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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치스코 교종 최신 강론말씀(5월 7-8일)

기사승인 2019.05.10  17:1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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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란치스코 교종 최신 강론말씀]

(편집 : 장기풍)

불가리아 북마케도니아 순방 총정리

교종, 5월 6일 일반접견 교육에서 순방결과 설명

 

프란치스코 교종은 5월 8일 성 베드로 광장에서 진행된 일반접견 교리교육을 통해 전날까지 다녀온 불가리아와 북마케도니아 사도적 순방에 대한 내용을 총정리했다. 교종은 이 두 나라에서 받은 뜨거운 환대에 감사하면서, 이번 사도적 순방의 주요일정들을 설명했다. 교종 설명내용.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안녕하세요! 저는 사흘간 불가리아와 북마케도니아 사도적 순방을 마치고 어제 저녁 늦게 돌아왔습니다. 저에게 순방을 허락하신 하느님께 감사드리며, 큰 호의로 환대해주신 두 나라 당국자들에게도 다시 한번 감사를 전합니다. 저의 순례에 함께해주신 주교님들과 해당교회 공동체의 온정과 헌신에 진심어린 저의 감사를 보냅니다. 불가리아에서 저를 이끈 것은 성 요한 23세 교종님에 대한 생생한 기억이었습니다. 그분께서는 1925년 불가리아에 바티칸 순시관으로 파견되셨다가 그 후 사절을 지내셨습니다. 저는 그분의 자비와 사목적 사랑의 모범에 힘입어 유럽의 중부, 동부 및 남부 사이 가교역할 하도록 부르심 받은 불가리아 국민들을 만났습니다. 이번 순방의 모토인 ‘지상의 평화’를 통해 저는 모든 사람들이 형제애의 길을 걷도록 권고했습니다. 이에 부응해 저는 불가리아 정교회 네오피트 총대주교님을 비롯한 정교회 주교님들과 만남을 통해 두 교회 관계가 한 걸음 더 나아가는 기쁨을 누렸습니다. 사실,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 소명과 사명은 일치의 표징이자 도구입니다. 우리는 성령의 도우심으로 우리를 분열시켰거나 여전히 분열시키는 것들을 넘어 일치의 표징과 도구가 될 수 있습니다. 현재의 불가리아는 성 치릴로와 성 메토디오에 의해 복음화된 땅 중 하나입니다.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종님은 성 베네딕토와 함께 두 분 성인을 유럽의 수호자로 선포하셨습니다. 

저는 소피아에 위치한 장엄한 성 알렉산데르 네브스키 주교좌성당 안에 모셔진 두 분 성인 형제들의 성화 앞에서 기도했습니다. 두 분은 그리스 데살로니카 출신으로 슬라브 민족들에게 복음을 전파하기 위해 창의력을 발휘하여 그들의 문화를 사용했습니다. 그들은 새로운 슬라브어 알파벳을 만들고 성경과 전례서들을 슬라브어로 번역했습니다. 오늘날에도 이런 열정적이고 창조적인 복음전파자가 필요합니다. 아직 복음이 전해지지 않은 사람들에게 전해질 수 있기 때문이며, 고대 그리스도교 뿌리가 말라 버린 땅을 다시 비옥하게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를 염두에 두고 불가리아 가톨릭 공동체와 두 차례 성찬례를 거행했습니다. 그들이 희망과 활력의 세대가 되도록 격려했습니다. 저에게 크나큰 신앙과 사랑을 보여준 하느님 백성들에게 다시 한번 감사를 드립니다. 불가리아 사도적 순방의 마지막 행보는 다양한 종교대표자들과 진행했습니다. 우리는 한 무리의 어린이들이 믿음과 소망의 상징인 촛불을 들고 갈 때 하느님께 평화의 선물을 청했습니다.

