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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임교황' 개념 뒤안의 이야기

기사승인 2019.05.10  15:4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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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회에 혼란 낳는 '전임교황' 대신 '전 교황'으로 정리할 때

(마시모 파졸리)

교황 사임의 역사는 교황들이 자발적으로 퇴위한 것이 아니라 공의회나 로마 귀족정치의 경쟁 분파, 또는 유럽 열강의 정치적 기동 때문에 강제당하던 중세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에는 교황직은 사목적, 교회적 차원이 아니라 정치적 차원이 더 중요했다.

그런데, 베네딕토 16세는 2013년 2월 11일, 몇 주 뒤인 2월 28일 오후 8시에 사임할 것이라고 발표했고, 이로써 교황사에 새로운 시대가 열렸다.

그의 사임은 (정치에 좌우됐던) 중세시대 교황직의 움직임과는 거의 아무런 연관이 없고, 당시 교황들이 퇴위했던 틀에서 봐서는 안 된다.

그보다는, 제2차 바티칸공의회(1962-65)의 맥락에서 봐야만 한다. 베네딕토 16세가 자신의 퇴위 결정을 설명하면서 썼던 라틴어 문구 “나이가 많아서”(ingravescentem aetatem)는 또한 교황 바오로 6세가 1970년에 교황청에 근무하는 추기경의 나이를 75살로 제한했던 자의교서의 제목이기도 하다.(‘추기경의 주요 직무에 관한 정년 규정’, 이때 새 교황을 선출하는 콘클라베에 참석할 추기경의 나이도 80살로 제한했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와 주교들의 사퇴

하지만 교구장 주교들의 임기에 나이 제한을 두는 씨앗은 사실상 1965년에 발표된 제2차 바티칸공의회의 한 교령에서 심겼다. 그리고 이것이 로마 주교, 곧 교황의 사임이라는 개념의 현대 신학적 이해가 시작된 실제 시점이다.

1962년에서 1965년 사이에, 공의회에 모인 전 세계 주교들은 주교들이 특정 나이에 이르거나 다른 중요한 이유들(주로 건강문제)로 사임할 필요가 있는가를 토론하느라 상당한 시간과 에너지를 쏟았다.

이는 주교들의 사목 직무에 관한 문서를 두고 벌어진 토론의 일부였고, 이 토론의 결과는 1965년 공의회의 막바지 회기에 선포된 ‘주교 교령’(주님이신 그리스도)으로 나왔다.

“주교들의 사목 임무가 이토록 중대한 것이므로, 교구장 주교나 법률상 그들과 동등한 다른 주교들은 고령이나 다른 중대한 이유로 자기 직무를 수행하기에 덜 적합하게 되면, 자원하여서나 관할 권위의 권유로 사의를 표명하도록 간곡히 권고된다.”(‘주교 교령’, 21항)

이 조항은 이어 “관할 권위가 그 사퇴를 수리할 때에는 사퇴자들의 합당한 생활비를 보장하고 그 특권을 인정하여야 할 것이다.”라고 끝난다.

구체적 연령제한을 두기 저어함

제2차 바티칸공의회의 초기 단계에서, 많은 주교들이 구체적인 나이 제한을 두려고 했을 때 상당한 저항이 있었다. 특히 이는 자기들을 잡으려고 공격하는 것이라고 느꼈던, 나이 많은 축에서 그랬다.

결국, 강제 연령제한(심지어 65살을 제안한 이들도 있었다.)은 공의회에 참석 중이던 교부들(주교들) 상당수는 공의회가 끝나는 대로 사퇴해야 한다는 뜻이었다. 이 규칙은 그나마 새로 임명되는 주교들에게만 적용되고 또한 소급되지 않는다는 약속이 있어서 다행이었다.

일부 개혁 성향 주교들은 공의회가 열리기 전 준비 단계부터 이미 75살 나이제한을 밀어붙였다. 하지만 공의회에서 (이 문제를 다룬) 소위원회는 1964년 10월에 “모든 주교에게 75살 연령제한을 법으로 강제하는 것은 폭력적으로까지 보인다”고 함으로써 이 제안을 기각했다.

