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무부, “한평생 가난하고 억압받는 이들에 헌신”

두봉 주교(89, 안동교구)가 법무부가 선정한 '올해의 이민자'로 대통령 표창을 받았다.

20일 열린 시상식에서 법무부는 제12주년 세계인의 날을 맞아 농촌 발전에 평생을 바친 프랑스인 두봉 주교에게 대통령 표창장을 줬다.

법부무에 따르면, 두봉 주교는 한국 영주권자로 현재 프랑스 국적이며 귀화는 하지 않았다.

두봉 주교는 천주교 안동교구 은퇴주교로서, 파리외방전교회 소속 선교사다. 그는 “사람들이 축하한다고 하니 고맙다고 인사는 하지만, 저는 상에는 관심이 없다. 표창 받은 것이 오히려 부끄러울 뿐이다. 저보다 공로가 더 큰 사람도 많은데 제가 대표로 받으니까 미안하다”고 22일 <가톨릭뉴스 지금여기>에 말했다.

그는 이어 “한국 역사를 보면 중국인, 일본인에게 많이 당해서 외국 사람을 안 좋게 생각한다. 이제는 세계인이라고 말하며 (전보다) 이민을 쉽게 받아 주고 외국인을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상도 주니 고맙다”고 말했다.

법무부는 “그가 26세의 젊은 나이에 한국에 와 선교활동을 하며 지역주민의 정신적 지도자로서 한평생 가난하고 억압받는 사람들을 위해 헌신”했다며 "고령에도 현재까지 각종 강연과 사회활동을 지속하며, 농어촌 교육사업과 지역사회 발전을 위해 힘쓴 공로”라고 선정 이유를 밝혔다.

매년 5월 20일은 '세계인의 날'로 한국 국민과 재한외국인이 서로의 문화와 전통을 존중하고, 더불어 사는 사회 환경을 만들기 위해 2008년 제정된 법정기념일이다.

법무부 이민통합과에 따르면, 매년 이날에는 외국인 정착 지원, 사회통합 기여 등에 공로가 있는 내외국인을 선정해 상을 준다. 대통령, 국무총리, 법무부 장관 표창으로 시상하며, 이중 대통령과 국무총리 표창은 국무회의의 의결을 거쳐 최종 확정된다.

20일 제12주년 세계인의 날 시상식에서 두봉 주교가(오른쪽) 박상기 법무장관과 악수하고 있다. (사진 제공 = 법무부)

두봉(Rene Marie Albert Dupont) 주교는 1929년 프랑스 오를레앙에서 태어나 1953년에 파리외방전교회에서 사제품을 받았다. 25살인 1954년 11월 한국에 왔다.

첫 임지인 대전교구 대흥동 성당에서 보좌신부로 10년 동안 사목한 뒤, 1969년 안동교구 설립과 동시에 주교에 임명되면서 초대 안동교구장을 맡았고, 1990년 교구장직을 그만뒀다. 그의 사목활동에는 여러 일화가 있다.

먼저 대흥동 보좌신부 때는, 대전 선화동 다리 밑에 움집을 짓고 사는 어린이들을 1년 이상 보살핀 뒤 집으로 돌려보냈다는 일화가 있다.

1990년 교구장직을 스스로 그만뒀을 때는 61살로, 주교가 된 지 21년이나 됐지만, 교구장 정년이 14년이나 남은 상태였다. 교회법상 75살까지 주교 지위를 보장받을 수 있지만, 당시 그는 한 사람이 너무 오래 조직의 수장을 맡을 때의 문제를 감안했다고 한다.

또 그는 주교품을 받을 때 누구나 의례히 정하는 주교 문장과 사목표어도 내세우지 않았다. 서양에서 문장은 귀족이나 갖는 것이란 이유에서다. 대신 “기쁘고 고맙고 떳떳하게”라는 생각으로 사목을 했다.

1978년에는 경북 영양군이 알선한 불량 씨감자로 농민들이 막대한 피해를 입게 되자, 농민들과 협력해 피해보상을 받아냈다. 피해보상에 앞장섰던 오원춘 농민이 다음 해에는 중앙정보부에 납치, 감금당하자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과 함께 이 사실을 폭로하고 당시 김수환 추기경과 전국기도회를 열기도 했다.

두봉 주교는 경북 북부의 농어촌 교육사업, 의료와 구호사업 등에 힘썼다. 안동 농민회관과 안동 최초의 문화회관, 상지여자전문학교(현 가톨릭상지대) 및 상지여중고를 설립했고, 한센병 환자를 위한 ‘다미안 피부과의원’과 사회복지시설을 설립, 지원하는 등 가난한 농촌을 위해 일했다.

가톨릭농민회와 정의구현사제단 설립을 도우며 민주화운동에도 기여한 공로로 2012년에는 만해대상 실천부분에 선정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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