북마케도니아에서는 콜카타의 성녀 데레사의 강한 영적 현존과 함께 했습니다. 성녀는 1910년 스코페에서 태어났습니다. 그곳 본당에서 세례 받았으며, 예수님을 사랑하는 법을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성령의 은총으로 충만한 힘을 지닌 성녀 안에서 우리는 북마케도니아와 세상의 소외된 지역에 있는 교회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성녀 데레사 기념관은 그리스도의 은총으로 많은 사람이 삶의 위로를 받을 수 있는 환대의 집이 되었습니다. 저는 기념관에서 다른 종교지도자들과 가난한 이들과 함께 기도했으며, 성녀에게 헌정된 기념성당 초석을 축복했습니다. 북마케도니아는 1991년 독립한 나라입니다. 바티칸은 처음부터 북마케도니아의 여정을 지원하려고 노력했으며, 저의 방문을 통해 다른 민족과 종교를 환대하는 그들의 전통적 능력을 장려하고 싶었습니다. 2015년 2016년의 비관적 시기에 많은 수의 이민자와 난민을 받아들이고 도와준 북마케도니아의 노력에 감사드립니다. 그곳에는 크나큰 환대와 큰 마음이 있습니다. 이민자들이 문제도 일으키지만 그럼에도 그들은 이민자들을 환대하고 사랑하며 문제를 해결합니다. 이것이 북마케도니아 국민들의 위대함입니다. 이들에게 박수를 보냅시다. 

북마케도니아는 제도적 관점에서 젊은 나라, 곧 신생국입니다. 뿌리를 잃지 않고 시야를 넓혀야 할 작은 나라입니다. 그래서 젊은이들과의 만남은 의미가 있었습니다. 다양한 그리스도교 신앙공동체 소년소녀들과 다른 종교, 예컨대 무슬림들은 모두가 인생에서 아름다운 무언가를 만들려는 열망으로 하나가 되었습니다. 저는 그들에게 이렇게 권고했습니다. 젊은 아녜스(훗날 마더 데레사)처럼 기도와 가난한 형제의 몸 안에서 말씀하시는 하느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면서 큰 꿈을 꾸며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라고요. 저는 사랑의 선교수녀회 수녀님들을 만나러 갔을 때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수녀님들은 가난한 사람들과 함께 있었습니다. 수녀님들의 복음적 자애로움에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이 자애로움은 기도와 성체조배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수녀님들은 모두를 환대하고, 그들을 모두의 자매와 어머니처럼 느낍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자주 이 자애로움의 차원을 잃어버립니다. 자애로움이 없을 때 우리는 너무 진지해집니다. 이 수녀님들은 자애로움으로 감미로운 자선을 베풀지만 위장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사랑을 베풉니다. 우리가 사랑과 자애로움 없이 자선을 행할 때, 그것은 자선사업에 식초 한 잔을 던지는 것과 같습니다. 그렇게 해서는 안 됩니다. 자선은 즐거운 것이지, 식초와 같이 시큼한 것이 아닙니다. 이 수녀님들은 좋은 표양입니다. 하느님께서 그들 모두를 축복하시길 바랍니다.

젊은이들의 증언에 이어 저는 스코페에서 성직자들과 봉헌생활자들의 목소리를 들었습니다. 그들은 그리스도를 위해 삶을 봉헌한 사람들입니다. 언젠가 그들은 다음과 같이 말하게 되는 유혹이 도래할 것입니다. “주님, 교회와 세상의 문제에 직면해서 보잘것없는 제가 무엇을 할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저는 성직자들과 봉헌생활자들에게 작은 누룩이 전체 반죽을 부풀게 할 수 있고, 향수 한 방울이 순수하고 강력하며 집안 전체에 향기를 퍼뜨린다고 강조했습니다. 이는 모든 인류를 위한 새로운 삶의 씨앗인, 성체이신 예수님의 비밀입니다. 우리는 유럽의 변두리인 스코페 광장에서 봉헌한 성찬례를 통해 많은 사람들의 굶주림을 배불려주신 하느님의 기적을 새롭게 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빵 몇 조각과 물고기로 그렇게 하셨습니다. 사도적 순방을 통해 만난 국민들의 현재와 미래를, 하느님의 마르지 않는 섭리에 맡겨드립니다. 불가리아와 북마케도니아를 축복해 주시길 성모님께 청하자고 여러분 모두를 초대합니다.

 

 

“주님께서 주시는 에너지에 감사드립니다!”

