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헌 주교, 대북식량지원, 평화교육 등 강조

오는 6월 25일 한반도 평화기원 미사를 앞두고, 23일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주교회의 민족화해위원회장 이기헌 주교(의정부교구장)는 북한교회에 대한 부정적 인식, 남남갈등 문제와 대북 식량지원 등 현안에 대한 입장을 밝히고, 교회의 역할로 평화교육과 기도를 강조했다.

주교회의는 지난 3월 춘계 정기총회에서 오는 6월 25일 파주 임진각 평화누리 공원에서 전국 규모의 한반도 평화 기원 미사를 봉헌하기로 결정한 바 있다.

다음은 질의응답 전문이다.

6월 25일 한반도 평화기원 미사는 어떤 의미인가?

이기헌 주교 : 하노이 북미정상회담 결렬과 북한의 미사일 발사로 남북관계가 갑자기 냉각됐다. 그동안 열심히 기도하던 이들도 실망하고, 또 다시 예전과 똑같은 길을 걸을까 걱정도 한다. 북한에 대한 여론이 부정적, 냉소적으로 흐를까 걱정된다. 남북문제로 세대 간과 정치권 등에서 많은 분열과 갈등이 있는 지금이 기도가 정말 필요한 때다. 남북관계에 대한 희망과 용기를 잃지 말고 평화를 갈망하며 기도하자.

우리 교회가 평화를 위해 일하는 이들과 연대한다는 것을 보여 주고자 이번 미사를 준비하고 있다. 또 한반도 평화에 큰 역할을 하게 될 교황의 방북을 위해 기도한다는 의미도 있다.

그동안 신자들도 평화에 대해 공부하거나 실천할 기회가 없었다. 이번 미사를 계기로 교회가 말하는 평화란 무엇인가, 평화를 살기 위해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논의를 활성화하고 정착시키도록 노력해야겠다.

문재인 대통령과 조선카톨릭교협회 강지영 회장에게도 초청장을 보냈는데, 아직 참여는 불투명한 상태다. 강 회장의 답변은 6월 초까지 기다려 보고 참석을 못하게 되면 동영상 메시지라도 요청할까 한다.

교회가 말하는 평화는 무엇인가?

이기헌 주교 : 평화는 하느님의 선물이다. 하느님 안에서 하느님 뜻에 맞게 사는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선물로 늘 간직하고 이뤄 나가야 하는 것이다. 평화를 위해서는 기도, 교육, 연대가 필요하다. 또한 교황님 말씀처럼 평화롭게 살지 못하는 이들을 위해 우리가 일해야 한다. 난민, 환경, 경제적 불평등 문제 등으로 평화를 잃고 고통스럽게 사는 이들을 위해 일하는 것이 교회와 우리 신자들이 해야 할 일이다. 신자들을 평화의 사도라고 부르지 않는가.

천주교 주교회의 민족화해위원회 위원장 이기헌 주교.(의정부교구장) ⓒ김수나 기자

북한 신자들을 가짜신자라고 보는 등 조선카톨릭교협회나 북한교회를 인정하지 않고, 남북교회의 교류를 부정적으로 보는 신자들도 있다. 이러한 인식을 어떻게 바꿀 수 있을까?

이기헌 주교 : 그러한 인식을 바로잡는 것이 교회의 역할이다. 중요한 것은 실제로 북한에 신자들이 살고 있다는 사실이다. 6.25 전에 북한 지역에 신자가 5만 3000명 정도 있었다. 전쟁 때 1만 명이 남쪽으로 내려오고 많이 죽었다 해도 적어도 몇천 명은 있지 않겠나. 1998년에 북한은 신자 수를 3000명이라고 했는데 거의 맞다고 본다. 장충 성당 지을 때도 북한 신자 중에 800명이 봉헌했다.

신심 깊은 부모들이 신앙을 전수했을 것이고, 중국에서 세례를 받고 돌아온 이들도 제법 된다. 외국 사제들이 비밀리에 세례를 주고 교육도 했다. 장충 성당에 갔을 때 실제로 신자들을 많이 만나기도 했다. 그들을 배려하는 것이 교회의 역할이다. 북한교회를 상징하는 장충 성당이 성사, 전례, 교회교리 부분에서 성장할 수 있도록 한국 천주교회가 도와줘야 한다. 장충 성당을 방문할 때마다 그러한 교육의 기회를 가지면 좋겠다.

