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대교구, 5.18왜곡 처벌 법제정 운동도

5.18민주화운동 진상과 관련한 새로운 증언과 관련 문서가 나오고 있다. 이와 관련해 가톨릭교회 측에서는 그간 파묻혀 있던 5.18의 진상은 관여된 이들의 양심고백으로 밝혀져야 한다고 촉구하고 나섰다.

피해자가 아닌 당시 계엄군이나 군의 입장에서 나온 증언이나 군문서는 당시 보안사령관인 전두환이 5.18 무력 진압이나 사살을 직접 지시, 승인했다는 내용으로, 5.18의 진상과 책임자를 규명하는 데 새로운 판도를 마련할 것으로 보인다.

5.18 진상규명과 관련해 가장 큰 관건은 당시 보안사령관이었던 전두환의 지시 여부였지만, 전두환 씨는 현재까지 자신의 책임이 없다고 주장해 왔다.

그러나 이미 지난해 5월 비밀 해제된 미 국무부 문서부터 올해 드러난 국방부 문건, 계엄군 측의 증언은 5.18의 최종 책임이 전두환에게 있음을 확인하고 있다.

우선 지난해 5월 공개된 미 국무부 문서에는 “최종 진압 작전 책임자는 전두환”, “북한군 투입설 배후는 전두환”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이어 지난 5월 14일 <경향신문> 보도에 따르면, 전두환이 5·18 민주화운동 당시 유혈 진압 계획에 “굿 아이디어”라고 답변했다는 메모가 확인됐다.

당시 2군사령부의 ‘광주권 충정작전 간 군 지시 및 조치사항’ 5월 23일자 문건에는 “각하께서 Good idea”라는 메모가 적혀 있다. 또 같은 문건 21일자에도 “전 각하: 자위권 발동 강조”라고 쓰여 있다. 이는 당시 ‘전 각하’로 불린 전두환이 유혈 진압의 최종 결정권자라는 사실을 뒷받침한다.

또 5.18 당시 미군과 505보안대에서 각각 비밀요원으로 활동했던 이들의 증언도 이어졌다.

김용장 전 미군 정보부대 정보관과 허장환 전 보안사 특명부장은 언론을 통해 5.18 당시 전두환이 광주에 왔으며, 1시간이 지나지 않아 헬기 사격이 시작된 것, 가매장 됐던 시체 소각 등을 증언하고, 뒤이어 지난 13일 국회의원회관에서 “5.18은 계획된 시나리오였다”는 특별 기자회견을 열어 증언을 이어 갔다.

먼저 허장환 씨는 기자회견을 통해 발포명령의 개념을 재정리하고, 그간 전두환 씨가 주장해 온 자위력에 의한 발포는 모순이라며 “발포명령이 아닌 사살명령”이라고 규정했다.

허 씨는 “발포명령은 명령이 아니다. 군인복무규율상 초병이 자기의 신상에 위해가 되거나 방어지역을 침탈당할 것이라 판단되면 명령 없이도 행해질 수 있는 것이 발포이고 그것이 바로 자위력 구사”라며, “다수의 군인이 전투하는 과정에서는 자위력 구사라는 말이 해당 안 된다. 광주역 앞이나 도청에서의 사살은 말 그대로 사살”이라고 말했다.

허 씨는 또한 39년 동안 5.18의 진상이 밝혀지지 않았던 이유는 당시 신군부가 5.18을 자신들의 업적으로 이용하고, 이후 법리적, 역사적 문제를 우려해 5.11 연구회를 만들어 5.18에 대한 “완벽한 변조 작업”을 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에 대해 “비유를 한다면 진시황의 분서갱유에 해당되는 만큼 완벽하게 변조했다. 그러한 변조행위가 39년간 5.18을 미궁 속에 빠뜨린 것”이라고 말했다.

5.18 당시 미군 정보부대 정보관으로 광주에서 첩보활동을 했던 김용장 씨도 당시 5.18과 관련해 모두 40건의 첩보를 미 군당국에 보고했다고 밝혀 미군 개입을 확인했다.

김 씨는 당시 30-40명 정도의 편의대가 헬기를 타고 광주에 온 것을 직접 봤으며, 전두환이 5월 21일 광주에 온 것을 보안부대원 중에 본 사람들이 있다며 이는 “움직일 수 없는 사실”이라고 말했다.

김 씨와 허 씨는 모두 이른바 편의대로 불리는 선무공작대가 흑색선전, 유언비어 확산, 시민군 교란 활동 등을 했다고 증언했다.

5.18 당시 전남대병원 의사의 증언도 이어졌다. 당시 사체검안의였던 문형배 씨는 증언을 통해 시민군이 카빈 소총으로 사상자를 냈다는 주장을 반박했다.

5월 17일자 <한겨레> 보도에 따르면, 그는, “당시 민간인 희생자 164명 가운데 최초 검안 소견서에 카빈소총 총상 사망자는 1명뿐이었다”라고 말했다. 이는 당시 전두환 신군부가 학살 책임을 덜기 위해 상당수 사망자를 시민군이 사용한 카빈소총에 의한 사망으로 조작했다는 의혹을 뒷받침한다.