프란치스코 교종 기내 회견. 여성부제 등 다양한 주제 

 

프란치스코 교종은 5월 7일 저녁 불가리아 북마케도니아 사도적 순방일정을 마치고 로마로 돌아오는 기내회견을 통해 동방정교회, 여성부제직 등에 관한 주제를 언급하는 한편, 자신의 힘과 에너지의 원천에 관한 비밀을 공개했다. 사흘간 서발칸 국가 순방을 마친 프란치스코 교종은 활기찬 모습으로 기자들과 담소하고 질문에 답했다. 불가리아와 북마케도니아에 대한 인상을 묻는 질문에 교종은 “두 나라가 완전히 다르다”며, 불가리아는 오랜 전통을 지닌 반면, 북마케도니아는 오랜 전통이 있지만 신생국이며, ‘젊은 국민’의 나라라고 설명했다. 교종은 근래 북마케도니아가 국가로서의 위치를 확립한 사실을 기억하면서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 이 나라는 그리스도교의 서방전래를 상징하는 국가며, 아시아로 가려다 마케도니아로 부르심 받은 사도 바오로를 통해 그리스도교가 전파되었으며 마케도니아 사람들은 그리스도교가 그들의 대문을 통해 들어왔다는 사실을 늘 기억한다고 말했다. 이어 교종은 1877년 오스만 제국에서 독립을 위해 싸우다 목숨을 잃은 20만 군인들을 언급하면서 불가리아가 수많은 전쟁과 폭력에 고통 받아왔다고 강조했다. 이런 가운데서도 북마케도니아와 불가리아 양국에서는 동방정교회, 가톨릭, 무슬림 공동체가 공존하며 살아가고 있다고 강조했다. 교종은 양국 내 서로 다른 종교 간에 우호적 관계가 유지되고 있는 점을 높이 평가하면서 다양성과 인권에 대해 ‘관용이 아닌 존중’을 선언한 것에 감탄했다.

기내회견에서 한 기자는 교종이 여러 나라를 순방하고 업무를 처리하는 데 필요한 힘과 에너지를 어디에서 찾는지 물었다. 이에 교종은 그의 힘과 에너지는 ‘주님이 주신 선물’이며 다른 나라를 방문할 때는 ‘스스로를 잊어버리고 다만 그곳에 있을 뿐’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교종은 “여행에 지친 적은 없습니다. 다만 여행을 마치면 피곤할 뿐입니다. 주님께서 제게 힘을 주시는 것 같습니다. 저는 제가 항상 충실할 수 있도록, 주님을 섬길 수 있도록, 이 여정이 관광이 되지 않도록 기도드립니다. 그러나 저는 그다지 열심히 일하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라고 말했다. 또한 동방정교회 내 분쟁에 관한 질문에 교종은 일반적으로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으며 선의가 존재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복자 알로지제 스테피나츠 추기경 시성과정 질문에 교종은 그는 고결한 인물이기에 교회가 시복을 결정했던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시성절차 가운데 불분명한 점이 발견되어 승인서류에 서명하기 전 기도하고 숙고하는 시간을 가졌다고 설명했다. 교종은 이 과정에 잘못이 없길 바라고 있으며 진실을 알고자 한다며 역사조사위원회를 설립하고 몇 가지 사안의 진위여부를 밝히기 위한 철저한 검토가 진행 중이라고 전했다. 

교종은 “진실은 두렵지 않습니다. 다만 하느님의 심판이 두려울 뿐입니다.”라고 말했다. 이와 함께 회견에서는 불가리아 사도적 방문일정 중 여성을 부제직에 임명해 복음을 선포할 수 있도록 하는 전통을 구축한 동방정교회 공동체를 방문했고 며칠 후 세계여자수도회장상연합회와의 만남이 예정돼 있는데 여성부제에 관한 검토위원회 보고서를 통해 알게 된 점은 무엇인지, 이 사안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에 대한 질문도 있었다. 교종은 2016년 창설된 ‘여성부제 허용검토 위원회’가 시각차이로 중단되기 전까지 2년에 걸쳐 이 문제를 검토해 왔다면서, 여성부제에 관한 사안을 다룸에 있어 남성부제와는 다른 시각으로 보는 방법이 있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여성부제에 관한 역사기록이 남아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당시 여성부제가 남성부제와 동일한 방식과 지향점 아래 임명됐는지 여부는 확실치 않다고 설명했다. 다만 교종은 위원회가 검토과정에 훌륭히 임했으며, 여기서 얻은 성과를 바탕으로 ‘찬성 혹은 반대’의 명확한 결론의 도출을 앞당길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교종은 신학자들도 현재 다양한 가설을 연구 중에 있다고 덧붙였다.