북한을 방문하는 외국 사제나 신자들도 모두 장충 성당에서 미사를 드린다. 이처럼 북한교회는 6.25 이후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고, 신자들이 제법 살고 있다. 2015년 장충 성당에 갔을 때 영성체를 혀로 받는 신자들을 봤다. 혀로 성체를 받는다는 것은 옛날부터 신자였다는 뜻이다. 어려서부터 신자였다고 말하는 이들도 있었다고 다른 신부들에게 전해 듣기도 했다. 물론 행사 때문에 동원된 신자들도 있겠다. 그러나 진짜 신자도 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북한 천주교 공동체를 존중하고 그들이 성장할 수 있도록 남쪽 교회가 도와야 한다. 

교회 안에도 이념에 따른 남남갈등이 있다. 교회 구성원들 사이에 실질적 소통의 장이 필요할 것 같다. 이를 어떻게 마련할 수 있을까?

이기헌 주교 : 남남갈등이 더 문제다. 갈등을 풀기가 정말 어렵다. 이런 남남갈등은 평화에 큰 걸림돌이다. 6.25 전쟁의 상처에서 이 모든 갈등이 생겨났다. 6.25 전쟁 뒤 70년 세월이 흘렀어도 우리는 전쟁의 상처 속에서 화해와 용서를 못하고 있다. 아니 용서를 못하는 것이 아니라 용서를 안 하려 한다. 6.25의 상처를 직접 체험한 이들은 용서가 어려울 수 있다고 이해해 주더라도 사회적 갈등, 사회적 상처는 이제 뛰어넘어야 할 때다. 

예수님께서 일흔일곱 번 용서하라고 하셨다. 이제는 정말 용서할 때가 되지 않았나. 용서와 자비를 간구하는 것이 남남갈등을 해결하는 큰 힘이다. 거기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왜 한반도에 평화가 정착되지 않는가. 아직 우리의 준비가 덜 된 것은 아닌가. 가장 중요한 준비는 용서와 화해를 통해 우리 안의 갈등을 뛰어넘는 것이다.

남남갈등을 풀지 못하면 평화가 우리에게 오기는 힘들다. 남남갈등이 한국사회에서 여러모로 일치를 이루지 못하게 하는 큰 걸림돌이 아닌가. 이번 미사에서 남남갈등을 뛰어넘는 지혜와 축복을 청해야 한다. 더불어 앞으로도 교회의 민족화해 활동에서 평화에 대한 교육, 용서와 화해, 자비에 대한 묵상과 가르침이 계속돼야 하고, 우리 마음이 하나가 되도록, 서로 존중하고 다름을 이해하는 문화를 새롭게 만들어야겠다.

최근 북한의 단거리 미사일 발사로 식량지원까지 반대하는 여론이 일고 있다.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이기헌 주교 : 한미 정상이 대북지원에 대한 공감이 있었고, 정부가 대북 식량지원계획을 밝혔지만, 이번 미사일로 곤혹스럽게 됐다. 그러나 대북식량지원은 미사일 발사를 이유로 당장 중단할 일이 아니다. 대북식량지원이 여전히 대화와 협상국면을 복원하는 데 지렛대로 작동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동포애 차원에서라도 식량을 지원해야 한다. 10년 이래 최악의 식량난인데도 정치, 군사적 이유로 나 몰라라하는 것은 동포로서 할 일이 아니다. 이전 정부들이 정치와는 별개로 인도적 지원을 했던 것에 우리 교회는 찬성하고 함께해야 한다고 본다. 지난 10일에 세계식량계획(WFP)도 북한에서 생명을 구하는 일을 할 수 있도록 인도주의와 정치를 분리하기 바란다고 호소했다. 기본적으로 정치와 인도적 지원은 분리하는 것이 국제 관행이자 유엔 권고 사항이다.

평양 장충 성당 내부. (사진 출처 = commons.wikimedia.org)

내년이면 한국전쟁 70주년이다. 한반도 평화를 지향하는 지금, 한국전쟁은 어떤 의미인가?

