재산으로서 가치가 있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후원금 및 상당한 경제적 가치의 손실이 온다면서, 특히 장애인직업재활시설, 시니어클럽, 자활사업 등은 이용자의 소득지원과 직결된 사업이기 때문에 상호를 바꾸면 그간 거래로 쌓은 경제적 가치가 무너진다고 설명했다.

이에 더해 통장, 카드, 퇴직연금, 각종 인증과 허가, 신고, 지정서 등 서류와 간판, 홍보물, 홈페이지 등을 바꾸는 데 상당한 인력과 시간, 비용이 드는데, 대형 법인이 아닌 중소 법인들은 이를 감당하기 어렵다.

한국 장애인복지시설협회 윤덕찬 부회장은 “1970년대부터 국가가 민간을 끌어들여 보조금을 주면서 법인체제로 사회복지 시설을 운영하게 한 것이 원인”이라며, “설치부터 운영까지 책임질 수 있는 법인이 과연 얼마나 될까”라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사회복지사업의 본래 주체는 국가와 지자체로 법인이나 개인이 위임을 받아 운영하는 것으로 봐야 함에도 모든 운영의 책임을 사회복지법인에게 부담하게 하는 것이 맞는가”라고 물었다.

1970년에 제정된 사회복지사업법에 따르면, 1999년 10월까지는 법인만 지자체 등에 허가를 받은 뒤 시설을 설치, 운영할 수 있었으나, 1999년 11월부터는 법인은 물론 개인도 신고만으로 시설을 만들고 운영할 수 있다. 

윤 씨는 “사회복지사업법에 따라 법인을 법적 주체로 변경하겠다면, 법인이 그 역할을 수행할 수 있도록 그에 맞는 추가적 지원과 조치가 있어야 한다. 이 상태로는 이번 개정안에 동의할 수 없다”고 밝혔다.

또한 이번 관리안내에 있는 ‘시설설치 신고증 명의와 사업자등록증 명의가 다르면 보조금 지급을 지양’하라는 지침에 대해, 윤 씨는 “이는 직무유기 및 직권남용으로, 보조금은 시설에 대한 지원이 아닌 시설에서 보호받는 취약계층에 대한 생계지원”이라고 비판했다.

주교회의 사회복지위원회 총무 김봉술 신부가 발언하고 있다. ⓒ김수나 기자

이날 참석한 주교회의 사회복지위원회 총무 김봉술 신부는 “사회복지사들의 처우나 근무환경에 대한 개선은 없고, 사회복지 현장이 투명성도 공공성도 없다는 전제 아래 규제만 하겠다는 생각만 다분하다”고 말했다.

김 신부는 이어 “보건복지부가 정말 현장의 목소리를 들을 의지가 있는지, 사회복지 시설을 위한 기관인지를 묻고 싶다”며 “제대로 가려면 처우와 환경 개선이 먼저고, 그 뒤에 사회복지사업법을 개정해야 한다. 일방적 지시나 방향에 따라가면 안 된다”고 강조했다.

그는 “보건복지부가 답을 정해 놓고 시행을 통보하는 방식으로 보여 수용하기 어렵다”면서 “어떤 법이나 규정이든 개정하려면 충분한 논의와 소통이 필요하다. 보건복지부와 사회복지단체들 간의 공식 간담회를 제안한다”고 말했다.

한편, 서울가톨릭사회복지회의 한 관계자는 9일 <가톨릭뉴스 지금여기>에, 이번 쟁점은 사회복지시설의 규모가 각 교구별로 다른 만큼 입장이 서로 다를 수 있다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사업자등록증을 모두 법인명으로 바꾸는 것은 단지 행정 절차의 번거로움만의 문제가 아니다. 시설은 모든 것을 법인에 의존하게 돼 책임성 있게 운영되기 어렵고, 시설의 자율성, 독립성, 고유성이 훼손될 수 있다.

또한 정부의 사회복지시설 재무회계 규칙에 따르면, 사회복지법인과 시설은 각각의 회계 지침이 있어 서로의 고유성을 침해해서는 안 된다는 조항이 있다. 이번 개정안처럼 사업자등록증을 법인명의 하나로만 관리하면 시설의 경제적 권한을 뺏는 것이며 법인 회계와 시설 회계가 뒤섞인다.

이날 300여 명이 모인 가운데 사회복지시설 관리안내 개정안을 놓고 토론했다. ⓒ김수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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