 

 

“다양성과 인간 존엄성을 존중하시오”

교종, 북마케도니아 지도자들에게 강조

 

프란치스코 교종은 5월 7일 불가리아에서 북마케도니아에 도착, 수도 스코페 대통령궁에서 정부 당국자들, 시민단체, 외교단 등을 대상으로 연설했다. 교종은 북마케도니아에서의 첫 번째 연설을 통해 문화, 종교, 인종 간 유익한 통합과 수용, 평화의 송신소가 되기 위해 노력하는 북마케도니아를 격려했다. 연설 내용.

북마케도니아는 동서양을 잇는 다리이자 수많은 문화적 흐름을 위한 ‘만남의 장소’입니다. 또한 사도시대로 거슬러 올라가는 그리스도인의 흔적과 함께 이 나라는 비잔틴과 오스만의 과거에 관한 우아한 증언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더욱 소중한 것은 사람들의 ‘다인종, 다종교적 얼굴’입니다. 그들은 수세기 동안 구축된 복잡한 역사의 관계이자 풍요로운 유산입니다. 이러한 문화와 인종과 종교적 정체성의 도가니는 타인을 배제하거나 지배하거나 차별하지 않고, 개개인의 정체성이 표현되고 발전되는 평화롭고 지속적인 공존의 결과라고 믿습니다. 정교회, 가톨릭, 다른 그리스도인들과 무슬림, 유대인 등 상이한 종교적 정체성과 마케도니아인, 알바니아인, 세르비아인, 크로아티아인 등을 비롯한 다양한 인종과 배경의 사람들이 전체로서의 아름다움과 유일무이함을 위해 필수적인 모자이크 조각을 만들어냅니다. 이러한 아름다움은 그들이 다음 세대 마음에 전달하고 심을 때 더욱 분명해질 것입니다. 이러한 노력이 다양한 종교적 표현과 다양한 인종단체들로 하여금 인간존엄을 존중하고 이해하는 공통점을 찾을 수 있게 해줍니다. 

이는 결과적으로 궁극적인 자유를 보장하며 평화와 번영의 미래로 이끌 것입니다. 따라서 북마케도니아인들은 다양성과 상호이해로 특징되는 고요하고 형제애적인 공동생활을 위한 판단기준이자 모범사례가 될 수 있습니다. 이러한 환경 속에서 저는 수많은 이주민과 난민을 돕기 위해 몇몇 국제단체와 협력하고 있는 마케도니아인들에게 감사를 전합니다. 이주민과 난민들은 고국의 전쟁이나 빈곤을 피해 중동 국가들에서 북유럽이나 서유럽으로 떠나고 있습니다. 이들이 안전할 수 있도록 연대를 보이는 것은 북마케도니아인들에게 영광이며 또한 이주민과 난민들의 영혼과 소통하는 것입니다. 교회의 모범이자 걸출한 동료의 한 분인 콜카타의 성녀 마더 데레사는 1910년 스코페의 알바니아인 부모에게서 태어났습니다. 마더 데레사는 하느님의 사랑으로 감동받아 이웃사랑을 생애최고의 법칙으로 삼았으며 가난한 이들 중 가장 가난한 이, 버림받은 이, 버려진 이를 섬기는 데 일생을 바친 구체적이고 근본적인 길을 개척하신 여러분의 자랑이자 모범이기도 합니다.