공의회에서 나이 많은 주교들의 반란과 분열이 일까 두려워, 결국 제2차 바티칸공의회는 주교가 사퇴할 구체적인 나이나 사유를 정하는 것은 피했다.

지금에 보면 당시 공의회에서 이러한 조항이 얼마나 새로운 것이었는지 아무도 인식하지 못했던 것은 놀랍다 할 것이다. 이 조항은 주교직이 생긴 아주 초기의 역사에서 근거를 끌어온 것이라거나 일치의 교회론에서 온 것이 아니라 현대 관료제에서 비롯한 것이다.

하지만 당시, 그리고 이 특정한 문제에 대해, 공의회는 국가 관료제의 역사를 뒤따라 진행해 갔다.

그리고, 주교들의 사퇴에 관한 공의회 문서로부터 예상치 않았던 결과들이 비롯됐다. 교회의 제도 차원 생활에 장기적이고 중대한 중요성이 있었다.

바오로 6세는 그에 반대하지 않았고 오히려 그 반대였다. 의무 사퇴연령을 둘러싼 토론과 주교들의 임명 절차는 제도적 관점에서 볼 때 아주 강력한 조합이 되기에 딱 알맞았다. 그리고 이 때문에 바오로 교황은 공의회 뒤의 새로운 주교직을 만들어 내는 데 아주 큰 힘을 갖게 됐다.

교황은 그저 또 다른 한 주교가 아니다

기묘한 한 역설에 의해, 제2차 바티칸공의회의는 제1차 바티칸공의회 이후의 주교중심주의(또는 주교단수위설, episcopalism)의 이름으로 주교 계급의 효율성을 현대화하고 합리화하려 했고 이는 ‘주교 교령’을 낳았다. 이 교령에서는 주교들을 고르고 임명할 임명권자, 즉 교황과 교황청의 관료주의적 권력을 강화했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의 주교중심주의는 (교황중심주의와 대립했던 이전의 주교중심주의와 달리) 제1차 바티칸공의회(1869-70)의 교황중심주의(papalism) 위에 세워졌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에서의 모든 토론에서, 그리고 공의회 직후 시기에 로마 주교에 대해 의무 사퇴라는 새 규정을 적용하려고 시도한 이는 아무도 없었다는 것을 상기함이 중요하다.

하나의 터부를 넘어, 교황직은 다른 주교직과 뭔가 다른 것으로 간주되었다. 그런 접근법에는 지혜가 있었다.

베네딕토 16세의 사임 결정, 그리고 원래는 (명의 주교가 아닌, 일반적인) 상주 주교에 대해서만 도입됐던 규정을 교황에게도 적용하기로 한 이 결정은 교황직의 역사가 새 단계로 들어서는 첫걸음으로 봐야만 한다.

이는 ‘주교 교령’의 문서뿐 아니라 제2차 바티칸공의회의 의도와도 불연속을 보인다.

하지만 이것은 단지 첫걸음이고, (교회라는 제도의) 교회법적, 교회론적 차원에서 또 다른 기준을 마련하는 일이 뒤따를 필요가 있다. 이 지점에서, 요제프 라칭거는 2004년에 교황청 주교성이 주교들에 관해 발표한 지침 ‘사도들의 후계자’에서 다루지조차 않았던 뭔가 새로운 것을 창조해 냈다.

이는 그가 최근에 교회의 성학대 위기의 근원에 관해 한 글을 쓴 뒤에 분명해졌다.(편집자 주 - 이 글 때문에 베네딕토 16세 전임교황이 현 프란치스코 교황의 직무수행에 간섭한다는 논란이 일어났다.)