당시 시민군이 카빈소총을 썼다는 주장은 “카빈소총 희생자는 시민군 간 오인사격이나 북한군 개입 결과”라는 주장의 근거가 됐다.

계엄군은 누구의 명령에 따라 총과 탱크로 광주를 유혈진압했을까? 39년의 오랜 질문에 알고 있는 모두가 답해야 한다. (자료 제공 = 5.18인권재단)

5.18연대와 진상규명은 국민으로서 해야 할 일
진상규명은 캐내는 것이 아니라 양심고백으로 이뤄야

이처럼 가해자 측에서 이어지는 증언에 대해 가톨릭교회는 “39년이 지났지만 진상규명에 대한 희망을 버리면 안 되며, 진상규명은 법적 판결보다는 이같은 양심선언으로 이뤄져야 한다”는 입장이다.

5.18 당시 부산교구 정의평화위원장으로 광주를 지원했던 박승원 신부는 “국민들의 의식이 살아나는 것을 보면서 기쁘다. (진상규명에 대한) 희망을 버리면 안 된다”며, “근본부터 잘못된 것은 다시 시작해야 한다. 잘못을 깨달음으로써 새로 태어나야 한다”고 <가톨릭뉴스 지금여기>에 말했다.

박 신부는 당시 교우의 집에서 일본 <NHK> 뉴스를 통해 5.18을 알게 되자, 즉시 신자와 사제들에게도 알렸다. 4개 본당에서 2차 헌금으로 모은 돈을 들고 광주를 방문한 그는, 언론이 제 구실을 하지 못하니 사진전을 열어 광주를 알리자고 제안했다. 부산교구는 광주대교구가 제작한 사진집과 영상물 비용을 지원하기도 했다.

박 신부는 “사제이기 이전에 국민이었기 때문에 그렇게 한 것이다. 5.18 진상규명은 이념과 개인을 떠나, 민족을 먼저 생각하면 무엇이 먼저이고 옳은 것인지 알게 될 것”이라며, “무엇이 좌이고 우인가. 좌우가 함께 있어야 걸어갈 수 있다. 이데올로기로 봐서는 안 된다. 5.18도 결국은 분단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말했다.

대전교구 정의평화위원장 김용태 신부는 “진상규명은 사실상 전두환의 자백이나 법적인 해결로 이뤄질 것이 아니”라며, “더 많은 양심세력들이 나와 증언하고 그것을 통해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김 신부는 민초들의 양심선언, 가담한 이들이 스스로 고백함으로써 이뤄지고 미미한 목소리가 큰 울림이 되어야 사회적 의미가 있다며, “39년 만의 증언 역시 우연히 그냥 나온 것이 아니라 증언할 수 있는 풍토가 마련되었기 때문에 이뤄졌다는 것이 큰 의미”라고 말했다.

그는 “증언은 단순히 정권교체가 아니라, 촛불로부터 형성된 사회적 의식과 분위기, 풍토 안에서 일어나는 것이며, 이는 그간 미투를 비롯한 자기고백 운동이 꾸준히 이어졌고, 고백이라는 방법을 찾아낸 것”이라며, “진상규명은 캐내는 것이 아니라 양심고백으로 이뤄지는 것이며, 교회의 역할 역시 이러한 분위기를 형성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광주대교구 정평위원장 김민석 신부는 “사실 최근의 증언은 새롭지 않지만 공적으로 드러나고, 그것이 객관적 근거 자료가 되었다는 데 의미가 있다”며, “이미 알고 있지만 공소시효 때문에 처벌할 수 없을 뿐이다. 그것을 지켜봐야 하는 국민들의 아픔이 있고, 면죄받은 이들이 정당한 일이었다고 왜곡하는 역사가 아픈 것”이라고 말했다.

김 신부는 광주대교구는 5.18의 시작부터 함께해 왔고, 최근 가장 큰 역할은 역사를 왜곡하는 이들의 처벌을 위한 법 제정을 추진하는 것“이라며, ”비단 5.18뿐 아니라 4.3이나 여순 등 다른 현대사 사건을 매도하는 것에 대해서도 명예훼손 이상의 형사법이 만들어져야 한다“고 말했다.

광주대교구는 정의평화위원회를 중심으로 5.18특별법 제정을 위해 지난 사순시기부터 5월 10일까지 서명운동을 진행했다. 전국 교구 2만 5000여 명이 참여했으며, 6월 중 이 서명지를 통해 입장을 밝힐 계획이다.

김 신부는 “내년 5.18 40주년은 교회로서도 큰 의미다. 진상규명도 중요하지만, 민주주의를 위해 헌신해 온 많은 이들과 시민운동을 평가해야 한다”며, 여전히 편가르기와 폄하 세력이 있는 상황에서 5.18의 정신이 40년간 얼마나 제대로 되었는지 짚어봐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5.18을 매도하고 왜곡하는 이들을 비난하면서 주변의 사람들에게 우리의 고통을 전가하지 않았는가에 대한 성찰을 해 보면 자유롭기 어려운 것”이라며, “진상규명을 바라고 5.18 왜곡을 비판하면서 자기 눈의 들보를 보지 못하는 우를 범하지 않았는지 우리 역시 성찰하고, 그 속에서 형성된 기득권도 바라봐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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