 

 

“마더 데레사 성녀는 하느님 사랑의 증거”

북마케도니아 마더 데레사 고향 방문 교종 기념관 연설

 

프란치스코 교종은 5월 7일 북마케도니아 사도적 순방 중 마더 데레사 성녀 고향인 스코페에 있는 ‘마더 데레사 기념관’에 들러 기도했다. 마더 데레사 성녀 고향 북마케도니아의 수도 스코페는 그가 태어날 당시 오스만 제국 코소보 주에 속한 도시였다. 지난 2009년 북마케도니아 정부는 데레사 성녀가 세례 받은 예수성심 성당 자리에 현대적 건축 양식의 ‘마더 데레사 기념관’을 개관했다. 원래 성당은 1963년 발생한 지진으로 무너졌다. 5월7일 오전 북마케도니아에 도착한 프란치스코 교종은 곧바로 기념관을 찾았다. 교종은 데레사 수녀가 설립한 ‘사랑의 선교수녀회’ 회원들이 인솔하는 빈민들과의 만남에 앞서 성인의 유해가 보관된 경당에 들러 기도했다. 교종 기도 내용.

우리에게 마더 데레사 성녀의 삶과 영성을 허락하신 하느님께 감사드립니다. 하느님께서는 가장 가난한 이들 가운데 당신 사랑의 증거가 되라고 데레사 성녀를 부르셨습니다. 데레사 성녀가 모든 이들 안에서 하느님 아드님의 모습을 보았기에 절박한 상황에 처한 이들에게 많은 도움을 줄 수 있었으며 가난한 이들과 정의에 굶주리고 목마른 모든 이들의 기도의 외침이 됐었습니다. 당신은 여기서 처음으로 가난하고 힘없는 이들, 도움을 필요로 하는 이들과 만나고 그들을 알게 됐습니다. 여기서 당신은 절박한 상황에 처한 이들을 사랑하고 돕는 법을 부모님으로부터 배웠습니다. 여기서 당신은 교회의 침묵 가운데 수도자가 되어 선교의 길을 걸으라는 예수님의 부르심을 들었습니다. 이제 여기서 당신의 전구를 청합니다. 우리 또한 가난한 이들, 권리를 박탈당한 이들, 병든 이들, 버림받은 이들, 우리 형제자매들 가운데 가장 어려운 이들의 외침을 살피고 세심하게 배려할 줄 아는 은총을 얻을 수 있도록 예수님께 빌어주십시오. 또한 주님, 우리에게 도움을 청하는 이들의 눈길 속에서 그분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도록, 그리고 가난한 이들, 버림받은 이들, 소외된 이들, 이민자들로 가득한 오늘날 우리가 사랑과 희망의 증거가 될 수 있도록 은총을 허락해 주십시오. 성녀 마더 데레사여 이 도시와 사람들과 교회, 그리고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오신 그리스도의 뒤를 따르고자 하는 모든 이들을 위해 기도해 주십시오.

 

 

“예수님께서 우리의 굶주림을 채워 주시기를”

교종, 5월 7일 북마케도니아 수도 스코페 미사 강론

 