‘사도들의 후계자’에는 다음과 같이 돼 있다. “은퇴 주교는 직접적으로든 간접적으로든 교구 통치에 간섭하지 않도록 주의하여야 한다. 은퇴 주교는 교구장의 권위와 거의 동등한 권위를 가지고 있다는 암시를 줄 수 있는 모든 태도와 관계를 회피하여야 할 것이다. 그러한 행위는 사목 생활과 교구 공동체의 일치에 해를 입힐 수 있다.”(226항)

이어서 이렇게 쓰여 있다. “그러기 위해서, 은퇴 주교는 언제나 교구장 주교와 완전히 일치하여 그리고 그 권위를 존중하면서 행동하여야 한다. 그럴 때에 모든 사람은 교구장 주교만이 교구의 머리이고 교구 통치의 책임자라는 것을 분명히 이해할 것이다.”(226항)

2017년 6월, 프란치스코 교황(왼쪽)과 베네딕토 16세 전임교황. (사진 출처 = La Croix)

베네딕토 16세, 그리고 과거와의 단절

하지만 이 교황청 문서는 로마 주교(교황)의 사퇴에 대해서는 아무 언급이 없다. 그리고 이 문서가 2004년에 쓰였음을 생각한다면 이는 놀랍지 않다. 당시는 요한 바오로 2세 교황(1978-2005)이 말년에 (병으로) 힘들어 하던 시기였고, 그는 교황은 절대 (생전에) 사임하면 안 된다는 자신의 믿음을 분명히 밝혔던 사람이다.

당시에, 교황이 병이 심하거나 (여러 이유로 교황직을 수행할) 능력이 없을 경우에 사임할 가능성에 대해 추측을 하는 것은 신학자들이나 성직자들에게는 “절대 건드리면 안 될” 위험한 영역이었다.

베네딕토 16세의 교황직은 (그가 생전에 사임함으로써) 이 문제로부터의 단절이자 새 출발이 되는 것으로 끝맺었지만, 신학적 차원에서든 교회법적 차원에서든 준비가 별로 안 된 상태에서였다. 그리고 이 때문에 몇 가지 문제와 혼란이 생겼다.

현재의 “전임교황”(pope emeritus)이라는 지위는 베네딕토 16세가 사임 의사를 발표하고 실제로 퇴위하기까지의 몇 주 사이에 그와 그 주변 사람들에 의해 정해졌다.

(편집자 주- bishop emeritus는 “은퇴주교”라고 하지만, 베네딕토 16세가 사임할 당시 한국 주교회의는 pope emeritus를 “은퇴교황”이 아닌 “전임교황”이라고 하기로 했다. 또한 resignation을 주교의 경우에는 교회법에 “사퇴”로 쓰고 있지만, 베네딕토 교황의 경우에는 “사임”이라고 표현했다.)

이것은 게오르크 겐스바인 대주교의 역할과 연관이 없지 않은데, 그는 베네딕토 16세가 2012년 12월에 교황궁내원장으로 임명한 이다. 교황직 사임을 발표하기 겨우 몇 주 전이었다. (편집자 주- 교황궁내원장은 교황궁의 총집사라 할 수 있다.)

이는 다음에 누가 교황이 되든 겐스바인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었다. 하지만 이렇게 되면 새 교황은 베네딕토 교황이 2013년 2월 28일에 퇴위한 뒤에도 궁내원장으로 계속 일할 것을 분명히 원했던 신임 궁내원장과 붙어 있어야 되므로, 이는 또한 새 교황의 자유를 제한하는 것이기도 했다.

이런 상황을 두고 어떤 이는 저 악명 높은 기괴한 제도인 “추기경 조카”를 떠올릴 것이다.

이 제도가 1692년에 폐기되기 전에는, 교황들은 자기가 가장 아끼는 피보호자를 추기경으로 임명하곤 했다. 이 교황이 죽은 뒤 그 측근이 (교황청 정치의) 주무대에서 떠나서 새 교황과 그가 데리고 올 그의 가족들이 차지할 자리는 내놓도록 강요받더라도, 일단 추기경이 된 이상 그 측근에게는 (스스로를 지킬) 일정한 능력이 생길 것이기에.