이기헌 주교 : 화해의 원점이 되는 것이 6.25전쟁이다. 전쟁에서 끔찍한 일을 겪은 이들에게는 씻을 수 없는 상처가 됐고, 전쟁 경험이 없는 이들에게도 6.25는 예외 없이 물려받은 커다란 상처다. 사회 전체, 집단적 상처인 6.25를 용기 있는 화해로 마무리 지어야 한다.

우리 사회에서 계층, 정치성향, 이념을 가르는 잣대가 된 것이 북한에 대한 태도다. 이는 6.25의 상처에서 나온 것이기도 하다. 6.25의 상처는 안보와 반공을 국가 시책의 첫째가 되게 했고, 이념과 정치성향을 나누는 잣대가 돼 갈등을 낳았다. 이제 6.25라는 집단적 상처, 원한, 미움을 떨쳐버리는 큰마음이 필요하다. 이를 통해 우리 민족이 크게 전진할 수 있을 것이며, 이것이 진정한 민족의 화해, 남북의 화해다.

한반도 평화를 위해 교회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역할은 무엇인가?

이기헌 주교 : 2015년 주교회의에서 각 본당에 민족화해분과를 설치하자고 결의했는데, 아직도 잘 안 되는 교구들이 있다. 지역마다 특성과 사정이 달라서일 것이다. 의정부교구도 처음에는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불투명하고 힘들었지만, 지금 81개 본당 중 53개 본당에 민화위 분과가 만들어졌다. 물론 민족화해에 보수적이고 반대하는 신자들도 있지만 민화위 분과를 통해 지속적인 교육과 기도가 이뤄지다 보니 처음보다는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이들이 많아졌다.

행사를 할 때면 변화가 느껴진다. 이번 DMZ 인간띠 잇기에도 많은 신자들이 참여했다. 하느님의 자비를 닮아 용서한다는 표징으로 의정부교구는 2013년부터 적군(북한군)묘지에서 위령미사를 지내고 있다. 이 미사를 처음 시작할 때만 해도 관심이 적었는데, 여러 해 동안 교육하고 기도하다 보니 이제는 위령의 날 미사처럼 자리 잡았다.

바오로 6세 교황의 1975년 평화의 날 메시지인, 평화를 이룬다는 것은 평화를 위해 교육한다는 의미라는 말처럼, 평화를 위해 기도하고 연령에 맞는 구체적 자료와 프로그램을 만들어 평화교육을 하는 것이 교회의 역할이다.

각 교구 민화위나 민족의 화해를 위해 활동하거나 관심 있는 신자들에게 전할 말씀은?

이기헌 주교 : 교회가 그동안 평화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해 왔지만, 평화는 우리가 구체적으로 살아야 하는 것이다. 평화를 산다는 것은 서로 존중하며 나와는 다른 사람이 있음을 인정하고 일치점을 찾으려 노력하는 것이다. 우리 교회 안에도 세대 간 격차나 정치적 성향이 서로 다른 이들이 있지만, 그래도 서로 존중, 배려, 일치를 이루려고 노력해야 한다. 우리 일상과 교회, 사회 안에서 이러한 노력이 있을 때 평화가 이뤄질 것이다. 신자들이 이런 마음을 늘 간직하고 살면 좋겠다.

그리고 이번 미사에 신자들이 많이 참례하면 좋겠다. 지방에서는 올라오기 어려우니 수도권 신자들의 많은 참여를 바란다. 6.25를 앞두고 9일기도도 하고 있다. 미사에 함께하지 못한다면 한반도 평화를 위해 성실히 기도하면 좋겠다.

정부에 당부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 무엇인가?

이기헌 주교 : 당파나 정치적 이해관계 등을 떠나 적어도 남북문제만큼은 하나가 되도록 노력하면 좋겠다. 작년에 남북 정상이 만나고 문재인 대통령이 평양을 방문하면서 북한에 대한 기존의 편견이 많이 사라지고 우호적으로 보게 됐다. 이처럼 정상끼리도 자주 만나고 실무자나 정치인, 청소년이나 문화예술인, 종교인 등이 자주 교류해야 한다. 이런 교류를 통해 서로에 대해 긍정적으로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 각계각층이 자주 만날 수 있도록 기회를 주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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