프란치스코 교종은 5월7일 북마케도니아 수도 스코페 마케도니아 광장에서 미사를 봉헌했다. 234만 명 인구의 스코페 교구는 가톨릭신자는 3660명으로 북마케도니아 가톨릭신자의 1%에 불과하지만 알바니아, 코소보, 크로아티아에서도 대략 1만 여 명이 모였다. 이날 북마케도니아 가톨릭 공동체와의 만남은 로마 라틴전례와 비잔틴 동방전례라는 두 가지 전통적 전례 안에서 일치를 이뤘다. 교종은 강론에서 스코페 신자들에게 닫힘과 습관적인 태도를 극복하는 한편, 여정을 떠나면서 그분을 따르라는 예수님의 초대에 응답하라고 권고했다. 또한 성찬식과 가난한 이들 안에서 만났던 하느님을 갈망한 성녀 마더 데레사 모범도 제시했다. 강론내용.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나에게 오는 사람은 결코 배고프지 않을 것이며, 나를 믿는 사람은 결코 목마르지 않을 것이다”(요한 6,35)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빵을 많게 하신 기적 때문에 감명을 받고 축제분위기로 들뜬 군중을 향해, 예수님께서는 당신 자녀들을 위한 하느님의 배려와 나눔 안에 표현된 형제애를 드러내신 것입니다. 당시 그 기적으로 갑자기 마음이 변화되어 그분을 따랐던 모든 사람들을 상상해보십시오. 주님께서는 세상에 생명을 주시기 위해 오셨습니다. 주님께서는 항상 우리의 편협한 계산, 세속적인 기대, 피상적인 지성주의와 맞서게 하십니다. 우리의 관점과 확신을 문제 삼으시고, 현실을 다른 방식으로 구축하는 새로운 지평으로 넘어가도록 초대하십니다. 하지만 사람들이 자신 안에서 발견하는 굶주림은 빵에 대한 굶주림이 아니라 ‘하느님에 대한 굶주림, 형제애에 대한 굶주림, 만남과 함께 나눴던 축제에 대한 굶주림’이었습니다. 우리 역시 거짓으로 드러난 것이 우리 마음과 존재를 채울 수 있다고 믿은 후에도 여전히 굶주리고 있음을 발견합니다. 우리는 허위정보를 취하지만, ‘불신의 포로’가 되었습니다. 우리는 기회주의에 적응됐지만, 무관심에 젖어들고 말았습니다. 우리는 원대한 꿈을 꾸었지만, ‘분심, 닫힘, 고독’을 먹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가상현실의 포로가 되어, 형제애와 현실에 대한 맛과 취미를 잃어버렸습니다.

두려워 말고 힘을 내어 이렇게 말합시다. “주님, 저희는 배고픕니다. 주님, 저희는 닫힌 마음과 고독을 열어줄 수 있는 당신 말씀의 빵에 굶주려 있습니다. 주님, 무관심, 불신, 비난이 저희 식탁과 저희 집 첫 자리를 차지하지 않도록 이끌어 주소서, 저희는 형제애에 굶주려 있습니다. 주님, 저희는 당신 말씀의 희망을 높여주고, 따뜻한 애정을 일깨우며 변화와 회심의 길을 열어주면서 마음을 민감하게 해주는 만남에 굶주려 있습니다.” 오직 주님만이 우리의 습관과 우리의 고정관념을 깨뜨릴 수 있습니다. 특히 잊혀진 이들이나 멸시 받는 이들을 위해 모든 사람을 위한 성부의 연민을 함께 나누도록 우리를 가르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 자신으로부터 벗어나고 그분을 향해 걸어가라고 요청하십니다.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오너라’ 하십니다. 온다는 것은 단지 한 장소에서 다른 장소로 자리를 옮기는 것만 뜻하는 것이 아니라, 그분과 똑같은 행동을 취하고 그분과 똑같은 언어로 말하는 모험을 하기 위해 우리의 선택에서, 감정에서, 소유에서, 그분의 말씀으로 움직이고 변화되도록 우리를 내어 맡길 수 있는 역량을 뜻합니다. 그분의 언어는 ‘다른 이들에게 따뜻한 애정, 동행, 관대한 헌신을 말하는 빵의 언어’입니다. 매일 필요하고 실제적인 것이기 때문에, 구체적이고 만질 수 있는 사랑입니다. 

성찬식 안에서 주님께서는 우리를 위해 쪼개지시며, 타인을 위해 우리도 그와 같이 행하라고 초대하십니다. 빵에 대한 굶주림, 형제애에 대한 굶주림, 하느님에 대한 굶주림을 잘 알고 있던 성녀 마더 데레사의 삶은 분리될 수 없는 두 가지 기둥으로 지탱되어 있습니다. 성찬례 안에 육화하신 예수님과 가난한 이들 안에 육화하신 예수님입니다, 바로 우리가 받는 사랑과 주는 사랑입니다. 마더 데레사는 주님께로 갔습니다. 동시에 사랑받지 못하고, 홀로 남겨진 채 잊혀진, 멸시 받는 형제에게 갔습니다. 형제에게 주님의 얼굴을 찾았습니다. 왜냐하면 하느님 사랑과 이웃사랑은 다 함께 섞여 있습니다. 가장 작은 이 안에서 우리는 예수님을 만나고 예수님 안의 하느님을 만납니다. 그 사랑이야말로 자신의 굶주림을 채워 줄 수 있는 유일한 것임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다 함께 일어납시다. 제대의 성사 안에서, 형제의 성사 안에서, 우리의 굶주림과 목마름을 예수님께서 채워 주시도록 맡겨 드립시다.