(그 추기경 조카는 살아 있는 동안) 교황투표권이 있으므로 교황선거가 있으면 극적인 운명의 변화를 일으킬 수 있었다. 심지어 새 교황과의 갈등까지도. 하지만 베네딕토 16세가 사임한 뒤 겐스바인 대주교에게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

새 법이 필요한 새로운 상황

당시 로마 교황청 안에서의 정실주의(Nepotism, 조카(nephew)를 추기경으로 임명하던 교황청 정치에서 비롯된 단어다.)에는 지금의 정실주의에는 없는 일정한 장점이 있었다.

그러나 지금의 (교회) 상황은 더 복잡하다. 현재의 교황청은 현대의 관료조직과 르네상스 시기의 교황 궁정조직이 뒤섞인 산물로, 주로 두 제도의 부정적 측면들을 반영하고 있으며, 두 제도의 긍정적 측면들은 별로 없다. 이는 교황청 조직의 문제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하나의 신학적 문제이기도 하다.

교회론에서 볼 때, 적어도 서방교회에서는, “교황”(pope)이라는 명칭은 로마의 주교이기에 나온다. 제도론에서 볼 때는, 2013년 3월부터 “전임”(emeritus) (교황)의 존재 상황을 보면 로마 교구의 전 주교를 다른 교구들의 전 주교들과 같은 방식으로 이해하는 것은 가능하지 않다는 것을 보여 준다.

베네딕토 16세의 사임은 그간 가톨릭교회 안에서의 많은 가설들에 끝을 맺었다. 그런 이야기 가운데에는 교황직이라는 제도(기관)는, 교회 안에서든 세상에서든, 다른 일반 교구장 주교와 비슷하다는 것이 있었다. 우리는 베네딕토 16세가 사임함으로써 생긴 문제를 솔직히 평가해야만 한다. 특히 그가 퇴위하기로 계획하던 시기의 초기 결정들 가운데 일부를 잘 살펴봐야 한다.

우선, “교황궁내원장”이라는 자리는 없어져야만 한다. 그리고 전 교황(former pope)인 베네딕토 16세는 “로마 교구의 은퇴주교”(Bishop-emeritus of Rome)로 불려야 한다. “전임 교황”(pope emeritus)이 아니고. 그는 또한 (교황만 입는) 흰색 옷을 입는 것도 그만둬야 한다. (편집자 주- 가톨릭의 성직자 복장에서 일반 사제와 부제는 검은색이나 하얀색(여름)을 입고, 주교는 보라색, 추기경은 붉은색, 교황은 흰색을 입는다.)

또, 그의 대 언론 관계도 그의 개인비서들의 재량에 맡겨서는 안 된다. 그들은 (자신이 모시고 있는) 베네딕토 16세의 영향력을 적절한 한계를 넘어 확대하는 데 모든 관심을 기울일 수 있다. (편집자 주- 현재 베네딕토 16세의 개인비서는 겐스바인 궁내원장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2013년에 베네딕토 16세의 뒤를 이어 교황이 된 뒤에도 “교황 개인비서”이기도 하던 겐스바인 대주교를 교체하지 않고 그대로 자신의 개인비서로 두고 있다. 즉 두 교황은 한 사람을 각자의 개인비서로 같이 쓰고 있다.)

공식 바티칸 매체들은 이 전 교황이 내고자 하는 모든 발표문 등을 관리해야(handle) 한다. 그리고 이것은 시작에 지나지 않는다.

제1차 바티칸공의회(1869-70) 개회 150주년(12월 8일)이 곧 다가온다. 이는 이 문제를 다룰 좋은 기회다. 현재의 프란치스코 교황으로서는 너무 늦었을 수 있지만, 미래의 교황들을 위해서는 분명 그렇지 않다. (편집자 주- 제1차 바티칸공의회는 교황의 수위권과 무류성을 선포했다.)

기사 원문: https://international.la-croix.com/news/the-fiction-behind-the-idea-of-the-pope-emeritus/9943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편집국 editor@catholic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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