 

 

프란치스코 교종과 세 가지 에큐메니즘

바티칸 라디오 사설, 불가리아 방문의의 강조

 

프란치스코 교종은 불가리아 정교회 주교들과 만남에서 ‘피’가 모든 교파의 그리스도인 순교자를 일치시킨다고 강조하면서 즉각 실행할 수 있는 길로 ‘가난한 이들’과 ‘선교사명’을 제시했다. 피의 에큐메니즘(교회일치운동)이 있고, 가난한 이들의 에큐메니즘이 있으며, 선교사명의 에큐메니즘이 있다. 프란치스코 교종은 불가리아 정교회 주교들과 네오피트 총대주교를 대상으로 한 연설에서 다양한 그리스도인들의 일치를 즉각 실행할 수 있는 방법을 강조하며 이같이 말했다. 교종은 교회가 분열, 갈등, 교리논쟁에도 불구하고 ‘순교’와 ‘피의 에큐메니즘’을 통한 박해로 인해 이미 일치를 이뤘다고 수차례 언급한 바 있다. 피로 이뤄지는 이러한 교회일치운동은 그리스도인들과 기도의 장소가 박해를 받을 때 모두 동일한 그리스도인으로 간주된다는 측면을 뜻한다. 

교종은 특별히 지난 세기 박해 중에 예수님의 이름을 위해 고통을 견딘 불가리아 그리스도인들을 언급했다. 이어 신앙을 위해 계속 고통을 겪는 전 세계 수많은 다른 형제자매들이 우리로 하여금 닫힌 채로 머물지 말고 우리 자신을 열라고 요청한다며 이러한 방식으로만 씨앗은 열매를 맺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또한 교종은 안젤로 론칼리를 기억했다. 론칼리는 훗날 성 요한 23세 교종이 된 인물이다. 그는 특별히 가장 가난한 이들과 가장 소외된 우리의 형제자매들안에 계신 주님을 섬김으로써, 주님을 증거하기 위해 함께 행동하고 함께 여정을 떠나자고 다른 교파의 그리스도인들을 초대했다. 이것이 바로 ‘가난한 이들의 에큐메니즘’이다. 우리는 이미 일치를 이뤘다. 우리는 이미 함께 걸을 수 있다. 지도자급 대화와 신학적 차이들에 구애받지 않고 말이다. 복음은 고통과 나란히 함께 증거될 수 있다.

선교사명과 친교에 연결된 이 세 가지 에큐메니즘은, 성 치릴로와 성 메토디오의 모범을 따라 선교사명의 그것과 같다. 복음을 선포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함께 걸을 수 있다. 교종은 특별히 젊은이들에게 다음과 같이 강조한 바 있다. “우리의 고유한 전통과 독특한 정체성을 존중하면서, 젊은이들로 하여금 하느님의 기쁨을 체험하게 만드는 언어와 형식으로, 신앙을 전달하는 길을 찾도록 서로 돕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요! 하느님께서는 젊은이를 사랑하시고 젊은이를 부르십니다.” 미결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인 신학자들의 대화도 중요하다. 정교회의 경우 신앙과 성사의 본질적 요소들은 건드리지 않는다. 그러나 이것으로는 충분치 않다. 무엇보다 전문가의 영역으로 저 멀리 밀려난 무엇으로 남을 위험이 있다. 상이한 모든 그리스도인의 구체적인 삶에 영향을 끼칠 수 있는 것은 위로부터 답변을 기다리지 않고 실천하는 에큐메니즘의 제안이다. 그것이 ‘증거와 선교사명의 에큐메니즘’이다. 이렇게 그리스도인들의 일치는 모든 일치의 표징이 되고 세계의 평화가 되는 것이다.

장기풍(스테파노)
전 <평화신문> 미주지사 주간
2006년 은퇴. 현재 뉴욕에 사는 재미동포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장기풍 editor@catholic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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